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대일 투룸이 있었더면

2016년, 서울에서 내 나이로 산다는 것, 도시를 관찰하지만 발붙이지 않는 40대, 미로 속에 빠진 듯한 30대, 밥벌이를 고민하는 20대. 개인이 쌓고 제각각 흡수한 서울의 시간에 대하여.

황인찬 29세, 시인

서울의 어디에 사나? 구로구 오류동. 서울의 가장 바깥 동네 중 하나고, 매우 조용하다. 단점은 너무 외진 곳이라는 점. 낮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는 곳은? 학교와 집. 그렇다면 밤 시간은? 광명시의 24시간 카페. 집 근처에는 24시간 카페가 없고, 제일 가까운 시가지가 그곳이다. 가장 좋아하는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이 가장 좋은 때는 언제인가? 어떤 공간을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는다. 서울에서 가장 가치 있게 돈을 쓰는 방법은 뭘까? 잘 모르겠다. 내 책을 사는 것? 이곳과 가장 달라 보인 세계의 도시는 어디인가? 해외여행 경험이 거의 없기에 딱히 꼽을 수 없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가장 자주 만나는 사람은? 24시간 카페의 야간 직원.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이미 주문과 포인트 적립이 끝나 있다. 여기가 견딜 수 없이 지긋지긋해지는 순간이 있다면? 그럼에도 서울을 떠날 수는 없다. 서울에서 즐거운 것을 찾고자 노력한다. 최근 서울에서 10년간 벌어진 일 중 가장 인상적인 건 뭔가? 2015년의 퀴어퍼레이드와 그에 반대하는 동성애 반대 집회. 너무나 퀴어한 순간이었다. 서울에서 과소평가된 것은? 모든 것이 과장되어 있기에, 딱히 없다. 이 도시에 살며 세운 계획이 있나? 서울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애쓰기.

서울로 가는 일 | 나는 안양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안양에서 태어나고 자란다는 것은 항상 서울을 염두에 두고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10대 시절에는 ‘코믹월드’나 ‘아카’ 에 가기 위해 서울에 갈 날을 헤아리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조금 멀긴 하지만 좋은 것이 많은 곳. 무언가를 사거나 보려면, 누군가를 만나려면 가야 하는 곳. 그것이 서울이었다. 80년대에 서울과 인접한 위성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은 대체로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학교 친구들과는 잘 어울리지 않던 나의 10대 시절의 즐거움은 항상 서울로 나가는 데서 비롯되었다.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친구들을 서울에 가면 만날 수 있었다. 주로 대학로나 신촌에 모이고, 민들레영토에 가서 3시간 동안 이야기를 하다 닭갈비를 먹고 노래방에 가던 날들. 그러고 보니 헤어질 때는 어째선지 다들 1호선을 탔다. 의정부로, 안양으로, 수원으로, 인천으로. 경기도에 살고 서울에 모이던 소년 소녀들.

필요한 것은 이미 안양에 있었다. 원하는 것은 다 서울에 있었다. 그러니 서울로 갈 수밖에. 안양에도 극장은 있고, 서점도 있지만 취미가 영화감상이거나 독서가 아니고서야, 그 외의 취미는, 그 외의 즐거움은 대체로 서울에서만 가능했다.

독립이 안 돼서 | 지금 나는 만 스물여덟이고 서울 변두리에서 가족들과 살고 있다. 안성에서 자취를 하던 20대 초반 학부생 시절을 지나, 대학원에 진학하며 가족들의 집으로 돌아간 것이다. 시 쓰기와 학업과 생업을 모두 병행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서울에서 집을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지금은 부모님의 집에 얹혀살고 있는데, 아마 부모님이 서울(혹은 안양)에 살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이렇게 시인으로, 그리고 대학원생으로 사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으리라 생각한다. 대학원에 수천만 원을 내고, 원룸 보증금으로 또 오백에서 이천가량을 내고, 다달이 수 십만 원을 주거 및 생활에 지불하는 와중에 한 달에 1백만원가량(일과 학업을 병행할 때 벌 수 있는 현실적 최대치) 벌어서 살아가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학업에 투자하는 시간과 작업에 소요되는 시간을 헤아려보면 서울에서의 독립생활이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아득바득 서울에서 살고자 하는 것은, 대학원생으로서 학업을 이어나가고자 하는 까닭도 있지만, 무엇보다 시인으로서 서울을 벗어나 지내는 것은 여러 불편과 손해를 감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서울이라는 문학장 | 기실 제도 문학은 서울의 것이다. 다른 문화적인 것들이 그러하듯이, 제도로서의 문학 역시 그 기반을 서울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기반이라 하면, 대개는 대부분의 문학 출판사가 서울과 파주 출판단지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을 떠올리겠지만, 사실 작가 입장에서는 출판사가 어디에 있든 별 상관은 없다. 그보다는 오히려 생업과 관련한 인프라가 서울에 구축되어 있다는 점이 훨씬 중요하다.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시로는 돈을 벌 수 없다. 작품의 원고료나 시집의 인세는 생활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기에 시인들은 생업을 따로 가져야 한다. 전업시인이란 그야말로 어불성설. 20대 후반에서 30대까지의 작가들을 둘러보면 태반이 생업의 터전으로 학교(를 비롯한 문학 교육기관)와 출판사를 두고 있으며, 거기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거나 시간강사로서의 삶을 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취업이 어려운 요즘이니 가진 게 한정적인 글쓰기 능력뿐인 작가 나부랭이를 받아줄 곳이 얼마 안 되는 까닭이 클 테지만, 작가로서 작업과 생계가 가능한 직업이 한국에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도 이유이리라.

