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란 무엇인가?

누구도 같은 것을 보지 않는다는 진리로부터 여행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이다. 하지만 유난히도 똑같이들 입고 먹고 겪으려는 풍토 속에서 여행이란 새삼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 한 사람의 지극한 여행의 기술이 있다. 세상은 모두에게 각각 다르다.

끓는 물에서 차이를 생각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내게 ‘물이 끓는다는 것’은 불안전의 경계를 무사히 넘었다는 신호일 뿐이었다. 그런데 물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이는 ‘끓는 물이 익은 정도’를 말했다. 끓는 모양과 소리, 피어오르는 김의 형태를 동시에 살피며 익은 물을 열 댓 가지로 구분했고, 그 물맛의 미세한 차이까지 가늠했다. 그러곤 ‘알맞게 끓은 물’로 차를 우리며 말했다. “잘 만들어 잘 우린 차는 물이 본래 가지고 있던 속내까지 환히 드러내는 통에 때론 당혹스럽습니다. 물을 그냥 맛볼 때는 느껴지지 않던 맑고 탁함뿐만 아니라 원천源泉의 고유한 기질도 그대로 보여준단 말이죠. 그 엄정함이 유리처럼 투명합니다. 이 물의 기질을 어찌 보십니까.”

애꿎은 찻잔만 괴롭히다 돌아오는 길에서 생각했다. 물은 무엇일까. 나는 물을 어디까지 알고 있으며, 또 어디까지 겪을 수 있을까. 그즈음부터였던 것 같다. 자연을 명사의 형태로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 나는 물었다. 바다는 무엇이고, 산은 무엇일까. 흙은, 감나무는, 소는, 씨앗은 무엇일까. 누군가가 물이라는 너른 대상을 오직 자신의 감각에 의지해 헤아리고 알아갔듯, 사람의 몸을 거쳐야만 또렷해지는 어떤 앎에 닿고 싶었다.

그건 예측할 수 없는 앎이었고, 그래서 예측할 수 없는 여행이 시작됐다. 무엇이 알고 싶어지면 그것이 많은 곳에 갔다. 소금이 궁금하면 염전으로, 벌이 궁금하면 벌을 많이 치는 깊은 산마을로, 재첩이 궁금하면 재첩을 많이 채취하는 강마을로 떠났다. ‘마을을 채운 많은 것’은 그 아래에 세월도 함께 거느리기 때문이다. 그 많은 무엇을 넘고 지나온 사람들의 세월.

그 세월은 떨리는 손끝이나 붉어지는 뺨처럼 숨겨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저 떨어지는 이야기를 받는 마음으로 결실과 시간을 함께 거두는 논밭을, 늦은 밤의 출항을 앞둔 부부가 배에 밤참을 싣는 부둣가를, 그림자가 긴 볕에 할아버지의 살갗과 곡식이 함께 마르는 오후의 골목을 돌곤 했다. 그리고 들었다. “같은 고추밭이지만 바위나 흙담 곁의 고추가 더 잘 익는다”는 고추농사꾼의 말을, “꽃을 딸 때 잎까지 함께 따면 식물도 사람처럼 몸살이 난다”는 장미농사꾼의 말을. 걸을수록 받는 이야기의 품은 넓어졌다. 돛배를 오래 몬 어부는 괭이갈매기 날갯짓만으로도 바람의 크기를 읽었고, 50년 경력의 어부는 후각에 의지해 숭어를 품은 바다를 찾았다. 해녀는 “바다는 계절 밖에 있어서 7~8월에 안개가 많이 끼면 겨울 바다보다 더 차가운 것이 여름 바다”라 했다. 약초 캐는 할머니는 “따뜻한 날에도 춥고 알 것 같아도 자꾸 달라지는 것이 산”이라 했으며, 심마니는 사람처럼 성격이 제각각인 산신령들을 40년간 경험한 사연을 말하며 “산을 타는 것은 구하는 것이 아니라 받는 걸음”이라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 문자를 포괄하고 있는지, 그 문자가 얼마나 큰 세계를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몸으로 체득한 정의로 어떤 원형의 가닥을 밝혀가는 이야기들은, 그들이 내뱉는 일상의 잡담 사이에서 아무것도 아닌 듯 흩어지고 만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 몸에 그냥 가둬둘 수도, 흩어지게 둘 수도 없는 것이다. 내 몸을 거쳐 얻은, 오늘의 세상에 대한 가장 정직한 이야기니까.

