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여성론 – 손예진

내게 손예진은 언제나 ‘초승달 눈’이었다. 드라마 < 연애시대 >에서든 영화 < 클래식 >이나 < 외출 >, < 백야행 >에서든. 손예진이 활짝 웃거나 맑은 눈물을 글썽거릴 때, 그 초승달 모양의 눈은 언제나 상대방 남성을 향했다. 드라마 < 맛있는 청혼 >으로 주목받았을 때부터, 남성 관객들은 그 아기 같고 연약한 사랑스러움에 환호했고, 지켜주고 싶은 소녀의 이미지로 그녀를 우상화했다. 하지만 많은 남성 관객이 이경미 감독의 영화 < 비밀은 없다 >에서의 손예진은 외면했다. 왜 상대역인 김주혁의 분량이 이렇게 짧은 것이냐고 불평했다.

< 비밀은 없다 >의 주인공 연홍은, 손예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의 한국 영화에서 거의 보지 못했던 캐릭터다. 여성 관객으로서, 한국 영화를 볼 때마다 괴로웠다. 특히 2000년대 중반부터 대부분의 메이저 한국 영화는 남자들이 만들고 남자들이 나오며 남자 관객을 의식한 영화라는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어떤 사건을 일으키고, 어떤 사건의 무고한 희생자가 되고, 어떤 사건을 해결하는 인물은 언제나 남성이었다. 여자들은 그 남자들의 어머니거나 딸이거나 애인이거나 아내였고, 대부분은 남성 주인공에 대한 협박이나 복수 때문에 납치 당하거나 폭행당하거나 살해당했다. 그래서 그 여자들이 카메라에 담기는 방식은 대단히 지루했다. 일단 여자 혼자 나오는 장면 자체가 굉장히 드물었다. 언제나 남자 주인공 옆에서, 아니면 남자 조연 떼 속에 함께 섞여서 그 남자들의 삶 혹은 작전의 일부로 기능하는 게 전부인 캐릭터였다.

물론 이런 경향은 최근 몇 년 동안의 일이 아니다. 과거의 한국 영화로 거슬러 올라가더라도, 남자와 ‘인정받은’ 짝패를 이루지 않는 여자 주인공의 말로는, 사악하고 비열한 팜파탈로 죽어버리거나 모두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히스테리에 둘러싸여 있다가, 결국엔 체념하고 적응하거나 도태되는 길을 걸었다. 그녀들은 자신들을 바라보는, 자신들을 둘러싼 사회(더 정확하게는 그 사회 속 남성들)의 시선에 종속되어 있었고, 그에 대해서 거의 체념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 비밀은 없다 >의 연홍은 그렇지 않았다. 영화의 오프닝, 이제 막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앵커 출신 남편 종찬의 옆에 서서 집으로 몰려드는 여당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인사하며 예쁘게 웃어 보이고, 선거 캠프 사람들 수십 명에게 먹일 김밥을 손수 싸는 그녀의 바쁜 손길이 비춰질 때만 해도, 연홍은 그냥 ‘정치인의 아내’ 역할처럼 보였다. 그런데 딸이 갑자기 사라지면서, 또 그 사실이 선거에 영향을 줄까 봐 숨기려 하는 선거 캠프 사람들을 보면서 그녀는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한다. 사라진 딸 때문에 울어서 퉁퉁 부은 눈, 혹은 딸의 미확인 이메일 목록 수천 통을 밤새도록 하나하나 들여다보느라 잠을 자지 못해 피로가 누적되어 퉁퉁 부은 눈으로 “생각하자, 생각하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생각하자”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연홍의 클로즈업이 화면을 꽉 채울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지금까지 남자들이 우악스럽게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파헤치다 ‘사이다’를 만끽하게 해 주는, 혹은 예정된 패배와 파멸의 서사를 통해 관객의 자기 연민을 정당화시키는 여타의 스릴러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연홍의 감정이 이야기를 전진시키는 동력이 되고, 연홍의 움직임 이 사건을 일으킨다.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자기 손등을 가위로 찍으며 “믿어도 되는 사람이라는 증거를 줘봐요”라고 이를 악물고 말하고, 시뻘건 눈으로 밤새도록 딸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며 단서를 더듬는 이 집요한 여자는, 극한의 스트레스 속에서 예정된 끝을 향해, 어쩌면 이미 두렵게 짐작하고 있었을 어떤 결말을 향해 한 치의 주저도 없이 달려간다.

