신 여성론 – CL

2015년 11월, CL의 두 번째 정규 싱글 ‘Hello Bitches’의 뮤직비디오가 유튜브 공식 채널에 공개되자 전 세계 K-POP 팬들이 열광했다. 4만여 개에 달하는 댓글들 중 맨 꼭대기에 자리 잡은 ‘베플’은 선망의 외침이었다. “나의 특수 부대가 이랬으면 좋겠어. 여자끼리 밤에 놀러 나갈 때 완벽할 거야!” 가죽과 메탈 장식으로 중무장한 CL은, 과연 ‘특수부대’라는 비유가 나올 수밖에 없는 댄스 팀 ReQuest의 호위를 받으며 등장했다. ‘Hello Bitches’의 안무와 비주얼은 케이팝 역사상 전무후무한 강렬한 이미지를 담고 있었다. 전원 여성으로 구성된 뉴질랜드 댄스팀ReQuest는 월드 힙합 댄스 챔피언십에서 3연속 우승한 경력의 강팀으로 저스틴 비버, 제니퍼 로페즈 등의 스타들과 함께 작업한 베테랑이다. 본디지 패션에 근육질 육체를 자랑하는 댄서들에게 빈 틈 없이 에워싸인 CL은 여성 특수부대를 이끌고 돌진하는 리더라기보다는, 특수부대에게 경호받는 작고 여린 존재처럼 보였다.

그동안 CL에게는 정말이지, 문자 그대로의 보호가 필요해 보였다. 2009년 2NE1이 ‘Fire’로 데뷔하자 디씨 인사이드를 비롯한 인터넷 남성 커뮤니티들에서는 외모 비하의 일대 경합이 벌어졌다. 못생긴 여성을 조롱하는 은어 폭탄을 십분 활용한 “씨엘탄, 공민지뢰, 박봄버, 산다라박격포”를 필두로 “형, 이모, 일반인 관계자”, “(CL이)나오면 TV 채널을 돌려 버린다”, 심지어는 “징그럽다”까지. 2NE1과 CL에게는 한국 사회에서 추녀로 분류되는 여성에게 붙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멸칭들이 총동원 되었다. (참고로, 예시로 든 멸칭은 남성 커뮤니티 중에서 비교적 사용자 연령대가 높으며 점잖다고 분류되는 커뮤니티의, 단 하나의 게시물에서만 추려낸 단어들이다.)

어리고, 예쁘고, 귀엽고, 상냥하며, 때로는 당돌하지만, 근본적으로 무해할 것. ‘소녀다움’ 은 동아시아 여자 아이돌의 철칙이며 미덕이다. 애초에 2NE1은 여자 아이돌 클리셰와는 반대 노선을 추구한 그룹이었지만, 철저히 여자 아이돌장르 규칙 안에서만 평가받고 소비되었다. 아이돌 팬덤은 2NE1이 ‘역대급 못생긴 여자 아이돌 그룹’으로 낙인 찍히는 데 리더 CL이 가장 큰 공헌을 한다고 판단했다. 쌍꺼풀 없는 작은 눈과 조금 낮은 코, 그만하면 한국 여자 아이돌 세계관에서는 추녀 칭호를 얻기에 충분한 조건이었다. 네티즌들은 CL이 라이브 중 과격한 댄스 동작을 시도하는 찰나의 장면을 악의를 담아서 캡처해 온라인 부비트랩 용도의 짤방, 이른바 ‘함정 짤’, ‘차단 짤’, ‘영구 차단 짤’로 소비하는 놀이를 즐겼다.

CL과 같은 여성 유명인사가 남성 대중들에게 추녀로 낙인 찍힐 때, 여성들의 마음은 자연스레 낙인 찍힌 여성의 편으로 기운다. 딱히 팬이 아니어도 그렇다. 여성에게 엄혹하게 작용하는 사회적 기준 중에서도 못생김이라는 낙인의 대상은 대부분 여성이다. 여성 소비자들은 2NE1과 CL에게 남성들의 시선에 개의치 않는 강인함을 기대했다. 강인함, 개성, 저항은 2NE1이 데뷔 이후 꾸준히 고수한 스타일이며 여성 힙합의 상징적인 이미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대 바깥에서 2NE1의 태도는 사뭇 수더분하고 방어적이었으며, 무엇보다 자신들에게 붙은 못생김의 꼬리표를 굳이 부정하려 들지 않았다. 거기에 한 술 더 떠 YG는 각종 버라이어티 쇼와 인터뷰를 통해 줄기차게 2NE1의 ‘외모 디스’를 선보였다. “YG는 (소속 여가수들의) 외모를 보지 않는다”는 발언, 2NE1의 노메이크업 사진이 웹에 유포되자 “유포자를 고소하겠다(결코 보여서는 안 되는 2NE1들의 민낯을 공개했으므로)”는 발언 등, 어지간한 악플러 못지않은 YG의 어록들이 검색에 쉽게 걸려 나온다.