말은 또 다른 말의 덩어리를 몰고 온다. 사람 사이로 들어가는 여행은 결국 무작위로 던져지는 말들 속에서 내 숨이 머무는 이야기를 찾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숱한 길 위에서 나는 낯선 이와 나누는 대화의 길을 조심스레 닦아 나가지만, 상대의 답을 지나며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말머리를 애써 돌려오려고 하진 않는다. 이야기에는 소리와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양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누군가의 입에서 시작되고 펼쳐지는 이야기의 모양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 안에는 많은 것이 있다.

은퇴를 앞둔 집배원을 만났을 때가 떠오른다. 그의 답은 질문 저 먼 데서 와서 그보다 더 먼 데로 흘러갔다. 군대를 언제 다녀왔는지 물으면 “형님네 소 꼴 베는 걸 거들다 가을에 콩 타작까지 해놓고 아버님께 인사드리고 떠났다” 는 식이었다. 궂은 날은 어찌 배달을 다녔나는 질문엔 때 이른 우박을 용케 피해서 죽지 않은 어린 대파를 떠올리며 “신농씨도 이 녀석들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미소 짓다가, “그 우박에 놀란 닭과 병아리를 품에 안다가 내 머리에 닭의 볏이 돋을 뻔했다”는 농담으로 우회하기도 했다. 답의 영역을 해체하는, 시작도 끝도 없는 구전 같은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느린 구름 같은 답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가슴에 물길이 이는 것 같았다.

때론 삶의 기준을 뒤엎는 이야기를 만나기도 했다. 경로당에서 할머니들이 둘러앉아 고된 시집살이를 기억할 때였다. 한 할머니가 말 했다. 분꽃 봉오리가 사르르 입을 열기 시작할 때면 때를 놓치지 않고 가마솥에 쌀을 안쳐야 했다고, 꽃이 만개한 후에 쌀을 씻었다간 시어머니의 모진 야단을 피할 수 없었다고. 가마니를 손수 짜던 시절을 돌이키던 한 할아버지도 비슷한 얘길 했다. 가마니 한 개를 짜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 물었을 때, “저녁 먹고 가마니 두 개를 짜면 잘 시간이 되었노라”는 답을 줬다. 시간은 시계 밖에서도 흐르고 있다는 것을, 내 행위가 내 시간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전엔 몰랐다.

굳이 무엇을 묻거나 알기 위해 애쓰지 않더라도, 저절로 다가오는 것들도 있다. 이를테면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시 속적삼을 장농 속에 아껴둔다거나, 치매 걸린 시아버지가 요강을 매일같이 부수는 통에 대나무 자리에 낀 똥을 아침마다 손끝으로 닦아낼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들이 흘러갈 때가 그렇다. 내 속의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을 이 순간만큼 선명하게 마주할 때가 있을까. 하지만 어르신들은 내 가슴을 두드린 줄도 모르고 제 이야기에 이끌려 또 다른 이야기를 굽이굽이 몰고 나올 뿐이었다. 그 속내는 끝내 헤아릴 수 없을지 몰라도 나는 안다. 해질녘 대청마루에 겨우 엉덩이를 붙이며 양말을 벗는 기운에 쓸어내버리는 이야기나, 낯선 이를 안방 보온 매트 위에 앉힌 뒤 동그란 쟁반에 가져온 믹스 커피를 앞으로 밀어주고 시작하는 이야기는 정말이지 당해낼 수가 없다는 것을. 그 감춰지지 않는 치우친 마음들이 나는 늘 좋았다.

