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나의 자리

동네 카페의 서쪽 창가 자리,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은 창경궁 깊숙한 곳에 놓인 벤치, 명동성당 맨 앞자리. 오후의 서울대학교 노천극장 무대 위,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의 길다란 계단, 양재동 버스정류장 의자… 서울의 젊은 사진가들이 찾은 나의 자리, 그리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 GQ > 독자들이 보내온 나의 자리를 여기에 모았다. 서울의 밤과 낮, 어쩌면 우리는 각자의 길에서 잠시 앉을 곳을 찾아 이 어수선한 도시를 배회하는 건지도 모른다.

한강공원 광나루지구 여기서 엉덩이가 밑으로 빠질 것 같은 캠핑 의자에 앉아 해가 지는 광경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봄이나 가을, 해가 뜬 어떤 날이면 가끔 들른다. 서울은 어디든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내게는 이런 한적함이 필요하다. 채대한

 

덕수궁 연못가 다른 궁에 비해 인기가 적은지, 한적해서 더욱 좋아하는 곳이다. 나무에 둘러싸여 폭 안긴 느낌이 든다. Instagram @regard.record

 

회현 지하상가 내 리빙사 작업실 근처에 있는 다양한 장르의 중고 LP를 파는 곳. 머리가 복잡할 때면 잠시 작은 나무의자에 앉는다. 집중해서 뭔가를 찾다 보면 머릿속이 한결 가벼워진다. Instagram @ug.sim

 

홍대 평생교육원 1층 건물 입구 곧 버려질 의자인지 여분의 의자인지 모르지만 건물 한구석에 이렇게 있었다. 서울로 일주일에 한 번 수업을 들으러 가는데, 갈 때마다 서울은 나에게 불안한 곳이다. 어디 하나 마음 편한 곳이 없는데,저 의자에 앉으면 서울에서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질 것만 같다. Instagram @recoveryfromborderline

 

성동구 성수2가 장미슈퍼 소주를 사러 들어갔더니 아주머니가 한숨을 푹 쉬신다. “추위가 예년보다 두 달이 빠르대요. 냉방비 폭탄 맞고 나니까 또 난방비 걱정이네.” 밖으로 나와 탁자를 펴고 앉았다. 투박한 서울 속 평범한 나의 자리. 온전히 내가 되는 공간과 시간. Instagram @flohong

 

정독도서관 갈 때마다 차분해진다. 정화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되도록 아침 일찍 간다. 책상이며 의자며 시계며 모두 오래돼서 느낌이 좀 이상하기도 하다. 그리고 유독 조용하다. 도서관이 조용한 건 당연하지만 여기는 뭔가 더 있다. 나는 경건한 기분이 되곤 한다. 이렇게 예쁜 곳도 자주 오면 싫증이 나겠지. 집에서 멀어서 다행이다. 윤송이

 

한강공원 난지지구 야구장 건너편 서울에 온 지 십여 년인데 그 중 가장 많이 찾은 곳이다. 일 년여 동안 촬영한 나무도 이곳에 있고, 그전부터 자전거를 탈 때면 여기를 꼭 들르곤 했다. 벤치가 두 개 있지만 누군가 있으면 굳이 앉으려 하지 않는다. 나 또한 누군가 있을 땐 근처 다른 곳으로 간다. 모두가 혼자만의 시간을 지켜주는 곳. 나는 이곳으로 오는 모든 계절을 빈틈없이 봤다. 계절마다 좋았지만 눈 내린 겨울은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좋다. 벤치에 앉거나 주변을 서성일 땐 로빈 깁의 ‘All We Have is Now’ 와 플래밍 립스의 ‘All We Have is Now’를 듣는다. 표기식

 

홍제천을 따라 난 산책로 이곳은 여름이 가장 좋다. 더운 해가 넘어가는 저녁이나 장대비가 지나간 후. 특별히 기억나는 장면은 비 맞은 이 벤치가 시원하게 반짝거리던 모습이다. 한편 냇물 위로 설치된 고가도로 교각마다 르누아르나 모네의 명화가 장식되어 있는데, 정말 희한한 풍경이라는 생각이 든다. 홍제천은 생각보다 맑아서 새와 물고기가 여전히 많다. 뭔가 복잡하지 않아서 싱싱하고 좋은 기운을 받는 곳이다. 이차령

