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뮤직 10

딱히 종말론이 떠돌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지구적인 정치, 사회적 불안으로, 어느 때보다 사람들의 낯빛은 어두웠다. 피부색이 아니라 검은 것을 검게 그리는 음악이 있었다.

1. 인터스텔라 훵크 < Caves of Steel EP > 코스믹 디스코 뮤지션이라면 무척 적절했겠다, 싶은 그의 이름만으로 인터스텔라 훵크의 음악을 짐작할 순 없다. 지난 연말 발매된 최근작 < Cave of Steel >은 그의 ‘일렉트로’한 우주 중에서도 블랙홀에 닿아 있는 것처럼 짙게 어둡다. ‘철의 동굴들’이라는 음반명이야말로 이보다 알맞을 수 없다는 인상으로, 차갑고 의도적으로 잡음을 유도해 잔뜩 뭉갠 신시사이저와 드럼 머신 소리를 부각시켰다. 그렇게 아날로그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잡음의 울림으로 캄캄한 공간을 장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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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트론 < Enter > 기계로 인간적인 소리를 만드는 대신, 기계를 기계로서 대하는 데서 출발했다. 일렉트로가 테크노의 꼴을 갖추기 직전, ‘프로토’라는 말 또한 전자적이지 않은가.

 

 

2. 벤 루카스 보이센 < Spells >  ‘모던 클래식’ 앨범이지만 그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다. 하프, 첼로, 드럼 등은 실제 연주, 가장 큰 비중의 피아노는 프로그래밍이다. 컴프레서, 에코, 딜레이 등의 이펙터도 적극 사용했다. 그럼에도 소위 ‘인간미 넘치는 음악’의 특징으로 일컬어지는 공기감, 서정성 등이 짙으면 짙었지 옅지 않다. 벤 루카스 보이센은 이것이 “메타 레벨의 창작”임에도 “우연이나 실수를 배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깊은 탄식 같은 음악은, 기계에게도 인간에게도 중력은 똑같다는 걸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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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이노 < Music For Films > 존재하지 않는 영화를 위한 영화음악이다. ‘앰비언트’는 공기가 아니라 공기 같은 것이고, 가상과 실제의 구분이 무의미한 세대에 이르러 더욱 명징해졌다.

 

 

3. 에스. 잉글리시 < General Dimensions > 불시착한 석조 우주선 같은 앞면과 철골 구조를 드러낸 뒷면의 커버를 합치면 이 음반을 설명할 수 있다. 보편적인 인더스트리얼 댄스 음악이 소리를 일그러뜨리고 으깨는 행위 자체를 목표로 한다면, < General Dimensions >는 ‘콘크리트에서 핀 장미’에 가깝다. 굉음으로 무장한 전반부는 음반의 끝으로 향하며 금이 가듯 분해되고, 드림 팝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을 서정성을 드러낸다. 템포는 느려지고 여백이 늘어난다. 철골은 함몰을 표현하는 도구가 아닌 곧 알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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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바레 볼테르 < Three Mantras EP > 카바레 볼테르가 피운 댄스 음악의 신호탄. 끝없는 보컬 샘플의 반복, 정확한 박자와 거칠게 마감한 타악기(와 드럼 머신). 모두 웃으며 춤출 필요는 없다.

 

 

4. 보리스, 메르츠보우 <現象> 보리스에는 2000년대 이후 ‘헤비니스’의 면면이 모두 담겨 있다. 단순한 개러지 록부터 유장한 둠 메탈까지. 보리스가 그들의 대표곡을 리듬 없이 다시 녹음하고, 일본 노이즈 음악의 전설 메르츠보우가 덧붙였다. 일종의 ‘스플릿 앨범’인데 서로 교류한다는 점에서 그렇게 불러도 될지 모르겠다. 각각의 노래는 두 대의 턴테이블에서 함께 틀도록 고안되었다. 청자는 한쪽의 볼륨을 조절해가며 일종의 연주를 할 수 있다. 단 한 번뿐, 더 이상은 불가능한 ‘현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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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츠보우 < Pulse Demon > 메르츠보우는 메르츠보우뿐이다. 그를 설명하는 데 리듬, 멜로디, 하모니 바깥의 음악적 단어 ‘펄스’, 그리고 ‘데몬’만큼 적절한 것도 없겠다.

 

 

5. 베어 본즈, 레이 로우 < Hacia La Luz > 베어 본즈, 레이 로우는 지금 ‘모던 사이키델릭 전자음악의 왕자’라 불린다. 그것을 좀 더 음악적으로 간단히 쓰자면 현대적 크라우트 록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음반을 녹음하는 데는 2주가 걸렸을 뿐이고, 이 또한 즉흥연주를 장려하는 일군의 크라우트 록(크라프트베르크의 뒤셀도르프 스쿨보다 탠저린 드림의 베를린 스쿨에 가까운)의 성격과 어울린다. 밴드로부터 점점 개인화되며, 크라우트 록이 앰비언트로 진화하던 시기의 양상이 2016년의 소리로 둔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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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시 라 템펠 < Ash Ra Tempel > 탠저린 드림을 박차고 나온 클라우스 슐츠와 마뉴엘 괴칭은 솔로로 대단한 명성을 얻지만, 이미 ‘록이 아닌 스페이스 사운드’에 대한 설계도를 갖고 있었다.

