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숙 VS 박나래

싸우면 누가 이길지 궁금한 사람들이 있다. 끝내 결과는 알 수 없겠지만, 그 구도가 지금에 관해 말하는 게 있다.지난해 말, MBC < 무한도전 >의 예능총회에서 김숙은 ‘남자 판’이었던 점을 2015년 예능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았다. 김숙은 이어 “2016년 은 남녀 화합의 장이 되었으면”이라는 바람을 밝혔는데, 말이 화합일 뿐 실은 여성 예능인들에게 기회를 달라는 외침이었다. 김숙을 제외한 모두가 남자였던 당시 구성원들은 김숙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그야말로 정확한 지적이었음이 확인되었다. 남자들만 도전하고, 여행하고, 게임하며 자신들만의 판을 짜는 상황이 몇 년째 이어져온 터, 당연히 한계가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2016년은 남성 예능인들의 한계가 여성 예능인들에게 기회가 된 한 해였고, 그 선두에는 앞서 이런 상황을 예측한 김숙이 있었다. 여성 코미디언 다섯 명이 모인 토크쇼 JTBC < 마녀를 부탁해 >를 필두로 여성 연예인들이 서로 뭉쳐 꿈 이루기에 나선 KBS 예능 < 언니들의 슬램덩크 >와 최근 편성을 확정한 MBC every1 < 비디오 스타 >까지, 여자 연예인들이 모인 곳이라면 무조건 김숙이 부리부리한 눈을 뜨고 “어디 여자 일터에 남자가 오느냐”고 일갈을 날릴 기세로 맨 앞에 서 있다.

김숙이 “남자는 살림하는 남자가 최고지! 어디서 남자가 아침부터 인상을 써?”라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 ‘가모장’ 캐릭터를 내세운 건 요 몇 년 사이의 일이 아니다. 김숙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아무렇지 않게 쏟아지는 여성에 대한 편견, 특히 여성 코미디언을 향한 편견 어린 시선과 맞서 싸우고 그대로 되갚아줄 준비가 되어 있는 예능인이었다. 그저 오랫동안 미디어가 극소수를 제외한 여성 예능인을 토크의 주체가 되는 자리에 두지 않았을 뿐이다. 김숙이 절친한 동료인 선배 코미디언 송은이와 함께 팟캐스트 ‘비밀보장’으로 스스로 말할 창구를 찾고, 자기 캐릭터를 좀 더 부각시킬 기회를 찾아간 시기와 여성 시청자들이 보고 싶어하는 여성 예능인이 필요한 시기가 정확히 맞물리면서 김숙에게 기회가 생겼다. 윤정수와 파트너가 된 JTBC < 님과 함께 2 >는 김숙의 재능과 매력을 보여주기에 가장 적합한 프로그램이다. 올해 가을로 1주년을 맞이한 이 프로그램의 가상 부부라는 설정 안에서 김숙은 가부장의 미러링인 가모장 캐릭터를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대중에게 보여줄 기회를 얻었다. 동시에 경제력을 쥐고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고, 사회가 호명하는 아줌마가 되지 않는 여성으로서 다른 젊은 여성들의 ‘언니’ 위치까지 획득했다. 팟캐스트에서 “남자 없이 잘 살아”를 말하는 것과 가상 결혼 생활을 “쇼윈도 부부”라고 말하는 것은 충돌하지 않고, 언제나 관계의 우위를 점하고 휘둘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김숙은 ‘갓숙’, 멋진 언니가 될 수 있다.

그러니 김숙이 “남녀 화합의 장”보다 여자들이 모이는 예능에서 제 몫을 다하는 건 놀랄 일이 아니다. 김숙은 남자들로서는 쉽게 알 수 없는 매력을 가졌다. 그 매력을 남자들에게 어필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2015년 메이저 예능에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낸 김숙은 올해 말 그대로 자기의 판을 깔았다. 여자 연예인들이 중심이 되는 판이다. 송은이와 함께해온 ‘비밀보장’을 지상파 라디오인 ‘언니네 라디오’로 옮겨왔고, 송은이가 없을 땐 맏 언니가 되어 < 언니들의 슬램덩크 > 멤버들을 이끌고 있다. < 라디오 스타 >의 미러링으로 생겨난 < 비디오 스타 >를 정착시키는 데도 김숙의 공이 컸다. 이 모든 판에서 김숙은 여성 연예인들의 ‘언니’로, 무뚝뚝하지만 언제나 힘이 되어줄 것 같은 든든한 빽으로 존재한다. 나중에 2016년을 ‘남자 판’이던 예능계에 ‘여자 판’ 이 자리 잡기 시작한 해로 기억하게 된다면, 김숙의 이름은 맨 앞에 적혀야만 한다.

박나래는 그 판에서 제대로 노는 법을 아는 동생이다. 송은이, 김숙, 안영미, 박나래, 이국주가 함께 진한 < 마녀를 부탁해 >에서 박나래는 종종 지루해 보였다. 여자 코미디언들이 진행을 맡았지만 주제가 남자 게스트였기 때문에 불협화음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이 프로그램에서 박나래는 내키는 대로 독해지지도 못 했고 “입을 열면 방송 못 나가는” 더러운 이야기를 쏟아낼 수도 없었다. 운신의 폭이 좀 더 넓어진 < 비디오 스타 >에서야 비로소 박나래는 자기가 가진 ‘무대형’ 코미디언으로서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 시작했다. 박나래의 개그는 ‘파티’라는 단어로 요약된다. 화려하게 입고 혹은 분장하고 “즐겁게 혹은 더럽게” 음주 가무를 즐긴다. 약간은 취한 것처럼, 내일이 없는 것처럼 막무가내로 질문을 던지고 뜬금없이 웃고 “내가 즐거운데 뭐 어때!”를 외친다. 마치 신나는 음악이 크게 울려 퍼지는 술집에서 웃고 떠드는 것처럼. 될 수 있는 한 멋지고 예쁘게 꾸민 모습이라면 더욱 좋다. 한 번 사는 인생, 지금을 즐기는 거지!

