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센스의 프로듀서, 디.샌더스

테네시와 LA를 거쳐 서울로 날아온 프로듀서 디. 샌더스는 의심하지 않는다. 이센스와 김심야의 랩도, 자신의 ‘서던 바운스’ 비트도.

터틀넥 스웨터는 무인양품.

지금은 오전 11시. 아침에 잘 일어나나? 하루 네 시간 정도밖에 못 잔다. 어제는 잘 잤다. 9시쯤 일어났나?

하루에 몇 시간쯤 스튜디오에서 보내나? 여기 온 이후론 18시간 정도.

18시간? 오전 11시쯤 스튜디오에 간다. 새벽 3시쯤 나오고. 맛있는 음식만 있으면 된다.

세 번째 한국 방문이 맞나? 일곱 살 때, 열두 살 때, 그리고 지금. 맞다. 완전히 다르다. 지난번에 왔을 땐 첫날에 울었다. 지금은 미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

뭐가 그렇게 좋나? 먹을 것.(웃음) 글쎄. 내가 미국에서보다 여기서 좀 더 유명한 것 같다.

며칠 전 직접 곡을 쓴 이센스의 복귀 곡 ‘손님’이 불쑥 발표됐다. 2014년쯤 이센스의 음반에 참여하는 건으로 소속사인 비스츠앤네이티브스(이하 바나)와 연락을 주고받았다. 결국 무산됐지만. 그러다 바나에서 김심야와의 협업을 다시 제안했고, 한국에 왔다. 스튜디오에서 둘 모두에게 내 비트를 여러 개 들려줬더니, 이센스가 그 비트를 고르고 가사를 썼다.

2014년에도 이미 단짝이자 TDE 소속 래퍼 아이재이아 라샤드의 < Cilvia Demo >에 ‘Heavenly Father’를 수록한 뒤였지만, 지금은 그의 공식 데뷔작 < The Sun’s Tirade >까지 나왔다. 거기에 네 곡을 실으며 프로듀서 디. 샌더스의 위상도 꽤 달라졌고. 그런데도 왜 굳이 한국에 왔나? 그게 옳은 일 같아서다. 한국인인 엄마의 영향도 분명히 있고. 당연히 처음 연락을 받았을 때는 좀 멀리하기도 했다. 그러다 3~4년간 얘기를 나눠보니 이 친구들은 믿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나는 진짜 힙합을 하려고 한다. 기믹을 앞세우는 게 아니라.

이센스는 왜 그 비트를 골랐다고 했나? 붐뱁 말고 다른 것도 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특별히 얘기를 나눈 적은 없다. 그는 여럿 중에 이거, 하면서 골랐을 뿐이다.

제안했나? 아니. 그가 고르도록 내버려뒀다. 나는 누구를 염두에 두고 비트를 만들지 않는다. 내 머릿속에 있는 걸 표현할 뿐이다.

많은 비트 메이커가 특정한 래퍼를 염두에 두고 곡을 쓴다. 물론 가끔 내가 곡을 주게 될 래퍼와 목표를 갖고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나 혼자 컴퓨터 앞에 앉아 집중한다.

디. 샌더스의 비트가 흔히 트랩이라 불리는 건 좀 부적절하다는 생각이다. 그때그때 기분을 곡으로 드러내려 한다. 기분이 들뜬 밤이면 트랩 같은 걸 만들기도 하지만, 결코 전부 다는 아니다. 그보다는 ‘서던 바운스’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난 남부 테네시 출신이고, 그쪽 음악을 들으며 자랐다. 제이지나 서부 힙합보다 릴 웨인, 구치 메인, 티아이를 더 좋아했다. 그런 환경이 당연히 내 음악에 영향을 미쳤다.

가죽 재킷은 블라디스, 팬츠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한 외신 인터뷰에서는 “특정한 사운드를 갖고 싶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아이재이아 라샤드의 곡을 만드는 사람인 한편, 저스틴 비버 같은 팝 스타의 곡을 즐기기도 한다. 그러면서 프로듀서가 누군지 찾아보고. 의외의 발견이 나를 자극한다.

저스틴 비버가 곡을 의뢰한다면 어떤 비트를 만들고 싶나? 내가 만든 걸 일단 쭉 들려줄 거다. 그리고 뭘 좋아하는지 보겠지.

쌓인 비트가 몇 개쯤 되나? 몇백 곡? 스튜디오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고, 평생 그렇게 살 거다.

큰 명성을 얻고 나면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난 특별히 그런 사람이 아니라…. 거기에 대해선 큰 걱정이 없다. 내성적이고 꽤 느긋하다. 수동적인 면도 있는 것 같고.

대개 밤에 만든 곡일 거란 추측을 했다. 보통 새벽에 더 기운이 난다. 스튜디오에 가면 항상 친구들이 있고, 그 주변 분위기의 영향을 받아 곡을 쓰곤 한다.

조언을 구하기도 하나? 그렇지 않다. 본격적인 작업은 혼자 시작해 혼자 끝낸다. 내가 이상한 시도를 해도 그 누구도 나를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정말 형제 같은 친구가 아니라면 주변의 얘기 때문에 부담을 갖고 싶지도 않다.

