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자동차 6 (쉐보레 콜벳 C3 / ‘애정의 조건’)

영화 역사에 등장한 가장 매혹적인 자동차 100대, 자동차 역사에 아로새길 100편의 영화. 우리는 영화를 떠올리며 자동차를 생각했다. 자동차를 기억하며 영화를 다시 봤다.

쉐보레 ‘콜벳 C3’, < 애정의 조건 Terms of Endearment > 1983 ‘미친 놈’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바람둥이 우주비행사 가렛 브리드러브(잭 니콜슨)는 옆집 사는 보수적인 여자 오로라 그린웨이(셜리 맥클레인)와의 첫 데이트에 우주적인 디자인의 뽐내기용 차 1978 쉐보레 콜벳 C3를 끌고 나온다. 고장 난 선루프 때문에 한껏 부풀린 헤어 스타일이 망가지자 오로라의 짜증은 슬슬 시작되는데…. 급기야 그가 발로 운전하며 모래사장을 달리다 차가 바다에 빠지자 오로라의 화는 극에 달한다. 물론 애정도 함께. 우주에서 내려다봐도 낄낄거릴 명장면이다.

 

 

폰티악 ‘르망’, < 프렌치 커넥션 > 1971 영화 역사상 최고의 차 추격 신을 만들어낸 < 프렌치 커넥션 >에는 다소 콤팩트한 차 1971 폰티앙 르망이 등장한다. 그도 그럴 것이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 형사 지미 도일(진 핵크만)이 지나가던 폰티악 르망의 운전자에게 양해를 구하지도 않고 차를 뺏어 탔기 때문이다. 악당이 탄 지하철과 그 교각 밑을 달리는 폰티악 르망의 교차 편집은 언제 봐도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왼쪽에서 흰색 포드 차량이 갑자기 달려와 그와 부딪치는 장면은 예정에 없던 사고로 덕분에 추격 신이 더 리얼해졌다. 다행히 차 수리비는 물어줬다고 한다.

 

 

 

람보르기니 ‘카운타크 콰트로발볼레’, <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 2013 <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를 보면, 확실히 람보르기니를 타는 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약에 취해 정신이 나간 조단 벨포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무조건 람보르기니를 타겠다는 집념에 불타 부엌에서부터 거의 기다시피 몸을 꺾어 집 앞 계단을 데구르르 굴러 내려온 다음 발로 차 문을 힘겹게 연 후 차에 가까스로 올라탄다. 휴, 이 장면을 보고 웃지 않을 사람은 냉혈한이 분명하다. 다시 말하지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이 바보 같은 장면으로 오스카상을 받았어야 했다.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스포츠’, < 007 카지노 로얄 > 2006 제임스 본드는 좋은 차를 참 많이도 탔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에스턴 마틴 DB5부터 알파 로메오 GTV 시리즈, 로터스 에스프리, 재규어 XJ까지 세상에서 제일 멋진 차들은 다 탔고 (진행비는 신경도 안 쓰는 대범한 성격 탓에) 몇 번 타지도 않고 그 차들을 박살내기 일쑤였다. 하지만 제임스 본드(다니엘 크레이그)가 탔던 차 중 제일 인상적이었던 건 그를 발렛 기사인 줄 오해하고 오션 클럽 노인들이 맡긴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스포츠다. 본드는 보란 듯이 노인네들의 차를 후진 주차하면서 다른 차에 박아버린다. 고약한 성질하고는.

 

현대 ‘뉴 그랜저 XG S25’, < 짐승의 끝 > 2010 그러니까 이 모든 무시무시한 사건은 아기를 낳으러 고향에 가기 위해 탄 순영의 택시 안에 야구모자(박해일)가 합승하면서 일어난다. 2003~2004년에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뉴그랜저 XG S25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차종이다. 굳이 여기에 의미를 부여하자면, 신처럼 보이는 야구모자는 그렇게 아무렇게나 우리 삶에 자리를 비집고 들어와 카오스를 만들어낸다는 것. 매우 한국적인 차 뉴그랜저 XG S25는 버트란드 러셀의 다음과 같은 말을 상기시키는 듯하다. “신은 존재하더라도 잔인할 거다.” 그러니 합승은 하지 말자.

