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트 컴버배치 찾기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이제 세계 어디에도 숨을 곳이 없다. 사람들은 채소 오이에서도 컴버배치의 얼굴을 찾아내는 중이다. 손에 닿을 만큼 가까워진 줄 알았는데, 시간을 조종하는 마법사 ‘닥터 스트레인지’로 돌아온 그를 만났다.

기대앉은 히어로 뉴욕주 롱아일랜드시의 메트로폴리탄 빌딩에서 찍은 베네딕트 컴버배치. 코트와 스웨터는 엠포리오 아르마니, 바지는 조르지오 아르마니.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열아홉 살 때 히말라야에서 완전히 길을 잃은 적이 있다. 그 유명한 <셜록>의 스타이자 세상에서 가장 예상치 못한 섹스 심벌이기 전이었다. 그렇다고 연미복과 밀짚모자를 갖춘 교복 차림의 사립학교 학생도 아니었다. 산비탈에 걸쳐 있는 다즐링 근교 작은 도시에서 티베트 승려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즉흥성에 관한 집중 훈련을 스스로에게 부과했다. 일종의 교육용 게임이었다. 주말이면 모험을 찾아 떠났다. 칼리 간다키 강에서의 급류 래프팅, 라자스탄 주에서의 사막 횡단. (다른 모든 곳은 우기였다.) 그러나 그를 향해 손짓한 건 산이었다.

그와 세 친구는 카트만두에서 버스를 탔다. 셰르파는 비쌌고, 돈 없는 학생이었던 그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멍청한 결정을 내렸다. 그냥 가보기로 한 것이다. 고산병이 차례로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4명이었던 그룹은 셋이 되었다가, 둘이 되었다. 컴버배치에 따르면 셋째 날 밤이 시작이었다. “정말 이상하고 엉망진창인 꿈을 꾸기 시작했고, 잠든 사이에 무슨 일인가 일어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내가 의식이 있는지 깨어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죠.”

그들은 결정을 내렸다. 완전히, 절망적으로, 당황스러우리 만치 길을 잃은 것도 그 순간이었다. 손전등의 건전지는 떨어져가고 밤이 가까워왔다. 서둘러 수풀을 헤치며 나아갔다. 물결 무늬 철판으로 된 지붕이 있었다. 구원일까? 버려진 헛간이었다. 그 짚더미에 그대로 엎어져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그들은 문명으로 인도되기를 바라며 강을 따라 걸었다. 고산의 안개는 그들을 숲으로 이끌었고 거머리들이 발목에 들러붙었다. 마침내, 숲이 성기어지고, 그들은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튀어나온 듯한 계단식 목초지와 통나무집들이 늘어선 공터에 다다랐다. 주민들에게 달려간 그들은 배고픔을 나타내는 세계 공통의 신호(벌린 입을 가리키기)를 보냈고 이제껏 먹어본 중 가장 맛있는 식사 대접을 받았다. “아,” 21년이 지나 배우가 됐지만 여전히 한숨이 나온다.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있는 거죠.” 컴버배치는 산타 모니카의 5성급 호텔인 셔터스 온 더 비치 로비에서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여기에 한 주간 머물며 1억 6천5백만 달러 규모로 알려진 판타지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와 관련된 자잘한 일들, 그러니까 주요 촬영이 끝난 후의 작은 숏들을 찍고 있다. 이 영화에서 그는 혼을 쏙 빼놓는 마블의 슈퍼 히어로를 연기한다. 시각은 오전 11시, 그는 잠을 자지 않았다.

정말로, 한숨도. 아침 7시 반까지. 이 마흔 살의 배우는 호텔 로비로 날아들어 발 밑을 빠르게 날아다니는 작은 참새 한 마리 만큼이나 혼란스러워 보인다. 실제 거기 있지도 않은 공동 주연들을 상대로 야외 밤 시퀀스를 촬영했다. 촬영은 분장 때문에 길게 지연됐고, 그는 잠과 사투를 벌이며 버텼다. “이젠 내가 누군지도 잘 모르겠어요.”

스크린 속에서, 컴버배치의 단검처럼 날카로운 푸른 눈은 관객들을 비현실적인 곳으로 데려간다. 제2차 세계 대전 때의 암호 해독가 앨런 튜링(<이미테이션 게임>, 이 영화를 통해 그는 2015년 오스카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위키리크스의 주동자 줄리안 어샌지(<제5계급>), 그리고 당연히, 널리 인기를 얻은 BBC 시리즈, 2010년부터 지금까지 연기하고 있는 <셜록>까지.

