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새로운 연예인은 없는가?

2017.01.09GQ

여느 시상식을 틀어놓고 스마트폰으로 연신 ‘복길’의 트윗 중계를 확인하는 일, 가히 엔터테인먼트의 신세계다. 젝스키스의 새 앨범을 듣고 충격에 빠졌다는 ‘복길’에게 새로운 연예인이라는 주제를 던졌다.

등장이 미심쩍은 연예인들이 있었다. 방배동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오디션을 보는 친구를 따라갔다가, 어느 힘 있는 디자이너의 눈에 띄어서, 강북에서 춤을 제일 잘 춰서, 잠실에서 옷을 가장 잘 입어서, 이태원 클럽에서 허구한 날 죽치고 놀아서, LA 한인 교회의 이슈 메이커여서. 이것은 모두 20년 넘게 활동하는 연예인들의 데뷔 일화다. SNS에서 친한 유저가 이렇게 데뷔한 연예인들을 통칭해 ‘룰라적 연예인’라 불렀고 나는 크게 공감했다. 이상민은 룰라, 디바, 샵, 샤크라를 저런 방식으로 캐스팅 했다고 스스로 여러 차례 밝혔다.

1990년대에 나는 어린이였고, 언니 세대, 즉 룰라 세대가 하는 것이라면 뭐든 필사적으로 따라가려 했다. 그래서 저 허무한 데뷔 동기도 꽤 그럴싸한 이야기로 느꼈다. 그렇게 지나간 것만 추억하고 미화하며 살다 보니, 언제 부턴가 견고한 육성 시스템과 대대적인 마케팅 속에서 데뷔한 연예인들이 낯설었다. 10년 쯤 지나니, 실용음악학원, 연기학과, 모델 에이전시에 들어가는 것이 하나의 관문이 되었다. <프로듀스 101>을 보면서 한국에 그렇게 많은 기획사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방송사 오디션들은 더 이상 기적을 노래하지 못했으며 홍대에서 버스킹을 하려면 장범준의 영혼과 싸워야 했다. 2010년대의 연예계는 내가 동경하던 ‘얼떨결 시절’과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연예인은 더 이상 인정 투쟁을 할 필요가 없었고, 도리어 필요 이상의 가치 평가를 당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들의 영향력과 존재감은 점점 부풀었고, 자연히 그것을 꿈꾸는 사람들은 폭발적으로 늘어갔다. 그럴수록 오랫동안 지켜온 질서를 유지하고 새로운 힘을 견제하려는 기존 세력들은 노파심을 쌓아올렸다. 제도를 뚫지 못한 사람들은 유튜브, 아프리카, 개인 SNS 등을 통해 유사 연예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진짜 연예인들을 모사할 뿐 어떤 맥락도 갖추지 못한 채 한계를 보였다. 입구가 완전히 봉쇄된 것 같았다. 그렇다면 현재, 새로운 연예인은 어떻게 등장하고 존재할 수 있는가.

한 신인 연예인이 뜻밖의 기회로 한류 스타가 되어가는 과정은 매뉴얼이 되었다. 유명 작가의 드라마에 조연으로 출연하고, 작품 흥행에 따라 세상의 모든 것을 홍보하는 모델이 되고, 국민 MC들이 진행하는 TV 쇼 게스트가 되고, 그것이 여의치 않아도 복면을 쓰고 노래 하거나, 무작정 달리거나, 집을 공개하면 된다. 얼굴은 분명 새로운데, 패턴은 질릴 만큼 익숙하다. 우리는 또한 ‘예능 대세’라는 코미디언도 만난다. TV 쇼를 다양하게 챙겨 보지만 그 사람이 어떤 재능을 가졌고, 어떤 메시지를 주는 인물인지는 파악하기 힘들다. 출연하는 방송이 계속 늘고, 모델을 맡은 광고가 늘어갈수록 유행어는 공허하게 반복되고, 그의 지친 리액션을 지켜보는 것이 힘들어진다. 어떤 분야의 연예인이건, 아무리 새로운 얼굴이 등장하더라도 똑같은 과정과 결과를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어쩌다 신선한 인물을 발견하더라도, 이 매뉴얼이 적용되면 모두 같은 얼굴이 되어버린다.

