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진짜 서울의 야경을 찾아서

2017.02.13GQ

서울의 밤은 어디나 불야성이다. 진짜 서울의 야경은 어느 곳에서 찾아야 할까.

전에 다니던 직장은 강남구 신사동에 있었다. 강남이 싫어서 근처에 가기를 꺼리는 사람들에게도 그나마 가장 덜 강남적이라고 위안을 삼을 수 있는 위치와 분위기. 나에게도 신사동은 그랬다. 퇴근 후 친구들과 놀기 위해 신사동에서 약속을 잡는 일은 결코 없었다. 야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신사동에 남아 저녁 먹을 곳을 찾아 돌아다니는 길은 무척이나 붐볐다. 아직 쇼핑을 덜 마친 사람들과 관광객, TV나 책자에 나온 맛집을 가려는 듯 보이는 무리, 패션이나 미디어 업계에서 일하는 이들이 가까운 곳을 방문하는 모습이 보였다.

언제나 나는 “갈 곳이 없어, 갈 곳이” 혀를 차며 맥도날드에나 갔다. 정통을 표방하며 호기롭게 생긴 가게는 금세 문을 닫곤 했다. 유행하는 먹거리의 체인점이나 싼 생맥주와 감자튀김을 파는 가게들만 불황을 몰랐다. 가로수길은 그리 길지도 않다. 신사동의 밤은 아무 기능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도 늦은 밤에 빈 택시를 기다리며 팔을 젓는 사람들은 도대체 다 어디 있었던 걸까? 회식을 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적은 일행이 모여 조용하게 술을 마시는 가게는 드물고, 수제 맥줏집에 가도 단체 손님이 많았다. 회식은 캠핑을 하는 듯한 기분을 주는 술집에서 치렀다. 과연 단체 손님이 주를 이뤘다. 2차를 가기 위해 나선 거리에서는 낮에 손님을 모으던 화장품 가게와 옷 가게, 밥집과 레스토랑 대신 노래방, 토크바, 단란주점이 눈에 들어왔다. 목소리가 높아진 사람들이 어깨와 어깨를 걸고 노래방으로, 크랜베리 보드카를 마시며 다트 게임을 할 수 있는 바로 자리를 옮겼다. 집에 가기 싫은 사람들, 집에 못 가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을 법한 밤의 놀이 공간에서 시간을 채우다 대로로 쏟아져 나왔다.

신도시라는 공간이 생기고 나서 을지로에 가는 일이 늘었다. 여름, 해질 무렵 아직 자리가 많이 남은 만선 호프에 가 시원한 생맥주와 마른안주를 먹다가 할머니가 테이블마다 들러 파는 간략한 김밥을 구원처럼 여기며 사 먹는 것을 좋아했다. 노란 가로등 조명이 켜지면 손님들은 어느새 꽉 차고 누가 누구에게 이야기하는지 모를 정도로 소음이 올라간다. 그때가 되면 미련 없이 일어나 근처에서 한 잔 더 할지, 종로 술집에 갈지, 더 큰 ‘동’으로 갈지 고민에 빠졌다. 신도시가 생겨 다름없이 가게 되었다. 좋은 짝이 생긴 기분으로. 밤의 을지로 골목은 새카맣다. 작은 호텔의 간판과 몇 호프집만 불을 밝히고 있다.

그 안에서 신도시는 소리로 말한다. 노래가 슬며시 들리고, 건물이 약간 울리는 느낌을 받는다. 계단을 오르면서 점점 소리가 커지고, 장르까지 명확하게 판단될 때면 문이 나온다. 파티가 열리는 날은 멀리서도 무슨 음악이 나오는지 안다. 건물 입구에서 검은 점처럼 사람들이 움직인다. ‘오늘도 경찰이 올지도 모르겠네’ 걱정을 안고 들어서면 여지없이 네온 빛과 춤추는 사람들과 스모그가 얽혀 있다. 경찰이 출동해서 다 잡아간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광경이다. 하지만 낡은 건물 5층에 모인 선량한 손님과 주인은 어느 하나 불법을 행하지 않으므로 경찰은 민원이 들어왔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선다. 음악 소리를 조금 낮추고 파티는 계속된다. 바람을 쐬거나 담배를 피우러 옥상에 올라가면 을지로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비슷하게 낡은 건물은 아무런 기척도 내지 않고 서 있다. 멀리 작은 불빛만 보인다. 대부분 젊은 사람들은 서로의 옷차림을 관찰하고 친구의 친구가 아니냐고 말문을 튼다. 야경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 보인다. 플라스틱 술잔에 남은 술을 조금씩 흘려 넘기고, 담배를 피우고 대화를 나누는 사교파티는 더운 날도 추운 날도 옥상에서 계속된다.

