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환 VS 서장훈

싸우면 누가 이길지 궁금한 사람들이 있다. 끝내 결과는 알 수 없겠지만, 그 구도가 지금에 관해 말하는 게 있다.

“예능 대세로 등극한 안정환과 서장훈이 뭉친다.” 두 사람이 함께 출연하는 SBS < 꽃놀이패 >에 관한 어느 매체의 기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이런저런 예능에 얼굴을 자주 비출수록 ‘대세’라고 불릴 수 있다면, 과연 지금의 대세는 서장훈과 안정환이 맞다. 지난해로 시간을 되돌릴 필요도 없이 2016년만 봐도 그렇다. 서장훈은 JTBC < 아는 형님 >과 SBS < 미운 우리 새끼 >에 더불어 < 꽃놀이패 >와 tvN < 예능인력소 >에 고정으로 출연하고 있다. 올해 종영된 SBS < 힐링캠프 >와 <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 >, JTBC < 썰전 >을 제외하고도 다섯 개다. 안정환은 JTBC < 냉장고를 부탁해 >와 < 쿡가대표 >와 < 꽃놀이패 >에 XTM < 탑기어 코리아 7 >과 지난 3월 끝난 KBS < 인간의 조건 >에도 출연했다. 1년 동안 요리 예능과 SNS 기반 예능에 심지어 자동차 버라이어티쇼까지 섭렵한 격이다. 이쯤 되면 떠오르는 의문. 도대체 서장훈과 안정환은 얼마나 예능감을 타고났길래 TV에 얼굴을 비춘 지 약 3년 만에 예능계를 장악했나? 이 질문을 조금 다른 각도로 바꿔보면 이렇다. 예능에서 뜨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수많은 연예인 중 두 사람만 특별히 가진 건 뭔가?

우선 온 국민이 다 아는 스포츠 선수 출신이라는 메리트를 무시할 수 없다. 조각 같은 얼굴로 곱슬머리를 휘날리며 필드를 누비던 ‘테리우스’이자 ‘반지의 제왕’ 안정환. 프로농구연맹 통산 역대 최다 득점 최다 리바운드 기록 보유자이자 자타공인 ‘국보센터’ 서장훈. 아주 어린 세대라면 각각 축구와 농구에서 ‘날렸던’ 두 사람의 과거를 알 리 없지만, 어차피 요즘 TV의 주요 시청자는 30대 이상이다. 웬만하면 둘의 전성기를 기억한다는 소리다. 연예계에서 가장 쌓기 어렵다는 인지도를 이미 장착한 두 사람의 출발선은 평범한 신인 예능인들보다 당연히 몇 발자국 더 앞섰다. 거기에 ‘저 멀리 있던 스포츠 스타가 나이를 먹은 후 친근한 모습으로 돌아왔다’는 서사도 더해졌다. MBC < 무한도전 > ‘웃겨야 산다’ 특집에서 경외심과 애정이 뒤섞인 눈빛으로 서장훈을 바라보던 멤버들을 떠올려보라. 왕년에 ‘전설의 사나이’였던 서장훈은 < 무한도전 >에 연이어 출연하며 의외로 말도 많고, 겁도 많고, 투덜대면서도 시키는 건 다 하고, 커다란 몸집을 휘청이며 갖은 슬랩스틱까지 선보이면서도 연예인이길 부정하는 모습으로 호감을 얻었다. 한편 안정환은, 살짝 살이 올라 꽃미남에서 ‘그냥 이탈리아 아저씨’ 에 가까워진 외모로 충분했다. MBC < 일밤 > ‘아빠! 어디가?’에서 보여준 철없지만 때로 자상한 아빠, < 마이 리틀 텔레비전 >의 수다스럽고 허당 같은 아재로서의 면모가 캐릭터를 더욱 완벽하게 만들었다.

