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저 술 되게 자주 마셔요” 하이라이트 용준형

2017.04.25손기은

용준형은 여전히 용준형이지만, 부르는 이름은 비스트에서 하이라이트로 바뀌었다. 작은 감정들이 변했고 고요를 즐기려는 성격은 여전하다.

재킷은 김서룡, 목걸이와 반지는 디자인 by 티에스에스.

조금 힘들어 보이네요. 오늘요? 이게 힘든 건 아니에요. 앞에 예능 찍고 오느라 힘들었죠.

애쓰는 거죠? 예능 녹화장에선. 전 활발하고 에너지 넘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원래 다운돼 있어요. 몸에 과묵한 게 배어 있는 것 같아요. 사실 곡도 무겁고 진솔한 얘기를 쓸 때가 많아서….

눈을 깜빡이는 속도가 유난히 느린 것 같아요. 눈을 보고 대화하면 함께 차분해진달까, 같이 다운이 된달까. 네. 저 원래 행동이 느릿느릿하고 템포 있게 말하는 성격이 아니어서 사실 예능에는 정말 적합하지 않죠. 맥이 끊기잖아요. 근데 제가 말을 하면 사람들이 집중해주는 것 같긴 해요.

계기가 있었을까요, 타고난 성격일까요? 제가 어렸을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중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외할머니와 친할머니가 번갈아가며 돌봐주셨었어요. 표현을 많이 하는 성격이 아니어서 안에 많이 담아두고 그랬던 것 같아요. 속에서 항상 생각이 많은데 잘 꺼내지 않고, 혼자 해결하려고 스스로를 괴롭히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

그래도 터지진 않네요. 그렇죠. 근데 저도 가끔씩은 도저히 주체가 안 될 때가 있어요. 1년에 한두 번 정도? 그럴 때도 막 표출하기보단 술 한잔하고, 그냥 소소한, 나만의 조그마한 방법들로 해소해요. 글을 쓴다거나 노래를 만든다거나.

스카잔은 돈한, 목걸이는 모두 디자인 by 티에스에스.

작가, 작곡, 프로듀싱, 가수, 다 하고 있지만, 지난 인터뷰를 모아보면 유난히 작사에 방점이 찍혀요. 맞아요. 곡을 쓸 때 멜로디도 중요하고 트랙도 중요하고 정말 중요한 게 많지만, 저는 주제와 스토리를 정하지 않으면 곡을 발전시키지 못해요. 멜로디가 되게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도 가사가 제대로 안 붙으면 스스로 좋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노래를 들을 때도 가사를 더 신경쓰나요? 네. 머리에 내가 그 상황에 있는 것 같은 그림이 쫙 그려지는 가사를 좋아해요. 저도 그런 가사를 쓰려고 노력해요. 촬영 전, <지큐> 동영상 찍을 때 읊었던 랩 가사도 제가 평소 좋아하는 거예요.

여태까지 가장 잘 쓴 건요? (양)요섭이 솔로곡 ‘카페인’. 제일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곡 같아요.

하이라이트와 용준형은 얼마나 다른가요? 음악은 또 어떻게 다른가요? 팀 작업을 할 때는 좀 계산적으로 가는 것 같아요. 저희가 이번에 부른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도 우리가 놓여 있는 상황, 어쨌든 회사의 계약이 만료돼서 비스트라는 이름 대신 하이라이트로 나오는 이 과정을 두고 염려하는 시선이 많다는 상황을 무시할 수가 없었어요. 무거운 노래를 하면 먹구름이 머리 위에 있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아서…, 에너제틱한 걸 하자고 한 거죠. 낄낄대고 웃는 그런 모습이요. 멤버마다 잘하는 것들이 있어 조립한다는 느낌으로 곡을 만들어요. 제 솔로곡은 그냥… 흘러 나오는 대로 해요.

곧 나오는 솔로 앨범은 어떤 게 흘러나왔나요? 정말 100퍼센트 제 경험과 기억에 의존해서 만들었어요. 제 이야기라 그런지 정말 빨리 나와요. 계속 쓰면서 바로 진행이 돼서 가사 쓰면서 멜로디도 붙이고, 그냥 쭉죽 뻗어나가게 돼요.

의상은 모두 프라다.

어떤 표정의 용준형인가요? 좀 씁쓸한. 제가 평소에 느끼는 감정들이 대개 좀 고독하고 우울한 게 많아요. 여기에서 출발하는 것 같아요. 이 우울함이 친구한테 온 전화처럼, 정말 조그만한 일로 눌려 버릴 때가 있어요. 또 어떨 때는 아무리 눌러도 눌리지가 않아요. 그땐 좀 견디기가 어려운데, 그때 막 적어놓은 글들을 보면 제가 좀 무서울 때가 있어요. 아, 내가 이렇게까지 감정이….

어떤 글인가요? 나이가 들면 감정이 덜 요동칠 줄 알았는데, 갈수록 감정이 한번 내려가면 걷잡을 수 없을 때가 있어요. 사실 상처받고 안 좋을 때, 마음이 피폐해졌을 때 곡은 제일 잘 나오는 거 같아요.

그 보상으로 위로가 되나요? 주변에서 저를 아는 사람들이 이런 얘기를 해요. “이런 기분이 다 너한테 남고, 이걸 다시 꺼내놓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다 재산이다. 힘들어하지 말아라.”

자신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꺼내놓는 경우, 사실 그 밑천이 바닥나면 막막해지는 것 같아요. 용준형의 밑천은 두둑한가요? 전 사실 바닥났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사랑 노래를 많이 만드는데, 모든 이야기의 출발점이 좀 오래전 기억이에요. 아무리 바꾸고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해도 결국엔 똑같은 데서 출발하다 보니까….