얼마 전 합정역 3번 출구 앞으로 이사를 했다. 선전 문구처럼 “지하철 역과 걸어서 1분 거리”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든 걷든 집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합정역 사거리를 거쳐야한다. 다리를 건너거나 타기 위한 시내버스, 안양이나 파주를 향하는 좌석버스, 공항버스까지 온갖 버스가 다 합정역을 지난다. 합정역은 지붕이 없는 일종의 터미널 같다. 막차가 끊길 즈음 되면 귀가하려는 사람들로 정류장이 꽉 찬다. 홍대 주변에서 놀던 사람, 어디 시내까지만이라도 나가보려는 사람, 여기가 아니면 안 되는 사람들이 험악하게 모여든다. 모든 버스는 만석으로 목적지를 향해 떠난다. 차가 끊기고 더 깊은 밤이 되면 슬슬 포장마차나 음식 트럭이 나온다. 아무도 없어서 둘러보면 아주 높은 확률로 트럭 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아주머니가 주인인 떡볶이 가게가 가장 먼저 문을 연다. 맛은 있는데 한 그릇에 3천원이라 손님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횡단보도 바로 건너편에서 달걀과 어묵, 면발이 잔뜩 든 우동을 같은 가격에 팔아서다.

다시 건너면 TV에 안 나오는 게 이상할 정도로 맛있는 떡볶이 트럭이 있다. 싸달라고 하면 봉지가 탱탱하게 담아주는데 1천5백원이다. 집 앞 단골집을 찾은 마음으로 영업시간과 나오는 날을 물어봤더니 시간도 제각각, 나오는 날도 다 달랐다.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있는 일은 드문 모양이다. 무엇을 언제까지 기다리는지 알 수 없는 승객들은 어디라도 좋은 것처럼 비어 있는 트럭의 자리를 찾아 음식을 만드는 열기 안에 얼굴을 묻고 먹는다. 서두르는 법 없이 천천히 시간을 보낸다. 혼자인 일이 많다. 먹는 걸 마친 사람들은 택시를 잡거나 바로 앞 24시간 커피 전문점으로 몸을 숨긴다. 바깥에서 바라본 커피 전문점의 투명한 창 너머에는 졸거나 휴대전화을 들여다보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어 노점 트럭에도 지치지 않고 새로운 손님이 몰려든다. 매표소도 표지판도 없지만 이곳은 대합실이다. 어디론가 가기 전에 시간을 때우거나 채비를 하는 일이 복잡한 교차로 위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너무 서울 풍경 같지 않아 갸우뚱해질 때면 가끔 경기도행을 묻는 택시 기사들이 나타난다. 내가 지금 서울의 밤 속에 있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이다. 사람들 이 몇 번 차고 빠져 새벽을 지나 동이 트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흔적은 사라지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바쁘게 오간다.

서울의 밤이 놀라운 점은 어딜 가든 조용하지 않다는 것이다. 홍대 일대의 놀기 좋은 밤 거리, 영등포처럼 아직도 사창가가 남아있는 거리들, 동대문의 밤 시장, 할매 순대국에 간판을 새로 달아줘야 할 것만 같은 이태원의 클럽가. 유흥가가 아니더라도 편의점이 너무도 많다. 주택가에 있는 술집과 치킨집은 새벽까지 문을 연다. 집에 있어도 여름이면 아침까지 야외석에서 술을 마신 사람들의 고성방가 때문에 깨는 일이 흔하다. 이런 서울 안에서 밤에 가장 고요한 곳을 딱 한 군데 알고 있다. 한강, 겨울의 한강. 10년 넘게 한강 근처에 살았다. 그 동안의 인상은 한결같다. 지긋지긋한 행인이 한 사람도 없다. 아주 가끔 무장을 하고 자전거를 탄 사람이 지나갈 뿐이다.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도 보인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도 있다. 모두 조용한 곳을 찾아온 것만 같다. 겨울밤의 한강은 그림책 위에 검게 덧칠한 망친 그림처럼 보인다. 모두가 퇴근하고 난 텅 빈 사무실 같기도 하다.

한강의 밤은 아름답지만 전망대에 올라가 아름다운 야경을 담으려는 마음으로 이곳을 찾는 이는 없다. 조도의 차이가 아니라 아무도 이곳에서 뭔가를 바라지 않기 때문일 거다. 배드민턴도 칠 수 없고, 굳이 치맥을 할 일도 없고, 데이트를 하다가는 너무 추워서 오자고 한 파트너를 책망하게 될 것이 뻔하다. 방문과 창을 꼭꼭 닫아두고 넷플릭스나 보는 것이 가장 평화로운 밤이라고 느끼다가도 정말로 거룩한 밤을 맛봐야 할 때는 옷을 단단히 두르고 한강에 간다. 검은 평야 같은 밤의 한강을 바라보면 서울이 어떤 도시인지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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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GQ 피처팀
    포토그래퍼
    표기식
    박의령('유어 서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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