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원 VS 차승원

싸우면 누가 이길지 궁금한 사람들이 있다. 끝내 결과는 알 수 없겠지만, 그 구도가 지금에 관해 말하는 게 있다.


2015년 3월 6일. ‘차줌마’는 < 삼시세끼 >를 통해 단골 기사식당에서 배워왔다는 조리법으로 만든 제육볶음을 선보였다. 그리고 다음 날 전국 방방곡곡 가가호호에서 제육볶음 냄새가 새어 나왔다. 고추장을 쓰지 않아 말끔한 이 제육볶음 레시피는 그대로 전설이 되었다. 1998년부터 주연 배우로 극장 스크린과 TV를 넘나 들며 훌륭한 외모와 근사한 연기력을 떨친 배우 차승원의 연관 검색어엔 여태껏 ‘제육볶음 레시피’가 따라다닌다. 배우 차승원이 제육볶음의 달달한 향으로 시청자를 끌어당긴 < 삼시세끼 어촌편 >과 얼마 전 방송을 마친 < 삼시세끼 고창편 > 사이에는 그가 광해군으로 분한 무려 50부작 대하드라마 < 화정 >이 있었지만 대중에게 그는 여전히 ‘차줌마’다.

한편, 이런 의문도 있다. ‘만능 간장’이 왜 여태껏 상품화되지 않았을까. 돼지고기 간 것과 간장, 설탕을 뒤섞어 끓이기만 하면 완성되는 이 간단한 간장이 있으면 1년 내내 어떤 요리든 뚝딱, 게다가 맛있게 만들 수 있다니 이 역시 상서롭기로는 ‘전설템’ 레벨이다. 이 전설의 주인공은 < 한식대첩 > 심사위원으로 발굴되어 음식과 요리 방송계의 중요한 스타가 된 외식 사업가 백종원. < 집밥 백선생 > 시즌 1에서 윤상, 김구라, 송재림, 윤박의 요리 선생님이 되었던 그는 올해 3월부터 김국진, 이종혁, 장동민, 정준영을 새 학생으로 받아 소처럼 방송을 이어가고 있다. 방송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뒤로 갈수록 맥 빠지기 마련인데, < 집밥 백선생 >에서는 시즌 2가 끝나가는 현재까지도 만능 간장 못지않은 전설템이 여전히 쏟아진다. 백종원의 신묘함은 끝이 없다.

요즘 사람들은 TV를 틀 때마다 식욕을 자극 받기 일쑤다. 그 충동 욕구를 행동으로 이어 가게 하는 두 프로그램이 바로 이 < 삼시세끼 > 와 < 집밥 백선생 >이다. < 삼시세끼 >는 최근 많은 서브 설정이 들어와 있긴 하지만, ‘출연자들 이 도시에서는 쉽게 해결할 수 있는 한 끼를 자연이 가까운 낯선 곳에서 하루 세 번 차려 먹는다’는 기본 구조로 이뤄져 있다. 처음 그 멀뚱한 구조에서 재미를 준 것은 이서진과 옥택연의 어설픈 솜씨였다. 뭐든지 처음 해보는 그들의 요리가 점점 맛을 내고 기어이 먹는 즐거움을 전달하는 과정이 이 시리즈를 시즌 6 < 삼시세끼 어촌편 3 > 득량도까지 끌고 온 힘이다.

시즌 2 < 삼시세끼 어촌편 >에 배치된 차승원은 그러나 이서진과 달랐다. 제작진은 “방송에 나오는 그대로 차승원이 100퍼센트 알아서 만들어낸다. 제작진이 아이디어를 주려고 시도하기도 하지만 워낙 요리를 잘해서 항상 차승원의 아이디어가 훨씬 좋다”고 밝혔다. 이서진과 옥택연이 협업 체계를 이루고서야 간신히 공동 주방을 이끌어나가던 어설픈 모습과는 정반대다. 차승원은 숙련된 ‘홈쿡Home Cook’ 이다. 작품 촬영이 없을 때는 필시 집에서 밥을 해먹는 것이 분명한 태가 폴폴 난다.

