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중기 VS 박보검

싸우면 누가 이길지 궁금한 사람들이 있다. 끝내 결과는 알 수 없겠지만, 그 구도가 지금에 관해 말하는 게 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미소년들이 있다. 배용준 신드롬으로 포문을 연 21세기 한류 붐은 범위를 넓히고 연령대를 낮춰 아이돌 그룹까지 도달했다. 일찍이 ‘욘사마’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일본의 중노년 여성 팬들은 < 겨울연가 >에서 배용준이 보여준 ‘이기적이고 한심한 일본 남자들’과 상반되는 ‘순수함’에 큰 점수를 주었다. 깨끗함, 헌신, 자상함, 아름다움 등 현실의 남자 대부분이 갖추기 힘든 덕목을 장착한 이상적 남성을 제시하는 것은 한국 로맨스 드라마의 의무였다. 또한 한 시대를 휩쓴 이상형 아이콘은 당대의 욕망을 충실히 반영하기 마련이다. 오랜 세월 마초를 내세웠던 남성 이상형은 성차별과 성적 엄숙이 지배하는 아시아 문화권의 대중 서사 안에서 기형적으로 진화했다. 성인 남성의 마초성과 폭력성, 보다 구체적으로 정의하자면 여성을 향한 폭력성을 극단적으로 배제한 소년 이미지를 만들었다.

해외 한류 여성 팬들 사이에서는, 한국의 젊은 남성들은 전부 도자기처럼 고운 미남들이라는, “러시아는 금발 미녀의 천국”이라는 편견을 빼닮은 난감한 판타지까지 탄생했다. 최근에는 외국의 여성 한류 팬이 ‘연예인 누구 닮은’ 한국인 미남 유학생에게 반해서 결혼 이민을 왔더니 종갓집의 종손이라 팔자에 없는 시집살이를 한다더라, 는 유의 도시 전설이 떠돌아다니고 있다. 이러한 전설의 주인공은, 언제나 송중기다.

한국을(혹은 21세기 버전 ‘한국의 미’를) 대표하는 배우 송중기의 경력은 그의 나이 만 32세를 넘긴 현재 절정을 맞이했다. 송중기의 20대 시절 인기를 견인한 동력은 소년 이미지였다. < 성균관 스캔들 >의 해맑은 부잣집 도련님부터 강원도 청정 자연에서 배양된 < 늑대 소년 >에 이르는 티 없이 맑은 정통 미소년. 송중기는 이성애 로맨스 서사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나쁜 남자와 착한 남자 중 착한 남자를 훌륭히 구현해냈다. 이전에도 다정한 이미지를 내세우는 한류 스타는 있었지만, 실제 나이를 어림잡기 힘든 동안형 얼굴은 처음이었다.

한국에서 군 복무는 미남형 남성 예능인의 청춘에 종언을 고하는 무덤이다. 일반인도 피할 수 없는 군필자가 들어갈 분류 폴더는 복학생 혹은 아저씨뿐이다. 경력의 단절과 급격한 피부 노화를 불러오는 군 입대는 남성 예능인들에게 최대한 늦추거나 반대로 최대한 일찍 해치워야 하는 골치 아픈 숙제였다. 송중기는 입대를 늦추는 쪽을 택했다. 우연의 일치로 송중기가 입대를 결정한 2013년 초 연예병사 제도가 폐지되며, 송중기는 연예병사 제도 폐지 이후 최초로 현역 입대한 연예인이라는 긍정적인 타이틀을 얻었다.

2015년 만 30세로 만기 전역한 송중기의 얼굴은 변함없이 동글동글 야무진 동안이었지만, 입대 전과 같은 정통 미소년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송중기는 제대하기 무섭게 또 다시 군복을 입고 < 태양의 후예 >의 엘리트 특전사 유시진으로 변신했다. < 태양의 후예 >는 한국 드라마 사상 유례 없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그는 배용준과 김수현의 계보를 잇는 한류의 ‘남신’이라는 탈인간 신화의 반열에 올랐다.

< 태양의 후예 >의 서사는 다분히 탈한국적이다. 주인공 유시진은 평화유지군 소속 특전사이며, 드라마의 배경은 한국이 아닌 중동국가를 모델로 한 이국의 분쟁 지역이고, 작전의 목표는 애국 애족이 아닌 인본주의다. < 태양의 후예 >의 무국적 서사 위에서 유시진은 동안미남 송중기의 얼굴을 한 채 “아이와 노인과 미인은 보호해야 한다”고 일갈한다. 슈퍼 히어로 군인 유시진의 탄생은 현실의 남성상에서 마초성을 들어낸 이상적 미소년 스타의 탄생과 맥락을 공유한다. 완벽한 미소년 송중기가 군대까지 무사히 다녀왔으니 그 말고 누가 유시진이 될 수 있었을까.

