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道와 경상道 – 풍경으로부터의 사람

경상도 봉화

동해안 7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차를 몰다 울진에서 불현듯 오른쪽으로 꺾어 들었다. 발길 가는 대로, 바퀴 구르는 대로 닿으려던 참에 금강송면이니 불영계곡이니 다정한 이정표도 여럿 스쳤지만, 이 길을 계속 달리면 봉화가 나오고 안동이 나오겠지 어렴풋한 짐작을 나는 더 믿고 있었다. 모르는 길과 모르는 기분이야 말로 여행의 맛이려니 절로 멋을 부렸다.

그런데 그 길은 굳이 낯설다는 인상을 피력하고 들었다. 웬걸, 점점 이런 길은 생전 처음이라는 두려움이 끼쳐왔다. 이렇게나 높은 길이 이렇게도 멀다니. 길은 줄곧 산을 파고들었다. 계곡을, 능선을, 다시 계곡을, 다시 능선을, 산과 산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아니라 한없이 빨려 들어가는 굴속 같았다. 산맥이었다. 어디까지나 앞뒤로 뚫린 길을 달리면서도 나는 멈추어 선 자의 고립을 감당해야 했다.

경상도 통영

그 길이 ‘경상도로 들어간다’는 말을 내게 새겨놓았음을 나중에 알았다.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 곳, 넘어서야만 도착할 수 있는 곳, 극복한 후라야 비로소 한 자락 품을 내어줄까 싶은 조바심. 어떤 배타성. 경상도는 그때 5월이었고 드문드문 오동나무 꽃이 피고 있었다.

이쪽에서 ‘경상도로 들어간다’는 말을 메긴다면, 저쪽에선 ‘전라도에 다다른다’는 말로 받는 것이 제격일 테다.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차를 몰다 ‘동진강’ 이정표를 지나는데, 그렇지 호남은 평야지, 평야의 이치로 시야가 멀리 퍼졌다. 고창의 수박밭, 보리밭, 고인돌 같은 것이 함평 톨게이트를 지나면서도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한번은 김제에서 지평선호프라는 맥줏집 간판을 본 적이 있는데, 언제 한번 들르리라 벼르는 중이라고 조수석에서 졸고있는 친구에게 말을 건넸다. 친구는 얼마쯤 지나 이렇게 중얼거렸다. “김제 지난 거 같은데? 뭐야, 벌써 목포까지 다 온 거야?” 어느새 목포였다. ‘전라도에 다다른다’는 말 앞에는 혹시 ‘어느새’가 괄호 쳐 있을까. 마침 해질녘이라 목포는 붉었다. 북항과 유달산, 압해대교와 영란횟집, 보이는 모든 게 온통 붉어보였다.

경상도 포항

거침없이 축약하자면, 내게 전라도와 경상도는 보이는 곳과 보이지 않는 곳의 차이쯤 된다. 그런 감각은 무엇보다 산과 들, 강과 바다가 엮어낸 풍경으로부터 오는 바, 북쪽으로부터 백두대간 끝자락을 받아들이고, 동쪽으로 곤두박질치는 동해를 맞닥뜨리는 경상도에서 인간의 자리란 언제나 산과 산 사이, 절벽과 파도 사이이기 마련이다. 앞뒤로 ‘막힌’ 공간에 처한 인간은 어디까지나 ‘너머’를 꿈꾸는 법. 이 산 너머에 스승이 계시다, 저 산을 넘어야 임금이 계신 곳으로 갈 수 있다, 바다는 깊고 차다, 북서쪽 고갯길로 넘다 보면 낭떠러지가 나오니 자칫 삐끗하면 모든 걸 그르친다. 그러니 정확하게 말할 것, 되도록 글로 남길 것, 언제든 똑 부러지게 표현할 것. “1번이면 1번, 2번이면 2번, 빨강이면 빨강, 노랑이면 노랑, 단디 말하라카이.” 그렇게 역사가 쌓였다. 가문과 서원, 선비와 학파, ‘안빈낙도’ 같은 고립의 이상향. 조선시대 내내 권력의 패권을 쥐고 있던 영남은 과연 풍경으로부터 여전히 꼿꼿하다.

