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영화가 사랑하지 않는 도시, 서울

2016.10.10이예지

2016년, 서울에서 내 나이로 산다는 것, 도시를 관찰하지만 발붙이지 않는 40대, 미로 속에 빠진 듯한 30대, 밥벌이를 고민하는 20대. 개인이 쌓고 제각각 흡수한 서울의 시간에 대하여.

이예지 29세, < 씨네21 > 기자

서울의 어디에 사나? 남태령 전원마을. 편의시설이 부족하지만, 감수할 만하다. 낮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는 곳은? 사무실이 있는 당산과 홍대 일대. 그렇다면 밤 시간은? 주말 밤이라면 강남과 이태원. 가장 좋아하는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이 가장 좋은 때는 언제인가? 서촌. 이맘때의 가을, 두세 시 정도의 오후 시간이 예쁘다. 서울에서 가장 가치 있게 돈을 쓰는 방법은 뭘까? 서울아트시네마 연간회원 가입 후, 관객회원 요금 5천원 내고 영화 보기. 지금은 고바야시 마사키 탄생 1백주년 기념 특별전 중. 이곳과 가장 달라 보인 세계의 도시는 어디인가? 파리. 자전거만 타도 도시 끝에서 끝까지 닿을 수 있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가장 자주 만나는 사람은? 직장 동료들. 여기가 견딜 수 없이 지긋지긋해지는 순간이 있다면? 영화 한 편 보려고 멀티플렉스를 다 헤집어야 할 때. 최근 서울에서 10년간 벌어진 일 중 가장 인상적인 건 뭔가? 퀴어 퍼레이드. 서울에서 가장 과대평가된 ‘무엇’을 꼽는다면? 경리단길. 그렇다면 가장 과소평가된 것은? 남산타워. 이 도시에 살며 세운 계획이 있나? 탈 서울. 요즘 ‘제주 붐’이 귀농이라기보단 피난에 가까워보이는데, 꽤 유의미한 현상 같다.

최근 한국영화를 볼 때마다 궁금해지는 점 하나. 영화 속 저 도시 배경들은 다 어디일까? 한국영화 속 도시는 대체로 정체불명이다. 찍어 낸 듯한 높은 빌딩 숲과 대로변, 골목길이 반복 될 뿐, 그 도시가 서울인지 아닌지는 대부분 알 길이 없다. 영화는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에 대한 자의식을 내보이지 않는 것이다. 반면, 서울이 아닌 부산 등의 지방 로케이션일 경우 도시의 룩과 개성은 영화의 한 특질로 자리매김하고, 과거로 회귀하는 시대극인 경우에도 서울의 공간성이 명확한 자의식을 갖고 재현된다.

영화 속에서 서울이 실종된 것을 영화를 탓해야 할까, 서울을 탓해야 할까. 선후관계를 따지자면, 나는 서울을 탓하고 싶다. 영화 속 이야기가 벌어지는 곳이 서울이라고 전제한다면, 사실상 어느 지역의 아파트 더미와 빌딩 무더기와 골목 어귀를 찍어도 그것은 그럭저럭 말이 된다. 그만큼 서울이 몰개성하기 때문이다. 방사형으로 뻗어나가는 수도권 위성 도시들까지 생각하면 이 도시 어느 곳에 카메라를 들이 밀어도 딱히 근사한 그림은 나올 것 같지 않다. 영화 바깥도 사정은 비슷하다. 예술영화 전용관이 사멸해가고 있는 시점에서, 대형 자본이 투입된 몇 편의 영화가 번화가 어디에나 있는 복합 쇼핑몰에 입점한 멀티플렉스에서 상영된다.(그리고 거의 폭력에 가깝도록 반복되는 광고들을 10분간 관람해야만 한다.) 영화 속 서울의 모습도, 영화 밖 서울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은 현실이다.

