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촛불집회에 나타난 포켓몬 고

탄핵 인용 다음 날,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마지막 촛불 집회. 아니면 그냥 <포켓몬 고>의 쁘사이저와 마기라스를 만난 날.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

2017년 3월 11일 밤 8시경, 형과 동생은 광화문 광장에 서있었다. 그들은 두 개의 공간 질서가 하나의 동선 위에서 수렴 중첩되는 경험을 하고 있었다. 수십만의 인파가 촛불을 든 채로 현직 대통령의 탄핵을 축하하는 자리, 가설무대 위에서는 힙합 듀오 가리온이 “오오오”를 외치며 ‘그 순간’을 열창하고 있었다. 하지만 형과 동생은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포켓몬 고>에 열중하고 있었다.

분명 광장의 들뜬 분위기는 무대 스피커에서 증폭된 베이스 음을 통해 온몸에 전해졌다. 하지만 그들의 눈과 손은 4인치 레티나 디스플레이가 요구하는 동작 반경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았다. 그들의 심장만이 박동 수를 맞춰가며 그 힙합 비트에 반응할 뿐이었다. 형은 CP 1700대의 쁘사이저를 향해 하이퍼 볼을 던졌고, 동생은 CP 3000대의 마기라스와 체육관 혈투를 벌였다. 세종대왕 동상 바로 옆이었다. 그들 각각은 아빠와 엄마의 구형 아이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그들은 얼마 전까지 이수역 인근 사당동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서 살았다. 그곳에서 태어나 각각 12년, 10년을 살았으니, 그곳이 바로 고향이었다. ‘고향’이라는 단어의 뉘앙스와 어울리지 않는 공간이었지만, 그들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고향’ 따위가 별로 중요치 않은 도시화 2세대의 자녀였으니까.

이렇게 말하는 것은 어떨까? 그들에게 아파트 단지는 일종의 선험적인 공간이었다고 말이다. 단지 내 어린이집을 다녔고, 단지 옆 유치원을 다녔으며, 단지 내 초등학교를 다녔고, 단지 상가에 위치한 태권도장과 영어학원을 다녔다. 어린이집과 초등학교에 갈 때를 빼곤 승합차와 버스를 타고 다녔다.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아빠의 손을 붙잡고 장난감을 사러 지하철을 타고 멀리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강남고속터미널 상가나 용산 아이파크몰의 건담베이스 주변 매장, 잠실이나 청량리역의 토이저러스 등등. 그들이 구입하려는 장난감의 가격대나 희귀도에 비례해서 승차 시간은 증가했다.

사정이 이러하니, 아파트 단지 바깥 세상에 대한 그들의 지리 정보 대부분이 이동 소요 시간과 관련되어 있었다고 해도 그리 이상하지 않았다. 구태여 머릿속에 도시의 지도를 그려놓을 필요가 없는 삶이었다. 그들이 서점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도 지적해둘 만하다. 그들에게 책은 배달되는 물품이지, 사러가는 아이템이 아니었다. 그들은 책을 직접 펼쳐보며 골라야 한다는 엄마의 주장를 납득할 수 없었다.

이들의 삶을 지배하던 공간 질서에 변화가 생긴 것은 이사 직후였다. 이들은 10월 마지막 주 월요일에 청운동으로 이사했는데, 그 주의 토요일은 이후 4개월 동안 계속될 첫 번째 탄핵 촉구 촛불 집회가 개최된 날이기도 했다. 그들은 이날 오후 자동차가 사라진 자하문로 4차선 도로를 보며 적잖이 당황했다.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며 4차선 도로 위를 걷는 광경에 놀란 기색도 역력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많은 사람과 어울려 광장 주변을 거닐었고,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수십만 개 촛불이 연출하는 파도타기 장관도 지켜봤다. 군중과 스펙터클, 그들은 도시의 모더니티가 제공하는 두 유형의 감각적 쾌감을 맛보았던 것이다. 생애 처음이었다.

하지만 청운동에서 광화문까지 걷는 것은 초등학생에겐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처음 한 달여 간은 매주 거리로 나섰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드문드문해졌다. 그렇게 집회 참여가 시들해질 무렵, 그러니까 금년 1월 하순, 그들이 예상치 못한 새로운 동반자가 나타났다. 바로 <포켓몬 고>였다.

형과 동생은 이제 동네 주변을 샅샅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서로 게임을 즐기는 방식이 달랐기 때문에 걷는 방식도 달랐다. 형은 포켓몬의 진화와 강화에 집중하는 반면, 동생은 체육관 배틀에 사력을 다했다. 형이 트레이너형이라면, 동생은 검투사형이었다고 할까. 형이 위치 검색 후 특정 포켓몬을 수집하는 모드로 걸었던 반면, 둘째는 만만해 보이는 체육관이 눈에 띄면 한 걸음에 달려갔다.

형과 동생은 이렇게 <포켓몬 고>에 의지해 각각 상이한 방식으로 동네의 심상 지도를 그려나갔다. 이를테면 형에게 창의문로의 이정표는 윤동주문학관이었지만, 동생에겐 최규식 경무관 동상이었다. 전자는 샤미드, 쥬피썬더, 부스터 셋 중 하나로 진화 가능한 이브이가 자주 출몰하는 곳이었지만, 후자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체육관이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공유하는 이정표도 있었다. 바로 청운공원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곳은 겨울방학이 끝나가던 어느 날 밤 10시, 동생이 칠전팔기 끝에 망나뇽을 포획하는 데 성공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는 잠자리에 들기 직전 몰래 들여다본 아빠의 스마트폰 화면에서 망나뇽이 청운공원에 출현한 걸 확인했고, 대충 점퍼만 걸치고 그곳으로 달려 나갔다. 이 시간에 왜 밖엘 나가느냐는 엄마의 잔소리는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성향만 놓고 보자면 형이 먼저 집 밖으로 튀어나갔어야 했다. 하지만 배틀 승리에 목말라하던 동생에게 선수를 빼앗기고 말았다. 그 무렵, 동생은 매번 체육관 점령에 실패하고 있어서, 잠만보, 갸라도스, 망나뇽, 이 세 포켓몬 중 하나만 얻을 수 있다면 정말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기세였다.

그렇게 시간은 지나갔고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형과 동생의 <포켓몬 고> 레벨은 24단계로 승급했고, 3월10일 오전 탄핵 인용 소식이 전해졌다. 3월 11일 밤, 그들은 집을 나서서 광화문 광장으로 향했다. 자동차가 사라진 자하문로 한복판을 걸으면서 그날도 부지런히 포켓몬들을 잡아들였다. 현실 속의 자하문로와 디스플레이 속의 3D 지도, 이 두 개의 공간 질서가 그들의 힘찬 발걸음 속에서 단일한 동선으로 수렴 중첩되고 있었다.

선거철마다 등장하는 공허한 메아리가 아니다. 고향과 여행지, 이제 막 다다른 곳과 언젠가 떠나온 곳, 잘 아는 동네와 두 번 다시 찾지 않은 고장. 우리는 거기서 겪은 시간으로부터 생각과 감정과 말들을 부려놓는다. 제주를, 송파를, 안동을, 충남을, 남원과 철원과 분당을… 여행자이자 관찰자이자 고향사람이자 외지인으로서 각각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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