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호 VS 양세형

싸우면 누가 이길지 궁금한 사람들이 있다. 끝내 결과는 알 수 없겠지만, 그 구도가 지금에 관해 말하는 게 있다.조세호와 양세형은 내 아들들이다. 물론 내가 친아버지는 아니다. KBS 2 < 개그콘서트 > 메인 작가로 활동하던 2000년도부터 코미디언들은 ‘작가님 혹은 선생님’ 이라는 호칭 대신 날 아버지로 부르기 시작했다. 코미디언으로 성장하는 걸 지켜봐 온 입장에서, 조세호와 양세형은 올해 특히나 뿌듯함을 안겨준 두 아들인 건 분명하다. 이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가까이서 지켜본 바를 기록한다. 그 시간을 다시 짚어보면 이 둘의 차이와 공통점이 더 선명해질 것 같다.

양배추라는 예명으로 오랜 기간 활동하던 조세호는 2003년에 SBS 코미디언으로 데뷔한 후 공채 동기인 ‘빡구’ 윤성호와 같이 < 개그콘서트 >에 합류했다. “넌 뭘로 웃겨서 코미디언이 됐냐”는 질문에 ‘나주 배’를 보여드리겠다며 자신의 상의를 걷어 올리고 불룩 튀어 나온 배꼽 주변에 양손을 둥글게 갖다 대던 게 기억난다. 그렇게 간단하게 빵 터뜨리고 < 개콘 > 식구가 되었다. 조세호는 “느그 아버지 뭐 하시노?” 라는 선배들의 질문에 “외국계 대기업 이사십니다”라고 답했다가 “야, 아버지 직업을 가지고 개그하냐?”는 핀잔도 들었다. 조세호의 평소 행동거지를 봐서는 도저히 그가 글로벌 대기업의 임원으로 계시는 분의 자식이라고는 믿기 어려웠으니까. 시간이 흘러 언론에 조세호 아버지의 직업이 밝혀졌지고 나서야 그 개그를 ‘불편한 진실’로 받아들였다.

조세호는 이적 후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도 특유의 친화력과 아버지의 재력(?)을 바탕으로(선배들에게 선물을 적당히 뿌려가면서) < 개콘 > 식구로 숟가락을 얹었다. 이후 이것저것 다양한 코너를 선보였으나 히트를 하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집 앞 채소 가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배추보다 시청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런 조세호, 아니 그 당시 양배추가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끌게 된 건 KBS 2 < 웃음 충전소 >라는 새 프로그램의 ‘타짱’이라는 코너에서 소위 대박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일대일로 대결을 펼치는 이 코너는 서로가 엽기적인 분장을 하고 가려진 막이 없어지면 누가 상대방의 모습을 보고 웃지 않고 견디느냐는 매우 전투적인 포맷으로, 단발 승부에 버티지 못하면 탈락하는 살벌한 형식이었다. 첫방송과 동시에 반응은 선풍적이었다. 상대 출연자 누구도 조세호의 연승을 저지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타짱’은 신이 그를 위해 준비해준 코너였다. 그가 타짜의 천하무적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건, 그가 일본을 왔다 갔다 하면서 한두 개씩 사둔 특이한 가면들이 비밀병기가 됐기 때문이다. “준비된 자가 천하를 얻는다”라는 말이 실제로 증명된 셈이다. 결국 개그 프로그램 사상 최초로 연기자를 출장 경비까지 대주며 일본으로 보내 새로운 가면을 구해오게 했다. 조세호의 가면을 본 시청자들 사이에 가면을 쓰고 노는 바람이 불어 우리나라 파티용품 업계의 매출이 수직 상승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다더니, 조세호의 출장지를 도쿄에서 오사카로까지 넓혀 보았지만 더 이상 재미있는 가면을 구해올 수가 없었다.

개그계의 스타로 발돋움할 기회를 상실한 채 수년간 낭인처럼 방송가를 떠돌던 조세호를 다시 만난 건 tvN < 코미디 빅리그 >에서다. 지상파 개그 프로그램이 아닌 케이블 방송에 생긴 새 개그 프로그램을 정착시키기 위해 팀원 모두가 열과 성을 다하는 가운데, 조세호도 양배추라는 예명을 버리고 단짝 남창희와 힘을 합쳐 다양한 코너를 선보였다. 하지만 다른 코미디언들이 터뜨린 코너에 비해 별 인기는 끌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 다시 한 번 우주의 에너지가 전혀 예기치 못했던 곳에서 터졌다. 김흥국과 같이 출연한 프로그램에서의 상황이 뒤늦게 화제가 되면서 속된 말로 뜬 것이다. MBC < 세바퀴 >에서 김흥국이 조세호에게 뜬금없이 “너 왜 안재욱 결혼식에 안 왔어?”라고 묻자 조세호가 억울한 표정으로 “모르는데 어떻게 가요”라고 답해 예기치 못한 큰 웃음을 주고 ‘프로 불참러’라는 닉네임을 얻으면서 인생 자체가 바뀌었다. 그후 차오루와 < 우리 결혼 했어요 >에 출연해서는 의외의 알콩달콩한 모습을 보여줬다. 사람들은 이런 조세호를 김흥국의 우연찮은 도움으로 갑자기 떴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10여 년 넘게 가까이서 지켜본 나는 끊임없이 개그 코너를 짜고 수많은 불면의 밤을 보낸 그의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이라고 확언할 수 있다.

