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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는 나의 힘

2017.03.30정우영

남자는 힘쓰고 여자는 가만히 있는 섹스에 대하여.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그 집에서 들고 나온 책 더미가 지금껏 가장 무거웠다. 실제로 무게도 나갔지만 근력이 달리는 것만 힘들다고 말하지 않았다. 군대에서 한 선임은 삽을 들고 태극권을 가르치듯 말했다. “힘으로 하는 게 아니야, 적은 힘으로 파내는 기술을 익히는 거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확하지 않다. 기술은 신체와 정신 가운데 신체만을 강조한 표현이며, 그 신체 능력조차도 단지 ‘노력’의 문제로 국한시킨다. 누구나 한 줌의 기술을 가진 자기 분야를 제외하면 힘부터 들어가기 마련이다. 단지 기술 부족이라고 하기에는 모자라다는 것이다. 프로페셔널과 아마추어의 차이가 의지대로 힘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라면, 힘으로 뭘 해보려고 애쓰는 시작은 다만 자연스럽다. 그렇게 힘을 쏟는 과정 속에서 근육량이 늘어난다.

근력은 남자와 여자의 주요한 생물학적 차이로 알려져 있다. 이에 근거해 남자는 밤에 힘을 쓴다는 말이 아무렇지 않게 통용된다. 하지만 <운동과 스포츠 생리학 제5판>에 따르면, 동일한 근육량일 경우 근육 횡단면적 단위당 남녀 간의 근력은 차이가 없다. 즉, ‘남자는 힘’의 근거는 2차 성징으로부터 각각 달라지는 근육량이다.

어둠 속에서는 근육량이 보이지 않는다. 한 번에 팬티를 벗기기 어려울 만큼 다리가 길기는 했지만, 그녀가 운동선수인 줄은 몰랐다. 우사인 볼트만 육상 선수가 아니라 아사파 파월도 있으니까. 남자의 근육량에 충실한 섹스를 마치고 침대를 벗어나려 할 때였다. 그녀가 그냥 이대로 조금만 더 있자고 했다. 물도 마시고 싶고 담배도 피우고 싶어서 몸을 일으키는데 그녀가 다리로 몸을 결박하면서 말했다. “빠져나가 봐.” 웃으면서 살짝 등과 팔에 힘을 주는 것만으로 알았다. 빠져나갈 수 없겠구나. 장난처럼 넘어가는 그의 배려 덕분에 민망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비참했으면 차라리 모르겠는데 그를 운동선수라는 예외로 두려하고 있었고 뭔가가 찜찜하게 남았다.

데드리프트, 비행기 끌기, 케틀벨 던지기 등으로 힘의 우열을 가리는 ‘The World’s Strongest Man’ 우승자의 바탕도 근육량이지만, 그가 ‘The World Arm Wrestling League’ 우승자를 팔씨름으로 이기지 못하는 것도 근육량이다. 아무리 엄청난 근육량의 신체도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전완근은 이길 수 없다. 특정 부위의 근육량은 특정 부위의 근력을 나타낼 뿐이다. 예컨대 “여자는 남자에 비해 하체에서 근육량 비율이 더 높다.” 그래서 “일부 여자들은 남자들의 평균 근력을 훨씬 초과한다.” 또한 절대적인 근력은 여자가 떨어지지만, 상대적인 근력이라고 할 수 있는 “피로에 대한 저항은 여자가 더 크다. (이상 <운동과 스포츠 생리학 제5판>에서 인용.)” 과연 남자가 “밤에 이긴다”고 단순화할 수 있을까?

김기덕은 (남자의 근육량에 기초한) 폭력적인 성관계를 영화에서 일관되게 그려왔다. 하지만 정규교육을 받은 적 없는, 그래서 “저는 그걸 돌려 말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냥 그렇게 부딪쳐서 대답을 듣는 도리밖에 없습니다(‘세상과 소통하는 나쁜 남자의 방식’, 정성일)”라고 말하는 그의 영화 속 섹스 신은 남자에게 그리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 극단적인 상황이 불편할 뿐 AV로도 평범한 수준이니까. 여자가 남자에게 성적으로 제압당하는 빤한 이야기. 하지만 AV가 성적으로 불균형한 섹스를 대체로 정당화(싫은 척하지만 사실은 그녀도 느끼고 있다)하면서 끝내는 반면, 김기덕은 “불편한 감정을 유지하게 내버려둔다(‘정성일의 <오아시스> 비판론’)”는 점에서 오히려 낫다.

세상 모든 것이 곡절을 겪을지언정 조금이나마 진보하고 성숙해가는 가운데, 여전히 남자가 힘을 행사하는 ‘초보자’ 수준에 머무르는 분야는 섹스뿐인지도 모른다.

    에디터
    정우영
    일러스트레이터
    KIMIAND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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