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지금 왜 ‘핑크’인가?

2017.03.08정우영

로타의 사진 속 설리의 볼 색깔은 RGB 분석 결과 팬톤 PMS 5025C와 흡사했다. 흔히 ‘핑크’라고 부르는, 빨간색의 명도를 올리고 채도를 낮춘 색깔이다. 예컨대 네스프레소 캡슐 중 ‘로사바야 데 콜롬비아’의 식별색이 팬톤 PMS 5025C다.

네스프레소에서는 “붉은 과일 및 와인의 향기가 세련된 산미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맛”이라고 설명한다. 예전부터 설리의 핑크는 주목받았다. 아직도 검색어 자동 완성에 ‘설리 핑크 무릎’이 뜬다. 에프엑스의 멤버로 무대에 오를 때 그는 무릎에도 핑크 메이크업을 했다. 사람들이 ‘자이언트 베이비’라고 부르던 시절이었다. 설리의 핑크는 예나 지금이나 같지만, 사람들이 그에게서 발견하는 색깔은 변했다. 소위 ‘야한 사진’을 거리낌 없이 올리는 그는 “붉은 과일 및 와인의 향기가 세련된 산미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맛”이라기보다 흰색 옷에 엎질러진 와인 그 자체다.

2016년 팬톤이 선정한 올해의 컬러 중 하나는 ‘로즈 쿼츠’였다. 로즈 쿼츠는 팬톤 13-1520의 벚꽃에 가까운 색으로, 사실 작년이 아닌 2~3년 전부터 눈에 띄었다. 사람들은 만수르 가브리엘 백, 캘빈 클라인 광고, 반스 올드 스쿨, 드레이크의 ‘Hot Line Bling’ 커버, 구찌 런웨이 쇼, 벤틀리 컨버터블에서 이 색깔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똑같이 핑크에 포함할 수 있는 ‘허니서클’이 팬톤 컬러에 선정된 2011년과 비교해 달라진 게 있었다. 이 색깔은 지금 여성에게만 속하지 않는다.

핑크는 우리말로 분홍, “엷고 고운 빨강, 연하고 부드러우며 여성다운 색(네이버에서 서비스 중인 <색채용어사전>에서)”으로 정의된다. 사전적으로도 여성의 색이라고 정해놓은 셈인데, 이를테면 사람들에게 페미니즘은 단지 이것을 수정하려는 거센 시도로 이해된다. 하지만 당대의 시대정신 페미니즘은 권리를 넘어서는 상식이다. 상식은 선택하는 게 아니라 배우는 것이다.

F.I.T.의 패션 역사학자 밸러리 스틸은 말했다. “핑크가 여자애들을 위한 컬러라는 인식은 1940년대 미국에서 확고해졌어요.” 그에 따르면, 역사적으로는 파란색이 여성스러운 컬러였다. 성모 마리아가 파란색을 입은 것으로 자주 묘사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모든 것처럼 자본과 매체가 사람들의 인식을 바꿨다. “20세기 초반 미국으로 넘어온 토마스 로렌스의 ‘Pinkie’와 게인즈버러의 ‘The Blue Boy’가 여자애들에게 핑크를 팔고 남자애들에게 블루를 파는 상업적인 아이디어에 힘을 실어줬죠.”(이상 < Fashionosta >의 안드레 휠러 칼럼에서 재인용.)

80년대, 안경의 패션 아이템화로 지금까지 전 세계 안경 시장의 80퍼센트를 휘어잡고 있는 기업의 사례가 떠오른다. 현대인은 신화, 인습, 소문, 편견으로부터 진실을 가려내는 사람, 마침내 그것을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일 것이다. 전 세계 절반의 인구가 관여하는 문제가 어떻게 예외적인 상식일 수 있을까. 지금 핑크는 상식을 아는 사람의 색이다.

    에디터
    정우영
    포토그래퍼
    이현석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