 

 

포드 ‘커스텀 300’, < 싸이코 > 1960 < 오명 >, < 패밀리 플롯 > 등 히치콕 영화에서 차는 언제나 서스펜스, 혹은 인간의 어리석음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였다. < 싸이코 >에서도 마리온 크레인(자넷 리)이 돈을 훔쳐 차에 싣고 달아날 때부터 두려움은 그녀와 관객을 시종일관 따라다녔다. 노먼 베이츠가 그녀의 시체와 돈이 담긴 1957 포드 커스텀 300을 늪에 빠뜨리는 장면은 관객의 감정이 마리온에서 노만 베이츠로 이동하는 순간이다. 히치콕은 일부러 차가 멈칫하는 순간을 만들어 관객들이 노먼 베이츠의 불안을 똑같이 느끼게 했다. 차가 포드인 이유는? 들으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포드가 후원했다.

 

 

쉐보레 ‘노바’, < 펄프 픽션 > 1994 “오 맙소사, 내가 마빈 얼굴에 총을 쐈어.” 도대체 이게 차 속에서 일어날 법한 일인가? 타란티노 영화에서는 언제나 말도 안 되는 사건이 일어나고, 그로 인해 인물들은 시끄러운 수다와 부조리한 반전의 세계로 들어서게 된다. 빈센트 베가(존 트라볼타)와 줄스 윈필드(사무엘 L. 잭슨)는 두목의 금 가방을 찾아오던 중 빈센트의 어처구니 없는 실수로 뒷자리에 앉은 인질 마빈을 죽이고 만다. 영화는 이 사건에 대한 둘의 티격태격 수다와 차에 묻은 피를 닦고 차를 폐차장에 버리는 장면까지 무려 15분 이상을 할애한다. 차는 투박한 그들의 성격을 대변하듯 1974년형 노바다.

 

 

플리머스 ‘발리언트’, < 대결 Due l> 1971 고속도로에서 차가 막히는 것보다 더 큰 짜증은 자신을 도와줄 차 한 대 없는 상황이라는 걸, 이 영화는 친절하게 알려준다. 세일즈맨 데이비드 만(데니스 웨버)은 가뜩이나 아내와 싸워서 기분이 좋지 않은데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낡고 못생긴 유조 트럭이 그의 플리머스 발리언트를 위협하며 쫓아오자 공포에 질린다. 실제로 이 영화의 원작자 리처드 매드슨은 케네디가 암살되던 날 이상한 트럭이 자신의 차를 계속 쫓아온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소설을 완성했다. 근데 설마, 아까 플리머스 발리언트가 추월한 것 때문에 이렇게 죽기살기로 쫓아온 거야?

 

 

캐딜락 ‘시리즈 62 컨버터블 1954년형’, < 네 멋대로 해라 A Bout De Souffle > 1960 “자동차는 달리라고 만든 거지 멈추라고 만든 게 아니야. 부가티가 말했지.” 험프리 보가트 같은 하드보일드 영화 속 주인공을 꿈꾸는 미셸 푸아카르(장 폴 벨몽도)는 패트리샤 프란치니(진 세버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곧 죽어도 구두의 광은 내야 하며 좀도둑 주제에 실크 양말에 트위드 재킷을 입은 그는 끊임없이 포드 썬더버드 등의 차를 훔친다. 재밌는 것은 미국 배우, 미국 여자, 미국 차를 좋아하는 그가 차를 훔치기 위해 들어간 주차장에서 1954 캐딜락 시리즈 62 컨버터블을 보고 “캐딜락 엘도라도!”라고 말한다는 거다. 그에게 아이폰만 있었어도 알았을 텐데….

 

 

메르세데스-벤츠 ‘S 550 W221’, < 마이클 클레이튼 > 2007 사실 이 영화에서 자동차가 그다지 특별한 건 아니다. 특별하다면 막 함부로 다룬다는 점이다. 돈에 눈먼 속물 해결사 마이클 클레이튼(조지 클루니)은 늦은 밤 들판을 달리다가 얼이 빠진 듯 차에서 내려 말을 쓰다듬는다.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그때 갑자기 메르세데스-벤츠 S 550 W221이 폭발한다. 이 사건 이후로 그는 정신 차리고 진실을 폭로하기 위해 애쓴다. 그리고 마지막, 택시에 올라탄 그가 유명한 대사를 내뱉는다. “그냥 가줘요. 50달러만큼.”

 

영화와 자동차 7 (폰티악 GTO / ‘섬씽 와일드’)

SHARE
[GQ KOREA 피처 디렉터] 곧 두 번째 책을 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