88올림픽이 개최될 때 태어나, 올림픽아파트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나는 이 무국적 풍경에서 나고 자란 거의 첫 세대다. 80년대 중후반, 서울엔 재개발 사업이 단행되며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우후죽순 들어섰고, 부모 세대가 말끔히 밀어놓은 터전에 안착한 우리는 국적 불명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 안에서 자라났다. 이 안에서의 생활은 아파트 단지 안에서 모두 해결할 수 있다. 집, 놀이터, 아파트 상가 내 학원의 루틴한 반복 속에서 우리 세대가 접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라곤, 근사해 보이는 것들을 조금씩 따와 한껏 과장해놓은 놀이동산처럼 양식을 모방한 껍데기에 불과했다. 그렇게 자라난 무국적 키드들은 홍대에서부터 시작해 연남동, 경리단길, 서촌, 북촌, 익선동 등 정취가 남아 있는 곳을 찾아 헤맨다. 정취라 함은 단순히 팬시하게 단장해놓은 분위기를 이르는 말이 아니라, 삶의 터전이자 생활공간으로서 쌓여온 역사의 지층에서 우러나오는 정서에 가깝다. 이런 장소들은 대체로 빌딩 숲이 없는 구시가지로 골목골목 주민들이 거주하고 예술가들이 교류하며 활동하는, ‘생활’에 기반한 낭만이 있는 주거지들이다.

동시대의 서울을 잃어버린 영화의 홍수 속, 드물게 서울의 현 광경을 포착해낸 영화들 역시 이런 공간에 천착한다. 감독들이 특히 편애하는 공간은 서촌이다. 김종관 감독은 최근 개봉한 < 최악의 하루 >에서 서촌의 골목 깊은 곳까지 애정 어린 시선을 보냈으며, 홍상수 감독은 <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에서 미화되지 않은 서촌의 민낯에 거침없이 줌을 당겼고, 김영탁 감독은 < 슬로우비디오 >에서 CCTV를 통해 서촌의 아름다운 광경을 낱낱이 보여주기도 했다. 나인들의 거처였던 조선시대 때부터 근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구시가지로서 역사를 지닌 곳이며, 한옥의 형태들마저 골목 골목 잔존해 있는 이곳이 감독들의 사랑을 받는 건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런 서촌 역시 최근 몇 년간 빠르게 변질되고 있다. 서울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가 곳곳에 들어서고, 정체불명 힙스터의 탈을 쓴 가게들이 마치 원주민인 양 자리를 차지하고, 청년 사업가 운운하는 이들이 주민들의 공간을 침범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힙스터의 탄생은 곧 젠트리피케이션 이라는 몰락을 불러온다. 당연한 수순으로 부동산 값은 천정부지로 오른다. 주거와 생활의 공간이 자본과 숫자로 치환되는 순간이다. 이 순간에 직면한 이상, 이제 서촌의 정취 역시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이 숫자놀음에 대해서라면, 나 역시 오랜 이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 가족은 이사를 많이 다닌 편이다. 시작은 수유동이었다. 나는 맥도날드에 가려면 마을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야 하는 이 고요한 동네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고, 학군을 걱정한 부모님은 강 건너 송파로 집을 옮겼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나는 신세계를 경험했다.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둘러 싼 아파트 단지인 올림픽아파트와 비 올림픽아파트 출신을 단호히 구분지었다. 올림픽아파트 외에는 옆 동네 아파트, 다세대 주택이 많은 동네, 경기도에서 통학하는 아이들 순으로 계급이 매겨졌고, 올림픽아파트 내에서도 평수에 따라 위계가 있었다. 아이들은 사는 곳에 따라 그룹을 지어 다녔다. 이 시절, 나는 처음으로 내가 사는 곳이 곧 내가 되는 경험을 했다.

