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식물의 사생활

2016.11.15GQ

식물을 키우는 기쁨을 예전엔 미처 몰랐던, 정원사가 될 줄은, 하물며 화분 가게를 열 줄은 꿈에도 몰랐던 그녀의 사건과 실화.

손을 닦을 때마다 솔로 손톱 밑을 문질러야 한다. 항상 흙이 껴 있으니까. 4년을 탔어도 모두가 감탄한 내 깨끗한 차에는 마사토 알갱이와 흙먼지가 마구 굴러다닌다. 그러나 모래알만큼 작은 새싹이 고개를 내밀 때, 새로운 줄기가 자랄 때, 잡념이라고는 파고들 여지가 없는 정원사의 행복이 시작된다.

3월의 꽃시장은 물기와 생기가 충만했다. 서울 외곽의 도매 시장 어딜 가나 “3월부터 5월까지는 일요일도 영업합니다”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전국의 농장에서 겨우내 준비를 마친 식물이 쓰나미처럼 몰려들었다. 그 식물의 천국에서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내 눈은 보석이다. 맘에 드는, 가장 상태 좋은 식물을 찾을 수 있는 눈을 갖고 있다.” 행여 주문이 풀릴까 봐 내 취향, 내 감각에 수없이 질문을 던졌다. 긴가민가한 것도 있었지만 확실히 아닌 건 지금까지도 아니다. 내 가게의 손님이 찾아도 들이고 싶지 않다. 예를 들어 스투키, 녹보수, 금전수, 호야 종류는 항상 제외였다.

이미 키워본 식물과 같은 속인 식물은 흙 배합이나 관리 방법이 비슷하므로 어렵지 않지만, 갑자기 꽂힌 식물은 집으로 일단 가져와 공부하고 키우며 생리를 파악한 후에 판매를 시작했다. 물은 한 사나흘에 한 번 주고 햇볕 없이도 잘 큰다는 말에 덥석 들였다가 저세상으로 보낸 경험은 이미 차고 넘쳤다. 식물이 죽어나가면 그걸 다시 들일 자신감도 함께 죽는다. 나는 같이 키우고 같이 살아가는 기쁨을 공유하고 싶었다.

가게에 들어서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건네는 질문은 단연 “며칠에 한 번 물을 주나요?”다. 어제도 들었고 오늘도 들었고 내일도 들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아마 그들도 ‘겉흙이 마르면 사흘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이라는 식의 간명한 대답을 원했을 것이다. 겉흙이라는 애매한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모르면서도 알려주는 관수 주기를 달력에 동그라미 쳐가며 성실하게 지켰으니 안심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유 없이 시들어가는 식물이 안타까워 애정을 담아 더욱더 물을 듬뿍 주고 영양제도 주고 광합성을 독려하며 직사광선 샤워를 시켜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점점 고개를 숙이는 식물 앞에서 무력해지다가 스스로를 ‘블랙 핑거’(식물을 잘 키우지 못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라 낙인 찍고 다시는 식물과 상종하지 않겠다는 처방까지 내렸을 것이다. 결론을 말하면 물 주기는 환경과 품종에 따라 달라지는데, 물 주기 못지않게 중요한 게 통풍이다. 같은 고무나무도 마당에서 키우는 것과 거실에서 키우는 것, 여름이냐 가을이냐에 따라 다르다. 같은 계절, 같은 식물이어도 뿌리가 꽉 찼는지, 화분에 여유가 충분한지에 따라 다르다. 마당의 유칼립투스는 여름에는 하루 두 번 물을 줘도 목마른 표정이지만 가을볕이 완연해지면 한결 느긋해진다. 높은 습도에 맥을 못 추던 라벤더나 로즈메리도 다시금 기운을 차려 겨울을 준비한다. 그런 이유를 생각하다 보면 장황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반응은 반반이다. 정보 과잉에 피곤한 사람과 흥미롭다고 눈빛을 반짝이는 사람. 어느 쪽이든, 원하는 사람에게는 이메일로 키우는 요령을 길게 정리해서 보내준다.

봄부터 여름까지는 파종잔치를 벌였다. 45종이 넘는 씨앗 2천립가량. 먼지만 한 씨앗, 혹은 쌀알만 한 씨앗이 발아하고 본잎을 내고 줄기가 목질화될 때까지 어떤 과정이 뒤따르는지 상상하지 못하고 벌인 일이었다. 가족과 보낸 시간보다 모종판 수발하는 시간이 많았다. 고속 엘리베이터처럼 성장하는 속성수도 있고, 일찌감치 파종했는데 훨신 더디 자라는 것도 있다. 낯선 땅, 낯선 환경에 놓인 식물의 시간은 사람의 마음대로 흐르지 않는다. 여름까지는 성장이 목표였다면 가을부터는 월동 준비를 시작해 긴 겨울을 나야 한다.

일부 식물은 특성상 원산지와 비슷하게 조성한 인공적인 생육 환경에서 겨울을 보낼 것이고, 일부는 얼어 죽지 않을 정도의 환경에서 생의 최후방까지 밀어붙일 계획이다. 각자의 환경에서 월동한 식물들이 깨어날 내년 봄, 노가든에 녹아든 봄은 겨우내 무표정이던 식물들이 재잘대는 생의 환희로 시끌벅적할 것이다. 70리터의 흙포대를 아무렇지 않게 나르겠지만 그 소리에 귀 기울이는 정원사의 삶에 더욱 침잠하고 싶은 요즘, 펄벅의 수필 제목이 자꾸 떠오른다. ‘사랑아 무엇을 더 바라리오’

 

실내에서 키우기 수월한 식물 다섯 가지

    에디터
    글 / 노은아(정원사, '노가든' 대표)
    포토그래퍼
    정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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