그가 집에서 종종 해 먹는 것으로 추정되는 제육볶음만 전설의 반열에 오른 게 아니다. 만재도에서는 홍합 듬뿍 넣은 짬뽕과 우럭탕 수를 선보였다. 또 뭍으로 올라온 고창에서는 닭개장이라는 최고 작품을 만들어냈고 닭볶음탕에 갈비찜이며 부대찌개까지, 끔찍하게 더운 여름날에도 멋지게 손맛을 뽐냈다. 김치를 담그던 차승원이 잠시 손을 멈추고 “내가 김치 담가본 것 같지? 나는 처음 해봤는데 왜 이리 잘하지?”라고 말한 장면이 있다. 지면을 통해 이렇게 답해주고 싶다. “여러 요리 경험을 통해 기초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처음 해봐도 그렇게 잘할 수 있는 거예요.”

동시에 그는 독재자다. 그와 ‘요리부’로 짝을 이루는 손호준은 시즌을 거듭하는 동안 ‘옥 셰프’라는 별명을 얻은 옥택연과 달리 “호준아, 그거 좀 가져와 봐”라는 뜻 모를 요구를 찰떡같이 알아듣고, 말하기도 전에 도마에 비닐을 깔 줄 아는 특급 어시스턴트로 거듭났다. 한 치 망설임 없이, 다 해봤다는 듯한 자신감으로 거침없이 쭉쭉 요리를 해나가는 차승원과 빠릿빠릿하게 그를 보필하는 손호준의 모습은 딱 해병대 주방을 연상시킨다.

그를 보면 “며느리도 몰라”를 외치던 신당동 떡볶이집의 고 마복림 할머니도 떠오른다. 차승원이 없을 때 손호준이 남주혁과 조물조물 만들어낸 처참한 볶음밥으로부터다. 세 시즌 동안 차승원의 주방에서 ‘견습’을 했지만 는 것은 눈치뿐, 정작 요리는 배운 게 없다. 차승원이 기술 전수에 인색해서는 아니다. 차승원이 ‘홈쿡’이라는 것이 이유다.

하루에 세 끼씩이나, 게다가 다른 메뉴로 끼니를 차려내는 것은 레벨이 높은 노동이다. 스스로 할 수는 있지만, 누군가를 가르쳐가며 할 정도로 능숙하지 않은 것이 요리사로서 차승원이 위치한 수준일 것이다. 삐뚤삐뚤하게 썰린 재료, 설렁설렁 하는 것 같아도 머릿속의 조리법을 따라가느라 긴장한 모습, 그것이 차승원의 한계다. 하긴 배우가 연기를 잘하고, 근사한 생김에 시원시원한 신체 비율, 게다가 보고 또 보고 싶은 성정까지 갖췄는데 뭐가 그리 문제겠는가.

반면 외식 사업가인 백종원에게는 모든 것이 여유롭고 쉬워 보인다. 먼저 < 집밥 백선생 >의 기획 의도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간단하다. 두려워하지 말고 ‘집밥’에 도전해보라는 것이다. 맞다. 어려우면 안 하고 재료가 없으면 안 쓴다. < 집밥 백종원 >의 레시피는 식빵 토스트 하나 제대로 할 줄 몰랐던 김국진도 번듯한 요리를 하게 만드는 마법을 부리기도 한다. 출연자인 학생들뿐 아니라 시청자들 또한 요리에 대한 열망을 품게 했다. 백종원 덕분에 이 땅의 수많은 아빠들까지 김국진 같은 ‘요리 불통’이었다가 이제는 ‘일요일은 아빠가 요리사’로 변모했다. 식용유와 올리브유가 어떻게 다른지 묻는 학생에게 백종원은 “그냥 기름이라고 기억해유. 디테일한 차이는 차차 알아가면 되유” 라고 말한다. 백종원은 학생 수준에 맞춘 커리큘럼을 제대로 짜고 있다.

