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한 몸과의 섹스

유연한 몸과의 섹스, 몸이 깨어난 남자.

몸을 굽혀보고 뻗어보기 전엔 모른다. 다행인가? 뻣뻣한 남자의 입장에서라면 그럴지도. 춤이라도 한바탕 같이 추고 나면 짐작은 할 수 있겠으나, 리듬감은 또한 유연성과는 별개의 요소일 테니.

근육이 많으면 힘이 세다.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남자라면) 수염이 있거나 (여자라면) 잔머리가 많으면 몸에도 체모가 많겠지. 까끌까끌하든 푹신푹신하든 그걸 즐기는 것도 취향이 될 수 있으려나. 그렇게 옷을 입고 있어도, 마주 보고 앉아 있기만 해도 대강 알게 되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몸이 얼마나 유연한가에 대해서 만큼은 오리무중일 것이다. 심지어 그건 수영장이든 바닷가든 몸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라해도 마찬가지다. 비보잉을 하는 남자, 발레를 배운 여자 같은 단서가 있는 게 아니라면. 그렇다고 그것을 소재로 지저분한 얘기나 늘어놓는 것만큼 못난 일이 뭐가 있겠느냐만.

물론 상상만큼은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유연한 상대와의 섹스. 그런데 뻣뻣한 나는 생각만으로 즐거운가? 완벽히 아름다운 몸과의 섹스를 앞둔 순간, 불을 완전히 다 꺼도 훌러덩 알몸을 드러내는 것이 꺼려지곤 하는데. 유연하지 않은 나는 마냥 직선으로 힘껏 돌진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다행히 없는 근육은 갑자기 만들 수 없지만, 몸을 늘리고 휘게 하는 부분에 대해서라면 주변의 기물과 그것을 이용한 요령이 많은 부분을 해결해줄 수 있을 것이다. 높이 솟은 침대 헤드, 칸칸마다 잡고 버틸 침대 옆의 책장, 허리 밑의 베개, 그 베개가 두 개…. 내 집처럼 익숙한 장소일수록 더 효과적일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상대 몸의 가동범위에 대해 전혀 알 수 없는 채로, 침대에 올라서야 서로를 마주한다. 알몸을 보고 그 몸을 맞대는 것만으로도 흥분을 주체할 수 없는 상태. 술이라도 마셨다 치면 내 몸에 대해서도 판단력이 흐려진다. 뻣뻣한 내 몸 때문에 맘도 움츠러들어야 마땅할 텐데 욕정만큼은 이미 솟아오를 대로 솟아올라, 올림픽 기계체조 금메달리스트처럼 도약부터 착지까지 완벽할 것만 같은 기분. 다리를 쫙 찢고 물구나무라도 설 수 있을 것 같은 기백이 생긴다. 섹스가 만병통치약인 건지, 만병의 근원인 건지 그 순간만큼은 어떤 고통도 없어지기 마련. 이후에 찾아오는 뻐근함과 찌뿌둥함은 내일 생각하기로 한다.

거기서부터는 완전히 새로운 몸이다. 걷거나 앉거나 일어서거나 손을 잡는, 아까 보고 경험한 너와 나의 몸이 아니라 본능을 극대화하기 위해 움직이는 몸. 지금까지의 경험을 벗어나는 쾌락의 시작. 사실 어떤 섹스는 예측이 가능하다. 아니, 어쩌면 대부분이 그럴지도. 정상위(섹스에 관한 그 무엇보다 이상한 표현이지만)에서는 내 가슴에 상대의 가슴이 닿는다. 후배위에서는 내 골반에 상대의 엉덩이가 닿는다. 그러다 여성상위에서는 좀 더 색다른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모두 머리보다는 몸 제각각의 부위가 기억하는 일. 그런데 유연한 몸과의 섹스라면? 그 몸이 놀랄 일이 벌어진다. 서서히 벌어지는 다리와 끝없이 뒤로 넘어가는 허리, 풍차처럼 돌아가는 어깨, 그러다 닿을 일이 없던 몸과 몸의 어떤 부분이 포개지는 순간. 매일 맞닿는 내 손깍지도 손가락만 하나 다르게 껴도 그렇게 생소할 수가 없는데, 남의 몸이 예고 없이 닿는 일이라면 더욱 짜릿할 것이다. 낯선 피부의 감각, 처음 보는 각도에서 마주하는 상기된 얼굴.

사람의 팔과 다리가 이렇게 길었던가? 그런데 내 침대는 왜 이렇게 좁지. 전후좌우 가득 놓인 가구가 대체 무슨 소용인가. 탁 트이고 넓은 마루로 내려갈까. 그러면 우리는 더욱 진하게 남는 곡선을 그릴 수 있을 텐데. 물론 뻣뻣한 남자, 즉 나의 공헌도로 따지자면 정지된 기물을 대신한, 부러지지 않고 움직이는 지지대 정도의 역할일까. 그러다 발견을 하기도 한다. 나는 상체보다 하체가 유연하구나. 양팔로 꿀렁꿀렁 춤추듯 ‘웨이브’를 해봐도 자주 쓰는 팔이 덜 쓰는 팔보다 그럴싸한 물결 모양을 그리듯, 몸에서도 각자의 부위엔 각각의 유연성이 있다. 또한 윗몸일으키기를 할 때 친구가 발을 살짝 눌러주는 것만으로도 복근이 숨겨둔 탄력을 발휘하고, 바벨을 들 때 누군가 중앙 봉에 손가락 하나 받쳐주면 몇 개쯤 횟수를 더할 수 있듯, 유연한 상대를 당기고 밀며 지지하는 동시에 나 역시 평소보다는 부드러운 몸으로 변모해 있곤 하달까.

“요가를 하셔야 돼요. 근육운동을 생각하실 때가 아니에요. 다쳐요. 겨울엔 특히.”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유연성을 측정하는 기계에 다리를 앞으로 쭉 뻗고 앉아서 허리를 있는 힘껏 굽혔다 일어난 후, 그 테스트를 관장한 전문가에게서였다. 내가 그렇게 뻣뻣한가? 근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체육시간에 스탠드에 앉아만 있는 쪽은 아니었는데. 요가라면 여전히 망설여지지만, 전신 스트레칭 정도라면 해볼 만한가? 같은 지지대라도 아무렴 나보다 훨씬 훌륭할, 그 유연한 너의 몸을 꽉 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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