언제 어디서든 이야깃거리로 써먹을 만한 빛나는 과거가 있고, 그럼에도 이제 비슷한 또래 남성들의 무리 속에 위화감 없이 섞일 만큼 푸근한 이미지를 가진, 결정적으로 40대 남성. 서장훈과 안정환의 공통분모는 늘어놓고 보면 민망할 정도로 특정 층의 취향에 완벽하게 부합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 ‘지금은 이렇게 나이를 먹었지만 왕년에는 나도 잘나갔지’ 또는 ‘마음만 먹으면 지금도 내가 잘나갈 수 있어’로 시작하는 중년, 특히 남성들의 레퍼토리이자 판타지 말이다. 만드는 이도 출연하는 이도 보는 이도 대부분 아재인 한국 예능판에서, 서장훈과 안정환은 그 존재 자체가 성공 요인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돌아보면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예능에 뛰어들기 시작한 2015년은 예능의 아재화가 가속화되던 시기였고, 둘의 등장은 아재가 지배하는 시대의 징후였다. 지금 TV에서 중년 남성을 제외한 연예인, 특히 여성이 중심을 차지하는 광경은 보기 어렵다. 새로운 프로그램이 제작된다 하더라도 대부분 40대 이상, 낮게 잡아도 30대 중반 이상의 남성들끼리 지지고 볶는 식이다.

아재라는 카테고리로 뭉뚱그리기엔 서장훈과 안정환의 캐릭터가 세부적으로는 너무나 다르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 서장훈은 까탈스러운 아재다. 더러운 것과 오버하는 것을 못 참으며 늘 뚱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안정환은 능글맞게 웃기는 아재다. 어디에 데려다 놔도 분위기에 맞춰 눈치 빠르게 농담을 칠 줄 안다. 축구공으로 도둑을 잡으려다 엉뚱하게 경찰을 잡고 마는 모 카메라 CF는 안정환의 유머러스한 캐릭터가 대중에게 제법 효과적으로 먹히고 있다는 증거다. 하지만 서장훈과 안정환이 본질적으로 다르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좀처럼 웃지 않는 얼굴로 투덜거리는데도 예능용 콘셉트로 이해받는 연예인이 또 있을까? 그 동안 예능 프로그램에서 잘 웃지 않거나 리액션이 소극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질타를 받아야 했던 여성 연예인들의 수는 셀 수도 없을 지경이다. 방송 중 ‘졸라’ 같은 비속어를 쓰고 뜬금 없이 야한 이야기를 해도 모두가 웃어주는 캐릭터는? 서장훈이 이혼이라는 경력을, 안정환 이 유부남이라는 정체성을 우스갯소리 삼는 것도 마찬가지다. 중년 남성이기에 웃음으로 무마되는 둘의 어떤 행동들은, 여성에게는 거의 허락되지 않는 것들이다. 여성이 예능에 끼어 들기 위해서는 박나래나 김숙처럼 통상적으로 말하는 ‘센’ 콘셉트를 표방하거나, 트와이스와 아이오아이 같은 걸그룹처럼 어리고 예뻐야만 한다. 그래서 안정환과 서장훈이 동시에 예능 대세로 대접받고 있는 상황은 예능 루키의 발굴과 거리가 멀다. 늘 그래왔듯, 이미 방송 전반을 차지하고 있는 이런저런 아재들에 또 다른 이런저런 아재들이 추가됐을 뿐이다.

< 꽃놀이패 > 제작진이 안정환과 서장훈 콤비에게 붙인 별명, ‘아재연합’은 한국 예능 전체의 수식어로도 어색하지 않다. 물론 이전에도 방송은 언제나 남성들 중심이었고, 이제야 예능의 아재화가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는 이유는 방송이 갑자기 나빠졌다기보다 성차별을 예민하게 인지하기 시작한 시청자들의 변화 덕분이다. 다만 한 가지. 아재를 전면으로 내세우는 오늘의 예능계는 어제보다 훨씬 더 뻔뻔해졌다. 아재가 무엇을 하든 아재이기 때문에 같은 아재들 속에서 문제없이 용서받는다. 지루한 말 장난에 불과한 아재 개그는 귀여운 수준이다. 누군가 보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한 TV에서 해도 되는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지 못 하는 순간이 수두룩하다. < 아는 형님 >에서 ‘형님’들은 교복을 입고 스무 살은 더 어릴 걸그룹 멤버들과 사랑놀음을 연출하거나 음담패설에 가까운 농담을 쏟아낸다. 자기들끼리 허벅지 위에 날달걀을 올려놓고 누가 더 오래 버티는지 정력 테스트를 하는 장면에서는 헛웃음 조차 나오지 않았다. 진행자 김성주와 안정환, 고정 출연 중인 셰프들까지 전원 남성인 < 냉장고를 부탁해 >도 다르지 않다. 여성 게스트가 출연하면 냉장고 안에서 술이나 안주 등을 찾아내고는 누구와 마셨냐며 기어코 음흉한 눈길을 보내는 게 이 프로그램 나름의 유머다. 냉장고를 정리하는 현아의 뒷모습에는 섹시함에 대한 아무런 맥락이 없지만 남성 셰프들은 하나같이 넋 나간 표정을 짓고, 카메라는 그 풍경을 장난스럽게 비춘다. 김성주는 “엄청 섹시하다” 는 말로 묘한 분위기를 부채질한다. 남자들끼리 모인 자리에서나 몰래 하던 행동과 이야기를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하면서도 한 치의 부끄러움이 없다.

