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자동차 1 (알파 로메오 스파이더 1600 / ‘졸업’)

영화 역사에 등장한 가장 매혹적인 자동차 100대, 자동차 역사에 아로새길 100편의 영화. 우리는 영화를 떠올리며 자동차를 생각했다. 자동차를 기억하며 영화를 다시 봤다.

알파 로메오 ‘스파이더 1600’ < 졸업 > 1967  스물한 살 벤자민 브래드독(더스틴 호프먼)이 금문교를 달린다. 그는 빨간색 알파 로메오 스파이더를 타고 있다. 벤자민의 얼굴은 방금 껍질을 벗긴 땅콩 같고, 스파이더의 생김은 잘 익은 보리수 열매 같다. 둘은 그렇게도 닮았다. 따로 또 같이, 그들은 함께다. 자동차가 여느 소품과 다른 것은 그것이 움직인다는(스스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로부터 온다. 자동차는 곧 캐릭터와 한 몸이 된다. 길을 달리는 ‘빨간’ 벤자민에게 사이먼 앤 가펑클의 ‘스카블로의 추억’이 햇살처럼 쏟아진다. 아름다운 장면이다.

 

 

시트로엥 ‘DS 21 카브리올레 1969년형’ < 세비지 그레이스 > 2007 1967년 여름, 스페인 카다케스. 언덕길을 빠르게 달리는 뚜껑 없는 차가 이리로 온다. 경사와 커브가 제법인 길인데, 운전하는 여자(줄리안 무어)는 도무지 조심하려는 의지가 없어 보인다. 온통 뒤엉키는 공기와 그 공기를 찢는 소음. 1분 남짓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세상 어떤 추격 신보다 강렬하다. 속력, 가속, 관성. 실제로 그 차에 탄 것 같은 현기증이 인다.

 

 

BMW ‘M6 쿠페’, < 내가 사는 피부 > 2011 미스 디올 핸드백, 루이스 부르주아 화집 그리고 M6. 이 영화에 나오는 몇몇 ‘선택’이다. 자신의 취향과 다를 수는 있지만, 보자마자 설득당하고 만다. 일물일어설의 이치가 그렇듯, 어딘가에 꼭 맞는 물건은 단 하나뿐일지도 모른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귀신같이 그걸 골라내고, 끝내 설득한다. 당대 최고의 기술을 보유한 성형외과 의사이자, 철두철미한 복수의 화신인 로버트(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직접 모는 차로서 M6는 탁월한 선택이라고, 보자마자 믿게 된다.

 

 

푸조 ‘508 SW’, < 클라우즈 오브 쉴즈마리아 > 2015 이른 아침 알프스. 전날 저녁 산 아래로 차를 몰고 나갔던 발렌틴(크리스틴 스튜어트)이 돌아온다. 구불구불, 안개인지 구름인지 온통 어지러운 길. 그녀는 차에서 내려 구토한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고, 음악은 아까부터 프라이멀 스크림의 ‘Kowalski’가 흐르고 있다. 다음 날 저녁 발렌틴은 주차장에서 나오다 다른 차를 들이받고 뺑소니를 친다. 어떤 전조, 불길함. 그러는 동안 푸조 ‘508 SW’는 커다란 뱀처럼 움직인다. 거침없이 부드럽지만 그 자체로 위험해 보인다.

 

 

캐딜락 ‘플리트우드 60 스페셜 1948년형’ < 헤일, 시저! Hail, Caesar! > 2016 1950년대 할리우드 저택가에 애송이 스타 호비 도일(엘든 이렌리치)가 미끈한 캐딜락을 대놓고 밧줄을 휘돌리며 여자를 기다리고 있다. 코엔 형제의 유머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으로 아무 생각 없이 보기만 해도 웃긴데, 그 디테일 하나하나가 철두철미하도록 재미있는 장면이다. 좋은 기름은 좋은 곳에 데려다준다는 말을 조금 바꿔서, 좋은 영화는 좋은 영화로 이어진다고도 말할 수 있을까? 호비 도일의 캐릭터는 영락없이 마티니 아이돌 릭키 넬슨을 염두에 둔 것이다. 하워드 혹스의 명작 < 리오 브라보 >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하던 어린 카우보이 말이다. 그리고 지금 호비의 캐딜락에서 나오는 노래는 ‘Cattle Call’이다. 그 멜로디는 뜻밖에도 길 위에 쓰러진 < 아이다호 >의 리버 피닉스로 이어진다.