사람들이 지쳐가자 연예계는 리믹스를 시작했다. <무한도전>의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는 유재석이 얼마나 ‘압구정 날라리’ 시절을 사랑했는지를 알 수 있는 기획이었다. 그는 90년대에 대한 한결같은 사랑을 <슈가맨>을 통해 본격적으로 드러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데뷔해 지금처럼 양껏 소비되지 못한 90년대 가수들을 풀어 던지고, 그 시절 미처 주목받지 못한 가수들마저 찾아내어 소환했다. 90년대 가수들은 공통적으로 끔찍했던 회사와 사장들의 이야기를 꺼냈고, 그들의 말만 믿고 데뷔한 자신의 무모함을 털어놨다. <슈가맨>은 세대별로 방청객을 앉힌다. 20~30대는 ‘정말 야만적인 시대였지’ 하며 웃었다. 10대들은 ‘말도 안 돼. 무슨 연예인이 그렇게 대책 없어’ 하고 웃었다. 아무리 상식 밖의 일을 당해도 그때는 그러려니 했던 일들이 환경이 바뀐 탓에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가 되었고, 그것은 리메이크 콘텐츠에서 양념과 같은 역할을 했다. 사연을 모두 듣고 나면 제일 잘나가는 작곡가와 아이돌이 90년대의 노래를 ‘요즘 버전’으로 리메이크해 무대를 만들었다. 추억을 팔면서도 촌스러워 보이지 않는 방법으론 나름 최선의 타협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젝스키스의 재결합 역시 그런 ‘리믹스’ 중 하나다. 그들은 <무한도전> ‘토토가’ 시리즈로 데뷔했으나 반응은 지난 시즌 에피소드와는 사뭇 달랐다. ‘토토가 시즌1’의 멤버들이 일회성 공연들을 준비할 때, 젝스키스는 가장 잘나가는 기획사인 YG를 배경으로 두고 대대적인 리브랜딩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정말로 ‘리믹스’ 앨범 < 2016 Re-Album > 을 발표했다. 2016년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에 발매한 모든 곡에 ‘2016’을 붙인 제목들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정확히 지금 현재, 우리가 있는 곳을 보라’는 경고 라벨 같았다. 나는 앨범을 처음으로 플레이한 순간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슈가맨>이 억지로 90년대와 현재를 조화롭게 녹이기 위해 애쓰던 노력들을 개박 살 내듯이, 90년대 젝스키스의 인기곡들이 일렉, 보사노바, 레게, 힙합, 테크노, 트로트 등 수 없이 많은 장르로 편곡되어 있었다. 심지어 한 곡에 모든 장르가 다 들어 있는 것처럼 들리는 곡도 있었다. 이 앨범은 1990년대와 2016년대를 마구잡이로 섞어놓은 것 같은 혼란이자, 새로움에 대한 갈망이 만든 대안처럼 느껴졌다. 이 ‘리믹스’ 혹은 ‘리부트’는 분야를 넘나들었다. 김성수 감독은 정우성과 함께 가상의 시공 <아수라>를 통해 <비트>의 초심을 재현했고, 김혜수는 <시그널>에서 90년대와 2010년대를 동시에 살았다. 공교롭게도 단 한 번도 같은 작품에 출연한 적 없는 두 배우는, 데뷔 후 2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끝없이 자신을 변환하며 스스로를 격상시켜 늘 새롭게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재생산’ 형태의 것을 마냥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이 혼란스런 가공들을 별 생각 없이 취하는 것은 각종 전략에 지친 내겐 쉽고 편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것 마저 질리게 된다면, 그 다음에는? 이것은 분명 퇴행이며, 끝도 없이 정체된 상황보단 어떤 방향으로든 흐르는 게 낫다는 체념일 뿐이다. 연예계는 분명 더 많은 걸 새롭게 말할 수 있었다. 2000년 커밍아웃 후, 홍석천이 이 생태에서 살아남은 방법은 다양하게 회자되어왔다. 그는 연예인이 아닌 성공한 사업가로서 버텼고, 자신을 매몰차게 내친 그곳에 재입성해 ‘탑 게이’가 되었다. 그는 ‘여자 아이돌에게 안전한 오빠’, ‘방송에서 남자 연예인에게 추파를 던질 수 있는 유일한 사람’ 같은 이미지로 소비되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방송계에서 커밍아웃을 한 사람이 홍석천뿐이라는 서글픈 메시지는 그저 낄낄대는 농담거리가 된다. 그와 신동엽이 진행하던 트랜스젠더 토크쇼는 1회 방영 후, 신속히 폐지됐고, 하리수는 자취를 감췄다. 제2의 홍석천, 제2의 하리수는 왜 20년이 되어 가도록 나오지 않는가? 리믹스와 리부트도 필요 없는 진정한 의미의 ‘새로운 연예인’, 즉 ‘뉴 페이스’는 그저 대세를 확인받는 신인상 수상 배우도 아니고, 시청자들이 의아할 정도로 온갖 매체에서 자신을 소모시키는 이른바 ‘대세 예능인’도 아니다. 이처럼 방송 밖 사회는 새로운 가치를 치열하게 논하고, 그에 맞는 새 역할 모델을 갈망한다. 그러나 연예계는 그것을 꾸준히 모른 척하며,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다는 핑계로 과거를 억지로 환기하며 ‘리믹스’에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지난가을,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는 집회에서 마음을 모으는 노래가 되었다. 그만 한 가치를 가진 훌륭한 노래임이 확실하고 나 역시 새로운 민중가요의 등장을 박수치며 환호했지만, 한편으론 문화가 대기업이 만들어낸 것을 이렇듯 쉽게 적용하는 데 지나치게 익숙해져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새로운 것이 없다는 사실에 너무 오랫동안 적응해서, 그 안에서만 가치를 찾아내고 용인하는 것 말이다.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소비하고 싶은가. 그 욕망의 이상에는 무엇이 있으며, 그것이 안일한 가치는 아닌가. 새로운 연예인은 그런 고민과 요구 속에서 탄생할 것이다.

    에디터
    GQ 피처팀
    복길(칼럼니스트)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