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여성론 – 김혜수

얼마 전 국가건강정보 포털은 보건복지부와 대한의학회, 대한성형외과학회의 작성 및 검수를 거쳐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가슴’을 제시했다. 이는 즉각 논란을 일으켰다. 현재는 삭제되어 다시 볼 수 없는 그 내용은 아름다운 가슴이란 풍만하고 탄력이 있어야 하며 원추형이라면서, 250CC, 18cm, 22cm, 4cm 등의 숫자와 길이의 단위로 쇄골 중심과 유두 간의 거리, 양쪽 유두 사이의 거리, 유륜의 직경까지 적어놓은 것이었다. 건국 이래 가장 많은 사람의 입에 ‘페미니즘’이 오르내리던 폭염의 한복판, 그 무식한 말을 좇아 유황불의 분노가 모여들었다. 그런데 어떻게든 눈에 띄는 댓글이 하나 있었다. “그냥 김혜수,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김혜수의 몸. 화자도 청자도 부끄럽지 않은 유일한 이름. 성적 대상으로 삼든 그렇지 않든 가치 판단은 차치하더라도 김혜수의 몸을 말하는 것은 속되거나 상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1백 퍼센트 김혜수가 설계한 세계다. 그녀는 일찌감치 ‘서구적인 체형’이라는 에두른 표현이나 육체파니 과발육이니 하는 폭력적 언사에도 외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노출이라는 말풍선이 신체의 일부처럼 따라다닐 때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김혜수는 자신의 몸으로 자신을 말하려 하지 않았다. 또한 자신을 보는 시선을 피하지도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방향은 달라졌지만 줄곧 그녀의 몸은 남녀를 불문하고 어떤 대상이 되었다. 여자들은 섹시하지만 헤퍼 보이지 않는 몸의 아이콘으로 인식했고, 남자들은 차마 쉽게 품을 수는 없지만 그래서 더욱 성적 매력이 넘치는 한 타입으로 김혜수라는 이름 석 자를 옹립했다. 그녀를, 그녀의 몸을 보는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극명했다. 영원히 맞닿지 않을 것 같던 그 두 시선이 모이는 곳에는 성적인 매력을 스스로 터부시 하지 않는 건강한 섹시함이 공통점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비슷한 이미지로 오랜 시간 소구되고 또 소비된 그녀야말로 자신을 주장하게 하는 주요 원소가 무엇인지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혜수는 몸을 무기 삼거나 염두에 둔 듯한 결정은 내리지 않았다. 하고 싶은 작품 – 혹은 하기 싫었으나 상황이 반드시 하게 한 작품을 마다 않고 – 을 그저 과수원에서 과일 따듯 바구니에 담았다. 아슬아슬한 드레스를 입었을 때나 경찰 유니폼을 입었을 때나 당당하게 앞으로만 걸었다. 작정한 것인지 그저 자연스러운 것인지는 그녀 자신만 알겠지만, 김혜수의 태도는 당당하고 멋진 여자의 어떤 전형이 되었다. 몸으로 회자되는 배우라면 김혜수 말고도 많았지만, 김혜수처럼 일컬어지거나 표현되는 배우는 없었다. 몸이 몸이되 몸이 아닌 몸으로 자신을 인식하도록 한 김혜수의 태도는 따라 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 도둑들 > 개봉 언저리의 이런저런 행사 중에 전지현과 김혜수는 두 배우의 대결 구도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전지현은 “보시다시피 바스트 사이즈부터 상대가 안 된다.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 김혜수의 바스트여서 할 수 있는 말이었고, 김혜수라서 그 상황에 코를 접어 웃을 수 있었다.

김혜수의 태도는 여자를 성적 대상으로만 삼는, 삼아도 되거나 삼아 마땅하다고 믿는 이들에게 어떤 경각심을 주기에 충분했다. 고약한 장난을 치는 아이가 그 행동을 멈추는 순간은 반응이 없을 때, 또는 그 장난 자체를 무시 할 때다. 김혜수는 배우의 몸을 오브제로서 말할 수 있게 했다. 스스로 섹시한 몸인 채, 몸을 벗어난 채로도 섹시함을 말하게 하는 신기한 국면까지 이끌어낸 것이다. < 타짜 >를 끝내고 나눈 인터뷰에서, 김혜수는 전라로 창가에 서 있던 장면을 떠올리며, “비로소 내 연기에 들어가 있던 힘이 빠졌다”고 말했다. 과연 그 장면은 전혀 성적으로 소비되지 않았다.

누구나 김혜수를, 김혜수의 몸을 말해왔다. 비옥한 가슴도, 풍요로운 골반도, 견고한 어깨와 긴 다리, 늘 바투 깎아 말끔한 손톱 끝까지. 하지만 아무리 말해도 그것은 음란의 범주에 들지 않았고, 차별이나 비하의 차원도 비껴갔다. 하이틴 스타였던 초기부터 ‘배역을 만드는 배우’가 된 지금까지 김혜수는 이 기이하고도 독보적인 이미지를 놓치지 않았다. 그것은 때로 김혜수라는 배우 자체가 극중의 인물보다 먼저 보이게 만들기도 했지만, 그 역시 문제가 된 적은 없다. 김혜수는 김혜수니까, 누구나 스스로를 설득하곤 했다.

어쩌면 김혜수의 몸은 뭔가를 감추는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 말하자면 몸과 연기가 상호 보완이 아니라 병렬 치환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구멍이 많았음에도 김혜수로 가득한 영화 < 굿바이 싱글 >이 그랬다. 김혜수의 몸이 아니라면, 그녀의 태도가 아니라면 누가 저렇게 하고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장면이 넘쳐났지만 김혜수, 몸, 태도는 분리되지 않았다. 90년대 후반, 입술보다 훨씬 더 크게 립라인을 그렸던 자신을 꼬집듯 필러로 두둑해진 입술로 나오는 장면은 김혜수라 가능했고 김혜수라 웃길 수 있었다.

2001년에 인터뷰를 할 때, 스스로 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그녀는 크게 웃었다. “뭐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내 몸인데 그냥 몸이지.” 마음에 드냐고 재차 물었다 “내 몸인데 마음에 들죠. 안 들면 어떻게 해, 하하하.” 마치 “김혜수씨 이름이 뭐예요?”라고 물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대답이었다. 그리고 엊그제, 몸이 마음에 드느냐는 질문 기억하냐고 다시 물었다. “마음에 든다고 했어. 그치? 마음에 안 들면 어떻게 해. 내 몸인데. 몸이 뭐, 그냥 몸인 걸.” 김혜수는 변하지 않은 채로 진화하는 게 뭔지 아는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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