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MEN OF THE YEAR #김용택

전라북도 임실군 덕치면 장암리, 강 따라 산이 길어서 거기 사람들은 ‘진뫼’라 부르는 마을. 김용택 시인은 올해 그리로 돌아와 살고 있다. 그리고 가을에는 아름다운 시집 <울고 들어온 너에게>를 내놓았다.

뵙기 전에 동네를 한 바퀴 돌아봤습니다. 예쁘죠. 요새는 단풍이 하루가 다르고요.

저 물이 섬진강이라는 건 알겠어요. 저 산도 이름이 있나요? 앞산이지, 앞산.(웃음) 장산이라고도 해요. 산이 길어서 긴 뫼, 긴 뫼 하다가 동네 이름도 ‘진뫼’가 되었지. 마을이 산과 산 사이라 빛이 금방 가부러.

김용택의 시집 <섬진강>을 펼쳐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곳을 한 번쯤 상상했을 겁니다. 대개 구례나 하동 쪽 섬진강을 떠올리는데, 거기는 하류고, 여기는 상류라 도랑 같기도 하고 그렇지요.

<섬진강>은 1985년에 나왔고 지금은 2016년입니다. 선생님은 도시에서 살다 올해 여기로 돌아오셨고, 마침 <울고 들어온 너에게>라는 시집이 나왔습니다. 그 시집이 참 좋았습니다. 나는 시를, 시를 쓰는 일을, 이렇게 막 중요하게 생각하지를 않어요. 시가 안 써져서 힘들다, 빨리 써야겠다, 그런 적이 없지. 살다 보면 시를 쓰게 되죠. 그럼 시를 써요.

그래도 책으로 묶어낼 때면 어떤 마음이 생길 것도 같습니다만. 이번에 우리 안사람이랑 딸이랑 시가 좋다고 하는데, 난 좋은 줄도 몰랐어요. 첫 시집 <섬진강> 같은 냄새가 난다고도 하는데,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시인들이라면 다 그럴 거예요. 하여간 이번 같은 반응은 처음이여.

이번엔 뭘 어떻게 하신 거죠?(웃음). 그러게. (웃음) 이게 좋은가? 의아하기도 하죠.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 시가 남을 불편하게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애. 강요하거나, 이래라 저래라 하거나. 좀 더 생각해보면 우리가 너무 질주하느라 멈출 수가 없었던 거지. 멈춰본 적이 없어. 위로받지 못하고 살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죠. 사람들한테 나는 늘 미안했어요. 나는 일을 안 하잖아. 자전거 타고 학교나 왔다 갔다 하는 선생인데, 이 사람들은 죽게 일하는 거야. 미안했던 거지. 근데 이제 그런 부담으로부터 벗어난 거 같아요. 농사짓고 사는 사람들 가난하다고 말할 수 없어. 뭐가 가난해? 돈이 없으니까 가난해? 그건 무시하는 거지. 이웃 형님들 보면 진짜 평화로워요. 철마다 식물과 어울리며 살고. 보기에 좋죠. 옛날엔 밖에 안 나갔는데, 인자는 부담이 없고 편해졌어요.

시인은 시인이고, 농부는 농부고요. 그렇지. 자연스럽게 서로 독립된 관계가 생긴 거지. 동네 사람들 사는 걸 미화하지도 않을 것이고요. 고향 언덕에 안 비비려고 하는 거죠. 농사짓는 게 가장 위대한 일이라고 말할 수도 없어. 다들 사는 거지. 다들 살고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올해는 선생님이 여기로 돌아오신 해지요. 돌아왔죠. 여기 사는 건 참 편해요. 더할 나위 없이. 생각했던 삶보다, 원했던 삶보다. 나는 생각대로 사는 사람이에요. 어떻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딱 하나 있었어요. 시골로 돌아와 사는 거. 방을 하나 크게 만들어서 책을 가득 채운 방에서 사는 거. 지금 그렇게 살고 있는 거지. 여기 논도 있지, 밭도 있지, 강물도 있지, 산도 있지, 숲도 좋지, 햇빛 좋지, 바람 좋지, 이게 다 책이고, 공부하는 대상이잖아요. 그렇게 왔다 가면 된다, 그런 생각을 하죠. 여기서 절대 술 안 먹어요. 떠들지도 않고, 놀지도 않고, 고기도 구워 먹지 않아요. 여기서 뭘 하면 안 돼. 친구들이 저녁에 와서 놀자고 그래도 절대 못 놀게 하지. 저녁 되면 그냥 불을 싹 다 꺼부러.