 

 

볼보 ‘960’ <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 2006 저 여자는 대체 무슨 차를 탈까? 지방 소도시, 뭐 저런 대학이 다 있나 싶은 대학의 ‘여교수’ 조은숙(문소리)이 타는 차는 볼보 960이다. 밖에서 보자면 온통 허세로 가득해 보이지만, 스스로 들여다보기로는 그렇게도 솔직할 수 없는 여자. 조은숙은 지역환경단체 회원으로 환경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하지만, 정작 자동차의 시동을 거고 출발할 때는 창밖으로 비닐봉지와 음료 캔을 마구 내던지는 여자다. 비닐봉지는 휘리릭 날아가고 깡통은 데굴데굴 굴러간다. 푸른색 ‘각 볼보’가 스크린 밖을 향해 움직인다. 그녀는 영화에서 광택이 도는 실크 옷을 자주 입는다.

 

 

쉐보레 ‘Chevy’(1970년대 아르헨티나 버전), < 해피 투게더 > 1997 보영(장국영)과 아휘(양조위)는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출발해 이과수 폭포로 향하는 중. 폐차 직전의 고물차는 걸핏하면 멈춰 선다. 내비게이션이 있나, 말이 통하길 하나, 그들은 결국 길을 잃고, 차를 버리고,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돌아온다. < 해피 투게더 >의 모든 장면에 이방인의 정서가 짙게 깔려있지만, 차를 타고 가는 인물의 얼굴을 보여줄 때면 거의 무방비로 그렇다. 어디로 가는가. 온통 낯선 곳에서 어딘가로 향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시간이 흐른 뒤 아휘는 혼자서 이과수 폭포에 도착한다. 보영은 아휘가 떠난 방에서 운다. 황폐함 그리고 버려진 자동차.

 

 

포드 ‘머스탱 1966년형’ < 조디악 > 2007 “어둠 속에서 낯선 자동차가 나타난다.” 수많은 시나리오에 쓰여 있을 말이다. 그런데 < 조디악 >의 도입부에는 좀 더 추가된다. “어둠 속에서 낯선 자동차가 나타나 이쪽으로 온다. 다시 간다. 별일 아니라는 듯이. 그런데 돌아온다.” 헤드라이트가 꺼질 때, 말 모양 엠블럼이 잠깐 보인다. 포드 머스탱이다. 하지만 킬러 조디악의 정체는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피아트 ‘132’, < 무릎과 무릎 사이 > 1984 피아트 132에 대해 위키피디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피아트와 기아자동차에서 생산한 승용차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소형차 시장에서 브리사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은 기아자동차가 중형차 시장으로 눈을 돌려 당시 피아트의 최고급 차종인 132를 들여왔다. 132는 해외에서는 125의 후속 차종으로 1972년부터, 대한민국에서는 1979년 4월부터 시판되었다. 새로운 감각의 플라스틱 범퍼와 알루미늄 등 중후함이 돋보였고, 파워 스티어링을 적용하여 운전에 편리성을 높였다. 132에 적용된 2,000cc 엔진은 최고출력 112마력, 최고 속도 171km를 자랑했다.” 이 차가 1980년대 강원도 어디쯤 한적한 강변에 있다. 나머지는 상상에 맡긴다.

 

 

캐딜락 ‘세단 드빌 스트레치드 리무진 1984년형’ < 워킹 걸 Working Girl > 1988 현대 문명이 압축된 곳. 그야말로 도시. 뉴욕 맨해튼은 지구의 수도다. 특히 1980년대는 여러모로 그 절정이 아닐는지. 캐딜락 뒷좌석에서 샴페인을 마시며 콧구멍으로 코카인을 퍼붓다시피 하는 남자(케빈 스페이시)로부터 테스 맥길(멜라니 그리피스)은 당장 차를 세우라고 고함을 친다. 그리고 차에서 내린다. 다리가 참 예쁘다. 비가 내리고 있고, 그녀는 이제 다른 차를 타야 한다. 뉴욕이니까, 그녀는 손을 들고 “택시!”를 외칠 것이다.

 

 

팩커드 ‘160’ 택시, < 추억 The Way We Were > 1973 맨해튼 플라자 호텔 앞에 택시가 한 대 서 있다. 남자와(로버트 레드포드) 여자(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포옹한다. 짧은 재회와 긴 이별. 두 사람은 함께 택시를 타지 않는다. 그리고 영화는 거기서 멈춰버린다. (정지 화면으로 끝난다.)

 

영화와 자동차 2 (재규어 XK140 /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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