이경미 감독은 < 비밀은 없다 >를 최근 한국 사회의 가장 큰 화제 중 하나인 페미니즘의 조류와 다소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것 같지만, 그녀가 ‘호감 가지 않는’ 여자들을 그려내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한국의 현실 속에 존재하지만, “아 뭐 대충 넘 어가”, “어휴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래”, “A씨 참 피곤하게 산다” 등의 말속에 강제로 묻히는 그 무수한 여자들. 손예진이 연기한 연홍도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선거 캠프의 박 사무장이라든가 딸 민진의 실종 사건을 수사하는 강력계 형사들, 그녀의 질문 세례 앞에서 멍해지는 학교 선생님들까지, 모두 연홍을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대충 이정도로 설명하면 되겠지 싶었는데, 연홍은 “아, 네” 하고 납득하며 물러서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을 계속 캐묻는다. 자신의 말마따나 ‘공부머리가 없는’ 연홍은 자신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모든 세부를 하나하나 의심해야 하는, 탐정으로서의 좋은 자질을 지녔다. “여기 성적을 보시면 참 기복이 없는 학생입니다”라는 담임선생의 영혼 없는 말에 연홍은 목을 쭉 빼고 모니터를 들여다보다가 “근데 선생님, 없긴 뭐가 없어요. 기복 있구만” 하고 가볍게 나무라는 듯 대꾸한다. 관객석에서 가벼운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는 장면이다. 손예진이 “기복 있네요”가 아니라 “기복 있구만”이라는 입말을 내뱉는 순간, 그전까지 자기 딸이 어떤 아이인지 잘 모르는 채 야심만만한 남편의 예쁜 인형 같은 아내로만 비치던 연홍은 관객의 기대와 예상을 부수기 시작한다.

남편이고 경찰이고 모두 자기 의견에, 조급한 마음에 귀 기울이지 않자 그때까지 꼭꼭 감추고 살던 전라도 사투리를 걸쭉하게 터뜨리며 자기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남편 앞에서 고개를 빳빳이 들고 둘째손가락을 쳐들며 저주를 퍼붓는다. 영화가 시작되고 15분 정도 지난 이후부터는 아예 미소 한번 띠지 않고, 격앙된 감정을 매 순간 억지로 참아내며 폭주한다. 그래서 종종 < 친절한 금자씨 >의 이영애와 비교하는 글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 친절한 금자씨 > 의 이영애는 박찬욱 감독이 요구한, 아주 양식화된 스타일 속에서 하나의 아이콘 같은 형상으로 스스로를 철저히 가두고 동시에 금자가 처한 현실을 프레임 속에 단단히 고정시킨 예다. < 비밀은 없다 >의 손예진은 매 장면 급변하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달리면서, 프레임 바깥에 존재하는 불쾌하고 위협적인 현실이 카메라 속으로 넘쳐흐르는 순간까지 유연하게 오간다. 그녀가 카메라 안에 가만히 멈춰 있는 순간조차 현실은 응고되어 있지 않다. 그 안에서 부글부글 끓어 넘친다.

배우 생활을 갓 시작한 초반에는 누구나 배역과의 일체화로, 배역과 배우가 혼동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어느 순간 배우가 영향력을 키워가고 자신의 실제 모습을 아주 조심스럽게 꺼내들면서, 배역이 자신을 덮어쓰는 게 아니라 배역을 자신이 장악해가는 과정을 겪는다. 여기서 여자 배우는 남자 배우보다 항상 불리하다. 앞서 말했듯, 일단 여자 배우에게 주어지는 역할 자체가 대부분 남자의 부속물처럼 정형적으로 끼워 맞춘 배역이기 때문이다. 비슷비슷한 배역을 얼굴만 다른 배우들이 계속 연기하는데, 그 와중에 감정선과 주요 액션은 남자 배우에게 쏠리는 상황에서 여자 배우가 변주를 만들어가기는 쉽지 않다. 배역을 통해 자신만의 서사를 만들어내며 결과적으로 자신이 그 배역을 ‘잡아먹는’ 기회 자체가 여자 배우에게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손예진은 대스타의 기질을 타고난 배우다. 압도적인 아름다움과 남녀노소에게 유효한 호감과 친근성이라는 매력이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는 않는다. 그녀는 만인의 연인으로, 시청률과 흥행의 보증 수표로 불리며 오랫동안 군림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 비밀은 없다 >라는 낯선 선택을 통해, 불편한 여자로 스크린을 장악했다. 지금까지처럼 모두에게 평균적인 ‘호감’ 을 줄 순 없었지만, 대신 그 불편한 여자를 열광적으로 ‘사랑’하는 또 다른 팬들을 얻었다. 이를테면 내가 그 팬이 됐다. ‘초승달 눈웃음’이라는 오랜 이미지만으로 안이하게 이 배우를 생각했던 나 같은 관객에게, 그녀는 충격을 주었다. 복수를 감행하는 클라이맥스에서 아스 팔트 위에 무릎을 꿇은 채 길게 짐승 같은 절규를 토해내는 연홍, 자신의 마지막 품위와 마지막 인간적인 자존감까지는 놓지 않으려 애썼던, ‘그래도 살아가겠다’는 결심을 한 연홍의 모습 위로 보란 듯이 승리의 함성을 토하는 손예진이 겹쳐 보였다. 봐라, 여기 당신이 제대로 알지 못했던 배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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