양세형을 처음 안 것은 < 개그콘서트 >가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시절, < 개그콘서트 >가 난공불락의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자부하던 그 시절, 어느 날 갑자기 개콘의 시청률을 추격해 오는 < 웃찾사 > 얘기를 듣고 방송 모니터를 하면서였다. 인기의 중심에 ‘화상고’라는 코너가 있었다. 그 당시 시사 잡지의 기자가 전화로 “화상고의 인기비결이 뭐라고 생각하세요?”라고 물어온 적이 있었는데, “상대방 프로를 평하는 건 적절치 않은 거 같습니다”라는 답변으로 전화를 끊은 기억이 난다. 솔직히 모니터를 해봐도 도저히 왜 웃기는지 몰랐기에 기자의 질문에 이렇듯 옹색한 답변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절대적 귀여움을 장착한 양세형과 김기욱의 개그 연기가 시청자들에게 어필한 것이 아닐까 싶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대학로의 개그 전용 극장에 입문한 양세형은 개그계에 뛰어든 지 불과 2년 만에 ‘화상고’의 히트와 함께 대형 스타가 될 뻔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화상고’는 김기욱이 예능 프로그램 <일요일이 좋다-X맨> 촬영 도중 불의의 사고로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가 끊기는 중상을 입고 코너에서 하차한 후 인기가 식어 막을 내리고 말았다.

그 뒤 양세형은 특유의 귀여움을 더한 개그 연기를 맘껏 보여주며 다양한 코너를 선보였으나 ‘화상고’를 넘어서는 히트는 하지 못했다. 그런 양세형을 TV 모니터가 아닌 실물로 접하게 된 건 < 코미디 빅리그 >를 준비할 당시 출연진과의 첫 미팅 자리에서였다. 세월이 흘렀지만 그때 그 ‘화상고’의 양세형과 크게 다르지 않은, 꾀돌이 같은 귀여움을 얼굴에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렇게 2011년 9월에 첫 방송된 < 코미디 빅리그 >에서 가볍게 몸을 푼 양세형은 그 이듬해인 2012년 2월에 드디어 이용진, 박규선과 한 팀을 이루어 ‘게임폐인’이라는 중독성 강한 코너를 성공시켰다. 팀 이름부터 심상치 않았다. ‘또라이’라는 단어를 뒤집어서 만든 팀 ‘라이또’는 게임에 중독된 세 사람에 관한 콩트를 보여줬는데, 게임에 빠진 그들의 실감나는 연기에 PC방에 관심도 없던 기성세대 까지 < 코미디 빅리그 >를 보게 만드는 절대적 역할을 했다.

코너가 시작되면 미친 듯이 무대로 뛰어나와 “자리 주삼”이라 설쳐대는 모습만 보고도 요즘 애들은 다 저럴 것 같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연기였다. 상상을 초월하는 분장으로 등장해 “조으다”를 연발하는 이용진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라이또는 옹달샘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개그계의 정상에 우뚝 섰다. 비로소 양세형은 ‘화상고’ 때의 자신감을 회복하고 그 후 대박은 아니지만 ‘중박’ 이상의 여러 코너를 선보였지만 그의 개그에 대한 배고픔을 달래줄 수는 없었다.

그러다 2013년 연예계를 강타한 도박 사건에 휘말려 양세형은 방송 출연 정지라는 절대적 위기에 처하게 된다. 다른 연예인에 비해 작은 액수를 배팅했지만 단호한 법망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로부터 수개월간 자숙 시간을 거친 양세형은 다시 < 코미디 빅리그 >에 출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면에 나설 수는 없어 ‘코빅 열차’라는 코너에서 기차 기관실에 몸을 숨기고 있는 역할로 시청자의 매서운 눈을 좀 피했다. 그런 수모를 겪으면서도 늘 방송 무대에 다시 서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이야기하던 양세형은 서서히 세상의 용서를 받고 재기를 알리는 여러 코너를 선보였지만, 공백기간 동안 멀어진 시청자와의 사이를 좁히는 게 쉽지 않음을 실감하고 좌절을 겪기도 했다. 시청자들은 모르겠지만 녹화한 코너가 아예 방송에 안 나가는 통편집을 당하기도 해서 우울해하던 그때 나는 양세형에게서 그전에는 느끼지 못 했던 삶과 일에 대한 진지한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그때 양세형의 눈빛을 보면서 생각했다. ‘양세형이 신인 코미디언들이 꾸렸는데 미방영 된 코너인 ‘직업의 정석’의 웨이터 역을 하면 살릴 거 같은데!’ 후배 작가에게 그 코너를 처음 녹화했던 신인의 원고를 뽑아오게 해서 양세형의 손에 쥐어주었다. 며칠 후 그는 결의에 찬 눈빛으로 내게 다가와 “아버님, 감 잡았습니다!” 라며 내 손을 꽉 쥐었다.

양세형 버전의 ‘직업의 정석’ 첫 녹화 날, 음악과 함께 등장한 양세형은 발놀림 현란한 춤을 선보이며 소리를 질렀다. “양세바리 양세바리 바리바리 양세바리 에블바리 쉑더바리 렛츠고바리 컴온바리 제주도엔 다금바리 살아있는 다금바리 나이트엔 양세바리.” 국민 웨이터의 등극이었다. 그 뒤부터 양세바리를 찾는 방송 프로그램이 많아졌다. 아무나 출연할 수 없다는 < 무한도전 >에 가서도 기존 멤버에 밀리지 않았고, 지금은 여러 프로그램의 섭외 1 순위로 급부상했다. 버라이어티의 기존 질서를 흔드는 양세형을 보며 시련의 시간들이 얼마나 괴로웠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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