그렇다면 곡을 완성한 뒤 가장 먼저 누구에게 들려주나? 아마도 아이재이아. 그는 언제나 비트를 원하니까. 그렇지 않을 때는 그냥 보관해둔다.

자기가 만든 비트를 전혀 의심하지 않나? 거의. 누가 그걸 좋아하면 기쁘겠지만, 그 전에 내가 좋다는 확신이 서야 한다. 안 그러면 지워버린다.

지금은 LA에서 지내지만 남부, 그중에서도 테네시 주는 어떤 곳인가? 애틀랜타라면 널리 알려져 있지만. (고향인) 잭슨?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작은 도시다. 별로 할 건 없다. 그렇다 보니 아이들이 자라면서 꽤 많은 문제에 휘말리는 동네이기도 하다. 나는 착하게 지내려고 했지만.

거친 곳인가? 그보다는 지겹다. 선선한 바람과 풀밭…. 자연을 즐기긴 좋다.

LA로 옮긴 뒤엔 어떤 변화가 생겼나? LA엔 스튜디오가 엄청나게 많다. 그래서 테네시에 살 때와는 달리 매일 스튜디오에 갈 수 있다.

대체 스튜디오에 있는 것 말고 다른 일은 안 하나? 맛있는 것 먹으러 다닌다. 그리고 스튜디오에 있는 거 하나도 안 지겨운데.

환경이 달라진 점이 곡에도 영향을 미치나? 남부는 정말 느긋하다. 그냥 앉아서 쉬는 거다. 서두르는 일이 없다. LA는 비슷하지만 좀 다르다. 비 안 오지, 날씨 끝내주지. 계속 오늘 좀 좋은 날이네, 같은 기분이다. 남부는 사나흘 내내 비가 올 때도 있다. 날씨가 변화무쌍하니 여러 감정이 생긴다.

서울 생활도 꽤 즐기는 듯 보인다. 트위터에 “나 여기서 꽤 유명인 인 것 같아”라고 농담조로 쓰기도 했고. 많은 사람이 메시지를 보내온다. 팬이에요, 더 많은 음악을 듣고 싶어요, 등등. 미국에선 주변 친구들이 그런 얘길 해줄 뿐이다.워낙 뮤지션이 많으니, 서로 경쟁하는 인상이랄까. 서울은 다 같이 힙합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좀 전에 “바나는 진짜 힙합을 하려고 한다”고 했다. 진짜 힙합이 뭘까? 20~30년 후에도 클래식이라 부를 수 있는 것. 그러려면 묘사와 이야기가 생생하고 공감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이를테면 와, 이 친구도 나랑 같은 상황에 처해 있었네, 라는 기분이 드는.

요즘은 예고한 대로 김심야와의 믹스 테이프를 작업 중인가? 선 공개된 ‘Chamber’ 데모는 그의 전작 < KYOMI >의 미래지향적 비트와 완전히 달랐다. 이센스가 완성된 래퍼라면, 김심야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믹스 테이프에는 그 외에도 여러 종류의 곡들이 실릴 예정인데, 그가 화가라면 나는 거기에 적절한 캔버스를 만든다 말할 수 있다.

협업의 형태지만, 여전히 곡은 혼자 만드나? 내가 만들고 싶은 곡을 만들지만, 심야를 염두에 두고 곡을 쓴다. 보통 때와는 좀 다른 방식이라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나 내가 편한 방식으로 작업할 순 없다. 나도 그러면서 성장하는 거고.

가사나 주제가 비트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나? 특별히 그렇진 않다. 비트를 먼저 만드는 편이라.

디. 샌더스의 비트엔 어떤 가사가 가장 잘 어울리나? 관계에 대한 얘기? 연인이든 친구든 부모님이든.

한국계인 앤더슨 팩의 대성공이 자극이 되기도 하나? 힙합 신은 공개적으로 차별에 반대하지만, 은근한 ‘순혈주의’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제는 음악이 말하도록 내버려두면 된다고 생각한다. 앤더슨 팩 역시 음악으로 증명했다. 힙합 신은 변하고 있다. 사실 나는 처음에 앤더슨 팩이 한국계인지도 몰랐다. 알고 나서도 오, 나와 비슷한 사람이구나. 멋진데, 라고 했을 뿐이다. 보너스 같은 거지.

켄드릭 라마로 대표되는 레이블 TDE와의 관계는 정확히 어떤가? 정식 멤버인가? TDE는 특별히 프로듀서와 계약을 맺진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가족 같이 지낸다. 아, 바나와의 계약서엔 어제 사인했다.

떠들썩한 연말이 지나고 난 1월은 별 기분이 다 드는 달이기도 하다. 겨울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1월 3일에 돌아가셨거든. 글쎄. 그가 어디서든 나를 자랑스러워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계속 우울하고 그런 건 아니다. 내가 울어도 세상은 날 위해 멈추지 않고 잘만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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