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진 곳에 숨은, 보석 같은 바 4

설마, 하는 외진 곳에 이런 바 Bar가 있다. 문을 나설 땐 그 골목까지 사랑하게 된다.

위쪽은 바인하우스의 김병건 바텐더가 만든 맨하탄이다. 좋은 베이스 술을 써 풍미가 터질 듯 집약돼 있다. 잔은 바카라의 마세나 라인이다. 아래쪽 칵테일은 더 웨스트햄릿의 전병준 바텐더가 만든 김렛이다. 생 라임을 쓰지 않고 로즈 사의 라임 주스로 오리지널 김렛을 재현했다. 핸드 카빙한 얼음이 화룡점정.

 

바 인 하우스 (031-758-6616)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복정로 20

복정동에 있는 이 바를 알게 된 건 인스타그램을 통해서다. 처음엔 섬세하고 (비싸고) 고운 잔에 내놓는 칵테일 사진에 눈길이 가다가 나중엔 손님 한 명 한 명을 헤아려가며 칵테일을 만드는 바텐더에 마음을 뺏겼다. 바인하우스의 김병건 대표는 90년대 중간, 플레어바의 잔 닦는 일부터 시작한, 말 그대로 바닥부터 경험을 쌓은 바텐더다. 복정동에 바인하우스를 차린 건 2007년이니 곧 만 10년째가 된다. “이 근처로 이사하고, 이 공간을 창고로 사용하려고 구한 곳이에요. 모아둔 술을 쌓아두고 친구들이랑 마시려고 했죠.” 그렇게 시작해 지금은 이 작은 공간에 마시고 싶은 술이 한가득 들어찼다. 타지에서 온 단골들, 서울 시내에서 술 마시러 오는 바텐더들도 쉼 없이 들이닥친다. “골목 바, 동네 바가 저변에 깔려야 시내의 근사한 바들도 단단히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본에 가면 긴자의 화려한 바와 뿌연 너구리골 같은 동네 바가 공존하는 것처럼요.” 김병건 바텐더가 맥주 한 병으로 몸을 풀더니 질 좋은 코냑으로 만든 사이드카(오른쪽)를 시작으로 맨하탄, 깁슨, 시그니처 칵테일 ‘터닝포인트’까지 총 네 잔의 칵테일을 연이어 만들어줬다. 클래식 칵테일이지만 바인하우스에서만 완성할 수 있는 맛. 외져도 굳이 찾아가야 할 이유는 이미 충만했다.

 

바 앤 라운지 (033-244-7284) 강원도 춘천시 백령로138길 38

바앤라운지를 찾아 골목길을 걷다가 좀 막막함을 느꼈다. 대학가라, 포차나 소줏집들이 즐비해서다. 서울도 아닌 춘천에서, 이 ‘먹자 골목’에서 위스키와 칵테일을 파는 바가 있다는 게 일종의 배짱처럼 느껴졌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게 이거니까, 내 기술이 이거니까요.” 용성중 대표가 7년간 서울에서 바텐더로 근무하다 고향으로 왔을 때가 2012년. 서울에서도 바 문화가 막 시작될 즈음이다. 처음엔 취객과 시끄러운 손님들을 상대하느라 힘들었지만, 이제는 ‘춘천에서 술 좋아하면 이곳을 찾아야 한다’는 지역민 사이의 불문율도 생겼다. “제가 느끼기에 지방의 손님들은 충성심이 있습니다. 일주일에 다섯 번 찾아오는 단골도 생겼고요. 그래선지 춘천에 일이 년만 있으려 했는데, 지금까지 왔네요.” 덕분에 춘천 시민들은 옹달샘 같은 술집을 계속 드나들 수 있게 됐다. 이곳의 칵테일은 클래식과 창작이 적절히 섞여 있다. 왼쪽 사진은 가을/겨울 메뉴로 새로 추가한 ‘하우 두 유자’다. 유자의 향이 겨울을 부른다. “지방에 있는 바라 그런지 서울에서 품귀인 위스키가 이곳에선 넉넉할 때도 있어요. 발베니 15년 싱글 배럴을 며칠 전까지 팔았죠.” 이 바의 좌식 테이블에 앉아 시그니처 칵테일을 마시니 이 골목까지 좋아질 것만 같았다.

 

씩스 어클락 (032-345-8772) 경기도 부천시 경인로 505

복잡하고 정신없고 시끄러운 역곡역 근처, 이 커다란 상가 건물에 몇 번 간 적이 있다. 하지만 싱글 몰트위스키와 창작 칵테일을 마실 수 있는 바가 이 건물 구석에 어딘가에 있으리라곤 한 방울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2014년에 문을 연 이곳은 신민 대표가 집에서 걸으면 곧장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있다. “집 앞에서 작게 바를 여는 게 꿈이었어요. 동네 단골손님들이 저랑 같이 나이 드는 걸 보고 싶기도 하고요.” 물론 초창기엔 이 바를 운영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바에 앉아 여종업원이 언제 나오나 주방 쪽 커튼 뒤를 힐끔거리는 손님도 꽤 있었다. 문 앞에 ‘여자 바텐더 없음’을 써 붙이고, 바 매너를 메뉴판에 단호하게 쓰고 나서야 이 공간을 즐기는 손님들이 하나 둘씩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자존감이 흔들린 적도 있었죠. 서울에서 아무리 바 문화가 뜨겁다 해도 외곽까지 퍼져나오는 덴 시간이 참 많이 걸려요. 그래도 이젠 여유가 생겼어요. 이곳을 거점으로 좋은 동네 바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그 말과 함께 눈앞에 내놓은 칵테일은 핌스컵을 트위스트한 ‘핌스 어클락’(사진)이다. 오크통에 에이징한 진도 한잔 마셨다. 문 밖은 여전히 시끄러웠지만, 바 안에선 좋은 향이 퍼졌다.

 

더 웨스트 햄릿 (010-6270-4109) 서울시 강서구 양천로14길 6

서쪽으로 끊임없이 차를 몰고 이륙하는 비행기가 손바닥만 하게 보이는 방화동까지 가야 비로소 이 바가 나온다. 전병준 오너 바텐더가 이곳에 바를 연 지 딱 3년이 됐다. 왕노가리를 1천원에 파는 술집의 위층에 자리 잡은, 100퍼센트 예약제로 단 8명의 손님만 받는 곳이다. 서울 시내 바들이 문과 위치를 숨겨 ‘스피크이지’ 효과를 노린다면, 이곳은 그저 안과 밖의 대비만으로도 강렬한 장면 전환을 경험할 수 있다. “맛집은 아무리 떨어져 있어도 실력이 있으면 다 찾아온다고 하잖아요. 이곳 역시 지역을 걱정하지 않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생각대로 마음껏 꾸린 곳입니다.” 예측대로 손님들은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이곳을 찾는다. 서울 시내에 비해 칵테일 가격이 저렴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섬세하게 제조하는 빈티지 칵테일과 아나운서 같은 발성으로 명확하고 부드럽게 손님을 대하는 전병준 바텐더를 만나기 위해 택시비를 들여서라도 온다. “가니시를 잘 안 합니다. 더 중요한 건 좋은 잔이라고 생각해요. 19세기에 쓰던 잔이나 한눈에 봐도 아름다운 기물은 손님들께 드리는 선물 같은 거죠.” 그가 위생 장갑을 끼고 로즈사의 라임 주스를 쓴 오리지널 김렛을 제조했다. “마스터, 한 잔 더 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은 걸 겨우 참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