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몰랐던 냄새

그게 김과장 냄새가 아니라 내 거였다니. 자신의 냄새를 자각하는 순간 지옥을 경험한 남자들이 여기 있다.

삼겹살과 바꾼 새 직장 아무도 몰래 이직을 준비할 때였다. 다니고 있던 회사보다 더 좋은 조건의 회사에 경력직으로 지원했고 평일에 면접이 잡혔다. 당일 신경 써서 옷장에서 제일 좋은 옷을 꺼내 입고 출근했다. 오후에 외근을 핑계로 잠시 다녀오면 아무도 모르겠지? 그런데 점심 때 팀장이 갑자기 고기가 먹고 싶다며 즉흥적으로 삼겹살 회식을 제안하는 게 아닌가. 냄새가 신경 쓰이긴 했지만 혼자서만 회식에 빠지기도 눈치 보이고 면접 장소로 이동하는 사이에 냄새가 날아갈 거라 생각하며 신나게 고기를 구웠다. 그땐 알지 못했다. 겨우 한 근의 삼겹살이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배불리 먹고 면접에 늦지 않으려고 정신 없이 뛰어갔다. 면접은 하필 작은 회의실에서 치러졌다. 눈매가 매서운 면접관은 첫 번째 질문을 하다 말고 살짝 눈살을 찌푸리더니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눈치 못 챌 줄 알았는데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면접관 앞에는 온 몸에서 삼겹살 냄새를 폴폴 풍기는 거대한 고기 인간이 앉아있었던 것이다. 아, 망했어. 주눅이 들어 준비한 대답도 자신 있게 하지 못하고 그렇게 이직의 꿈은 날아갔다. 삼겹살이 아니라 소고기였다면 차라리 덜 억울했을 텐데. 박형진(가명, 33, 출판업)

 

땀냄새 특보 발령 난 진짜 땀이 많다. 다른 사람이 땀이 조금 난다 싶을 때 난 땀 범벅이 되어 있다. 겨울에도 덥게 껴 입으면 바로 땀이 난다. 특히 두꺼운 겨울 옷에 땀냄새가 배면 젖은 빨래 삭는 냄새가 나서 더욱 곤욕스럽다. 그런 나에게 일생일대의 위기가 닥쳤다. 입사하고 나서 처음으로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맡은 것. 팀장님은 이 프레젠테이션이 얼마나 중요한지 한 달 내내 눈이 마주칠 때마다 일장연설을 늘어놨다. 이사님, 상무님, 사장님 아무튼 높은 분들은 다 모이는 자리였다. 만반의 준비를 마친 후 드디어 찾아온 프레젠테이션 당일. 긴장해서 그런지 등과 겨드랑이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했다. 땀이 난다는 생각이 들자 난 더 긴장하기 시작했고 시큼털털한 악취는 갈수록 심해졌다. 혹시나 싶어 프레젠테이션 직전에 향수를 들이부었는데 거기서부터 잘못된 걸까. 회의실 전체가 은은한 악취와 그 보다 지독한 향수 냄새로 뒤덮였다. 발표를 하면서도 사장님의 안색을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맡았다. 내가 움직일 때마다 진해지는 땀냄새를. 그리고 보았다. 그때마다 움찔거리는 사장님의 눈썹을. 그 후로 오랫동안 나에게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맡을 기회는 오지 않았다. 고경민(가명, 32, 디자이너)

 

신발냄새 안 맡은 코 삽니다 그 날은 석 달간 전 직원이 밤새 준비한 결전의 날이었다. 미국에서 온 바이어와의 미팅은 순조로웠다. 준비했던 프레젠테이션은 완벽했고 바이어의 반응은 호의적이었으며 다음 날 다시 만나 계약을 완료하는 일만 남았다. 그러나 미팅 후 마련한 식사자리에서 예상치 못 한 사건이 벌어졌다. 바이어가 일식을 좋아한다는 정보를 접수하고 고급 일식집을 예약해 둔 게 화근이었다. 신발을 벗고 다다미 방에 앉아 따뜻한 물수건에 손을 닦을 때까진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 일식집에서 오래 묵은 청국장과 홍어 냄새가 나는 게 이상했지만 별 일 아닐 거라 넘겼다. 옆에 앉은 동료가 옆구리를 쿡쿡 찌르기 전까진 말이다. 믿고 싶진 않았지만 쿰쿰한 냄새의 원인은 나였다. 어제 밤새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는 그 장시간 동안 신발 안에 갇혀 있던 끔찍한 냄새가 봉인 해제된 것이다. 난방 때문에 본의 아니게 숙성된 신발 냄새가 생화학무기가 되어 방을 제멋대로 돌아다녔다. 맞은 편에 앉은 바이어와 옆자리 상무님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번갈아 가며 어색하게 헛기침을 했고 분위기는 차갑게 식어갔다. 바이어가 청국장을 좋아했다면 좋았을 텐데,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좋을텐데 등등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다 된 계약에 신발냄새 빠뜨리는 격이 될까 노심초사. 혹시나 계약이 날아가는 건 아닌가 바짝 긴장을 했다. 음식이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상황은 무마되었지만 식사가 끝날 때까지 상무님의 따가운 눈총을 피할 수는 없었다. 나 이렇게 만년대리로 남는 걸까? 김무현(가명, 31, 제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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