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마동석 VS 조진웅

2016.10.30이예지

싸우면 누가 이길지 궁금한 사람들이 있다. 끝내 결과는 알 수 없겠지만, 그 구도가 지금에 관해 말하는 게 있다.

장기로 따지면 포와 차 같고, < 삼국지 >로 따지면 관우와 장비 같달까. 양쪽에 이 둘을 둔다면, 어딜 나서도 손해 볼 일은 당하지 않을 것 처럼 든든하다. 남자들이 대거 등장하는 영화에 통달한 윤종빈 감독은 일찍이 그들의 매력을 알아보고 영화 <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 < 군도: 민란의 시대 >에서 노련함과 어리숙함, 지략가와 육체파 캐릭터로 활용한 바 있다. 각각 다른 매력을 지닌 이 매혹적인 배우들을 한 카테고리로 엮는다면 그것은 아마 불혹을 넘긴 중년의 나이, 그리고 일반적인 기준에서 미형은 아닌 외모 때문이겠다. 하지만 그들의 매력은 ‘아재’라는 말에 담긴 대한민국 중년 남성들의 보편적인 속성을 뒤집는 데서 발생한다.

우선 ‘차’, 맨몸으로 불도저처럼 돌진할 것 같은 마동석의 매력은 비교적 단순하다. 떡 벌어진 역삼각형 상체, 금강불괴 같은 팔뚝, 한 대 맞으면 뼈도 못 추릴 듯한 두꺼운 주먹. 테스토스테론이 넘쳐흐르는 압도적인 육체 앞에선 누구라도 겸손해질 것 같다. 그러나 육체만으로 매력을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마동석의 매력은 이 육체가 아군의 것일 때 비로소 성립된다. 그 든든한 팔뚝 안에나 혹은 내가 몰입하는 대상이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을 때, 즉 서사 안에서 ‘공격형 방어’로 쓰일 때. < 부산행 >에서 아내 바라기 상화가 좀비를 뚫고 나갈 때, < 군도: 민란의 시대 >에서 천보가 거대한 쇠뭉치를 요요처럼 휘두르며 탐관오리를 후려갈길 때, < 이웃사람 >에서 조폭 혁모가 사이코패스 살인마를 때려눕힐 때의 안락한 쾌감이다.

가장 강한 것이 온전한 내 편일 때 사람들은 더없는 안도감을 느낀다. 나아가 그것이 귀엽고 순진하며 사랑스러운 것이 될 때는 웃음까지 터져 나온다. 마동석이 < 베테랑 >에서 아트박스 사장으로 등장한 장면이 그 정수다. 형사가 재벌 2세 범죄자에게 맞고 있을 때 등장한 덩치남은, 술집이 아닌 아트박스의 사장이다. 이 의외성과 역설의 웃음은 마동석의 매력에 대한 적확한 이해에서 나왔다. ‘마요미’, ‘마블리’라는 애칭을 얻은 마동석은 그 이미지를 < 부산행 >을 비롯한 여러 편의 영화에서 확산했다. 이제는 악당이 즐비한 상황에 마동석만 등장해도 관객이 상황을 앞질러 웃는다. 화룡점정으로, 젊은 여성층이 고객인 한 브랜드는 그가 핑크색 프릴이 달린 앞치마를 두르고 “공주님, 어서 오세요”라며 활짝 웃는 광고로 ‘강하지만 무해한 귀여움’의 결정판을 선보였다.