 

 

6. 요시노리 하야시 < The Forgetting Curve EP > 어떤 음악을 ‘엑스페리멘탈’이라 부르는 것은 지향점이 장르처럼 굳어진 경우다. 요시노리 하야시는 앰비언트와 하우스와 덥의 최전선을 한 장의 EP에 모았다.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턴테이블리스트가 샘플을 배열하듯 신원 미상의 목소리와 노이즈와 난데없는 피아노 연주 같은 요소를 더했다. 듣기엔 A면과 B면 한 곡씩이지만, 형식상 네 곡이고, 그 긴 미로의 끝에서 바이올린을 샤미센처럼 뜯는 실험, 플루트를 샤쿠하치처럼 불며 성취한 ‘동양미’가 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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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이치 사카모토 < Thousand Knives Of > YMO가 폭발하기 직전, 제목부터 정체성을 못 박은 ‘The End of Asia’와 ‘Plastic Bamboo’로부터, 일본의 젊은 음악가들은 지금도 힌트를 얻는다.

 

 

7. 뎀디케 스테어 < Wonderland > 래퍼들의 ‘믹스 테이프’처럼 기획한 < Testpressing > 시리즈는 뎀디케 스테어에게 자유를 선사했다. ‘오피셜’이라는 부담을 덜면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었고, 좀 더 리듬을 가지고 놀았다. < Wonderland >는 인더스트리얼, 테크노, 정글, 그라임 같은, 리듬 특정적인 현대 음악 모두와 겹치고 어느 것과도 겹치지 않는 앨범이다. 하지만 다크 앰비언트, 드론, 인더스트리얼이라는 그들의 중심은 어디 가지 않아서 춤을 추기보다는 그 위험하고 격양된 분위기 속에 허우적거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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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스키두 < Seven Songs > 앰비언트, 덥, 트라이벌 뮤직, 펑크 등 각각 다른 급진적인 현대 음악들로 하나의 서사를 만들어 내는 능력은 일찍이 23 스키두에게 있었다.

 

 

8. 카일 딕슨, 마이클 스타인 < Stranger Things > TV 드라마 시리즈 < Stranger Things >는 80년대 공상과학, 모험 영화에 보내는 연애편지다. 카일 딕슨과 마이클 스타인은 < ET >, <미지와의 조우>, <더 씽>, <구니스>에서 들어도 자연스러울 사운드트랙을 만들었다. 하지만 다크웨이브와 앰비언트에 겹쳐 있는 이 음악은 ‘레트로’, 즉 재현에 머무르지 않는다. < Stranger Things >가 향수에 기대지 않고 보편적인 서사를 향해 나아갔듯이, 이 음악 역시 현대 음악의 방법으로 인간적인 감정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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탠저린 드림 < Wavelength > 공상과학 소설에 등장했던 수많은 외계인의 모습이 80년대 영화들에서 비로소 확인되었다. 그들을 묘사할 수 있는 음악도 있었다. 탠저린 드림이 있었다.

 

 


9. 칼라 달 포르노 < You Know What It’s Like > 사운드트랙의 목표는 분명하다. 극에 어울리는 분위기를 낼 것. 사전정보 없이 음반을 듣더라도, 줄거리나 영상의 ‘무드’를 알아챌 수 있다. < You Know What It’s Like >는 한 명의 싱어송라이터가 음반의 정서를 완벽히 통제한 결과물이다. 하지만 노골적 주제 대신, 반복의 적극적 활용과 최소한의 악기 중 괴기스러운 소리를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먹이 스미듯 의도한 색을 낸다. 그렇게 ‘Italian Cinema’라는 첫 곡, ‘Blackest Ever Black’이란 레이블 이름 모두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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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로 바달라멘티 < Twin Peaks > 꼭 무슨 일이 벌어지고야 말 것 같은 긴장. 데이비드 린치의 미스테리물 <트윈 픽스>는 줄곧 수상하다. 2017년, 세 번째 시즌이 26년 만에 돌아온다.

 

 

10. 아노니 < Hopelessness > 트랜스젠더로서 그녀라고 불리길 바라지만 친구 이외 타인이 어떻게 부르는지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그녀는 말한다. 다만 음악은 마음껏 끝까지 나아간다. 앤토니 앤 더 존슨스에서 아노니로 개명한 후 첫 번째 앨범이다. 허드슨 모호크, 온토르릭스 포인트 네버처럼 현재 가장 진보적인 프로듀서들을 불러들여 그 소울풀한 노래에 어느 때보다 강력한 방점을 찍었다. 어둡지만 강인한 그 음악은, 그녀가 지금 필요하다고 믿는 정치적 태도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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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 부시 < Sensual World > ‘그녀’로 시작하는 ‘아트팝’에서 케이트 부시는 빠지는 법이 없다. 아노니의 ‘바이브레이션’을 들으면서 그녀를 떠올리지 않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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