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앤더슨

올해의 문제작 < Malibu >를 내놓은 앤더슨 팩은 공들여 쓴 노래를 부르고 랩을 하고 드럼을 친다. 처음 찾은 서울의 무대에서도 그렇게 했다.

솔이나 힙합이 아닌 알앤비 아티스트라 부르고 싶어요. 더 넓은 범위의 장르로서. 동의해요. 저는 기초 알앤비 스쿨이라는 학교가 있다면 거기를 졸업한 사람처럼 곡을 써요. 벌스, 프리 코러스, 코러스, 포스트 코러스, 벌스 구조. 편곡을 다르게 할 때도 있지만, 조데시나 112 같은 그룹을 동시대에 보면서 자랐으니까. 또 어머니가 모타운, 스티비 원더, 커티스 메이필드의 굉장한 팬이었어요. 내가 드럼을 칠 때는 가스펠 연주자 같은 느낌도 나고. ‘진짜 알앤비 아티스트란 뭔가’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자란 세대랄까. 얼터너티브 힙합이나 댄스 뮤직도 많이 들었지만, 결국은 그런 요소들을 포함한 알앤비가 중심에 있어요.

‘레트로’를 지향하는 뮤지션은 많지만, 노래를 부르는 방식은 물론 드럼이나 기타 퍼즈도 굳이 매끈하게 다듬지 않죠. 알앤비로부터 나온 로큰롤이나 사이키델릭 록처럼. 그래서 70년대보다는 60년대나 50년대의 영향이 더 진하게 들려요. 그게 제가 좋아하는 방식이에요. 전작 < Venice >의 ‘Put You on’이나 ‘Might Be’가 현대적이고 깨끗한 알앤비 사운드라면, 이번 음반 < Malibu >의 ‘Put Me Thru’나 ‘The Bird’ 같은 곡은 꽤 지글지글거리죠. 이런 불완전함이 완전함을 만드는 거예요.

그중에서도 딱 하나의 이름을 고르자면, 슬라이 스톤. 와우. 그야말로 완전 날것인 사람이죠.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의 ‘Mother Beautiful’은 손에 꼽을 만큼 좋아하는 노래예요. 사실 어릴 때부터 슬라이의 곡을 들으며 자란 건 아니에요. 오히려 얼스 윈드 앤 파이어나 스티비 원더 쪽에 가까웠죠. 하지만 나중에 음악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확 빠져들었어요.

< Malibu >의 음반평을 다 찾아봤어요. 특히 “아웃캐스트 해체 이후 최고의 아웃캐스트(를 연상케 하는) 곡”이란 한 매체의 표현이 인상적이었죠. 내가 정말 음악을 만들고 싶고, 나를 몰아붙이고 청사진을 제시한 음반이 (아웃캐스트 멤버) 안드레 3000의 < Love Below >예요. 그는 통상적으로 힙합 아티스트가 갈 수 없다 생각한 영역까지 도달했죠. 선입견을 깬 거예요. 퍼렐이 N.E.R.D와 함께 해낸 작업도 그래요. 재즈와 록의 요소, 라이브 같은 투박한 소리의 질감, 옷을 입는 방식…. 거기엔 룰이 없어요. 고등학교 때 듣자마자 이게 내가 하고 싶은 거라는 생각을 했죠. 규칙 없이 내가 갖고 있는 요소들을 완전히 자유롭게 내보이는 것. 아웃캐스트에 비견된다는 건 대단한 영광이에요.

그때만 해도 그건 남자답지 않아, 그건 힙합이 아니야, 같은 조롱도 분명히 있었죠. 힙합을 좋아하는 무리에 속한 고등학생이라면 꽤 신경이 쓰일 만한. 자기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편안해지면 돼요. 결국은 자신감이란 얘기죠. 안드레 3000이나 퍼렐은 다 만들 수 있어요. 백인들이 좋아하는 노래부터 갱스터들이 좋아하는 노래까지. 그러니 굳이 남들이 뭐라 하든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거죠. 저는 갱스터의 삶에 대해 하나도 모르지만 목소리가 있고 곡을 쓸 수 있어요. 그러니 갱스터든 힙스터든 괴짜든 누구와 일하는지에 따라 제 안의 수많은 방 중 하나에 들어가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예요. 2월에 만 서른한 살이 되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더 나를 믿게 돼요. 아마 10년 전이면 지금처럼 말하지 못했을 거예요.

< Malibu >에서 직접 프로듀싱한 노래는 네 곡뿐이죠. 그 ‘수많은 방’의 일관성은 어떻게 유지하나요? 많은 사람이 프로듀서의 일이 직접 악기를 고르고 곡을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것도 일부지만, 결국은 자기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끌고 가는 거예요. 선명한 그림을 갖고. 저는 프로듀서로서 다른 프로듀서들의 곡을 받아 부를 때도 그냥 내버려두지 않아요. 이것저것 넣어달라, 빼달라, 고쳐달라 요청하고 제안해요. 그 다음 믹싱 과정에서도 계속 엔지니어 옆에 앉아서 간섭하고 참견하죠.

그런 과정을 거친 뒤, 크레딧에서 이름이 빠지는 건 상관없나요? 그럼요. 난 모든 과정에 걸쳐 거기에 있었으니까요. 제 음반이라고 전곡 다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릴 필요는 없어요. 앤더슨 팩 음반이란 걸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죠. 그룹 노 워리스 작업을 할 때도 비트는 놀리지가 다 만들지만, 제가 보컬을 녹음하면서 이것저것 바꿔요. 한 곡 안에서 각자를 증명하는 거죠. 그렇게 서로의 비전을 공유하는 뮤지션이어야만 같이 일할 수 있고요. 사실 제가 좀 모든 걸 컨트롤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아트워크 같은 부분까지도.