이제 송중기는 누구보다 성공적으로 소년에서 남자로 성장한 한류 스타다. 군대라는 지극히 한국적이며 남성적인 프리즘을 무사히 통과해 순결한 소년에서 갖출 것 다 갖춘 어른 남자로 성장한 송중기가 하고 많은 도시 전설 중에서도 ‘종갓집 종손’ 전설의 주인공으로 등판한 배경에는, 아주 조금의 논리적 모순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른이 된 소년들이 떠난 빈자리는 새로 태어난 소년들이 채우고 있다. 1993년생, 만 23세 박보검은 2015년 < 응답하라 1988 >의 최택 역으로 붐을 일으키며 경력에 방점을 찍었다.

욕 한마디 못하는 남고생이자 부잣집 아들에 천재 바둑 기사라는 엄친아지만 조금 괴짜스런 설정이 더해진 택이는, 여주인공 덕선을 두고 전형적인 일진풍 껄렁쇠 캐릭터 김정환과 삼각 관계를 이룬다.

박보검은 로맨스의 착한 남자 역할에 송중기처럼 옹골차게 들어맞지는 않는다. < 응답하라 1988 >의 택이나 영화 < 차이나타운 >의 홀로 맞지 않는 퍼즐 조각 같은 캐릭터 석현이 보여준 것처럼, 박보검의 얼굴과 연기에는 늘 모종의 허점이 상주한다. 이 허점은 결점이나 약점이 아닌 문자 그대로의 빈틈이다. 박보검은 반론의 여지없는 미남형 배우지만 그의 얼굴에는 조각 같은 얼굴의 구세대 미남 배우들이 장착하고 있는 꽉 짜인 긴장감이 없다. 조금의 공격성도 없는, 빤한 거짓말도 믿을 것만 같은, 아름답지만 완전무결하지는 않은, 곱지만 지나치게 고귀하지는 않은, 내가 딛고 사는 이 세상에 한 명쯤은 있을 법한 그런 소년.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그 빈틈은 동서고금에서 성별을 불문하고 대중에게 가장 사랑 받는 스타들이 지닌 덕목이다.

송중기가 군 복무와 유시진 배역을 통해 현실 이미지와 드라마 이미지가 합일을 이루어 내 인기의 자양분이 되었다면, 박보검의 인기의 핵심에는 이른바 ‘바른 생활 청년’ 이미지가 있다. 순수함 혹은 선량함과 동의어로서의 어수룩함은 다름 아닌 빈틈의 매력이다. < 응답하라 1988 >의 택이와 똑같이 실제로도 욕 한 마디 제대로 못 한다는 착한 남자 박보검 신화는 줄을 잇는 추문에 무뎌진 대중을 단숨에 사로 잡았다. 다양한 매체 인터뷰와 파파라치 사진들, 박보검 본인의 SNS와 그의 지인 혹은 동창 임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증언이 박보검 신화의 진실성을 뒷받침했다. 티끌 하나 묻지 않은 착한 소년이라는 가상의 이미지에서 진실로 완전무결한 착한 소년으로의 진화.

박보검은 사극 < 구르미 그린 달빛 >의 효명 세자 역할로 지금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우연찮게도 송중기의 본격 미소년 경력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 성균관 스캔들 >처럼 < 구르미 그린 달빛 >도 남장한 여주인공과 지체 높은 남주인공 간 로맨스를 다룬다. 사극 형식을 빌린 학원 로맨스였던 < 성균관 스캔들 >과는 달리 < 구르미 그린 달빛 >은 정쟁과 암투가 난무하는 정통 사극 요소를 겸비한 멜로드라마다. 박보검이 연기하는 효명세자 영은 냉철한 정치적 판단으로 자신의 입지를 만드는 지략가다. 그럼에도 그의 어리숙하고 고운 얼굴에 장착된 빈틈은 ‘영이’를 ‘츤데레 왕자님’으로 만들었다. 설정 나이 열아홉 살 어린 왕자의 눈물짓는 얼굴에 시청자들은 용솟음치는 보호 본능을 토로했다.

지금껏 한국에서 빈틈의 매력을 내세운 스타는 대부분 여성이었다. 연상의 삼촌 팬들에게 사랑받는 착하고(그런 만큼 어리숙하고, 내 마음대로 다룰 수 있을 것만 같은) 귀여운 미소녀를 어느 정도 ‘성반전’해낸 미소년 스타들은 ‘누님 팬’의 열렬한 응원 속에서 새 시대의 계보를 이어 나가는 중이다. 오랜 세월 이성애로맨스를 주도한 거친 남자의 시대가 저물고 착한 소년의 시대가 열렸다. 서두에서 이야기했듯이 이상형 아이콘은 당대 대중의 욕망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치명적인 매력’으로 여자를 지배하는 나쁜 남자 대신 ‘안전 이별’이 가능한 착한 남자를 열망하는 여성이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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