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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도 침대에서 연기를 한다?

2016.12.20유지성

남자도 침대에서 연기를 한다. 올해의 수상자는?

좋았던 섹스와 나빴던 섹스에 대해 생각한다. 본격적인 겨울은 오지도 않았는데,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이 늘어나니 그렇다. 지난 문자 같은 걸 읽어보기도 한다. 물론 거기에 무슨 음담패설이라도 있는 건 아니고, 지나간 이름들이 있다. 거절당하기도 하고, 내가 거절하기도 했다. 몇 개는 지우고 몇 개는 남긴다. 그중 일부는 안부를 묻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때 솔직했었나? 솔직하지 않아서 더 좋았을 수도 있지. 배려이거나 자기 최면이거나. 꼭 섹스에 대해서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거짓말을 한다. 모르는 척, 맛있는 척, 취한 척, 안 피곤한 척, 다리 아픈 척, 집에 뭐 대단한 게 있는 척, 집 방향이 같은 척, 그리고 흥분한 척.

하지만 “사실 그때 나 별로 안 취했는데” 정도야 나중에 귀엽게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섹스에 관해서라면 “사실 나 그때 하나도 못 느꼈는데”를 비롯한 부정적 후일담은 막 만난 연인이든 활기차게 진행 중인 사이든 이별한 뒤든 서로에게 웬만해선 못할 얘기다. 결국은 혼자 알고 있을 뿐. 모든 섹스가 항상 대단히 좋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중간에 집어치울 수는 없다. 동시에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섹스부터 해보고 만나는 것도 아니고, 누구는 결정적 순간에 이럴 줄 알았나.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로부터 약 30년, 우리는 여전히 서로의 기쁨을 위해 연기를 한다.

여자의 오르가슴에 대해 모른다. 영원히 모를 것이다. 그러니 얘기할 수 없다. 알지도 못하는 ‘가짜 오르가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추측하는 건 무례한 일이 아닐까. 남자의 오르가슴이라면 잘 안다. 사정할 때의 쾌감. 세포의 기립박수. 결승점까지 어떻게 도달하느냐는 각자 차이가 있겠으나, 거기에 다달았을 때의 보상은 동서고금 변함이 없다.

그러니 남자의 연기는 오르가슴 그 자체와는 별 상관이 없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남자도 연기를 한다. 양상은 다를지라도 해야만 하는 순간이 오니까. 때로는 OX 퀴즈 같은 오르가슴에 대한 문제를 떠나, 남녀 모두 바라는 것이 충분한 시간의, 충분한 전희를 통해, 충분한 발기 상태의, 충분한 박력으로 몸이 뜨거워지는 섹스라면,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은 축구 해설보다 섹스를 논할 때 더욱 적절하다.

이를테면 너무 좋아 죽겠어서 삽입 직후부터 왈칵 쏟아져 나올 것 같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모든 섹스가 기승전결을 확실히 지키는 건 아니고, 처음부터 강하게 몰아붙였는데 시작부터 노란불이 켜지고 마는 경우. 체위를 바꾸기엔 너무 이르다. 하지만 멈춰야 한다. 속도를 늦춰야 한다. 그러나 섹스는 자위가 아니고 둘이 같이 제대로 불이 붙은 상황에서 그게 어디 쉽나. 몸은 그대로 격정적으로 움직이는 한편 태어나서 겪은 가장 불행한 순간을 떠올리거나, 다행히 손발이 자유롭다면 몰래 내 몸 어딘가를 꼬집는다거나…. 나로서는 절대 실천하지 못할 것 같지만, 방 안의 가족사진이나 종교적 표식을 통해 잠시의 평화를 얻는다는 얘기 또한 누군가에겐 효과적일까. 어쨌든 신체적 감각을 분산하든 정신을 스스로 교란하든 페니스를 압박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

혹은 반대로 시들어버리는 경우. 몸의 모든 감각과 혈액과 상상 속의 너를 총동원해서라도 다시 일으켜야 하는 상황. 상대에게 페팅을 비롯한 뭔가를 부탁할 수도 있겠으나, 이미 삽입 중인 페니스를 꺼내 작전타임을 요청하는 것도 한두 번. 게다가 삽입을 중지한 페니스가 차가운 공기에 닿는 순간 더욱 위험해질 수도 있다. 몸에 손도 안 닿았는데도 놀랍게 팽창하는 모습에 박수를 보낸 지 불과 몇(십) 분, 구멍 난 풍선의 최후처럼 쭈글쭈글 작아지는 페니스를 함께 지켜보는 일은 꽤 처량하다. 결국 발가락이나 엉덩이 근육에 힘을 꽉 주는 물리적 조치를 가하든, 다소 불손한 상상으로 판타지를 구현하든 자기 힘으로 해결하는 쪽이 다음 섹스를 위해서도 나은 방향이다.

옆방까지 넘어갈 것 같은 가쁜 숨소리를 내는 것만이 연기는 아니다. 아주 간단하게는 침대에서 옷을 벗기 직전 바지 뒤춤에서 꺼낸 콘돔을 슬쩍 베개 밑에 밀어 넣는 것부터가 연기다. 좋은 배우는 그렇게 매끄럽고 자연스럽다. 그래서 나는 올해 더 나은 배우가 됐나? 사회자가 수상하는 연말 텔레비전 시상식은 언제나 좀 부적절해 보이니, 아까 보낸 안부의 답장을 기다린다.

    에디터
    유지성
    일러스트레이터
    KIMIAND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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