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자동차 3 (캐딜락 퓨너럴 코치 / ‘고스트버스터즈’)

영화 역사에 등장한 가장 매혹적인 자동차 100대, 자동차 역사에 아로새길 100편의 영화. 우리는 영화를 떠올리며 자동차를 생각했다. 자동차를 기억하며 영화를 다시 봤다.

캐딜락 ‘퓨너럴 코치 1983년형 개조’, < 고스트버스터즈 > 2016 유령에 매혹된 똑똑한 ‘여성’ 과학자들(유일하게 전직 지하철 역사 직원인 패티를 제외하고)이 어떤 남성의 도움도 받지 않은 채 자신들끼리 농담하고 미워하고 싸우다가 힘을 합쳐 유령을 퇴치한다. 그리고 패티가 장의사 삼촌으로부터 슬쩍 빌려온 1983년식 캐딜락 퓨너럴 코치에 ‘고스트버스터즈’의 고유 마크를 그린 다음 짠! 레이 파커의 음악과 함께 출동할 때 안티 팬들조차 환호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1984년 원작에서 ‘고스트버스터즈’ 전용 차량 ‘엑토-1’이 1959년식 캐딜락 리무진이었다면, 새로운 시대의 엑토-1은 1983년식 캐딜락 퓨너럴 코치다.

 

 

포드 ‘모델 T 1924년형’, <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It Happened One Night > 1934 클라크 게이블은 클로데트 콜베르에게 히치하이킹하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호언장담한다. 그 분야에 대해 책을 쓸 수도 있단다. 하지만 그가 자신 있게 내세운 ‘엄지손가락’은 모든 운전자에게 무시당한다. 배를 잡고 웃으며 바라보던 콜베르가 마침내 길가에 서서 스커트를 살짝 들어올려 늘씬한 다리를 노출한다. 그리고 즉각 포드가 만든 세계 최초의 대량생산 자동차, 1924년식 포드 모델 T 운전자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선다. 히치하이킹 장면의 정석이라고 불러 마땅하다.

 

 

링컨 ‘타운 카 스트레치드 리무진 이그제큐티브 2003년형’, < 코스모폴리스 > 2012 ‘대통령 전용 의전 차량’으로도 유명한 링컨 타운 카 안에 뉴욕의 최연소 거물 투자자 에릭 패커(로버트 패틴슨)가 타고 있다. 그는 추상적인 숫자와 데이터로 실질적인 부를 창출한다. 그는 추상 개념 안에서 안전하다. 그러나 안락한 리무진 바깥에는 그가 이해하지 못하는 현실적인 고통들이 부글거리며 끓어 넘친다. 그가 마침내 리무진에서 내리기로 결심하면서 파멸은 예정되어 있다. 불공평한 세계화의 덫에 관한 너무나도 직접적인 비유 그 자체.

 

 

시트로엥 ‘DS 21 1966년형’, < 사무라이 Le Samourai > 1967 영화가 시작되고 두 번째 시퀀스, 무성영화로 착각할 만큼 아무 대사 없이 표정과 몸짓으로만 진행되는 이 초반 장면에서 알랭 들롱의 직업이 밝혀진다. 차 주인이 깜빡 잊고 문을 잠그지 않은 채 차에서 멀어지면 알랭 들롱이 그 차에 슬그머니 올라타 주머니에서 수많은 열쇠를 꺼내 하나씩 넣고 돌려본다. 자신을 수상하게 볼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며, 태연한 가면을 뒤집어쓴 알랭 들롱의 무표정한 얼굴에선 푸른색 눈만 냉담하게 움직인다. 마침내 시동이 걸리고, 그는 유유히 훔친 차를 몰고 떠난다. 영화 사상 가장 신비로운 차 도둑이자 킬러, 알랭 들롱의 근사한 인트로다.