물론 소속사 대표이자 프로듀서인 양현석은 익명의 악플러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견지에서 발언했을 것이다. 남에게 손가락질 받는 자식을 한발 앞서 깎아내림으로써 보호한다는 부모의 마음일까? 비뚤어진 양육관 아래 자라난 자녀들처럼, 2NE1 멤버들은 날이 갈수록 주눅드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소속사 대표가 실상 ‘공식 추녀 인증’을 꾸준히 펼친 셈이니 무리도 아닐 테다.

2NE1의 자조 혹은 방어는 2012년 앨범 < Collection >에 수록된 발라드곡 ‘Ugly’에서 정점을 찍었다. “난 왜 이렇게 못난 걸까, 쳐다보지 마, 어디론가 숨고만 싶어.” 핍박 받는 못난이의 위축된 마음을 가감 없이 표현한 가사 에 여성 팬들은 연민 대신 실망을 표시했다. ‘Ugly’의 자조는 같은 앨범에 수록된 타이틀 곡 ‘내가 제일 잘나가’의 거침없는 가사와 대비되며 더욱 초라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강인한 여성이 으레 품을 법한 여린 속내를 보여 주려는 의도였을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2NE1은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서부터 실패했다. 아니 실패라는 표현은 부적절한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강인하게 보일 의도가 없었을지도.

연습생 시절을 기록한 리얼리티 쇼에서 2NE1은 훈화 도중 “너네 진짜 못생겼다”고 혼잣말을 하는 양현석 앞에서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인 모습을 보였다. 2NE1을 보도하는 논조 또한 강인함이나 저항 등과는 거리가 멀었다. “인성 논란 없는 여자 아이돌”, “스캔들 없는 여자 아이돌” 등. 한없이 양순한 2NE1의 캐릭터에 여성 팬들의 마음은 식어갔고 남성 팬들은 새로운 여자 아이돌을 찾아 떠나갔다. 한 때 유행했던 CL의 ‘함정 짤’ 놀이 또한 2NE1의 국내 인기와 함께 점차 사그라들었지만, 밈 Meme화된 CL의 캡처 이미지들은 지금도 여전히 인터넷 곳곳을 외모 비하 조롱과 함께 떠돌아 다닌다.

이제 CL과 2NE1은 국내 아이돌 팬덤, 특히 남성들 사이에서는 ‘공기’ 처리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없이 여리고 귀여운 모습만 보여야 하는 아이돌에 비해 상대적으로 너그러운 기준이 적용되는 듯하던 여성 힙합 분야에서도 CL은 점점 열외 처리되었다. CL은 < 언프리티 랩스타 >에도 캐스팅되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 바깥에서는 달랐다. CL과 2NE1을 향한 국내외 팬덤의 온도차는 상당히 크다. 2013년 CL은 솔로 데뷔 싱글 ‘나쁜 기집 애(THE BADDEST FEMALE)’를 발표했다. 뮤직비디오 속 CL의 이미지는 황금 의치와 너클을 휘두르는 힙합 여전사이며 ‘센 언니’ 그 자체다. 더 이상 강인해 보일 수 없는 이미지와 노래를 선보인 CL은 주눅 든 아이돌에서 점차 ‘아티스트’로 이미지를 바꾸어나갔다. 2014년, 2NE1의 2011년 발표곡 ‘내가 제일 잘나가’는 미국 디지털 음원 차트 1위를 차지했고, 2NE1과 CL은 해외 K-POP 시장에서 비로소 당당하고 강인하고 센 여성 아티스트의 위치를 점유한다. 2015년 연말 홍콩에서 열린 MAMA에서 선보인 CL의 ‘Hello Bitches’ 와 2NE1 메들리 공연은 그해 최우수 가수상을 수상한 빅뱅을 압도하는 유튜브 조회수와 댓글을 얻었다. 유튜브 댓글란에서 CL의 홑꺼풀 눈과 ‘일반인스러운’ 생김새를 비하하는 내용은 찾아 보기 힘들다. 유튜브라서 악플이 없을까? 그럴 리 없 다. 그럴 수 있다고 양보하더라도, 해외 K-POP 팬들이 CL에게 앞다투어 바치는 “소름 돋는 멋진 스타일”, “닮고 싶은 여성”이라는 찬사와 ‘씨엘탄’ 사이의 간극은 멀고도 멀다.

