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 VS 공유

싸우면 누가 이길지 궁금한 사람들이 있다. 끝내 결과는 알 수 없겠지만, 그 구도가 지금에 관해 말하는 게 있다.

“영화배우 같다”는 관용적인 수식이 있다. 단어의 표면처럼 빼어난 연기력을 상찬하기보다 아름다운 외모에 감탄할 때 더 어울리는 말이다. 정우성과 공유는 (송강호, 황정민, 곽도원, 하정우 등이 활약한) 2016년 한국 영화계에서 단연 돋보이는 ‘영화배우 같은’ 존재였다. 송중기는 전역 후 처음으로 작업한 드라마 < 태양의 후예 > 하나로 아시아를 한바탕 휩쓸었고, 작년 < 베테랑 >과 < 사도 >로 활약한 유아인은 멀티캐스팅을 내세운 < 좋아해줘 >로 어정쩡한 관객수를 기록하며 조용한 한해를 보내고 있다. 설날 특수와 축복 같은 대진운으로 < 검사외전 >이 천만에 육박하는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강동원이 연기한 사기꾼은 그가 그동안 선보인 캐릭터에 비해선 매력이 한참 떨어져 보였다. 두 사람이 배우로서 위험을 감당하는 방식은 특출했다. 그것이 올해 또 한 번의 전성기를 열어젖힌 배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우의 뜻이 어디까지 개입됐는지는 모르지만, 공유의 < 부산행 >과 < 밀정 >, 정우성의 < 아수라 > 는 전적으로 두 배우의 특징을 딛고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정우성과 공유는 오랜만에 선보이는 로맨스로 2016년을 열었다. < 나를 잊지 말아요 >의 정우성은 지난 10년의 기억을 잃어버린 석원을, < 남과 여 >의 공유는 핀란드의 설원에서 이름도 모르는 여자와 사랑을 나누는 기홍을 연기했다. 하지만 딱하게도 < 나를 잊지 말아요 >는 42만, < 남과 여 >는 20만 관객을 기록하며 시장에서 쓴 맛을 봤다.

그리 낯선 풍경은 아니다. 두 배우의 로맨스는 작품수도 많지 않을뿐더러 그나마도 대개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게 사실이다. 공유는 몇 년간의 조연을 거쳐 2007년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 커피 프린스 1호점 >으로 ‘주연급 배우‘의 위치와 ‘연애하는 남자’의 이미지를 동시에 획득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후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한 로맨틱 코미디 < 김종욱 찾기 >와 < 남과 여 >를 남겼다.

10년 넘게 사귄 일반인 여자친구, 배우 이지아 등 공공연하게 알려진 연애사가 오히려 인간적인 호감을 남긴 정우성 역시, 손예진과 작업한 < 내 머리 속의 지우개 >를 제외한 모든 로맨스물이 변변치 못한 성적을 기록했다. 호재를 부른 건 액션(< 용의자 >와 < 신의 한수 >)이나 스릴러(< 도가니 >와 < 감시자들 >)였다. 올해 두 배우에게 성공적인 경력을 보태준 영화들 역시 마찬가지다. 공교롭게도 < 부산행 >의 공유와 < 아수라 >의 정우성이 연기한 캐릭터는 각각 ‘좀비’와 ‘악인’이라는 괴물들과 맞서 싸우다가 자살(에 가까운 죽음)을 선택한다.

< 부산행 >과 < 밀정 >의 공유는 주연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비중이 뭉개지더라도 상대배우들을 떠받쳐 영화 전체가 돋보이게 한다. 먼저 < 부산행 >. 영화는 초반 10분을 석우(공유)와 그의 딸(김수안)의 가정사를 보여주면서 그에게 주인공의 권위를 부여한다. 하지만 서사가 앞으로 나아갈수록 마동석이 분한 상화에 대한 호감이 불어난다. 자기 안위만 찾는 속물에서 딸의 바른 성품을 감싸 안으며 더불어 사는 삶을 배워가는 석우보다는 본래 제 아내를 떠받들 줄 알고 더 많은 사람의 안위를 위해 혼자서 좀비 떼를 상대하는 상화가 결국 영웅의 위치에 서는 것이다.

칸 영화제 기간 < 부산행 >이 처음 공개되었을 당시 외신들의 반응과 한국에 개봉한 이후 관객들의 수많은 감상평은 마동석을 진정한 주인공으로 추켜세우기 바빴다.(마동석은 해외에 개봉한 < 부산행 >으로 최근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의 부름을 받은 걸로 알려졌다.) 클라이맥스에서 석우가 갓 태어난 딸을 품에 안는 플래시백이 많은 관객에게 ‘분유 광고’라는 조롱을 받은 이유 중 하나는, 그 즈음에 이르렀을 때 석우의 캐릭터가 상당 부분 마모됐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같은 징후는 상대가 대배우 송강호인 < 밀정 >에서 더 뚜렷하다. 같은 크기로 둘을 배치시킨 포스터처럼, 초반은 이정출(송강호)과 김우진(공유)의 시점을 오가며 동등하게 비중을 나눠 서로에 대한 의심과 믿음이 조금씩 움직이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정출이 정채산(이병헌)을 만나고 자신의 안위와 국가에 대한 대의를 저울질하면서, 영화의 무게는 송강호에게로 쏠리기 시작한다.