서장훈과 안정환은 그 속에 무리 없이 녹아든다. 그보다 적극적으로 일조한다. < 아는 형님 >에서 ‘건물주’ 캐릭터를 맡고 있는 서장훈은 트와이스가 춤추는 모습을 팔짱 끼고 앉아 감상하거나, ‘하니’ 이수민의 볼을 손가락으로 찔러보고, 머리카락에서 좋은 향기가 난다며 전소민을 자기 쪽으로 굳이 불러 세운다. 다림질이 취미라는 레드벨벳의 아이린에게는 “약간 현모양처 스타일”이라는 평가를 내리며 흡족한 듯 웃기도 했다. “안영미씨 재미있고 좋은데, 막 털털하고 남자답고 이런 연기를 하시잖아요. 저는 원래 과장이나 이런 걸 싫어해서….”, “제 얘기를 재미있게 들어주고 리액션이 좋을 때 (여성에게 섹시함을 느껴요).” 서장훈이 MBC < 세바퀴 >에서 한 이 말들은 뭘 의미할까? 여성에게 필요 이상으로 치근덕대거나 어이없는 아재 개그를 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는 신사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성다움의 답을 정해놓고 그 틀 안에서, 게다가 내려다보는 듯한 시선으로 여성을 평가하고 소비한다는 점에서 그는 누구보다 유해한 아재다.

안정환은 < 냉장고를 부탁해 >의 아재화를 가속화시킨 당사자다. (가인에게) “저는 이 냉장고를 열어봤을 것 같은 수컷을 한 번 본 적이 있습니다.” (체력은 자신 있다는 이연복에게) “늦둥이 한번 보시죠.” (남자의 정력에 좋다는 공진단을 주머니에 넣고 다리를 흔들며) “난 넣고만 있어도 하체가 튼튼해지는 것 같애.” (아내를 사랑한다는 김원준에게) “우리도 맨 처음엔 그랬어. 다 행복한 줄 알았어.” 누군가에겐 불쾌한 멘트지만, 어떤 부류의 아재들이라면 십중팔구 폭소를 터뜨릴 농담은 지금으로선 안정환이 제일 잘한다.

스포츠 선수로 살며 거의 평생을 남초 사회에서 보낸 두 사람은 예능이라는 또 다른 남초 사회에도 무사히 안착했다. 서장훈과 안정환이 유망주에서 대세의 자리에 오르는 동안, 방송의 아재 카르텔은 점점 더 공고해졌다. 서장훈과 안정환, 김구라와 김성주, 이수근과 강호동, 탁재훈과 이상민…. 비슷한 이들을 조합만 살짝 바꿔 돌려 막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아재들의 영향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김성주는 “안정환 덕분에 내 방송 수명이 길어진 것 같다”(JTBC < 엄마가 뭐길래 >)고 말했다. 이것은 지금 한국 예능이 돌아가는 구조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며 시스템의 수혜자인 동시에 윤활유가 되는 아재들의 세상. 서장훈과 안정환은 지난해 연예대상에서 각각 버라이어티 부문 특별상과 신인상을 받았다. 올해는 어떨까? 다음 해의 예능은 얼마나 더 나빠질까? 이미 정해져 있는 답 앞에서, 이 글의 제목을 고쳐 쓴다. ‘서장훈VS안정환’이 아니라 ‘서장훈X안정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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