초기작 < O.B.E. Vol. 1 >이 꽤 고가에 거래되는 걸 알고 있나요? 적어도 1백50달러 정도. < Malibu > 발매 이후 벌어진 일이죠. 와, 전혀 몰랐어요. 진짜 제가 원하던 일이에요. 성공한 야구선수의 베이스볼 루키 카드 같은 일이 생긴 거잖아요. 제가 브리지 러브조이에서 앤더슨 팩으로 이름을 바꿨을 때, 사람들이 왜 그러냐고 했어요. 그 이름으로 낸 음악들은 어쩌냐고. 잘한 일이란 생각이 드네요. 전 < O.B.E. Vol. 1 >을 굉장히 좋아해요. 특별한 시기에 만든 음반이고요. 거의 음악을 그만둘 뻔했어요.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때. 하지만 어쨌든 이건 끝내주게 마무리하자는 생각은 있었죠. 그래서 오히려 그런 불안감이 잘 드러난 음반이고.

그런 시기가 그립기도 한가요? 뭐랄까, 지금은 감사하는 맘에 가까워요. 그때의 저는 꽤 예민한 사람이었어요. 뭘 하나 하는 데 진짜 오랜 시간이 걸렸고. 지금은 아니에요. 많은 일을 겪으면서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게 됐죠. 그때 일하던 친구들이랑 지금도 같이한다는 사실도 너무 좋고.

< Venice >와 < Malibu >는 모두 LA 근교 해변 이름이죠. 캘리포니아에서 나고 자랐고요. 하지만 뜨거운 햇볕과 느긋한 드라이브를 그리게 되는 음반은 아니에요. 전 LA에서 북쪽으로 좀 떨어진 곳에서 자랐고, LA로 들어온 지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아웃사이더 같아요. 음반 작업을 할 때도 여전히 중심을 지켜보면서 배운다는 생각이고요. 한 코미디언이 “최고의 관점은 바깥쪽에서 안을 볼 때 나온다”고 했어요. 아웃사이더만이 가질 수 있는 시선이 있죠.

어머니의 나라, 서울은 처음이죠? 맞아요. 방금 공연을 끝냈잖아요. 환상적이네요. 무대에서 별의별 감정이 다 들었어요. 제 아내도 한국인인데, 아내의 가족들을 만난 것도 처음이에요. 결혼한 지 6년 만에. 장인, 장모,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조카들.

데뷔 7년 차지만 스타가 된 건 한순간이었죠. 지난해 닥터 드레의 신보 < Compton > 중 6곡에 참여했고, 곧이어 < Malibu > 발매. 그건 대체 어떤 기분인 건가요? 저를 둘러싼 세계가 변하고 있다는 걸 느껴요. 그게 저를 더 진지하게 만들죠. 그러니까 사람들도 저를 진지하게 대하기 시작했고요. < Malibu > 수록곡이 거의 완성됐을 때, 닥터 드레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그의 음반에 내 목소리가 실린다는 건 상상도 못했던 일이죠. 그렇게 위대한 뮤지션들과 같은 소파에 앉아 예전에 고생한 얘기 같은 걸 할 수 있게 되다니

“자신 있어요. 제 옷차림이나 연주가 맘에 안 드는 사람이 있다고요? 예전 같으면 불안했겠지만, 지금은 상관없어요.”

그런 위치에서라면 타협해야 할 순간도 있겠죠? 가족들이 그립죠. 지금은 어쨌든 계속 무대에 서면서 일해야 하는 시기거든요.

음악을 만드는 일에서라면요? 시간이 말해주겠죠. 유명세와 상관없이 일로서 음악을 만들기로 결심하는 순간부터, 타협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요. 이게 내 밥벌이니까. 고민할 수밖에 없죠. 그렇다고 그저 팔릴 만한 것들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선택과 집중 그리고 전략이 필요하다는 거죠. 카니예 웨스트, 드레이크 같은 뮤지션들은 이미 잘하고 있어요. 쉽게 말하면 브랜딩. 또 거기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을 것인가도 결정해야 하고. 하지만 어차피 제 음악은 굉장히 넓은 범위에 걸쳐 있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적절한 걸 고르면 돼요. 그중 지금 내가 뭘 하고 싶은지가 제일 중요해요.

2013년 < GQ US >는 소속사 동료 래퍼 켄드릭 라마에게 이렇게 물었어요. “오늘의 켄드릭 라마를 있게 한 네 명의 래퍼는 누구인가요?” 그는 투팍, 닥터 드레, 스눕 독, 맙 딥이라 답했고요. 지금의 앤더슨 팩을 만든 뮤지션 넷을 꼽는다면요? 일단은 비틀스. 디안젤로, 더 루츠의 퀘스트러브, 그리고 음… 제이 지 .

제이 지요? 아, 생각해보니 스티비 원더를 꼭 넣어야 할 것 같긴 한데, 어쨌든 저는 제이 지의 엄청난 팬이에요. 요즘 그의 자서전을 읽고 있는데 예전보다 그를 더 좋아하게 됐어요.

타임머신이 있다면, 어떤 해의 어떤 도시로 가고 싶나요? 1968년요. 사실 60년대라면 언제든 좋죠.

그때라면 역시 샌프란시스코인가요? 물론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