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MEN OF THE YEAR #이세돌

이세돌은 알파고를 공격했다. 그렇게 불가능할 것 같던 한 번의 균열을 만들었다.

이세돌이 놀라 입을 쩍 벌렸다. 화면이 멈춘 것 같았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제1국, 알파고의 102수가 이세돌의 우변 흑집에 침투했다. 이세돌은 졌다. 2국까지 패한 뒤 그는 “최소한 한 판은 이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고요”라고 말했다. 이세돌이 이런 말을 하던 사람이었나? 반상에서만큼 마이크 앞에서도 호기롭고, 그것을 승리로 증명해온 기사. “기계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게 없어 연습도 안 할 생각이다”라던 경기 직전의 자신감이 그렇게 꺾였다. 아니, 스스로 꺾었다. “이세돌이 패배한 것이지, 인간이 패배한 것은 아니지 않나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3국마저 지며, 이세돌은 5전 3선승제 대국의 패자가 됐다. 남은 경기를 다 이겨도 최종 승자는 알파고. 현장 규칙심사위원을 맡은 판후이 2단은 4국을 앞둔 이세돌을 이렇게 묘사했다. “고요해 보였다. 세상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덜어졌을 것이다. 아마 그는 이제야 외부의 상황을 초월해 그 자신의 대국을 펼칠 수 있었을 것이다.” 4국 제 78수. 이세돌이 회심의 일격을 가했다. 확신에 차 승부수를 던지는 얼굴은 아니었다. 그리고 판이 뒤집어졌다. 알파고의 계산에 따르면, 이세돌의 78수는 1만 분의 1의 확률을 가진 수였다. 1200개가 넘는 CPU, 하루에 3만 번의 대국을 둘 수 있는 알파고가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돌. 중앙 전투에서 벌어진 일이었고, 알파고는 무너졌다. 판후이의 말처럼, 그 78수는 이세돌 그 자신의 바둑이었다. ‘쎈 돌’. 전투를 즐기고 상대를 혼란에 빠뜨리는 공격적인 기풍. 그의 에세이집 <판을 엎어라>의 표지엔 이런 문구가 쓰여 있다. “내 안에 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라면 그리 둘 수 없다는 알파고의 묘수에 앞서, 이세돌이 있었다. 알파고는 인간의 기보를 통해 학습한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가 대국을 벌이며 데이터를 축적한다. 과연 알파고는 이세돌의 그 한 수를 통해 얼마나 강해졌을까. 또한 이세돌은 단 세 번의 패배를 겪으며 얼마나 강해진 걸까. “그 수뿐이 없었습니다. 그 장면에서. 다른 수는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보이지가 않아가지고.” 이세돌은 요란한 진군 깃발을 흔들진 않았지만, 여전히 방패 대신 창을 거머쥐고 덤비고 있었다. “알파고와 대국을 하는 건 괴로운 안락사 같은 느낌이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낄 때면 죽은 거나 다름없다.” 판후이는 2015년 10월, 알파고에 5:0으로 졌다. 이세돌은 패배를 인정하되, 죽음까지 받아들이진 않았다. 자신의 바둑을 끝내 거두지 않았고, 알파고는 돌을 던졌다. 구글 측 에릭 슈미트 회장이 대국 직전에 남긴 말. “이 시합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승자는 인류가 될 것이다.” 실은 인류의 승리가 아닌, 이세돌의 승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