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굳이, 서울

2016.10.12GQ

2016년, 서울에서 내 나이로 산다는 것, 도시를 관찰하지만 발붙이지 않는 40대, 미로 속에 빠진 듯한 30대, 밥벌이를 고민하는 20대. 개인이 쌓고 제각각 흡수한 서울의 시간에 대하여.

윤이나 34세, 대중문화평론가

서울의 어디에 사나? 합정. 원래부터 서울에서 가장 익숙했던 지역이다. 모든 것이 있어서 좋고, 또한 그 점이 별로다. 낮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는 곳은? 집, 카페 혹은 길. 밤 시간은? 낮과 동일하다. 가장 좋아하는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이 가장 좋은 때는 언제인가? 통일부에서 성대 후문까지 이어지는 산길. 그 길의 봄을 상상할 때. 서울에서 가장 가치 있게 돈을 쓰는 방법은 뭘까? 번-아웃 기미가 보일 때 호텔에서 쉬는 것. 이곳과 가장 달라 보인 세계의 도시는 어디인가? 1년간 산 브리즈번. 계절, 날씨, 분위기 모든 것이 반대였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가장 자주 만나는 사람은? 하우스 메이트인 친구. 밥을 먹거나 공연을 본다. 여기가 견딜 수 없이 지긋지긋해지는 순간이 있다면? 길이나 대중교통에서 일상적인 무례와 맞닥뜨릴 때. 최근 서울에서 10년 간 벌어진 일 중 가장 인상적인 건 뭔가? 최근 1~2년 사이 페미니즘 이슈들. 서울에서 가장 과대평가된 ‘무엇’을 꼽는다면? 치안. 서울이 여성에게 안전한 도시인지 다시 물어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가장 과소평가된 것은? 한강. 이 도시에 살며 세운 계획이 있나?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는 계획.

스물다섯 살까지의 삶은 대부분 하남에서 이루어졌다. 오빠와 친구 몇몇이 요새 강남 생활권 신혼부부들이 가장 선호한다는 하남 미사 지구 아파트에 들어가게 되면서, 가끔 지인들이 묻는다. 다시 하남으로 돌아갈 생각 없어? 차만 있으면 지금보다 더 편한 거 아니야? 글쎄,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과연 위례니 미사니 풍산이니 하는 쪽의 하남이 내가 살던 그 하남이 맞긴 한가라는 고민과는 별개로, 프리랜서인데 굳이 서울에 살 필요가 있는지를 묻는다면 한 번 생각하고 대답하긴 하겠지. 하지만 대답은 언제나 같다. 굳이, 서울.

서울은 내게 상경보다는 독립에 가까운 단어다. 유학과 결혼 둘 중 하나가 아니면 나갈 이유가 뭐냐는 집안의 분위기를 벗어나 내 것으로 갖고 또 만들어내고 싶었던 모든 ‘문화’를 누리기 위해 서울에 살고 싶었다. ‘서울은 아니지만 가까운 어디’의 감각을 벗어나기 위해 독립을 감행한 9년 전 여름, 목돈은커녕 고정 수입이 없다시피 한 나를 받아준 건 화곡역 낡은 주택의 옥탑방뿐이었다. 그 옥탑방에서 서울의 혹독함과 나의 무능함을 3년간 온몸으로 체험한 뒤 1톤 트럭에 짐과 함께 실려 다시 하남으로 돌아간 날을 기억한다. 합정으로 가는 603번, 5712번 버스와, 스타벅스와, 익명의 존재로서의 내가 없는 ‘동네’로의 귀환. 첫 번째 독립은 실패였다.

