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는 초콜릿과 함께

위스키 안주를 꼽을 때 초콜릿은 늘 선봉에 선다. 그런데 어떤 위스키와 어떤 초콜릿이 잘 맞는다는 걸까? 위스키를 어디서 얼마큼 숙성시켰는지 하나하나 따지면서도, 함께 먹는 초콜릿과는 주파수를 제대로 맞춰보지 못했다. 2월이라서가 아니라, 위스키에 푹 적셔 먹고 싶어서 초콜릿을 꺼냈다. 쇼콜라티에와 바텐더에게 어떤 위스키가 좋을지 물었다.

빅피트 크리스마스 에디션 가벼운 피트 향이 감도는 위스키와 초콜릿의 조합은 늘 좋았다. 이때 먹는 초콜릿은 달콤한 맛이 돋보이는 것보다는 산도와 스파이시한 맛이 잘 드러나는 것을 고르는 게 좋다. 언젠가 초콜릿 전문점 삐아프에서 구매한 싱글 오리진 카카오 판 초콜릿 중에 경쾌한 산미가 돋보인 초콜릿이 있었는데, 툭 불거지는 것 없이 빅피트의 향과 조화롭게 어울렸다. 임성은(‘헬카페’ 대표)

발베니 싱글배럴 15년 셰리 캐스크 얼마 전 ‘살롱 뒤 쇼콜라’ 전시회에 갔다가 어느 독일 쇼콜라티에가 판매하는 초콜릿을 샀다. 하트가 그려져 있고, 체리가 섞여 있는 초콜릿이었다. 누군가에게 선물할까 고민하다가, 어울리는 위스키가 생각나 내가 먹었다. 발베니 15년 셰리 캐스크는 풍성하고 농밀하고 진득할 정도로 스파이시한 맛이 강하게 드러나는 위스키인데, 과일 맛이 스민 초콜릿에 딱 떨어지듯 잘 맞았다. 셰리 캐스크에서 오는 이 강렬한 스파이시함은 새로운 병을 열자마자 바로 마시면 좀 과하게 느껴질 정도여서 한 잔 따르고 좀 더 부드러워질 때까지 기다렸다 천천히 마시는 걸 추천한다. 임병진(‘마이너스’ 대표)

메이커스 마크 평소 아이스크림을 만들 때 술을 굉장히 많이 사용한다. 싱글 몰트위스키도 다양하게 사용해보며 그 차이를 실험하는 편이다. 아이스크림은 우유 크림이 들어가기 때문에 어떤 술을 넣어도 어딘지 따뜻한 느낌이 나고, 술의 향이 맛의 끝에서 슬쩍 올라온다. 바닐라 향이 매력인 메이커스 마크가 잘 어울렸던 것 같다. 다크 초콜릿을 넣어서 만드는 아이스크림엔 과실 향이 좋은 체리 키슈나 코앵트로를 많이 사용한다. 최호준(‘펠앤콜’ 대표)

맥캘란 파인오크 12년, 글렌피딕 12년 세세하게 파고들어 선 긋기를 하지 않아도 위스키는 기본적으로 초콜릿과 두루 잘 어울린다. 다크 초콜릿이 있다면 어떤 위스키라도 부드럽게 어우러질 것이다. 만약 건포도나 살구가 들어간 화이트 초콜릿이 앞에 있다면, 어울릴 만한 위스키가 두 가지 떠오른다. 맛과 향에서 프루티한 기운이 솟아나는 위스키인 맥캘란 파인오크 12년, 글렌피딕 12년을 곁들여본다. 김진환(‘커피바K’ 바텐더)

