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속 ‘서울 콤플렉스’

대구 사람들은 대구가 지방이 아니라고 한다.

아버지는 하루에 세 번 옷을 갈아입었다. 이모들은 아버지가 뭘 입어도 태가 난다고 부러워했지만 실은 전혀 부러워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어머니는 옷에 신경 쓰는 남자가 제일 꼴불견이라고 했다. 물론 그렇게 말하는 엄마도 젊은 시절 아버지의 태가 나는 모습에 반하긴 했다. 한 삼십 년 살아보니 돈 없고 멋 내는 남자에게 정이 떨어진 거지. 아니면 그냥 아버지에게 정이 떨어졌는데 하필이면 그 사람이 패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머니는 미녀다. 아들 입장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이상하지만 객관적으로 그렇다. 어머니 연배의 연예인 중 배우 김창숙씨를 닮았는데 좀 더 선이 가늘고 귀엽게 생겼다. 환갑이 넘었지만 아직도 젊어 보인다. 이로써 대구의 단출한 핵가족인 우리 집만으로도 대구에 관한 기존의 인식 또는 대구가 원하는 인식 두 가지가 성립된다. 패션 도시. 미인이 많은 도시.

관광책자에서 대구는 사과, 미인, 섬유-패션, 그리고 분지로 상징된다. 이것들은 대외적으로 대구에서 내세우는 대구의 기호다. 실제로 대구를 상징하는 기호는 고담이다. 또는 TK, 또는 대프리카.

나는 대구에서 20년간 살았고 군생활도 대구에서 했다. 서울에 산 지 13년이 흘렀고 평소에는 대구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대구에는 1년에 한 번 정도 내려가는데 낯설고 불편하다. 대구는 잘 만들어진 도시다. 방사형 도로, 쾌적한 백화점과 힙한 카페, 세간의 인식과 다르게 높지 않은 범죄율. 이상한 범죄가 많긴 하지만 범죄율 자체가 높은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구가 정말 싫은 이유가 뭘까.

지역주의는 나쁘지만 지방색은 좋다. 도시에 특색이 있는 것은 좋다. 주변에 부산이 좋다거나 전주가 좋다, 여수가 좋다, 강릉이 좋다, 대전이 좋다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대구 사람을 제외하고 대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하물며 대구로 여행을 간다는 사람도 본 적이 없다. 대구 여행이라니. 한 번도 결합되어 본적 없는 단어의 결합. 가끔 막창 먹으러 대구에 가고 싶다는 사람은 본 적 있다. 그러니까 이러한 등식이 성립된다. 막창>대구. (실제로 가보면 막창도 별로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한국은 서울에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는 나라다. 강준만은 지방을 식민지라고 했다. 정약용은 자식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사대문 밖으로 이사 가지 말라고 말했다. 어느 시인은 틈만 나면 자신이 사대문 안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자랑했다. 판사는 초임지에 따라 경판, 향판으로 나눠 부른다. 21세기가 된 지 17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그렇게 하고 있다. 한국에서 서울과 지방은 특별한 위상을 지닌다. 그런데 이 지방 중에서도 부산과 대구는 유독 특이한 점이 있다. 그건 스스로가 서울 못지않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또는 스스로를 지방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각 지방 모두 자신만의 성격과 특색이 있지만, 스스로를 수도에 준한다고 생각하는 곳은 흔치 않다. 나는 부산 출신이 아니니 부산에 관한 이야기는 차치하고, 대구에 관해 얘기해보겠다.