익명과 악플이 지배하는 인터넷 세계는 곧잘 쓰레기통에 비유된다. 가장 아름답다고 공인된 스타도 외모 비하와 성희롱 악플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한국 남성들의 CL을 향한 비난은 노선이 달랐다. 남성들은 CL이라는 개인을 한국 여성 전체와 동치시켜, ‘지가 예쁜 줄 착각하는’ 여성들을 향한 공격 무기로 이용했다. ‘함정 짤방’에 이어 CL의 외모 비하 유행어로 가장 널리 퍼진 말은 ‘“씨엘 예쁘다고 우기는 여자더러 ‘너 씨엘 닮았다’ 고 하면 화를 낸다”라는 비아냥이었다. 이 비아냥은 CL에 대한 외모 디스는 물론이요 ‘여적여(‘여자들의 적은 여자’의 줄임말)’ 정서를 통렬하게 비웃는 남자들만의 탈무드적 경구로 오랫동안 유효했다. 여성 앞에서 이 문장을 구사하는 남성들의 태도는 ‘사이다’적인 감정으로 가득하다. CL의 외모를 매력 있다고 호평하는 소수 의견은 “너 여자지?”로 간단히 묵살되고는 했다. 여성의 외모를 평가하는 주체는 남성이라는 단순하고 공고한 믿음, 여성의 여성에 대한 호평은 전부 가식이며 내숭이라는 믿음, 여성을 오직 수컷의 눈에 들기 위해 경쟁하는 암컷으로 정의하는 믿음은, 미소지니 또는 여성 혐오라는 개념으로 간단하게 정의 내릴 수 있다.

2015년, 2NE1과 함께 거의 잊혀져 가는가 싶던 CL이 화제에 올랐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포니와 협력해 새로운 스타일링을 선보인 것이다. 2010년 이전부터 블로그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해온 포니는 그 자신 ‘얼짱’으로 활약해온 인터넷 스타다. 2000년대 초 인터넷 보급과 함께 한국 청소년들을 지배한 얼짱 문화는 커다란 눈과 도려낸 듯 갸름한 턱, 새하얀 피부 등 이른바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비현실적 미모를 추구했다. 얼짱의 미학은 하위 문화를 초월해, 이제는 한류 팬덤을 관통하는 ‘K-뷰티’의 근간이 되었다. 포니가 스타일링한 CL의 세련된 메이크업은 K-뷰티 미학을 훌륭하게 충족했다. 여성들은 CL의 변신을 두 팔 벌려 환영 했는데, 그 환호는 열광보다는 안도감에 가까웠다. ‘우리 씨엘이 드디어 예뻐졌구나.’

아이돌은 대중에게 일종의 대리자 역할을 수행한다. TV와 유튜브는 아이돌이 청소년 시절부터 끊임없이 성장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중계하고, 팬덤은 대리 체험과 성취의 쾌감을 만끽한다. 흔히 아이돌을 부정적인 맥락에서 ‘인형’에 비유하는 것은, 아이돌의 대리자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부서질 듯 여린 생김새를 지닌 여자 아이돌의 필사적으로 애교 부리는 얼굴에 씨름 천하장사 출신의 중년 남성이 온 힘을 다해 따귀를 날리는 포즈를 취하는 장면을 보며 폭소를 터뜨리는 것이 한국의 연예계다. 그것을 관람하는 한국의 여성들은, 따귀 앞에서 웃는 여자 아이돌의 자리에 스스로를 끼워 넣을 수밖에 없다. 아이돌인 그녀에게는 표현이 허락되지 않은 공포를 대신 느끼며. 예쁘고 귀엽고 부러질 듯 마른 몸과 상냥한 태도를 지니는 것과 동시에 보쌈 고기를 남자만큼 많이 먹고 자신의 따귀를 갈기려는 아저씨에게 ‘현명하게’ 애교를 부리고 때로는 남자처럼 털털하게 굴 줄 도 알아야 하는 여자 아이돌의 미덕은 한국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여성 혐오적 억압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Hello Bitches’에서 CL은 ReQuest 댄서들에게 물 샐 틈 없는 호위를 받는다. 여성 대중들은 끊임없이 못생겼다는 소리를 들으며 살아온, 쌍꺼풀 없는 20대 여성의 자리에 자신을 끼워 넣으며 내심 안도할 수 있게 됐다. 어지간한 한국 남성을 압도하는 신체를 지닌 외국인 여성 특수부대원들에게 둘러싸여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가녀린 한국인 여자아이는 정말로 ‘나쁜 기집애’가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괜찮다. 보호받을 수밖에 없다면 남자가 아닌 여자들만의 특수부대에 보호받기를. 강하고 커다란 외국 여자들이 한국 남자들의 몹쓸 입을 다물게 해주기를. 겨우 그 정도의 판타지도 아쉬울 정도로, CL과 한국 여성들이 처한 상황은 여유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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