다시 만들면 되죠. 그런 마음이 안 들어요. 지금 정말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건데, 지금은, 뭐라 그래야 될까요, 좀 지쳐 있는 상태인 것 같아요. 당연히 저도 누군가와 진실된 관계를 만들고 싶지만, 에, 그냥 말자, 그래요. 모든 인간관계가 조금 무섭기도 하고요. 이젠 사람 믿는 게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의상은 모두 H&M.

힘든 스물아홉이네요. 서른이 되면 뭔가 달라질까요? 숫자가 딱 바뀌면서 좀 더 나은 상황, 더 나은 것들을 만들어보자, 라는 기대감은 있어요.

용준형의 음악 작업이 좀 더 인정받았으면 좋겠다는 욕심도 포함되나요? 남들 시선을 아예 신경 안 쓸 수는 없지만, 시간이 갈수록 저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처음엔 나를 다 좋아해줬으면 좋겠고, 이쁘게 봐줬으면 좋겠고, 이런 어린 마음이 있었는데, 요즘은 정말 내 손이 닿을 수 있는 데까지만, 제 음악을 좋아해주는 분들이 공감하고 웃고 위로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제 노래 듣고 감정이 끓어올라서 울었으면 좋겠어요. 슬픈 곡은 이런 생각하면서 써요. 다 질질 짜면서 그날 술을 먹었으면 좋겠다. 제가 쓴 곡이 나오면 일단 보내는 사람이 몇몇 있는데, 이번 솔로곡도 (박)신혜랑 (양)세형이 형한테 보냈더니, 세형이 형이 딱 술 생각나는 노래라고…

그래도 이름을 날리는 건 중요하잖아요. 많은 가수를 프로듀싱해서 이걸 다 성공시키자, 하는 생각은 아니에요. 누군가를 위해 프로듀싱을 한다는 건 저를 변질시키면서 해야 되는 작업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 아티스트가 가진 색깔에 맞는 옷을 입혀줘야 하는데 제가 꺼내놓을 수 있는 옷 중에 그 가수에게 맞는 게 없다는면요? 그래서 전 외부 작업이 많지가 않아요. 의뢰를 받는데, 그중엔 제가 할 수 없는 것이 많아요. 써낼 수는 있죠. 요즘 유행하는 거, 강압적으로 꽂히게 만들어서, 그 곡이 잘 되든 안 되든 간에…. 근데 정말 토하고 싶지 않은데, 손가락 넣어 토해야 되는 느낌인 거예요. 몇 번 시도는 해봤는데 해놓고 제가 즐겁지가 않았어요.

하루 중 몇 시가 제일 좋아요? 3시에서 6시 사이?

새벽요? 오후요. 해 저물 때 할 수 있는 건 많이 없지만, 그 시간이 왠지 아깝게 느껴저서 제일 좋아요. 해 스멀스멀 넘어갈 때 건물 뒤로 주황색, 분홍색 번져 있는 걸 멍하게 보는 시간이 좋아요. 집에도 창이 있는데 요즘은 암막 커튼을 다 열어놓고 살아요. 생활 패턴이 좀 바뀌었어요. 햇빛에 자연스럽게 깨는 게 좋아졌어요. 눈떴는데도 깜깜하면…. 해가 집 안으로 들어와 물건을 비추고 있을 때 아늑해요. 해가 지는 게 요새는 좀 아쉬워요. 한참 자기 파괴 단계가 있었는데, 나 이렇게 살다는 진짜 안 되겠다 싶어서 운동하고 아침형으로 변했어요. 1년 반? 2년 전쯤? 그래서 하이라이트 같은 밝은 앨범도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스카잔은 돈한, 바지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목걸이는 모두 디자인 by 티에스에스.

이번 솔로곡은 술 당기는 노래라고 했잖아요? 그건 새 회사 차리기 전에 작업되어 있었던 곡들이라서….

노래는 어디서 듣는 게 제일 좋아요? 평소 노래를 많이 듣지 않아요. 방해를 받는 느낌이 있어서…. 그리고 주로 제가 만든 음악을 많이 들어요..

왜요? 발표된 곡 말고 작업해왔던 곡을 반복해서 들어요. 그냥 제 목소리가 좋아요. 제가 작업실에서 가이드하고 만든 녹음은 정말 날것이잖아요. 들을 때마다 작업하던 그때가 생각나면서 새로워요. 제가 만든 음악을 100번 200번 계속 들을 때도 있어요. 집에서도 휴대전화 가슴에다가 이렇게 올려놓고 누워서 듣고…. 내가 부족해서 뭘 고쳐볼까, 이런 게 아니라 좋아서요. 너무 좋아서.

그런 얘길 들으니까 갑자기 술 마시면서 이야기하고 싶네요. 저 술 되게 자주 마셔요. 예전에는 술 좋아한다 그러면, 아유 저거 또 술 먹고 쩔어서 사네, 이렇게 생각할까 봐 걱정했는데 최근엔 그냥 이렇게 생각해요. 어리고 쌩쌩하니까, 사고친 적도 없으니까, 딱히 취미가 없고 이게 유일한 해소 방법이니까. 예전엔 위스키도 마시고 사케도 마셨는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까 원형 철판으로 된 허름한 데서 친구랑 둘이 마시는 소주가 제일 좋아요.

첫 잔은 원샷인가요? 아, 그렇죠.

 

    에디터
    손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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