 

창경궁 벤치 홍화문으로 들어서서 춘당지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다 보면 자판기가 있는 작은 쉼터가 보인다. 거기에 벤치들이 ‘ㄷ’자 형태로 놓여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낌없이 준다. 이 자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나만의 자리가 아닌 나의 자리가 되어준다는 점에서다. 조만간 가서 한 해를 정리할 생각이다. Instagram @agust.su

 

은평구립도서관 바깥 의자 가는 길이 녹록치 않다. 이름 난 가게나 카페도 없이, 그저 서울 끝에 위태롭게 걸린 느낌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어쩐지 이 도시에 완전히 정착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길을 오르다 보면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나 멕시코 테오티우아칸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기둥과 외벽 틈새로 습도와 계절이 필터를 거치지 않고 비치는 까닭이다. 건물에 대한 찬사-건축가 이름과 건축대상 수상연도-들은 금세 잊겠지만, 가장 담백한 서울 풍경을 보며 책을 읽거나 담배를 피울 수 있다는 사실은 잊히지 않는다. 예전에는 이 근방을 아미산이라 불렀다 한다. ‘아미ami’라면 끝내주는 코트를 만드는 브랜드 아닌가, 떠올리며 부러 코트와 가방을 놓고 사진에 담아보기도 한다. Instagram @imsu_kim

 

마포구 ‘Fritz’ 2층 볕이 잘 드는 테라스 가운데 자리 건물 자체에서 풍기는 분위기도 그렇고, 일단 가면 마음이 편한 곳. 가끔 참새에게 먹고 있던 빵을 나눠줄 수 있는 곳. 커피 맛 또한 훌륭하다. Instagram @berusungho

 

광화문 앞 잔디밭 한동안 광화문 일대를 많이 거닐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로 보였고 손에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었다. 아빠에게도 저렇게 한가롭던 유년이 있었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Instagram @kimzinzu

 

은평구 구산동 상원스포월드 수영장 물을 끔찍이도 무서워하는 내게 수영장은 여전히 어려운 곳이지만, 신기하게도 물과 함께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 잠이 잘 오곤 한다. 물에 대한 수치심과 두려움, 평온한 느낌들이 마구 뒤섞여 혼란을 느낀 채로 이곳을 찾기 시작했고, 나는 수영장 전망대나 레인 바닥 어딘가에 앉아 간밤에 꾼 꿈을 떠올려보기도 한다. 올 때마다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을 안고 돌아간다. 이승연

 

한강공원 신사 나들목을 지나 잔디 운동장을 가로질러 11시 방향에 있는 벤치 지난 10월, 내게 큰 의미였던 일과 공간에 안녕을 고하고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보냈다. 헛헛한 마음이 들 때면 산책을 했고, 그때마다 이 벤치에 앉거나 누웠다. 여기서 하는 일은 별거 없다. 생각 없이 한강 보기, 지나가는 사람 보기, 가끔 강아지한테 관심 받기, 그러다 앞날 걱정하기 등등. 마음이 정리되거나 비워지길 바란 건 아니다. 그냥 그 시간 그 자리가 여유롭다는 게 신기하고 웃겼다. 김다연

 

가양대교 중간쯤의 난간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서 길을 나서면 가양대교로 올라가는 슬로프가 쭉 뻗어 있다. 황사가 최고로 심하거나 비바람이 불고 태풍이 오는 날이면 더욱 좋다. 볼라벤 때는 몸이 조금 떠서 난간을 붙잡고 내려온 적도 있다. 그런 날은 다리 위에 나 혼자인데, 서울이 이상하게 아름다운 날도 그때다. 잔잔한 물 위에 떠 있는 부표, 고수부지 국궁장을 날아가는 활, 김포공항에서 심심찮게 올라오는 비행기, 행주대교 위로 지나가는 수많은 점들을 본다. 이윤호

 

모범택시 뒷자리 일부러 모범택시를 탈 때가 있다. 택시에서만큼은 사소한 실랑이도 벌이고 싶지 않아서다. 언젠가부터 서울은 분노로 가득하고, 나는 그 분노에 노출될 확률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애쓴다. 그런데 이제 분노의 이유를 우리 모두 알게 된 걸까? 양승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