 

 

메르세데스-벤츠 ‘스프린터 313 CDI LWB 2006년형’, < 언더 더 스킨 > 2013 인간을 포식하는 외계 생명체는 시종일관 냉담한 눈으로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본다. 바로 그 존재, 여성의 신체를 빌린 외계 생명체를 연기하는 스칼렛 요한슨은 거대한 메르세데스-벤츠 스프린터를 직접 운전하며 스코틀랜드의 외딴 해안가 마을을 쉼없이 돌아다니고, 외로운 남자들을 아무런 수줍음 없이 유혹한다. 차 안에서, 그리고 그녀의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하는 채 남자들은 낯선 그녀의 옆자리에 탄다. 만약 알았다 하더라도, 어떻게 타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메르세데스-벤츠 ‘SL 500 1995년형’, < 크래쉬 > 1996 하반신이 으스러진 여자 가브리엘(로잔나 아퀘트)은 요추 보조기와 철제 죔쇠로 다리를 지탱하며 메르세데스-벤츠 SL 500에 온몸을 밀착시킨다. 아무것도 모르는 직원이 친절한 태도로 다가오자 그녀는 “이 차에 관심 있어요”라며 운전석에 앉으려 한다. 하지만 그녀의 몸-보철 장치가 가죽 시트에 끼어버려 다리가 벌어진 채 꼼짝 못하는 상황이 되자 직원의 얼굴은 빨개진다. 판타지를 실현시키려는 추동력으로 움직이는 신체-기계 그리고 신체의 완벽한 연장으로서 기능하는 자동차 간의 성적 합일. < 크래쉬 >의 이 유명한 장면은 가장 차가운 포르노그래피를 완성한다.

 

 

닷지 ‘차저 1968년형’, < 블루 벨벳 > 1986 불가해한 악당 데니스 호퍼는 자신의 정부 이사벨라 로셀리니와 사랑에 빠진 청년 카일 맥라클랜을 낡아빠진 닷지 차저에 태워 허허벌판으로 데려간다. 인적 없는 한밤중, 데니스 호퍼는 카오디오로 로이 오비슨의 ‘In Dreams’를 틀어놓고 그 가사를 한 줄 한 줄 음미하며 맥라클랜을 무자비하게 구타한다. 핫핑크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장남자가 닷지 지붕에 올라가 노래에 맞춰 몸을 흔든다. 폭력의 소음과 로이 오비슨의 감미로운 목소리만이 지배하는 기괴한 시퀀스, 데이비드 린치의 강력한 인장.

 

 

쌍용 ‘무쏘 SUV’, < 비밀은 없다 > 2016 < 비밀은 없다 >에선 한국영화 사상 가장 멋진 운전 신이 등장한다. 운전자는 열다섯 살 중학생이다. 사랑하는 친구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도한 소녀는 문자 그대로 눈이 뒤집어진다. 아버지에게 틈틈이 운전을 배운 덕에 소녀는 살인자가 친구를 죽인 그 방식대로, 차를 앞으로 뒤로 왔다 갔다 세 번 움직이며 그를 깔아뭉갠다. 작고 어리고 연약하기 때문에 무해하다고 여겨졌던 소녀에게 자동차는 힘의 원천이자 복수의 칼날이 된다.

 

 

선빔 ‘알파인 시리즈 V 1970년형’, < 겟 카터 Get Carter > 1971 영국영화가 가장 난폭했던 시절, 1970년대의 시작을 알리는 영화가 바로 마이크 호지스의 < 겟 카터 >다. 마이클 케인이 연기한 주인공 카터는 형을 죽인 자를 찾기 위해 고향에 돌아오고,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장총을 몽둥이처럼 덤덤하게 휘두른다. 여기 비하면 오늘날의 어지간한 하드보일드 누아르 영화는 사춘기 소년의 캠코더 홈무비처럼 보일 지경이다. 가장 악명 높은 장면 중 하나, 팜므파탈 글렌다가 운전하는 선빔 알파인은 순백으로 차려입은 그녀에게 잘 어울리는 예쁘장한 차량이다. 하지만 옆자리에 마이클 케인이 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스틱을 잡은 그녀의 손, 페달을 밟는 그녀의 발, 차의 속도에 맞춰 흔들리는 그녀의 가슴 등 모든 것이 뜨겁기 짝이 없는 섹스로 변형된다. 넘치는 힘을 소유한 남자의 짐승 같은 매력이 자동차에 비유되는 아주 오래된 공식이, 여기서 더할 나위 없이 유효하다.

 

영화와 자동차 4 (현대 그레이스 / ‘폴리스 스토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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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 피처 디렉터] 곧 두 번째 책을 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