그러나 < 집밥 백선생 >의 본분은 요리학원 왕초보반이 아니라 방송이다. 출연자들의 부족한 실력으로 온전한 요리를 완성하는 드라마를 보여줘야 하는 숙명을 타고났다. 그리하여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와 백종원이라는 존재감이 만나 탄생한 것이 반칙으로 느껴질 정도로 간단하고 레시피들이다. ‘만능’, ‘황금 레시피’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그의 레시피는 하나같이 온라인에서 휘황찬란한 금빛 전설이 되어 있다.

만능 간장에 이어 만능 양념장이라는 걸출한 영웅들을 탄생시켰고, 시즌 2에서는 ‘다된장’이라고 이름까지 새로 붙여 업그레이드한 만능 된장에 만능 춘장, 각종 매운 소스도 배출했다. 간편한 이 양념들 덕분에 요리가 쉬워진다는 건 틀린 얘기가 아니다.

조리법은 충격적일 때가 많다. 차승원 제육볶음의 아성에 도전한 백종원의 제육볶음에는 듣도 보도 못한 조리법이 등장한다. 그는 냉동 삼겹살을 노릇하게 구워 찰랑찰랑하게 물을 붓고 거기에 양념을 뒤늦게 따로따로 넣었다. 미리 숙성시킨 양념장에 재워놨다 굽는 제육볶음만 경험해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시청자들의 입도 딱 벌어졌다.

< 집밥 백선생 >에서 백종원이 알려주는 조리법은 대개 정통 조리법의 법도를 한참이나 벗어나있는 사도私道다. 그러나 이유를 놓고 봐도, 결과를 놓고 봐도 그의 사도가 딱히 틀린 길이었던 적은 없다. 단지 그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었을 뿐이다. 근엄한 법도보다는 실익이요, 실용이다. 해봤더니 맛이 보장되는데야, 홈쿡들의 블로그는 그에 대한 칭송으로 뒤덮인 지 오래다.

외식 사업가로서 브랜드 생산 능력을 놓고 보자면, 백종원은 자신의 친자들로 그리스 로마 신화를 꽉꽉 채운 주신主神 제우스 못지 않은 정력가다. ‘외식 재벌’로 불리는 그의 회사, ‘더본코리아’가 거느린 브랜드는 한신포차와 새마을식당, 본가, 홍콩반점, 마카오반점, 빽다방 등 익히 알려진 것들 외에도 백스비빔밥, 백스돈까스, 백스비어, 백철판, 역전우동, 미정국수, 돌배기집, 절구미집, 성성식당, 제순식당, 대한국밥, 원조 쌈밥집, 원조 해물떡찜, 한국 돼지 갈비, 알파 갈매기살, 행복분식, 철판, 백씨양생탕, 소본가, 죽채통닭, 씨베리안 치킨, 원키친까지 숨차게 이어진다. 이 모든 브랜드가 프랜차이즈화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절반 정도는 방송의 파일럿 프로그램 같은 테스트 브랜드로 운영하고 있다. 천만 다행인 일이다. 지금도 이미 동네 골목에 백종원 브랜드 하나쯤 없는 곳이 없으니까.

더본코리아라는 신화의 주신, 백종원이 그 많은 자손을 잉태한 곳이 그의 테스트 키친이다. ‘만능’, ‘황금’ 돌림자를 쓰는 양념들 역시 방송을 위해서가 아니라 진작부터 이곳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벌집같이 촘촘하게 쌓여 있는 전 세계 곳곳의 양념들, 없는 것 없이 재료가 저장된 그의 전용 주방에서 백종원은 수없이 많은 요리 실험을 다 해봤을 것이다.

그러니 그가 방송에서 알려주는 노하우들은 그가 직접 수차례 해보고 검증한 결론이요, 그가 가진 것의 극히 일부에 불과할 것이다. 그는 테스트 키친에서 쌓아온 거대한 데이터베이스 중 ‘요리 불통’ 초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것들만 꺼내놓는 셈이다. ‘슈가보이’ 또는 ‘쉽게 만든 맛’이라는 비난에도 그의 요리 방송과 외식 사업이 두루 잘되는 근원적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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