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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리가 섹스에 미치는 영향

2017.02.03유지성

완전한 어둠 속에서, 섹스는 낮도 밤도 없다.

도시의 밤은 여전히 밝다. 집 밖에서도, 방 안에서도 그렇다. 불을 다 끄고 블라인드를 내리거나 커튼을 쳐도, 완전한 암흑은 꽤 요원하다. 겨울에 알맞은 두꺼운 커튼이라면 어느 정도는 가능하겠으나, 각종 가습기나 전열기기 표시등이 그 또한 무용하게 만들곤 한다. 창밖과 옆방에서 넘어오는 각종 소음이 빼앗아가는 조용한 밤은 또 어떻고.

그냥 내버려두고 잔다. “너무 어두우면 오히려 잠이 안 온다”며 화장실 불이라도 희미하게 켜놓고 자는 친구들을 이해하진 못했지만, 일찍 누워 상쾌하게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 날(혹은 일찍 일어나야만 하는 날)은 부러 창에 최대한 가까이 붙어 자기도 했다. 반면 정신없이 취하거나 아무 일정이 없는 주말을 앞두고는 라디오나 탁상시계에서 나오는 희미한 불빛까지 죽여야 안심하고 잠들 수 있었다. 중간에 깨는 건 왠지 그때까지의 잠을 ‘리셋’하는 기분이니까.

즉,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의로 잠을 통제할 수 있을 때 그렇게 했다. 그러다 일어나면 이미 저녁이라 당황스러웠던 적도 있지만…. 어쨌든 그 대개 여덟에서 열몇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았다. 당연히 휴대전화는 꺼둔 뒤였다. 그렇게 어떤 의미에서는 무결한 혼자만의 하루를 얻었다.

그렇게 사방 캄캄한 데 혼자 누워 있다 섹스에 대한 생각을 했었나? 섹스야말로 그 누구의 방해도 없이 서로에게 강력하게 집중하는 일이라면, 그리고 그것을 만족스러울 수준으로 해냈을 때의 흥분이야말로 잊을 수 없는 것이라면, 어둠은 세상을 차단하고 침대 위엔 단둘만 남게 된다. 음악은 틀면 트는 대로 기억에 남고, 안 틀면 그런대로 좋을 것이다.

잘 안 보인다. 당연히. 불을 끄고 침대로 돌아올 땐 더듬더듬 좀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잘 숨겨둔 콘돔과 크리넥스는 또 어떻게 찾나? 너무나 아름다운 너를 더 멋지고 자세히 보고 싶거나, 시시각각 능숙한 몸놀림이야말로 섹스의 목표라 생각하는 쪽이라면 이 방법은 알맞지 않다. 잠자리에서 안경만 벗어도 몸과 주변의 정확한 지점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데, 이것은 아무리 일정 시간 후 암순응이 된다고 해도 난이도가 있다.

하지만 더욱 잘 들린다. 손끝부터 페니스 밑동까지 온몸의 피부 조직이 어둠 그 자체를 경계하듯 바짝 일어선다. 방의 냄새마저 달라진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 게다가 이 아무도 침범하지 않는(사실은 그렇지 않다. 가스 점검이나 예상치 못한 택배라도 오면, 우왕좌왕 난리가 날 것이다)

밀실에서는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맘. 식탁이 보여야 식탁이지, 안 보이면 그건 어떤 알맞은 높이의 구조물일 뿐이다. 거기 올라가 있는 것이라고 해봐야 나무접시 몇 개와 수저통쯤이겠지만, 그게 땅바닥으로 떨어지면 와장창 소리에 큰 사고라도 친 것 같은 못된 쾌감이 생긴다. 그렇게 좀 부딪히고, 침대에서 굴러 떨어지기도 하고, 바닥을 기어 다니다 러그를 이불 삼고, 과연 이곳엔 빛이 없으니 서로 좀 더 거칠게. 동시에 보이지 않는 너를 더욱 가까이서 끌어안고 싶은 맘. 그러다 한쪽이 어딘가 몰래 깨물면 소리를 꿱 지르기도 하겠지.

그 유일하고 가깝고 강렬한 소리라면 또 어떤가. 불 끈다고 동굴처럼 메아리가 생기는 건 아니겠지만, 밤마다 방에서 음악을 들을 때면 “밤소리는 낮보다 멀리 가니 볼륨을 줄이라”는 부모님의 호통이 가장 진실처럼 느껴지던 때. 아니, 사실 밤인지 낮인지 시간을 가늠하기도 어렵겠지만. 거리에 인적이 드문 겨울날이라면 활활 뜨겁게 돌아가는 보일러 소리 정도가 들리려나? 맞춰둔 온도를 가뿐하게 이겨낸 체온으로, 그마저 곧 꺼져버린다. 그런 정적 속에서 살이 부딪히는 소리, 그것이 점점 땀에 젖어 미끄러워지는 소리를 더욱 섬세하게 듣게 되는 때.

그렇게 나뒹굴다 마침내 번쩍 불을 켜고 나면, 우리의 얼굴은 보기 좋게 달아올라 있을까? 말 그대로 눈부신 순간. 얼굴뿐만 아니라 몸도 깨끗하진 않을 텐데. 여기저기서 뭔가 묻고, 빨갛고, 젖은 몸으로 더욱 어둡고 메아리치는 욕실로 향할 수도 있겠지. 빈 플라스틱 욕조를 두드리는 소리가 이렇게 요란했었나. 뜨거운 물을 틀면 멈춘 보일러가 다시 돌아가고, 그 좁은 공간에 온기와 습기가 함께 퍼진다. 얼굴과 몸은 함께 더 달아오른다. 여전히 밤낮은 모른다. 그러다 배가 고프면 그때가 아침일 테고, 쏟아진 수저를 하나씩 주워 함께 밥을 먹으면 좋을 것이다.

    에디터
    유지성
    일러스트레이터
    KIMIAND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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