내가 대학에 진학한 후, 우리 가족은 교외인 경기도 퇴촌으로 탈 서울했고, 그동안 나는 신촌에 자취하며 방만하고 행복하게 대학 시절을 낭비했다. 그러나 시골살이의 어려움을 깨달은 가족은 다시 서울로 입성했고, 강변과 잠원, 남태령에 이르기까지 이사를 반복했다. 돌아온 가족과 함께, 나는 다시 그 기이한 세계로 회귀했다. 사는 곳이 곧 내가 되는 경험. 구의동에 산다고 했을 때와 잠원동에 산다고 했을 때,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판이하게 갈렸다. 그중 유독 잠원 한신아파트에 산다고 했을 때의 반응은 각별했다. 나는 한동안 부득이하게 ‘전세인데요’라는 말을 반복해야만 했고, 나중엔 오해를 하도록 내버려두기도 했다. 아파트 재건축으로 인해 남태령으로 이사한 뒤 에는, 내가 이 동네를 어떤 명칭으로 부르는지에 따라 사람들의 상상을 달리 이끌어낼 수 있다는 걸 어렵지 않게 짐작했다. 사람들은 남태령을 잘 몰랐고, 나는 동네를 설명하기 위해 행정구역인 ‘방배동’이나 가장 가까운 번화가인 ‘사당’으로 불렀고, 고개만 넘으면 과천이니 ‘과천 근처’라고 말하기도 했다. 각각의 반응은 천차만별이었고, 나는 그 사실에 씁쓸해하면서도 번번이 편의적으로 지역명을 들었다. 내가 사는 곳은 우면산 밑의 한적한 동네일 따름인데, 호명된 이름마다 자유자재로 변신했고, 그것은 나의 정체성 역시 변신시켰다.

글쎄. 이를테면 대치동 은마아파트,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이제 다 쓰러져가는 낡은 아파트일 뿐이다. 하지만 이 도시는 이 아파트들에 여전히 특별한 권위를 부여한다. 물론 뉴욕과 런던, 도쿄 등의 도시 역시 부촌에 입성하기 위해선 매우 높은 집값을 지불해야 하지만, 이렇게 낡고 허름한 아파트가 권위와 부의 상징인 경우는 찾아보기 어려운 기이한 사례다. 즉, 내가 사는 곳이 곧 나인 것도 아니고, 내가 위치한 곳이 곧 나인 셈이 된다. 서울은 공간을 오로지 좌표로 환산하고 값을 매긴다. 그렇다면 나는 나에게 주어진 좌표 값을 벗어날 수 있을까? 우리 세대는 더 이상 ‘개천 용’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대학만 졸업하면 대기업들이 버스에 졸업생들을 실어 면접장으로 모셔갔던 부모 세대와는 상황이 달라졌고, 앞으로 우리는 자라온 환경 이상을 누리고 살 수 없다는 걸 누구나가 안다. 80년대 후반생인 내 세대는 이런 상황의 급변을 거의 최전선에서 맞닥뜨린 세대다. 우리는 우왕좌왕 시행착오를 거치며 욕망의 축소를 감행했고, 단지 일신의 안녕을 꿈꾸며 몇 년씩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 개천 용들이 멸종된 시대를 점령한 건 수저론이다. 오로지 세습만이 신변을 보장하는 이 곳에서, ‘흙수저’들에겐 그저 더 밀려나지 않는 것이 최선의 목표가 된다.

서울은 편리하다. 색색깔의 지하철과 버스 노선들이 구석구석 구축되어 있으며, 어디서든 복합 상가 단지에서 내가 원하는 편의점, 병원, 문화 시설, 각종 매장을 방문할 수 있다. 이 플랫폼에서 저 플랫폼까지 이동하는 데는 고작 1천2백50원의 돈이 들 뿐이다. 하지만 플랫폼 하나를 지나칠 때마다 집값의 앞자리는 달라진다. 이 도시에서 우리는 어디로든 갈 수 있지만, 어디서든 살 수는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들은 개인의 사적 경험과 지리적 공간이 만나 새로운 의미가 생성되는 장소일터다. 그러나 장소의 의미는 좌표 값으로 환산되고, 위치는 곧 계급으로 수직화된다. 좌표 값에 포박된 우리가 지닐 수 있는 건 박탈감과 무력감 그리고 ‘고향’과 ‘생활’을 가지고픈 동경일 뿐. 삶이 점차 희박해져가는 이 도시를 영화가 사랑할 수 없음은 어쩌면 자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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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손기은, 유지성
    포토그래퍼
    이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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