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굿바이 휴 잭맨, 굿바이 로건

2017.03.02GQ

<로건>은 휴 잭맨이 울버린/로건으로 출연하는 9번째 작품이자 마지막 출연작이다. 휴 잭맨에게나 <울버린> 시리즈에나 남다른 작품일 수밖에 없다. 로건과 휴 잭맨에게 아쉬운 작별 인사를 고하기 전, 4가지 관점에서 <로건>을 찬찬히 분석해봤다. *주의!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로건>은 결말이 예정돼 있는 영화? 등장부터 충격이다. 하얀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얼굴의 주름살은 자글자글, 수염은 덥수룩, 다리까지 절룩거리는 로건은 옷깃만 스쳐도 으르렁거리던 예전의 울버린이 아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영화는 그에 대한 설명을 의도적으로 빠뜨린다. 단 하나. 죽을 날이 머지않았다는 사실만큼은 명확하게 제시한다. 로건은 울버린의 정체를 숨긴 채 텍사스 엘 파소와 멕시코 국경을 넘나드는 운전사다. 차종은 2029년형 블랙 리무진. 어딘가 모르게 장의차를 닮았다. 차에 시체를 넣은 관이 실린건 아니지만, 검은 양복과 넥타이의 로건은 관객에게 그가 곧 죽을 것임을 암시한다. 클로와 힐링팩터로 영원히 목숨을 부지할 것만 같았던 로건은 <용서받지 못한 자>(1992)의 병들고 지친 총잡이 빌 머니(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연상시킨다. 실제로 서부를 주요 배경으로 하는 <로건>은 ‘퇴장’의 테마를 펼쳐간다.

 

<로건>은 서부극? <로건>을 연출한 제임스 맨골드 감독은 서부극 <3:10 투 유마>(2007)를 연출한 경력이 있다. 서부극에 대한 노골적인 힌트는 <로건>에서 세번이나 인용되는 영화 <셰인>(1953)이다. <로건>을 보고 있으면 <셰인>의 마지막 장면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떠나려는 자신을 잡는 아이에게 셰인(앨런 래드)은 이렇게 얘기했다. “난 가야 해. 사람은 한 번 살인을 저지르면 다신 돌이킬 수 없단다.”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해서 떠나야 하는 건 서부 사나이의 운명이다. 로건도 방황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엑스맨 탄생: 울버린>(2009)에서 소개됐듯 친부를 죽인 로건은 그래서 머물 곳이 없다. 정처 없이 떠돌아 다니며 사건에 휘말리고 이를 해결하는 그는 슈퍼히어로의 서부 사나이 같은 존재다. 또한, 소수자 슈퍼히어로의 신화를 쓴 인물이다. 서부는 신화의 공간이다. 신화는 전승되는 법이다. 로건의 퇴장은 곧 새로운 슈퍼히어로의 등장을 의미한다. <셰인>에서 아이가 셰인을 붙잡듯 희망의 끈을 놓으려는 로건의 눈에 돌연변이 소녀 로라(다프네 킨)가 눈에 들어온다.

 

<로건>은 여자 울버린에 대한 예고편? <엑스맨> 시리즈의 울버린 캐릭터를 창조한 브라이언 싱어(<엑스맨: 아포칼립스> 등)는 차기 울버린은 여자가 될 것이라고 인터뷰한 바 있다. 과연 <로건>에 등장하는 로라는 로건이라는 이름과의 유사성에서 알 수 있듯, 울버린의 클로와 힐링팩터를 갖춘 여자 돌연변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로건이 특유의 능력을 타고 난 것에 반해 로라는 돌연변이 DNA를 활용한 실험으로 태어났다는 것. 즉, 로라는 애초에 인간병기로 양성되었는데 그 사실을 알고 실험실을 탈출해 미국 북부에 위치한 ‘에덴’으로 향한다. 에덴에는 로라를 비롯해 특출한 능력을 갖춘 아이들이 숨어 있다. 이들의 구성은 흥미롭게도 여자와 흑인과 아시아인과 스페인계 등 소수자다. 이들은 사이보그 용병 집단의 추격을 따돌리고 소수자를 향한 억압이 도를 넘은 미국을 떠나 캐나다로 넘어가려 한다. 하지만 아직 어려서인지 힘과 세력이 달리는 이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바로 로건이다. 로건은 과거 에이브러햄 링컨이 남북전쟁을 통해 흑인 노예를 해방했듯이 소수자 아이들을 백인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지키려 마지막 남은 힘을 모두 쥐어짠다.

 

로건4

<로건>은 트럼프 비판 영화? 로건을 링컨에 비유한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로건은 로라를 쫓는 용병들의 추격을 피해 찰스 자비에(패트릭 스튜어트)와 함께 북쪽으로 이동하던 중 어느 흑인 가족 집에 머물게 된다. 그 집의 아들 방에는 미합중국 16대 대통령 링컨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로건>의 극 중 배경은 2040년대다. 링컨의 초상화로 추측하건대 미래의 미국은 백인 남성을 제외한 소수자에게, 특히 유색인종에게 힘겨운 시기다. <로건>의 상황이 미래의 ‘남북전쟁’처럼 보이는 이유는 로건과 로라와 찰스 자비에가 은신하던 미국 남쪽 텍사스 엘 파소를 떠나 자유를 찾으러 북쪽으로 향하는 까닭이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을 전후해 벌어지는 미국 사회의 특정한 풍경과 무척이나 닮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 전부터 미국과 멕시코 국경 사이 장벽을 설치해 불법 이민자를 막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강한 (백인의) 미국을 외치는 트럼프는 이와 같은 조치를 통해 다양성 억압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안 그래도 <로건>의 원작 코믹북으로 알려진 <울버린: 올드맨 로건>의 배경은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다. 제임스 맨골드 감독은 원작의 배경을 미국 남부 텍사스 엘 파소로 옮겨 트럼프 시대를 예견했다. 로건의 시대는 그렇게 트럼프의 출현과 함께 막을 내린다.

    에디터
    글 / 허남웅(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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