그럼 호남에는 산이 없더란 말인가? 지리산 첩첩산중에 마지막 호랑이가 살았을 거라는 마당에 무슨 허튼 소린가. 분명한 것은 아무리 음절과 의미가 동일하다 해도, 전라도에서 보는 산은 경상도에서 보는 산과 다르다는 것이다. 영암 어딘가를 지나다 “저게 월출산인가?” 할 때, 월출산은 이리로 육박하는 덩치가 아니라, 홀연히 모습을 드러내는 섬의 실루엣에 가깝다. 진안 가까운 국도를 달리다 “저 마이산 좀 봐” 할 때, 마이산 봉우리가 보이는 방식은 앞을 막아서는 대상이 아니라, 이웃하여 놓여 있는 공생의 이미지다.

경상도 청도

지리산 서쪽 끝 구례군 광의면에서 농부 홍순영을 만났을 때, 그는 어려서 지리산에 갔던 일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2박 3일로 지리산을 이렇게 타고 가는데….” 그는 지리산을 정복했다거나, 그 산을 넘어갔다거나 말하지 않았다. “이렇게 타고 간다”는 말을 가만히 헤아려보건대 호남의 산이란 들로부터 이어지는 선의 흐름이 아닌지, 그러다 서해로 펼쳐지는 것이 아닌지 생각의 길을 터보게 된다.

호남에도 산이 있다. 하지만 넘어서야 하는 대상은 아니다. 그것은 함께 바라보는 산이자 돌아가는 길을 아는 산이다. 유예와 연기, 당장 눈앞에서 똑 부러질 것이 아니라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 무수한 경우를 헤아리는 시간, 그런 정서. 호남을 상징하는 말로 ‘거시기’ 가 있다. ‘거시기’의 성립 조건은 내가 보는 것을 너도 보고 있다는 전제다. ‘거시기’라고만 말해도 그게 눈앞의 호미를 가리키는 것인지, 신작로 버스 정류장을 가리키는 것인지 두루 안다는 이심전심의 정서다.

전라도 담양

그런데 그것은 하필 대상과 나의 명확한 입장을 중시하는 경상도에서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뉘앙스다. 한번은, 부산에 살면서 울산으로 적어도 한 달에 두 번 이상 제사를 지내러 간다는 스물한 살 젊은 종손을 만난 적이 있다. (그 자체로 영남이라는 이미지일 수 밖에 없는)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집안 어른들 모이면 한 사오십 명 되거든요. 그런 자리에서 얘기를 듣다 보면, 무엇보다 그 전라도 말을 못 견뎌 한다는 인상을 받아요. 이분들한테는 전라도 말이 뭔가 정확하게 말하지 않는 언어인 거죠. 숨기는 것처럼, 이거면 이거 저거면 저거라고 딱 얘기하지 않는 말투 있잖아요. 의뭉스럽다고 하나? 그런 게 있긴 한 것 같아요.”

전라도 진도

사실 ‘전라도와 경상도’라는 말에서 대번 느끼는 것은, 선거일 저녁마다 그래픽으로 갈리는 뚜렷한 차이다. 도무지 합쳐지지 않는 것들. 풍경을 기준 삼자면 저 신라와 백제가 무색하도록 지층만큼 오랜 시간이 쌓였을 것들. 그러니 전라도와 경상도를 여행하는 21세기의 여행자가 갖춰야 할 것은 다르도록 다른 두 곳을, 다를 만큼 다르게 느끼는 것이다. “경라도와 전상도를 가로지르는” 화개장터로 구경 한번 와보라는 식의 뭉뚱그린 슬로건이 아니라, 손에 손잡고 동서화합의 시대로 가자는 정치인의 클리셰가 아니라, 그렇게 다를 수밖에 없는 산과 들을, 강과 바다를, 사람을 다만 보고 듣고 알아가는 것이다.

해는 경상도 너머에서 뜨고 전라도 너머에서 진다. 그건 언제고 틀림이 없다. 화순과 창녕, 전주와 산청, 합천과 고령, 장수와 보성, 곡성과 함안, 포항과 임실…. 이미 알고 있는 곳과 아직 한 번도 발들이지 않은 고장의 이름을 줄지어 떠올려본다. 국토에는 언제나 지금과는 다른 계절이 오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