라프로익 15년 200주년 기념 한정판 200주년을 기념해 출시된 라프로익 15년을 마셔봤는데, 기존의 라프로익보다 약간 더 단맛이 두드러지는 게 특징이었다. 카페 홀드미 매장에서 핫초코를 만들 때 쓰려고 사다 놓은 발로나 둘세 커버처를 곁들이니 잘 어울렸다. 이 초콜릿은 약간의 소금 맛과 캐러멜 맛이 있는 편이라 라프로익 특유의 피트한 향과 휘감기듯 어우러지는 느낌도 좋았다. 문득 로이스에서 출시한 야마자키 싱글 몰트위스키 에디션도 이 위스키와 함께 맛보고 싶어졌다. 잘 어울릴 것 같다는 기대감이 상상만으로도 부풀었다. 김용준(‘홀드미’ 대표)

글렌모린지 시그넷 글렌모린지 시그넷은 몰트 표면을 더 강한 열에 로스팅해서 초콜릿색을 띠게 만든 뒤 양조하는 위스키다. 태생 자체가 초콜릿과 잘 어울릴 수밖에 없다. 로스티드 몰트, 초콜릿 몰트라고도 부르는 이 원료는 흑맥주를 만들 때도 사용하는데, 흑맥주에서도 연상되는 초콜릿 향, 커피 향이 고스란히 위스키에도 녹아들었다. 화이트 초콜릿만 아니라면 어떤 초콜릿이라도 이 술 앞에서 스르르 녹아내릴 것만 같다. 유성운(<싱글 몰트위스키 바이블> 저자)

글렌드로낙 18년 셰리 캐스크 풍미가 강한 위스키가 적당히 진한 다크 초콜릿과 잘 어울린다. 글렌드로낙은 ‘셰리몬스터’라는 별명답게 셰리 캐스크 비중을 95퍼센트까지 올린 대표적인 위스키인데, 한잔 마시면 의외로 둥글둥글하고 부드럽게 다가온다. 다크 초콜릿 맛을 무너뜨리지 않을 정도의 부드러운 셰리 캐스크 풍미가 초콜릿과 함께 어우러지면 입 안에서 저절로 강약 조절이 되는 느낌마저 든다. 셰리 캐스크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위스키인 맥캘란 18년과 비교 테이스팅을 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서용원(‘헬카페 스피리터스’ 대표)

제임슨, 글렌 그랜트 음식도 그렇고, 초콜릿도 그렇고, 술과 매칭할 때는 크게 두 가지 관점으로 나눠서 고려한다. 어느 한쪽이 밀리지 않도록 강한 것 두 가지를 함께 매칭하는 경우와 서로 다른 특징이 있는 것을 매칭해 보완하는 경우. 나는 후자를 더 선호한다. 언젠가 쿨일라 12년처럼 피트 향이 강한 위스키에 다양한 초콜릿을 매칭하는 실험을 해봤는데 다크 초콜릿 앞에선 쿨일라의 휘발성만 강조되는 것 같았다. 진하디진한 다크 초콜릿에는 오히려 아이리시 위스키 제임슨이나 글렌 그랜트처럼 굉장히 부드러운 위스키가 잘 맞았다. 엄경섭(‘디스틸’ 대표)

위스키 잔은 리델 베리타스 스피릿 글라스.

탈리스커 스톰 쇼콜라디제이는 술과 초콜릿이 어떻게 어우러지는지 연구하는 공방이자 숍이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기본적으로 맛에 대한 모험심이 강하고, 술에 대한 관심도 높다. 술을 액체 상태 그대로 넣어 만드는 위스키 봉봉의 경우, 탈리스커 스톰과 어우러졌을 때가 가장 좋았다. 초콜릿의 단맛이 느껴지기 직전에 피트 향과 스파이시한 맛이 밀려들어 덜 느끼하고 개운한 느낌을 준달까? 초콜릿을 위스키 안주로 먹는다면 견과류나 오렌지가 더해진 초콜릿이 좋을 수도 있겠지만, 위스키 봉봉은 초콜릿이 주인공이니까, 우드 노트보다는 피트 향이 더 즐거운 반전을 선사한다. 손님들은 칼바도스가 들어간 봉봉도 좋아하는 편이다. 이지연(‘쇼콜라디제이’ 대표)