어쩐지 고향에 막내아들이 돌아온 것 같은 기분도 듭니다. 맞어. 그 말이 맞지. 저 산천이 나를 좋아할 것 같애. 내가 별짓 안 하니까. 아~무 짓도 안 하거든. 뭘 할라고를 안 해 나는. 그냥 사는 거야.

산천도 선생님을 알고 있겠지요? 어, 알고 있을 것 같애. 어떨 땐 가슴이 먹먹할 때가 있지. 저 나무를 보고, 저 묵은 밭을 보고. 우리 묵은 밭에 있던 돌이 생각나. 그 바위가. 그 속에 뱀도 들어 있었거든. 그런 생각이 드는 거지. 잘 돌아온 것 같애.

금의환향 같은 말과는 상관이 없겠고요. 아무 상관 없지. 내가 여기 와서 동네 할머니들한테만 밥을 딱 한 번 사드렸어. 집들이 하자고 해도 일절 안 했어요. 나는 돌아와서 가만히 사는 사람이지, 떠벌이고 잔치하고 그러면 안 되는 것 같애.

이 동네에서 밥을 한 번 산다면 어디서 뭘 잡수시는 건가요? 저쪽으로 가면 오리고기 집이 있어.(웃음) 물좀 더 갖다 주까? 떡 먹을까? (아내를 부르며) 여보, 여기 떡 좀 내줘요. 내일 시제가 있어서 떡이 있어.

시를 쓰시면 그때그때 아내에게 보여주시나요? 잘 안 보여주지. 볼라고도 안 해.(웃음) 나름 잘 썼구나 할 때는 보여줘. 좋으면 좋다고 하는데, 안 좋으면 아예 말을 안 해부러요.(웃음)

그때그때 마음에 드는 시라면 어떤 시인가요? 시가 잘됐다 할 때가 있지. 볼 때마다 다른 거지. 힘이 생겨. 그리고 너그러워져. 세상을 가만히 용서하고 싶은 평화가 오는 건데, 오래 지속되지는 않아요. 그래도 시가 좋다, 모자람이 없다, 그럴 때가 있지.

‘동시다발’이라는 시에 이어 바로 ‘달의 무게’가 나오는 페이지가 생각나네요. (떡과 배를 내오며 그의 아내가 말한다.) 저도 ‘달의 무게’가 좋아요.

아까 강가에서 촬영하다가 관광버스에서 학생들이 내리니까 집으로 막 달려가시는 걸 보고 좋아서 웃었어요. 이런 분이구나. 어쩜 걸음이 그렇게 재신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시는 건가요? 나는 사는 게 조심스럽지 않아요. 거침이 없죠. 나는 겸손이라는 말을 별로 안 좋아해. 겸손은 어쩐지 꼭 사기를 치는 것 같애. 내가 나같이 살면 되는 거지. 이번 시집에 ‘달빛’이라는 시가 있어요. 그 시를 써놓고 참 좋아했죠. 왜냐하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강물을 따라 학교를 다녔어요. 갈 때는 거슬러 가고, 올 때는 물길을 따라 내려오지. 거역하고 순응하는 거, 그러면서 물살을, 시대를 버티고 싶었던 거지. 거기서 박힌 돌이 된 거야. 밀리기 싫은 거죠. 진짜 밀리기 싫었어. 사회에서, 문단에서. 사람 사는 데니까 별일이 다 있어. 정치적인 폄하도 있고요. 내가 외진 곳에 살고 있으니까요. 진짜 나는 밀리기 싫었어. 그러다 보니 부서진 거죠. 근데 가만히 보니까 부서진 곳에 달빛이 모여들어. 거기서 더 반짝이는 거지. 한 번에 썼어요. 스스로 ‘달빛’이라는 시를 통해 힘을 얻은 거지.