컴버배치학 일부 팬들은 자신을 ‘컴버비치 Cumberbitch’라고 칭한다. 아주 약간 더(많이는 아니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이들은 ‘컴버베이브 Cumberbabe’들이다. 만일 로렌스 올리비에가 텀블러의 시대에 살았다면 그 역시 “인터넷 남자친구”가 되었을지 모른다.

거의 모든 그의 말과 사진이 웹에서 ‘컴버배치 바라보기(컴버게이징 Cumbergazing)’, ‘컴버배치에 대한 환상 품기(컴버팬터자이징 Cumberfantasizing)’, 혹은 말 그대로 ‘컴버배치 스토킹(컴버스토킹 Cumberstalking)’에 쓰이고 있다. “베네딕트 티모시 칼튼 컴버배치라는 이름의, 높은 광대뼈와 푸른 눈을 가진 ‘섹스밤’에 대한 감상과 감탄”에 헌정된 컴버비치 트위터 계정(@Cumberbitches)은 25만6천 명의 팔로워를 가지고 있다. 레딧에는 “컴버배치 목요일(트로우배치 서스데이 ThrowBatch Thursdays – 목요일마다 지난 사진을 올리는 유행 Throwback Thursdays, #tbt에 컴버배치의 이름을 넣은 것)”을 기념하는 그룹이 북적인다. 바이오그래피 Biography.com에서는 “컴버배치학 비공식 학사”를 포함한 <컴버비치가 되기 위한 8가지 주요 덕목>을 소개했다. 2014년 영국의 문학 잡지 <런던 리뷰 오브 북스>에 실린 한 시에서 작가는 어느 파티에서 컴버배치를 만나는 상상을 펼친다. 중국에서 그의 인기는 대단하다. 그곳의 팬들은 홈즈와 왓슨을 각각 컬리 푸와 피넛이라고 부른다. 인도네시아의 한 제빵사는 먹을 수 있는 작은 피규어가 포함된 ‘컴버컵케이크’를 만들었다.

시작은 영국에서 <셜록>의 첫 번째 에피소드가 방영된 2010년 7월 25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7백50만 명이 이 에피소드를 시청했다. 트위터가 폭발했다. 거의 소시오패스적으로 범죄 해결에만 집중하는 모습이나 보통의 인간관계에서 차단된 면 등이 그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이 시리즈는 셜록, 그리고 마틴 프리먼이 연기한 존 왓슨에 대한 묘한 암시로 가득하다. 에로틱한 ‘존록 Johnlock’ 팬 픽션, 그중에서도 <퍼스트 타임스>에서 인용하자면, “단 한 번의 눈짓으로 충분했고, 마침내 댐이 터진 것 같았다. 그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존은 숨을 멈추었고, 그의 입술은 셜록의 입술에 겹쳐졌다.”

컴버배치는 어떨 때는 창의적이고, 어떨 때는 섬뜩한 팬들의 쇄도를 즐기는 데 숙련되었다. 그를 만나러 산타 모니카로 향하는 길에 가장 최신의 온라인 반응을 체크했다. 한 트위터 사용자는 다음과 같이 썼다. “난 가끔 슬플 때면 웃통을 벗은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천천히 사과 튀김 하나를 먹는 상상을 해. 시도해봐!”

컴버배치에게 읽어주자 얼굴을 붉히며 이렇게 말했다. “해봤어요? 나한텐 안 통하겠는데요.” 그는 약간 거북하게 웃는다. “제가 따분했을 하루에 한 줄기 햇살을 가져올 수 있다니 기쁘네요. 웃통을 벗고 튀김을 먹는 모습으로 말이죠. 그런데 잘 모르겠어요. 키득거리게 되는군요. 거울 앞에 서서 제 모습을 쳐다보면서 ‘그래, 아무렴! 무슨 말인지 바로 알겠어!’라고 하지는 않으니까요. 제게는 이제껏 제가 결점으로 봐온 모든 부분이 보이거든요.”

선 위를 걷기 롱아일랜드의 지하철 고가 아래를 걷는 컴버배치. 다음 쪽에서는 소매를 걷고 있다. 의상은 에르메스, 신발은 필 앤 코, 다음 쪽의 셔츠는 에르메네질도 제냐

인터넷 남자친구 지난해 컴버배치는 무대감독인 소피 헌터와 결혼했다. 아들 크리스토퍼(별명은 킷 Kit이다)도 낳았다. “제 아내가 홍보용으로 세운 가짜고 제 아이도 홍보용 가짜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런 화제를 꺼내도 좋을지 확신하지 못한 채 그가 말한다. 음모론자들과는 논쟁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안다. “‘인터넷 남자친구’가 인터넷 말고 다른 누군가에게 속할 수 없다는 생각이 문제인 것 같아요. ‘그가 나 아닌 누군가에게 속한다는 건 불가능해.’ 이게 바로 스토킹이죠. 강박적이고, 기만적이고, 정말 무서운 행동이에요.”