그러다 길 끝에서 이야기꾼이라도 만나는 날이면, 나도 치우친 마음의 주인공이 되었다. 동서남북으로 달리는 경계 없는 이야기에 애가 달아서 그를 다시 만날 구실을 찾곤 했다. 소곡 주 빚는 서천 한산면에서 한 할머니를 만났을 때도 그랬다. 나는 그의 집을 재차 찾아갈 요량으로 군산까지 건너가 빵을 사가는 호기를 부렸다. 지독한 안개로 일 미터 앞도 보이지 않는 방조제길을 수십 킬로미터나 달려서. 할머니와 나, 빵 봉투가 담벼락에 나란히 등을 기대고 앉았을 때 들리던 이야기는 이런 것이었다. “불 소곡주가 독허지. 말해 뭣햐. 건너 집 아주머니하구 창균 엄마, 순이 엄마, 명자까지 한데 모여 마셨는데, 먹구선 안 울고 안 긴 사람 없어. 여기도 기고 저기도 기고…. 기는 모양이 하나 같이 똑같데. 순이 엄마는 꿩마냥 대가리 끌어 박구. 건너 집 아주머니는 막 뻗치고 드러누워서 죽을깨미 내가 옷 풀러놔 주고 그랬지. 창균 엄마는 창균이가 와서 업구 갔어.”

가끔 내게 묻는다. 이 여행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효용’이란 단어를 대입해 풀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이 걸음은 나에게, 또 세상에 무엇인지. 오래도록 물었지만 물음은 늘 또 다른 물음으로 끝나곤 했다. ‘살아 있는 앎’ 에 닿고 싶어 떠났지만, 결국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넘지 못했다. 길에서 만난 누군가는 그런 나를 꿰뚫듯 “농사꾼은 곡식 한 알에 든 모든 것을 알아야 곡식을 온전히 얻었다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한때 내 입에서 나온 뿌리 없는 말들이 뒤늦게 부끄럽다. 역사가 빠뜨린 시대를 내 손으로 채집한다는 말, 캐내지 않으면 통째로 소멸해버릴 보통 사람의 오늘을 내 품으로 받아내겠다는 말이.

나는 다만 본다. 내 앞을 지나는 풍경을 예전보다 오래 두고 볼 뿐이다. 사람 없는 빈 풍경에 ‘이야기 속의 사람’을 불러오면서. 초가을 갈대밭에 서면, 빗자루 만들 ‘갓 핀 갈대꽃’ 을 찾느라 높고 더운 갈대 속을 얼굴이 벌게져서 헤집는 할아버지가 나타나는 것 같다. 임진강의 처연한 물줄기 곁을 지날 때면, 이 강물을 거슬러 배를 몸으로 끄는 부역을 했다는 ‘이 지역 아버지의 아버지들’의 물살에 닳은 정강이가 보이는 듯하다. ‘눈으로 보고 있는 나의 풍경’과 ‘목소리로 들은 너의 풍경’이 섞이는 그 자리들은 보이다가도 이내 사라지는 어떤 꿈길 같기도 했다.

그 무엇은 먼 풍경에만 찾아오는 게 아니다. 오늘은 거리에 떨어진 볕 한 조각에서 생각을 시작한다. 파킨슨병에도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는 할머니, 그런 아내를 돌보는 정 많은 할아버지가 떠오른다. 그 부부의 집을 찾았을 때, 얘기 중에 시계를 연신 바라보던 할아버지는 아내의 몸을 일으키며 이런 말을 했다. “마당에 잠시 나가면 좋을 거 같아요. 안식구가 아침 저녁으론 몸이 굳어서 추운 바깥에 못 나가지만 오후 두 시 볕에는 잠시 나가 앉아 있거든.”

이 볕은 대체 무엇일까. 부부의 오후 두 시 볕보다 따스해야 할 것이 이 땅에 또 있을까. 눈 뜨면 밀려드는 볕에 나는 어떤 바람을 담아본 적이 있던가. 부부와 함께 쬐던 그 볕을 기억해 내며 감히 헤아린다. 일상의 풍경 귀퉁이마다 살아 있을 누군가의 이야기들을, 그래서 한 뼘 두 뼘 깊어지고 있는 오늘을. 보이지 않는 세상은 보이는 세상보다 언제나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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