이후 얼마간 하남에서 지내다 호주에 다녀 왔고, 또다시 하남에 머물다가 서울로 나온 지는 이제 갓 반년이 됐다. 귀국 후 1년간 일하며 어디로든 다시 나가야 하는 건 아닐까 고민하던 중 친구가 하우스 메이트를 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냉큼 나왔다. 나라는 사람이 다른 어느 곳도 아닌 서울에서 한 사람 몫을 책임지면서 사는 것이 가능할지에 대한 두번째 실험이 시작된 것이다. 하우스 메이트와 함께 사는 집이라고 해서 < 청춘시대 >의 파스텔톤 공간을 상상해서는 곤란하다. 하지만 30대 두 여성이 적당히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간다는 건 꽤 괜찮은 일이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전형적인 프리랜서답게 회사를 다니는 친구가 출근을 위해 깨어나 화장실로 향하는 발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 때도 있지만, 그건 새벽기도를 가는 엄마의 발소리를 들을 때와는 전혀 다른 기분인 것이다.

게다가 합정이다. 일과 공부를 핑계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곳. 역에서 10분 거리 안에 필요한 대부분의 것이 – 다이소를 빼고 – 있고 2호선과 6호선이 만나 서울 대부분의 지역을 불편없이 오갈 수 있는 합정에서 몇 년 만에 새롭게 체감한 것은 바로 시간을 쪼개 쓰는 감각이었다. 하남에 살 때, 길어지는 동선 때문에 외출하는 날 모든 자질구레한 일을 몰아서 했던 때와는 전혀 달랐다. 프리랜서 작가라는 이름 아래 온갖 일을 하다 보니 잦은 미팅과 외부 작업들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짧아지긴 했지만, 이동 시간도 함께 짧아지니 말 그대로 시간을 ‘쓸’ 수 있었다. 이 일정과 저녁 약속 사이에 운동을 할 수 있고, 미팅 전에 병원을 갈 수 있고, 영화 시사를 본 뒤 집에 들렀다가 다시 나와 장도 보고 한강에도 갈 수 있는 삶. 외출할 때마다 서너 시간, 길게는 다섯 시간 이상을 버스나 지하철 안에 꼼짝없이 머물러야 했던 시절은 안녕. 드디어 시간을 ‘자유롭게’ 배치하는 프리랜서가 된 것이다. 그러니까 아주 잠깐, 그렇다고 믿었다.

하지만 요즘의 나는 시간이 아니라 일을 마감 기한에 따라 ‘자유롭게’ 배치하며 살고 있다. 틈새 시간은 물론 존재하지만 말 그대로 틈새이고 내 시간의 자유는 요원하다. 미팅이 끝나면 요가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생각에 종종걸음으로 이동했고, 요가를 하고 나면 마감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마감 다음에는 저 마감, 틈틈이 시간이 있다는 이유로 뭘 보러 갔다가 오면 또 미팅이 있고, 인터뷰가 있고, 약속이 있고, 다시 마감이 있었다. 여전히 틈새 시간은 존재하므로 종종 한강도 뛰었지만 다시 들어와 마감을 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시간을 쪼개 쓰면 그래도 남는 시간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닐 까? 인간답게 살기 위해 생활에 쓰는 시간과 그 생활에 필요한 비용을 버는 시간 말고, 그냥 시간 말이다. 왜 이렇게 항상 시간이 없지? 왜 이렇게 시간을 쪼개도 바쁜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일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프리랜서에게 연차는 없지만 경력은 쌓이게 되어 있고, 쓰는 글의 종류가 다양해지다 보니 일도 많이 들어온다. 하지만 아직 일을 취사선택 할 만큼의 여유는 없다. 이번 달은 원고가 너무 많은 것 같은데 좀 쳐내볼까 생각했을 때 쳐내 지는 것은 당장의 – 보통은 두 달 뒤에 들어올 – 고료인 것이다. 서울에서 생존하는 데 필요한 비용은 만만치가 않다. 월세와 생활비만으로도 차고 넘치는데, 여전히 봐야 하고 보고 싶은 것도 많고, 굳이 서울에 살며 누리고 싶은 것들을 누리며 지불해야 하는 비용도 있다. 게다가 프리랜서의 기본값인 불안을 견디는 비용도 필요하다. 내게 그 비용은 아주 약간의 저축이다. 당장 몇 달 뒤 수입이 최근 평균 수입에 미치지 못했을 때를 대비한 일종의 비상금. 나는 아니지만 일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적금이라는 걸 들겠지. 삶에서 예기치 않은 사건이 벌어졌을 때 이 나라가 내미는 것은 구원의 손길이 아니라 영수증임을 다들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 모든 비용을 벌어야, 서울에 살 수 있다. 그러니 일을, 일 다음에는 또 일을 할 수밖에. 서울에 살며 30대 중반을 향해 가는 내 주변의 일하는 비혼 여성 대부분이 같은 이야기를 한다. 모두가 워커홀릭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일을 해서 자기 자신을 책임지고 인간답게 살게 하기 위해 드는 비용을 벌기 위해서는, 보통 물리적으로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바쁘다. 하지만 바쁘지 않으면 어쩌겠어. 서울에서는 바쁘지 않을 도리가 없다니까. 단 반년 만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서 살면서 안 바쁠 수는 없다는 것을. 서울에서 살고자한다면, 아마도 계속 이러하리라는 사실을. 그런데도 서울에, 살아야 할까?