<닥터 스트레인지>는 분명 히스테리를 가중시킬 것이다. 11월 4일(한국에선 10월26일)에 개봉한 이 영화는 ‘천재’ 하면 바로 떠오르는 배우, 컴버배치의 명성을 없애지는 못할 전망이다. (그가 빠르게 지적했듯, 그는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의 사랑에 빠진 루저, 리틀 찰스와 같은 완벽한 바보를 연기하는 것도 좋아한다.) <스파이더맨>을 만든 마블 팀이 1963년에 창조한 닥터 스티븐 빈센트 스트레인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신경외과 전문의로, 교통사고를 당해 손을 크게 다친다. 자신의 기술과 물질적 부를 되찾기 위해 절박해진 그는 카마르-타지라는 이국의 도시로 떠나고, 그곳에서 틸다 스윈튼이 연기한 구루 에인션트 원을 만난다. 비기를 단련한 그는, 컴버배치에 따르면, “다른 차원의 위협에 대항하는 우리 영역 최고의 마법사이자 방어자”가 된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천재 괴짜 천재 역할이 그를 규정해온 것에 대해, 단지 “그런 캐릭터들이 튀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를 약간 넘어서는 존재들이기 때문이죠.” 자신의 기이한 매력에 대해서는 묘사하지 않았다. “베네딕트는 같이 일하기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스윈튼이 말한다. “열심이고, 영리하며, 열정적이고, 친절하고, 편안하고, 농담을 나눌 준비가 되어 있는 데다 힘든 날은 적절히 다정할 줄 알죠. 자립심이 강하고 굳건하면서도 재미로 가득해요.” (스윈튼의 캐스팅은 화이트워싱 – 유색인종 배역에 모두 백인 배우를 캐스팅하는 행위 – 이라는 혐의를 받았다. 그녀가 맡은 배역은 원작 코믹스에서 동양인 남성이었다.)

<스타트렉 다크니스>에 등장했던,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어진 칸의 경우처럼 판타지의 영역에 발을 디딘 적이 있긴 하지만 컴버배치는 코믹스 팬이 아니다. 몇 년 전 <스타트렉> 이벤트에서 일부 기자들이 그에게 닥터 스트레인지 역할에 제격이라고 말하자 그는 “닥터 누구요?”라고 답했다. 처음에 그는 이 작품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60년대 신비주의와 냉전시대 SF가 만난 데 오리엔탈리즘 대중서사가 더해지다니, 너무 오래된 만화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만화는 그를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을 읽으며 “그 안의 하느님”을 찾던 십 대 시절로 돌려놓았다.

그리하여 지난가을, 패닉을 자아낸 런던 바비칸 센터에서의 <햄릿> 공연을 마친 지 이틀 만에 컴버배치는 카트만두행 비행기에 올랐다. (연극의 사전 예매는 몇 시간 만에 매진되었고 팬들은 군침을 흘리며 줄지어 섰다.) 8천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네팔 대지진이 있은 지 6개월 만이자, 그의 경솔했던 히말라야 산행 이후 첫 번째 방문이었다. 이제 그는 야생에서 길을 잃을 수 없을 것이다. 인류는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를 찾아낼 테니까.

처음 며칠간은 그와 카메라가 눈에 띄지 않았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제멋대로인 수염과 너저분한 옷으로 완성된 ‘원시인 룩’ 덕분이었다. “많은 일을 게릴라로 진행했어요. 시장을 걸어 다닌다거나.” 컴버배치가 회상한다. 카트만두에 도착한 날, 그는 강변에서 화장하는 모습을 봤다. 몽키 템플로 알려진 스와얌부나트 사원 꼭대기에서 촬영할 때는 “30명의 티베트 여성이 사리탑 주변을 돌아다니며 마니차를 돌리고 그들의 의식과 기도를 중얼거리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것은 황홀하고 평화로웠다. 하지만 이윽고 소문이 퍼졌다. 카메라를 들고 “베네딕트! 베네딕트!”라고 소리치는 현지인들이 카메라팀을 습격했다. 그들이 더 자주 외친 건 “셜록! 셜록!”이었다.

