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이상한 거 아닙니다’ 사진가 양승우

2016.09.06정우영

사진가 양승우의 관심은 사람이다. 모르는 사람은 일단 제외된다. 살이 맞닿을 만큼 가까워졌을 때, 그의 카메라에 불이 들어온다.

 

지난 7월 <청춘길일> 전시에서 우연히 사진가 양승우와 마주친 친구가 말했다. “되게 친절하던데?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어.” 사진은 사실을 고정하고 사실을 과장한다. 이를테면 피부에 닿을 듯한 거리에서 조직폭력배를 담은 사진은 실물 이상의 충격이 있고, 그걸 찍은 사진가 역시 불량한 사람일 거라는 추측이 있다. 사진은 대상과 카메라의 거리를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사진가가 결정한 결과다. 양승우는 이 거리를 ‘냄새’라는 단어로 번역한다.

프란스시코 교황조차도 얼굴이 혹으로 뒤덮인 피부병 환자가 자신에게 접근하자 처음에는 한발 물러섰다. 이내 자애로 그를 보듬었지만, 인간이 두려운 대상을 멀리하는 것은 본능이다. 양승우 역시 신주쿠 가부키초에서 처음 야쿠자를 마주쳤을 땐 말도 걸지 못했다. 잠도 못 잘 정도로 후회한 후에야 한 대 얻어터져도 좋다는 각오로 말을 붙였다. 첫 만남에서 찍은 사진을 곧장 암실에서 인화해 그들에게 건넸다. 그가 야쿠자를 찍을 수 있게 된 배경이다. 양승우에게 대상과의 거리를 좁히는 것은 사진을 찍기 전에 수행하는 의식과 같았다. 비록 그는 교황이 아니나 교황보다 자세를 낮출 수는 있었다. 인력 시장에서 일용직 노동자와 술을 마시고,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길거리에서 노숙자와 자면서 사진을 찍었다. 그의 첫 번째 사진집 < You’re there and I’m here >의 주인공인 노숙자 곤타와 몸을 부비고 자다가 이가 옮기도 했다. 양승우는 말했다. “그들에게선 저랑 같은 냄새가 나요.” 이에서 나는 냄새는 아니다. “제가 최대한 다가가려고 하는 건 그들의 냄새까지 찍고 싶기 때문이에요.”

 

<청춘길일> 전시와 사진집에 등장한 한국의 조직폭력배 대부분은 그의 친구들이다. 그 압도적인 박력의 사진은 “가까이 두고 오래 사귄” 사람이라서 가능했다. 양승우 식으로 표현하면 지독한 냄새가 났다. 양승우가 사진에 매진한 계기도 친구다. 그는 1996년 훌쩍 일본으로 떠난다. 한국에 계속 있으면 친구들처럼 어둠의 세계로 갈 것 같다는 짐작과 새로운 걸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기대였다. 일본에서 비자를 연장할 셈으로 등록한 사진 학교에서 사진에 빠지게 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하지만 도쿄공예대학 미디어아트 박사 과정까지 이어진 그의 학업보다 더 큰 동력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친구였다. 그가 죽고 모든 사람에게서 잊혀 가는데, 그의 사진이 한 장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양승우는 친구들과의 순간을 닥치는 대로 찍기 시작했다.

그가 찍은 아내의 사진을 보면, 그가 추구하는 대상과의 거리는, 거리라는 말이 무의미할 만큼 가까워지는 것인가 싶다. 사진 속의 아내는, 생기 있는데 고요하고 구체적이지만 비현실적이다. 보이는 것만 다루는 것, 그렇게 ‘예쁘다’고 판단하는 것은 사진에 대한 너무 빈약한 인식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양승우는 두 가지 의미로 예쁘다는 말을 썼다. “예쁘게 나온 아내 사진은 잘 안 골라요. 가난하고 힘들지만 행복하구나 싶을 때 사진을 찍죠. 가끔 혼자 아내의 사진을 보면서 울어요. 참 예쁜 애가 나 만나서 고생하는구나, 싶거든요.” 필립 퍼키스는 사진이 “대상에게 반응하는 법을 배우는 매체”라고 말했다. 양승우는 언론, 사전 정보, 선입관을 일체 무시하고 인간에게 다가가는 게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래서 양승우의 사진을 다큐멘터리로 분류하는 건 이상하다. “술 먹을 때 카메라에 필름 세팅해두고 아무나 찍으라고 방치”해두는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어딨을까. “제 사진은 한 장으로 말하는 게 아니니까요. 영화를 만든다고 생각하거든요.” 양승우가 말했다. 영화는 미술, 촬영, 제작, 조명, 효과 어느 하나 감독이 직접 하지 않지만, 감독의 예술이라고 불린다. 감독이 결정하고 책임지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냄새는, 사진가가 찾아낸 특이한 소재가 아니라 평범한 소재에서도 얼마든지 다른 것을 말하는, 영화감독의 이야기에 가깝다.

“한때는 누구한테도 싸움으로는 질 것 같지 않은” 양승우였지만, 지금은 가정을 이루고 그 가정을 건사하기 위해 육체노동을 하고 있다. 일본 사람들은 위험해서 가기를 꺼리는 말레이시아, 콩고, 필리핀 등지에서 일하는 틈틈이 사진을 찍는다. 그렇게 힘들게, 그렇게 오랜 세월 사진을 찍으면서 뭔가 달라진 게 있을까. 양승우가 답했다. “개, 고양이, 나무 등 여러 피사체와 대화할 수 있게 됐어요. 진짜로, 저한테 말을 걸어와요.” 양승우가 들었다면 한번 들어보고 싶다. 귓속말로만 건넬 수 있는, 그들의 비밀 이야기였을 것이다

    에디터
    정우영
    포토그래퍼
    양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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