‘섬진강’과 ‘김용택’은 한 쌍처럼 보이는 말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선생님께서 밀리고 싶지 않았다고 하시니, 그 한 쌍 같던 말이 너무 세월 좋은 소리는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선생님은 여기서 싸우고 계셨던 건가요? 힘들었죠. 내가 고등학교밖에 안 나왔잖아. 순창농고. 그때 시험을 치면 교사 자격증을 주던 해가 딱 한 번 있었어. 그렇게 선생이 되었더니 나한테 뿌리가 없는 거지, 스펙이 없는 거야. 교대를 안 나왔으니 사람들이 패거리에 껴주지도 않아. 나는 안 어울렸어. 책을 봐야 하니까 놀 수도 없어. 보면 엉뚱한 짓을 해. 선생들이 애들 내팽개치고 화투치고, 술마시고. 휩쓸리기 싫었지. 그랬더니 저 새끼 암 것도 아닌데 책만 본다, 제까짓 게 뭔데, 그러지. 나는 절대 밀리고 싶지 않았어.

뭘 붙들고 계셨던 걸까요. 잃을 것이 없다. 스스로 힘이 있었어요. 책을 읽고, 좌절하고, 다시 일어나고, 삶을 보는 거지. 나는 문단을 싫어합니다. 거기는 온전한 곳이 아니야. 인간이 모여 사는 곳이어야 하는데, 그냥 패거리지. 모두가 망해도 그 멸망 위에 싹을 틔워야 할 씨앗 같은 게 시인데, 그래야 하는데, 따뜻하고 정이 넘치는 문학과 예술의 세계가 아니더라고. 욕이 들려오지. 웃기는 새끼, 시골에 들어앉아서…. 다 알지, 다 알고 있지. 근데 무시를 해봐도 잘 안 되나 봐. 나는 여기 살고 있는 거지.

이번 시집에 ‘오래된 손’이라는 시가 있지요. “김제 가서 할머니들에게 강연하였다”로 시작하는. 오, 그때 감동했어 정말. 막 울어, 할머니들이. 내가 강연할 때 큰 줄거리는 농사짓는 이야기, 그렇게 농사지으면서 배운 이야기, 아이들하고 공부하면서 배운 이야기를 써먹죠. 할머니들이 모이면, 농사짓고 얼마나 잘 사셨느냐, 얼마나 인간다운 삶을 사셨느냐, 그런 얘기를 해요. 그분들은 자기들이 잘 살았는지 모르는 거야. 늘 무시당했으니까. 못 배웠다고 창피했으니까. 나는 그 인생을 살려주고 싶은 거죠. 잘 살았다고 생각하시고 돌아가시라. 전혀 거리낄 것 없다. 어머니들처럼 훌륭하게 산 사람이 누가 있냐. 변호사, 의사, 정치하는 놈들, 다 도둑놈이다. 사람으로 도리를 다하며 산 어머니들 얼마나 잘 사셨느냐. 그 험한 세상 이렇게까지 버티며 사셨다. 어머니들, 할머니들 덕분에 우리가 아파트도 짓고 이러고 산다…. 할머니들이 울어요. 나도 막 울어. 할머니들이 내 손을 잡고 “으이고 어떻게 내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같이…” 그러지. 강연 끝나면 할머니 얼굴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

어쩌다 할머니들을 뵈면 어쩔 줄 모르겠어요. 도리 없어. 그게 마음이여. 살아가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