마동석의 사랑스러움은 단지 그가 내 편이어서만은 아니다. 강한 것이 무해하고 선한 것이 될 때, 사람들은 어떤 종류의 대리만족과 편안함을 느낀다. 마동석이 연기해 사랑받은 캐릭터들은 여성과 약자들에게만큼은 껌뻑 죽는, 즉 강자한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캐릭터들이었다. < 부산행 >에서 상화는 임신한 아내 (정유미)에게, < 군도: 민란의 시대 >에서 천보는 짝사랑하는 마향(윤지혜)에게 꽉 잡혀 사는 남자다. < 굿바이 싱글 >에서는 이 여성 친화적이고 무해한 이미지를 극대화해, 언제나 고주연 (김혜수)의 편이 되어주는 스타일리스트 평구를 연기했다. 강하지만 힘을 과시해야 할 때와 굽힐 때를 아는 남자. 여성들이 그를 ‘마요미’라 부르며 사랑하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직관적으로 돌진하는 마동석의 매력에 비해, 조진웅이 지닌 ‘포’의 매력은 한 박자 뒤에 묵직하게 찾아온다. 조진웅의 인상은 좀처럼 한순간에 하나의 결로 포착되지 않는다. 185센티미터의 큰 키에 거구, 바리톤의 풍성한 목소리와 짙은 눈썹에선 풍채 좋고 중후한 남성미가 넘치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흰 피부에 촘촘하고 긴 속눈썹, 여성스러운 콧대를 갖춘 묘하게 중성적인 얼굴이다. 어찌 보면 낯설고 기묘한 품위도 있다. 이 낯선 품위는 영화 속에서 배우의 존재감을 환기시키며, 부재하는 와중에도 자꾸 자신의 존재를 복권시킨다. 영화는 초기에 이 양면적 얼굴의 남자를 주로 악역으로 활용했다. 처음으로 대중에게 강렬하게 다가온 조진웅의 모습은 < 끝까지 간다 >의 악인일 것이다. 육체 그 자체의 압박감과 서늘한 눈빛, 듣는 이를 구슬리는 듯한 화법으로 위압감을 뿜어낸 그는 단연 그해의 악역이었다. 조진웅은 위엄 있는 악역부터 < 아가씨 >의 변태적인 수집가, <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의 지질한 조폭, < 분노의 윤리학 >의 악랄한 달변가까지, 악역의 마스터다. 그들 사이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가 어떤 악역을 연기하든 그 특유의 존재감과 품위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진웅의 한 판 뒤집기는 < 시그널 >이었다. 1990년대를 살아가는 정의로운 형사, 이재한은 사람이 사람에게 죽지 않고, 악인이 마땅히 벌을 받는 세상을 갈망한 끝에 16년 후의 미래마저도 호출해내는 의인이다. 굳은 신념과 대쪽같은 성정의 이재한 형사는 로맨스에도 의외의 자질이 있었다. 차수현(김혜수)을 여자가 아닌 한 명의 경찰로서 꼿꼿이 대하지만, 언제나 무심한 듯 챙겨주는 행동에 수현을 비롯한 수많은 여심이 바람 앞 촛불마냥 흔들렸다. 결정적으로 “지들은 손이 없어 발이 없어? 왜 커피는 맨날 여자가 타야 되는데?”라며 아픈 수현을 대신해 커피 심부름을 하는 모습에, 여성들은 대책 없이 사랑에 빠져버릴 수밖에 없다. 이 순간부터 조진웅은 단지 연기 잘하는 배우가 아닌 남자로 여성들에게 자리매김했다.

그가 악역을 연기하면서 잃지 않았던 ‘디그니티’는 이재한의 의연하고 곧은 성정, 바른 여성관, 선량함이라는 ‘휴머니티’로 이어졌다. 유니콘 같은 이 남자는 실제 배우 조진웅과 닮았다. 일례로 < 아가씨 >에서 여성에게 가학적인 코우즈키 역은 실제의 그와는 상극인 배역이었는데, 아역과 여성 배우의 얼굴에 폭력을 행사하는 신에서 그가 어쩔 줄 몰라 할 정도로 미안해하는 바람에, 그가 아닌 배우들이 얼굴을 움직이는 방식으로 촬영을 진행했다. 비록 조연일지라도, 천성적인 선함과 의연함으로 자신의 뜻 혹은 감정을 꺾지 않아 관객의 눈시울을 붉히고 마는 정서적인 신은 늘 그의 몫이었다. 그 인간미가 극대화된 < 시그널 >의 이재한은 조진웅이 멀리 돌아 도착한, 그의 자리다.

마동석이 대중이 원하는 특정 이미지를 연기한다면, 조진웅은 기존의 이미지를 한 번 뒤집고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전까지 악역 위주의 조연을 주로 맡은 배우가 불혹의 나이에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재발견된 것은, 단지 캐릭터의 공만은 아니다. 명백히 그가 지닌 ‘멜로드라마 감수성’과 ‘섹스어필’의 재능이다. < 시그널 >의 이재한 형사를 계기로 인터넷 에서는 지금까지도 조진웅의 젊은 시절 사진이 나돌고 있다. 남성 배우가 보다 폭 넓은 관객층을 포섭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여성 관객에게 ‘남자’로서 다가가는지, 멜로가 가능한 배우인지도 중요한 판단요소 중 하나다. 이제 조진웅에게는 또 하나의 좋은 패가 주어진 셈이다.

두 배우를 대결 구도에 몰아넣는다면 현재로선 조진웅의 1승이다. 그러나 마동석도 반격의 여지가 있다. 인터뷰를 통해 만나본 마동석은 영화 속 순수한 육체파 이미지와 대비되는, 매우 똑똑하고 영리한 달변가였다. 배우 공유의 말에 따르면, “곰 같아 보이지만 여우” 같은 배우. 단순한 괴력의 사나이 이미지를 반전하고 확장시킬 가능성은 언제든 열려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조진웅과 마동석이 대중에게 사랑 받는 것, 특히나 중년의 미형이 아닌 외모로 여성들의 사랑을 받는 것을 ‘아재’ 열풍 이나 ‘아재 파탈’ 같은 말로 손쉽게 정의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그들은 ‘아재’로 통칭되는 기존 한국의 중년 남성들에게선 찾아보기 힘든 육체,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자세, 바른 여성관을 지닌 캐릭터를 연기해왔다. 마동석이 나를 지켜주는 남자라면, 조진웅은 나를 인간으로 대하는 남자다. 전자가 만화적인 판타지의 영웅이라면, 후자는 현실에 있을 수도 있는(그러나 존재하지 않는) 이상화된 옆집 오빠 같은 인물이랄까. 물론 어느 쪽도 한국 여성들에게 희귀하기는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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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장우철, 손기은, 정우영, 유지성
    이예지 ('씨네 21' 기자)
    일러스트레이터
    조성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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