나는 대구 수성구에서 초·중·고를 모두 나왔는데 당시 학교 선생들이나 학부모 등 어른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수성구가 강남만큼 또는 강남보다 더 SKY 진학률이 높다는 거였다.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중요한 건 그런 어른들의 언어를 내 또래 사람들이 그대로 이어받아 이야기한다는 사실이다. 일종의 학군 ‘부심’인데, 강남도 아니고 잠실도 아니고 분당도 아닌 수성구 부심이라니. 다른 지방 사람들이 수성구에 대해 얼마나 들어봤는지 의문이지만 아무튼 이러한 수성구 부심은 부모 세대인 1950~1960년대생에서 내 세대인 1980년대생까지 내려온다. 여기서 한국 현대사에 족적을 남긴 학벌주의의 현대 버전을 볼 수 있다. 과거에는 “서울에 경기고가 있으면 대구에는 경북고가 있다”였으면 지금은 “서울에 강남이 있으면 대구에 수성구가 있다”인 것이다. 그러니까 내게 대구는 학벌과 지위에 대한 엘리트 의식으로 무장한 곳이다(실제로 엘리트인지는 모르겠으나.) 더욱 최악은 대구가 스스로를 서울보다 낫다는 순수한 자부심을 느끼는 게 아니라 우리가 서울만큼 한다고 생각하면서 서울의 모습, 그것도 강남의 모습을 따라 하는 것에서 자부심을 느낀다는 점이다. 강남과 대구는 지지하는 정당도 같고 정치적 성향도 유사하다. 보수적일 뿐만 아니라 그 보수적 성향에는 학벌로 상징되는 특정한 종류의 속물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속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순응하고, 소속되고, 같이 끼이기를 열망하는 속물은 두 가지 욕망 사이에서 갈등한다.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행동하고, 감탄하고,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자신도 소유하고픈 욕망이 그중 하나다. 다른 하나는 특별한 사람들, 조직, 클럽의 일원이 되어 담화를 즐기고픈 욕망이다. 속물은 부와 지위에 현혹되는 허영 덩어리다.”

대구에 대한 기억 중 가장 견딜 수 없는 건 고등학교 때의 경험이다. 학력 ‘부심’이 강한 동네였던 만큼 선생들의 태도는 거만하고 강압적이었는데, 나를 더 분노하게 했던 건 그러한 선생들이 아니라 다른 학생들의 태도였다. 아무도 반항적이지 않았다. 선생님들이 우리 공부 잘하라고 그런 거지. 지나고 나면 다 좋은 추억이야. 십오륙 년쯤 지났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좋지 않은 추억이라는 게 더 분명해진다. 학생들의 이러한 순응은 스스로를 이미 기득권이라고 생각하는 데서 온다. 대구는 오랜 시간 자신을 기득권이라고 생각해온 도시다. 90년대 후반 이후 도시를 지탱하던 여러 산업이 무너졌고 인천이나 울산에도 밀리게 된 지금은 어떨까. 2016년, 김부겸은 대구 수성갑에서 야당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31년 만의 일이다. 2017년, 박근혜는 탄핵되었고 부모님은 더 이상 대구에 자부심을 느끼지 않는다. 이제 대구도 변하는 걸까? 기득권이 아닌 대구에 뭐가 남아 있을까? 패션? 미인? 사과? 현재 대구에서 가장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건 첨단의료복합단지와 대구 신공항이다. 그러나 이것들이 생긴다고 대구를 좋아하게 될 것 같진 않다. 이런 것들이 없어서 대구를 싫어한 게 아니니까.

가장 최근 대구에 간 건 지난 1월이었다. 분지답게, 남쪽이지만 서울만큼 추웠고 얼마 전에 아시아 최대 규모로 지었다는 동대구역 신세계백화점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아버지와 폴 바셋에서 아메리카노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서울과 맛이 똑같았다. 내가 먹고 싶은 건 기름장에 찍어 먹는 닭똥집튀김이었지만 먹지 못했다. 혹시 대구로 여행 갈 사람이 있으면 막창 말고 닭똥집튀김을 먹으라고 하고 싶다. 꼭 기름장에 찍어서 먹어야 한다. 이게 내가 아는 대구의 유일한 장점이다.

선거철마다 등장하는 공허한 메아리가 아니다. 고향과 여행지, 이제 막 다다른 곳과 언젠가 떠나온 곳, 잘 아는 동네와 두 번 다시 찾지 않은 고장. 우리는 거기서 겪은 시간으로부터 생각과 감정과 말들을 부려놓는다. 제주를, 송파를, 안동을, 충남을, 남원과 철원과 분당을… 여행자이자 관찰자이자 고향사람이자 외지인으로서 각각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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