“엄청난 인파였어요.” <닥터 스트레인지>와 <노예 12년>에 함께 출연한 치웨텔 에지오포가 회상한다. “<셜록>이 카트만두에서 그렇게 인기 있는 줄 몰랐는데, 보다시피 제가 틀렸어요.” <타임>지는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어디도 갈 수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는 헤드라인을 뽑았다.

“거의 모든 컴버배치의 말과 사진이 웹에서 ‘컴버배치 바라보기 ― 컴버게이징 Cumbergazing’, ‘컴버배치에 대한 환상 품기 ― 컴버팬터자이징 Cumberfantasizing’에 봉헌되어 있다.”

배우들의 배우 그의 성장기에서 이 정도의 광신을 초래할 것이라는 낌새를 찾기는 힘들다. 그는 상업 연극과 영국 시트콤으로 커리어를 쌓은 두 배우, 티모시 칼튼과 완다 벤담의 외동아들로 켄싱턴에서 자랐다. (티모시 칼튼은 활동명에서 ‘컴버배치’를 뺐는데, 지나치게 거추장스럽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베네딕트 칼튼으로 활동을 시작한 그의 아들은 에이전트의 조언에 따라 그 반대로 이름을 되돌렸다.) 이전 결혼에서 낳은 딸이 있던 벤담은 SF 시리즈 < UFO >와 BBC 코미디인 <온리 풀스 앤 호시즈>에 고정 출연했다. 그녀는 엄청난 미인이었다. “화려한 여자나 아주 아름다운 누군가가 필요할 때면 언제든 완다를 찾았어요.” 오랜 지인인 우나 스텁스가 말한다. 그녀는 지금 셜록의 늙은 집주인, 허드슨 부인 역할을 맡고 있다. 스텁스는 길에서 벤담을 만나 네 살배기 베네딕트가 엄마의 치맛자락을 잡아끄는 와중에 대화를 나누었던 때를 기억한다.

컴버배치는 부모를 통해 이 직업의 기복을 지켜봤다. “모든 게 잘 풀려 일이 넘치는 시기도, 한가한 시기도 볼 수 있었죠.” 그의 부모는 아들을 엘리트 기숙학교인 해로우에 보내기 위해 두 배로 열심히 일했다. 그는 해로우가 “터무니없이 응석을 부리며 특권의식을 지닌 곳”이라고 말했다. 세실 비튼과 윈스턴 처칠을 졸업생으로 둔 이 학교에서, 배우의 아들이 언제나 또래 왕자님들과 잘 어울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학교에서의 첫 2년 동안, 그는 셰익스피어 극에서 두 번이나 큰 역할을 맡았다. 둘 다 여성 배역이었다. 럭비와 크리켓을 하자 조롱은 사라졌다. 시야를 넓혀준 동양으로의 순례 이후, 그는 맨체스터 대학교와 런던음악공연예술아카데미에서 연극을 공부하기 위해 돌아왔다. 곧장 일을 시작해 한 TV 전기 영화에서 스티븐 호킹을 연기했고 웨스트엔드에서 상연한 연극 <헤다 가블러>를 통해 올리비에상에 노미네이트 됐다. 하지만 그는 부모의 평범한 경력보다 더 큰 뭔가를 그렸다. “부모님에겐 미처 기회가 없었던 일들을 하고 싶었어요.”

<셜록>이 그걸 가능하게 해주었지만, 이 역에 오래 머물지는 않을 듯하다. 2017년 1월에 공개될 네 번째 시즌을 촬영한 지금, “가까운 시일 내에는” 캐릭터로 돌아가지 않을 예정이다. <셜록>은 그에게 밈을 만들어주었고, <이미테이션 게임>은 그를 A 리스트에 올려주었으며, <닥터 스트레인지>는 그를 메가톤급 스타로 만들어줄 수 있다.

닥터 아드레날린 컴버배치는 언제나 벼랑 끝으로 향한다. 모터바이킹, 스카이다이빙 같은 것들. “분명 어느 정도 아드레날린 중독이에요.” 2008년 BBC 드라마 <라스트 에너미>에서 만나 가장 친한 친구가 된 아담 아클랜드가 말한다. 컴버배치에게 연기란 스릴을 찾는 또 다른 방식, 정신의 히말라야 정상을 등반하는 일이다. <햄릿>은 일종의 에베레스트였고, 그는 정복한 것으로 보인다. <텔레그라프>의 비평가가 썼듯이, “컴버배치의 추종자들은 자신감을 가져도 좋으며, 그 헌신적인 여성 팬들은 넋을 잃을 정도로 황홀해할 자격이 있다. 그의 연기력에 대한 이 재판에서, 그는 의심의 여지없이 승리했다.”