우직하게 나라의 독립만을 추구하는 김우진의 평면적인 캐릭터는 어쩌면 이정출에 대한 의심을 멈추면서 급격하게 생명력을 잃는다. 서사 중간에 놓여 극도의 서스펜스를 선사하는 < 밀정 > 열차 시퀀스에서 잠시 김우진과 이정출의 무게차가 완만해지긴 하지만, 그 균형은 오래가지 않는다. 경성역에 도착해 폭탄 테러 계획이 발각되고 일본에 구속되는 시점부터 다시금 공유의 입지는 좁아진다. 그가 감옥 안에서 갖은 고문에 시달리는 사이, < 밀정 >은 온전히 송강호의 것으로 넘어간다. 때문에 김우진이 비장한 의지를 벽에 남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영화의 마지막 신은 느닷없는 데다가 지나치게 교훈적이라는 뒷맛만 남긴다. 하지만 < 부산행 >과 < 밀정 >은 공유의 연기력에 대한 평판에는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어도, 각각 1170만, 750만 관객을 동원해, 공유에게 ‘천만 배우’ 수식어는 물론 2016년 가장 많은 관객을 불러 모은 배우라는 영광을 선사했다.

정우성은 < 아수라 > 개봉 전 배우들과 함께 < 무한도전 >에 출연해 화제의 중심에 섰다. < 아수라 >가, < 비트 >와 < 태양은 없다 >로 서로를 황금기에 올려놓은 정우성과 김성수 감독이 오랜만에 만난 작품이기 때문일까. < 무한도전 >에서 그는 90년대 스타가 2016년에도 여전히 건재함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유머 감각을 뽐냈다. < 아수라 >의 정우성은 늘 그래왔던 것 처럼 쟁쟁한 배우들 사이에서 절대적인 존재감으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악착같이 버티며 스타로서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켰다. 피를 한 바가지 뒤집어써도 정우성의 ‘잘생김’은 가려지지 않았다.

< 아수라 >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개봉 이후 비난의 도마에 오른 정우성의 연기였다. 영화를 본 상당수가 양아치와 다름없는 경찰 한도경을 연기하는 정우성의 껄렁껄렁한 말투와 몸짓이 과장되고 어설프다고 지적했다. 한도경이 처음 욕을 뱉는 순간 부자연스럽다고 느꼈다는 점에는 얼마간 동의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한도경이 박성배(황정민)를 만나는 순간, 도경의 부자연스러움이 어떤 방침 아래 이뤄지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검사 김차인(곽도원)의 무리와 친형제 같은 문선모(주지훈) 앞에서도 과장된 동작을 취하던 도경이 박성배 앞에서 ‘똥개’처럼 구는 모습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박성배를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기만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지표다. 때문에 역으로, 도경이 장례식장에 찾아가 박성배 앞에서 이빨을 드러내며 유리컵을 씹는 장면은 한없이 어설퍼 보인다. 진심은 진심 그대로, 거짓은 거짓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정우성의 그 투명한 얼굴이 없었다면 온통 거짓으로 뒤덮인 < 아수라 >의 세계는 성립될 수 없었을 것이다.

< 비트 > 이후 말보로 담배를 따라 피우는 젊은이들이 늘었다는 말을 들은 후, 배우가 사회에 미치는 파장을 생각해 조폭 영화에는 도통 눈길을 돌리지 않았던 올곧은 성품의 슈퍼스타. 정우성이 < 아수라 >에서 내뱉는 욕설의 어설픈 억양은, “잘생겨서 안 좋은 점은 없다” 고 단호히 (연기하듯) 말하는, ‘영화배우 같은’ 스타인 그에게 훈장처럼 남을 것 같다.

김은숙 작가는 새 드라마 < 도깨비 >의 주인공으로 공유를 캐스팅했다. < 상속자들 >의 이민호와 < 태양의 후예 >의 송중기가 단숨에 최고의 한류 스타로 발돋움한 사실을 떠올린다면, 공유의 경력에도 새로운 전환점이 새겨 지는 건 아닐지 기대가 된다. 한편, 정우성은 연말 개봉 예정인 한재림 감독의 < 더 킹 >에 출연 한다. 권력의 맛을 깨닫고 성공을 꿈꾸는 박태수(조인성)를 권력의 세계로 끌어들여 자기 수족으로 삼는 한강식 역을 맡았다. 대번에 < 아수라 >의 한도경과 박성배가 떠오르는 관계. 누군가의 위에서 군림하는 자는 정우성이 여태 껏 한번도 연기해보지 않은 유형이기에 더욱 궁금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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