문학 교육기관과 문학 출판사 대부분이 서울에 소재하고 있는 만큼, 시인으로서는 서울을 떠나 사는 일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별다른 능력이나 지역적 연고가 없다면, 서울을 떠나서는 시인으로서 생존하는 일의 난이도가 상당히 높아지고 만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문학 교육기관에서의 시 창작 강의를 주 수입원으로 삼고 있으며, 대학원 진학 역시 이후의 생계를 위한 준비인 것이다. 서울을 벗어나서 생계를 꾸려 나가려면 많은 것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 작가들의 태반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살고 있는 것이다. 가까운 곳에 모여 살고 있기에 서로 만나고, 모여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일종의 신이 서울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생계의 문제야 서울 아닌 곳에서 해결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 신에 속한다는 감각은 서울을 벗어나서는 가질 수 없다. 신의 바깥에 있다는 것은, 그만큼 외로운 작업을 해나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니까.

가난하지만 취향만 까다롭고 싶어하는 시인들을 충족시킬 만한 것들 역시 서울에 있다는 점 역시 중요하겠지. 홍대 거리에서는 언제든 조금만 둘러보면 시인들을 한둘씩 마주치고야 마는 것도 그런 까닭일 터이다.

사실 1.5룸이라도 좋다 | 내가 두 권의 책을 내며 동료 작가들에게 책을 발송할 때, 시인들에게는 꼭 주소가 변경되었는지를 확인해야만 했다. 같은 곳에 수년 이상 사는 젊은 작가는 많지 않고, 시인들은 특히 더 그러니까. 다들 서울의 이곳저곳을 헤매며 살고 있는 것이다.

나 역시 서울을 떠날 마음이 없다. 서울을 버리려면 너무 많은 것을 버려야 하니까. 그러나 바로 그런 이유로 내 삶의 난이도가 너무 높아진 것은 아닌지 종종 생각한다. 서울을 벗어나 삶을 꾸려나갈 가능성이 있었다면, 먹고사는 일이 지금보다는 훨씬 용이하지 않았을까. 나는 종종 문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문학 외에 생계가 가능한 기술을 익히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거기에는 시인으로서 먹고사는 일의 어려움뿐 아니라 서울에 종속되기 쉬운 시인의 삶에서 더 많은 선택이 가능하다는 측면도 있다. 어학과 기술을 익히라던 어머니의 말은 언제나 옳았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근래 나의 최대 관심사는 서울에서의 독립 생활이다. 부모님에게 얹혀사는 삶을 30대가 되어서도 계속하고 싶진 않으니까. 그러나 문제는 역시 나는 서울을 떠날 수 없고, 서울의 방은 시인 나부랭이가 구하기에는 너무 비싸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 방 청소를 하다가 깨달은 사실은 책이 많다는 것이었다. 내게 방 청소란 방바닥에 여기저기에 아무렇게나 쌓인 책들을 정리하고, 버릴 것과 창고로 보낼 것, 책장에 넣을 것 등을 구분하는 일이 포함되는데, 두세 시간 동안 책 정리를 하다가(책을 하나하나 다시 훑어봐야 해서 그 정도 걸림) 문득 책장을 올려다보며 이런 생각을 한 것이다. ‘아, 이걸 다 어떻게 옮기지?’

내가 깨달은 것은 이제 내 생활이 학부생 시절처럼 6평이 겨우 될까 말까 하는 보증금 5백에 월세가 35 내지 40쯤 되는 원룸에서는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그런 방에 들어간다면 책에 파묻혀 죽었다는 이야기 정도는 아니더라도, 생활 자체가 불가능하리라는 것은 명백하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원룸이 안 된다면 결국 투룸이지. 근래에는 모 카페에 들어가서 마포구/용산구, 관악구/동작구 등의 게시판에서 매물을 검색하는 것이 취미가 되었는데, 살피면 살필수록 절망이 깊어진다.

과연 나의 독립은 가능할까. 방학에는 백수가 되는 데다 학기 중에도 얼마 되지 않는 강사의 벌이로, 얼마 안 되는 원고료와 인세 같은 것으로 서울에서의 독립 생활이 가능할까. 보증금 마련이 가능하기나 할까. 그러니 요새는 자꾸 계산을 해보게 된다. 내가 책을 몇 권 팔면, 무슨 문학상을 받는다면, 무슨 창작기금을 받는다면….

20대 후반의 시인으로 서울에서 사는 일에 대해 말하려고 했는데 결국 입만 열면 탄식이다. 시인으로서의 삶이 가능케 하기 위해, 생활을 어떻게든 이어가고자 아등바등하는 것이, 말하자면 20대 후반의 시인으로 서울을 살아가는 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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