극단적인 체험에 대한 그의 취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2004년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히말라야에서의 사고보다 참혹한, 정말 죽다 살아나는 경험을 했다. 남아프리카 콰줄루 나탈에서 BBC 미니시리즈 <투 디 엔즈 오브 디 어스>를 촬영 중이었다. 한번은 두 동료 배우 테오 랜디, 데니스 블랙과 함께 소드와나 만으로 스쿠버다이빙을 나갔다. 밤이 되어 돌아오는 길, 차량 탈취로 악명 높은 고속도로에서 타이어 펑크로 멈춰 섰다. 6명의 무장 괴한이 나타났다. 총을 겨누고 휴대전화와 신용카드를 빼앗았다. 어느 순간 컴버배치는 트렁크에 처박혔다. 셋을 차에 태워 어딘가로 끌고 갔다. “벤이 발로 차고 소리를 지르며 난리법석을 떨었죠.” 랜디가 회상한다.

강도들이 어느 다리 밑에 차를 세웠다. 자신의 마지막 순간임을 확신한 컴버배치는 목숨을 구걸했다. 몇 분의 정적이 흐르고, 그는 강도들이 떠났다는 걸 깨달았다. 결박을 풀고, 그들에게 전화를 빌려준 한 현지 여성을 마주칠 때까지 고속도로를 헤매고 다녔다.

으레 사람들은 트라우마를 겪으면 후퇴한다. 하지만 컴버배치는 그 경험이 모험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더욱 강화했다고 말한다. “분명 덜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 안달이 났었죠. 다음 날 아침 바다를 보니 수영을 하고 싶어졌어요. 어떤 면에선, 새로운 시작이에요. 스쿠버다이빙 트레이닝 코스의 첫 주말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으니 이전까지 그런 경험에 딱히 배타적인 것도 아니었어요. 제 생각엔 그냥 좀 더 무모하게 돌진하도록 만든 것 같아요.”

지난 2년은 그의 아드레날린에 대한 갈망을 조절하는, 어쩌면 변화시키는 기간이었다. 어디서 다음 스릴을 찾고 싶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너무 감상적인 대답이지만, 사실은 집에서 스릴을 찾고 싶군요.” 헌터를 만난 건 거의 20년 전의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이었지만, 함께하기까지는 긴 세월이 걸렸다. 기적적으로 타블로이드를 따돌리며 연애한 끝에, 그들은 2015년 밸런타인 데이에 영국의 와이트 섬에서 결혼했다. 헌터는 그해 6월에 태어난 킷을 임신 중이었고, 킷이 태어난 지 2주 만에 컴버배치는 <햄릿>의 리허설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모터바이킹을 그만뒀다.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아이를 갖는다는 건, 압도적이죠.” 그가 말한다. “정말로 예상치 못한 수준이었어요. 갑자기 저는 부모님을 전에 없이 깊이 이해했어요.” 부성애는 연극의 정전 중에도 가장 어려운 역할을 앞둔 그에게 의외의 통찰을 주었다. “<햄릿>은 아버지가 되는 데 방해가 될 거라고 예상했어요. 왜냐하면 오로지 아들에 관한 극이니까요. 하지만 그 반대더군요. 아들로 사는 것을 훨씬 더 잘 이해하고 나면, 아버지가 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어요.”

스윈튼은 말한다. “그에 대해 제가 가장 깊이 받은 인상은 아내에게 정신을 못 차리는 새신랑이자, 아들에게 황홀해하는 초보 아빠라는 거예요.” 유명세가 그를 망칠 거라는 걱정은 하지 않는다. “자기가 무엇보다도 원하는 것, 그리고 지금 지니고 있는 것이 삶이라는 점을 그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 삶이 자신에게 꼭 맞으며 자신을 풍성하게 한다는 것, 바로 그게 세상을 지탱하도록 해준다는 사실도요.”

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컴버배치는 이제 비행기를 타야 한다. 소피, 킷과 함께 떠날, 간절히 필요했던 이탈리아 휴가를 앞두고 있다. 참새가 여전히 호텔 로비를 날아다니다 갑자기 내 뒤의 의자에 내려앉았다. “악!” 내가 깜짝 놀라 소리치자 컴버배치가 문을 열면서 말했다. “이 참새에게도 기회를 줘야죠.” 뭔가에 대한 은유처럼 보이지만, 컴버배치는 구조를 필요로 하는 갇힌 새가 아니다. 그 대신, 밈이 될 만한, 컴버배치 판타지가 만들어지는 순간을 방금 목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가끔 슬플 때면 수면부족에 시달리는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조그만 참새를 풀어주는 상상을 해. 시도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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