공개 코미디와 거리가 있는 김숙이 예능인, 진행자로서의 정체성이 더욱 강하다면, 박나래는 KBS < 개그콘서트 >에서부터 오래 묵혀온 재능을 tvN < 코미디 빅리그> 에서 만개시킨 뒤 여전히 무대에 가장 욕심을 내는 무대형 코미디언이다. 10년이 넘는 무명생활을 거쳐 주목 받은 것도 작은 몸에 믿기지 않을 만큼 독한 분장을 덧씌운 이후부터다. 세상의 그 어떤 존재로도 변신하는 박나래의 분장은 대부분 석유로 지워내야 할 만큼 독한 것들이지만, 그 어떤 분장도 박나래가 그동안 들어온 독하다는 말에는 미치지 못한다. 지난 분장들을 떠올리면 “망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는 단호한 박나래의 말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분장을 철저하게 준비하고 무대 위로 올라가는 것, 무대 위에서 사람들에게 충격과 웃음을 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믿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하며, 관객을 웃기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박나래에게 대중이 응답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 시간이 조금 오래 걸렸을 뿐.

MBC < 나 홀로 산다 >는 분장을 지운 박나래의 민낯을 보여준 방송이었다. 반전이라면 민낯 또한 화려했다는 것이다. 박나래가 방송을 걷어내고 살아가는 일상 또한 화려하다는 의미다. 집 안에 미러볼이 돌아가는 일명 ‘나래 바’가 있고, 조명이 번쩍이는 동안 박나래는 직접 고른 음악을 튼다. 집 안에 바를 만들어두고 디제잉을 하는 박나래는 십중팔구 개성을 살린, 지금 가장 트렌디한 옷을 입고 있다. 자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알고, 그 욕망을 드러내고 말하는 데 스스럼이 없는 여성. 나래 바에서 열리는 동료들과의 파티에는 박나래의 무명 시절 경제적,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을 준 동료들을 향한 감사의 마음도 담겨 있다. 장동민이 보고 싶어 코미디언 시험을 보았다는 박나래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박나래야말로 장동민이 싫어하는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는” 여성, 무엇보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여성이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넘치는 에너지로 그 욕망을 실현해나가는 여성을 그 누가 싫어할 수 있겠는가. 물론 박나래의 ‘센’ 캐릭터가 불편하고 부담스러울 수 있겠으나, 그것 역시 그쪽 사정일 뿐이며 박나래는 그 사정을 봐줄 생각이 없다.

윤정수와의 “쇼윈도 부부” 설정을 제외하면 남자 예능인과의 케미가 거의 없고 실은 필요도 없는 김숙과, 적극적으로 호감과 관심을 표현하고 적극적으로 개그의 소재로 쓰는 박나래의 차이는 그래서 의미있다. 김숙의 개그와 김숙이 벌여놓은 ‘판’에 남자가 자리 잡을 여지는 거의 없다. 반면 남자들 앞에서 그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자신의 성적 매력을 어필하면서 웃음을 유발하고 19금의 의미에서 “더러운” 개그를 주된 전략으로 삼는 박나래에게 이성애적 욕망은 아주 중요한 소재다. 그래서 김숙과 박나래가 함께 있는 < 비디오 스타 >가 흥미롭다. < 라디오 스타 >의 스핀오프라고 하지만 진행자들의 역할은 일대일로 대응이 되지 않는다. 박소현이 김국진의 역할을 맡는다고 할 때, 김숙과 박나래는 김구라와 윤종신 역할을 같이 맡는다. 동시에 박나래는 군대 가기 전 김희철이 보여준 막무가내 태도 같은 것을 가져온다. 토크를 이끌어가는 진행자로서의 김숙의 재능과, 연기와 순발력으로 훅을 담당하는 박나래의 조합은 비슷한 롤의 송은이와 안영미가 빠진 자리에서 정확히 맞아 들어간다. 이병헌 감독이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처럼, 박나래의 ‘욕망’이 발현된 개그는 김숙의 조율 아래 아슬아슬한 선을 지킨다. 아쉬운 점은 실제 어떠했든 < 무한 걸스 >가 결국엔 < 무한도전 >의 열화 버전으로 기억되고 있는 것 처럼, 아직은 < 비디오 스타 >가 < 라디오 스타 > 의 스핀오프일 뿐이라는 점이다. 김숙이 가모장 캐릭터를 드러냈을 때 가부장이 가지는 권위가 잠시나마 우스워졌듯이, 이들의 시도가 남성 예능판의 여자 버전으로 남지 않기 위해서는 더 새로운 프로그램과 새로운 시도, 기회가 필요하다. 척박한 예능의 땅에서 김숙과 박나래, 그리고 다른 여성 코미디언들이 일구고 있는 땅이 나눠 가지는 결실을 맺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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