글렌 파클라스 105 가나슈 스타일의 생초콜릿에 술을 넣어 만들 때는 개성과 도수가 강렬한 술을 선호한다. 액체가 그대로 들어가는 위스키 봉봉보다는 더 실험적인 술을 과감히 시도할 수 있다. 초콜릿에 부드럽게 잘 녹아들어 이것 자체만 먹어도 충족감이 온다. 글렌 파클라스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한 조합이고, 샤르트뢰즈 그린이나 투넬 압생트 같은 허브 리큐르도 반응이 좋다. 이지연

버팔로 트레이스 쇼콜라디제이에서는 두 가지 종류의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내는데, 바닐라 초콜릿에는 정말 어떤 술을 떨어뜨려봐도 다 잘 어울린다. 심지어 진을 넣어도 그것대로의 매력이 살아나니까. 다크 초콜릿 아이스크림에는 버번이나 체리 리큐르를 추천하는 편인데, 개인적으로는 버팔로 트레이스 버번을 좋아한다. 느끼하지 않으면서 버번치고는 스파이시한 맛이 조금 있어 다크 아이스크림에 맞서 밀리지 않았고, 그 맛이 너무 강해서 아이스크림이 죽지도 않았다. 이지연

아란 아마로네 캐스크 피니시 카카오봄에서 판매하는 초콜릿 중 ‘위스키봄’이라는 제품에는 아란 아마로네가 들어간다. 마일드하면서도 섬세한 맛이 나는 이 위스키에는 밀크 초콜릿 40퍼센트와 다크 초콜릿 60퍼센트를 블렌딩해 사용한다. 보통 식사 끝에 식후주와 초콜릿을 먹는다면, 이 초콜릿은 그 두 가지를 한꺼번에 먹는 느낌이다. 고영주(‘카카오봄’ 대표)

오큰토션 쓰리우드 쓰리우드는 로우랜드에서 생산하는 오큰토션 중에서도 단맛이 좀 강한 편이다. 아메리칸 버번 캐스크에 10년 숙성하고, 올로로소 셰리 캐스크에 또 1년, 페드로 히메네즈 캐스크에 1년 더 숙성시키는 과정만 봐도 그 단맛이 느껴진다. 달콤한 맛이 강조된 초콜릿, 견과류 프랄린 등이 잘 어울린다. 손태범(‘키퍼스’ 바텐더)

1800 아녜호 위스키뿐만이 아니라 데킬라도 초콜릿과 의외로 잘 어울린다. 멕시코에서 호박색을 띠는 숙성 데킬라에 주로 매콤한 음식을 곁들여 먹는다. 그게 떠올라 집 앞 수제 초콜릿 가게에서 사온 매운맛의 초콜릿을 1800 아녜호에 곁들여봤는데 역시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아주 잘 어울렸다. 핫초콜릿에 칠리 파우더와 시나몬을 넣어 만드는 멕시코 음료 ‘스파이시 아즈텍 핫초콜릿’이 연상되는 맛이다. 현지에선 이 음료에 데킬라나 메즈칼을 추가해 칵테일로 즐기기도 하는데, 매운 초콜릿과 데킬라 매칭은 생각보다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손태범

디플로마티코 레제르바 익스클루시바 위스키와 초콜릿도 좋지만 럼과 초콜릿도 놓칠 수 없는 조합이다. 숙성한 럼은 들큰한 맛이 있어 유제품 계열과 잘 어울린다. 커피, 크림, 코코넛 크림, 견과류 등과 함께 칵테일로 많이 만들기도 하니까. 그래서 디플로마티코 숙성 럼과 화이트 초콜릿을 함께 즐겨봤는데 역시 박자가 딱딱 들어맞는 기분이었다. 홍태시(‘더 버뮤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