다시 한 번 굳이, 그렇다. 부모 세대의 그늘이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켜켜이 드리워진 이 나라에서 한 여성이 그 그늘을 벗어나 한 사람의 생활인으로 살아가고자 결심한다면, 기회 대부분은 어쩔 수 없이 서울에 있다. 서울 생활에 드는 비용이 다른 지역보다 월등히 높고, 아무리 바쁘고 시간이 없어도, 서울에 있어야 그나마 생의 동력이라도 얻는다. 비슷한 사람들이 바쁘지만 성실하게, 와중에 자기 자신도 챙기며 살아가고 있고, 그들을 만날 수도 있다.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나왔지만 결혼을 통해 또 다른 가족의 형태로 편입할 생각이 없는 30대 여성들의 삶이 얼마나 다채롭고 즐거우며, 때로 고달픈가를 나와 친구들의 삶으로 매일 체득하는 것이 나의 서울살이다. 우리 모두 너무 시간이 없이 바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시간을 내는 방법을 좀 고민해보자고 말하며 자신과 자신이 가치 있다고 믿는 데 돈을 쓰며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일상. 아무리 바쁘고 매일 정신이 없어도 이 일상을 포기할 수는 없다. 동시대와 도시에서의 삶의 감각을 놓치면 안 되는 일을 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쪼개서 쓰는 시간이나마 나를 위한 시간으로 쓰고 싶기 때문이다. 문명의 이기와 생활의 편리함, 대도시의 익명성도 놓을 수 없다. 조금이라도 한국에서 평균 상태로 여겨지는 삶에서 벗어나는 삶을 생각하고 고민한다면, 시도가 가능한 곳 역시 서울뿐이다. 물론 지금은 ‘한국을 뜬다’는 카드를 한 손에 꼭 쥐고 있지만, 한국에서 살아 가는 한은 서울을 떠날 생각이 없다.

나는 여전히 독립을 실험 중이고, 이 실험은 또 실패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비용 중 절대적인 비중인 주거비를 언제까지 지금의 형태로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회 전체가 급 속도로 나빠지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날씨는 더욱 심각하다. 서울을 떠난다면 가장 큰 이유가 날씨 때문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 어떤 것도 안정적인 나의 소유가 아닌 임시의 상태와 쉬지 않고 바쁜 나날들을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 지금 서울살이의 장점이라고 느끼는 것이 언제 한국살이의 단점에 밀려 쪼그라들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때 일은 그때 생각하기로 했다. 미래에 대한 기대를 원천 차단하고 언제 내쫓길지 모를 도시에 산다는 것이 공포보다는 아직 스릴일 때 사는 게 좋지 않겠는가. 지금, 서울에서 나로 살 수 있으면 그걸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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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손기은, 유지성
    포토그래퍼
    이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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