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살아 있네 박진영

2017.04.28GQ

욕하고 욕망하는 그의 연예계 생활 20년.

2015년 12월 2일 밤의 트위터 타임라인을 기억한다. MAMA 방송일. 트위터 사용자는 방송을 보며 자신이 느끼는 시시함을 창의적으로 표현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사지를 줄로 묶은 박진영이 등장해 선미의 ‘24시간이 모자라’를 불렀다. 그리고 트위터엔 지금 등장하는 키워드를 모두 함께 놀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 종종 찾아온다.

하이라이트는 ‘Honey’를 부르던 박진영이 발로 건반을 쳤을 때다. 타임라인은 이에 폭소하는 트윗과 ‘짤’로 대통합했다. 발로 건반을 치는 건 제리 리 루이스부터 이어져온 피아노 로큰롤의 클리셰라는 어느 영화감독의 트윗이 올라오기도 했지만 별 반응을 얻지 못하고 휩쓸려갔다. 한 인터뷰에서 박진영은 ‘허니’가 블루스 음계로 만든 곡이라 밝혔다. 이를 생각하면 그 퍼포먼스는 꽤 적절했던 셈이다.

이후 박진영은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사람들이 “왜 웃기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그러게, 사람들은 왜 웃었을까. 대부분 퍼포먼스의 맥락을 몰랐을 거다. 한국에서 블루스는 나이트클럽에서 발라드가 흐를 때 추는 춤의 이름이니까. 그렇다면 웃음의 이유를 그날 트위터 사용자의 무식함으로 돌려도 될까. 이렇게 결론을 내리면 이또한 트위터에서 조리돌림당할 테니 결론은 유보한다. 세상일은 단순하지 않다.

‘24시간이 모자라’와 ‘Honey’ 사이에 그는 ‘엘리베이터’와 ‘어머님이 누구니’를 불렀다. 이 곡은 자신의 소속 그룹인 미쓰에이의 ‘다른 남자 말고 너’를 누르고 9개 음원 사이트에서 1위를 했다. 흔히 말하는 ‘빈집털이’도 아니다. JYP에서 미쓰에이의 곡을 누르고 데뷔한 지 20년 된 댄스 가수가 1위를 차지한 거다. 같은 해 <무한도전>에서는 ‘토토가’를 방송했다. 동시대에 활동했던 동료가 살아 있는 추억이 되는 동안 그는 현재진행형임을 증명했다.

근데 좀처럼 이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 눈에 띄지 않는다. 내가 본 칭찬은 평론가 이대화가 사운드의 완성도를 높게 평가한 것 정도다. 여기서 발 건반과 놀림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아본다. 그가 발로 건반을 치든 이빨로 기타를 치든 어머님이 누구든, 맥락과 관계없이 박진영을 놀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는 박진영을 싫어하기도 한다. 주로 그의 회사에 속한 음악가의 팬들이 그렇다. 이 둘의 ‘컬래버레이션’은 박진영을 도저히 좋아할 수 없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순위 프로그램, 이제는 음원 순위에서 1위를 하고 단독 콘서트는 매진이 된다. 세상 어딘가에 ‘샤이’ 박진영 팬이라도 있는 걸까?

그가 다음 해에 발표한 노래 ‘살아 있네’는 자신을 놀리는 이를 향하는 것 같다. “레코드판이 카세트가 되고 / 카세트테잎이 CD로 바뀌고 / CD가 다운로드 스트리밍이 돼도 / 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도 / 살아 있네 / 10년은 돼야 가수라고 하지 / 20년은 돼야 스타라고 하지 / 30년이 되면 레전드라 부르지 그래서 이렇게 아직도 난 배가 고프지.”

이 곡은 음원 순위 100위 안에도 못 드는 수모를 겪었다. 박진영은 지금 여기서 이런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유일한 댄스 가수다. 굴곡 없이 히트곡을 발표한 작곡가이며 수많은 아이돌을 탄생시킨 국내 3대 기획사의 대표 프로듀서다.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를 통틀어봐도 전무후무한 경력이다. ‘스웨그’가 미덕인 시대, 그는 한국에서 누구도 부릴 수 없는 스웨그를 부릴 수 있는 가수이자 프로듀서다. 그게 문제일지 모른다.

그가 등장한 90년대는 ‘신세대’의 시대였다. 신세대는 개방적인 패션과 사고로 기성세대와 선 긋기를 했다. 기성세대가 오렌지족, 과소비, 사치, 퇴폐 등의 단어로 이를 억압했고 신세대의 반발과 유대는 커졌다. 박진영은 자신을 그 선봉에 두길 바랐다. 그제야 한국에 등장한 단어 ‘섹시’를 수단으로. 그는 비닐 바지를 입고 누드 화보를 찍었으며 섹스는 게임이 라는 주장을 했다. 외모 때문에 몇 번이나 오디션에서 떨어졌지만 위와 같은 행동으로 신세대를 대리하는 의식 있는 인기 가수가 될 수 있었다. 그은 선 사이로 ‘문화 운동’과 같은 인정 투쟁이 남아있던 시대, 고학력의 말 잘 하는 댄스 가수는 충실하게 역할을 수행했다.

신세대도 언젠가는 구세대가 된다. 그가 구세대가 된 시기는 생각보다 빨랐다. 2001년 <시사매거진 2580>의 연예인 불공정 계약 보도에 MBC 출연 거부를 선언하는 연예제작자 협회의 기자회견에서 박진영은 가장 앞장서 노예 계약’이라는 단어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지오디와 박지윤의 음반을 여럿 성공시킨 때였다. 신세대의 선봉에 섰던 그는 연예 기득권 단체의 선봉에서 목소리를 보탰다.

박진영을 비판할 때 가장 많은 근거가 되는 건 표절 시비다. 표절 시비가 있던 곡은 좀 궁색하지만 당시 제대로 된 샘플링 클리어 절차가 없었다는 이유를 대며 대부분 해외 저작 권자에게 권리를 넘겼다. 그의 표절 시비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드라마 <드림하이> OST에 수록된, 아이유가 부른 ‘썸데이’다. 작곡가 김신일이 소송을 제기했다. 그가 작곡하고 애쉬가 부른 ‘내 남자에게’를 표절했다는 것이었다. 1심과 2심은 패소했지만 대법원에서 표절이 아니라는 판결을 받고 서울고법으로 환송됐다. 이 과정에서 고의가 아닌 과실로 저작권을 침해할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 그의 모습은 상대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기준으로 시비를 판단하는 기득권 기성세대의 그것이었다.

이 원고를 생각하던 중 <뉴스룸>에서 진행하는 홍준표 후보의 인터뷰를 봤다. 타임라인에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후 그는 SNS 계정에 성공담을 늘어놓은 후 “야들아 내가 너희들의 롤모델이다. 그런데 왜 나를 싫어하냐?”라는 글을 남겨 다시 타임라인을 뜨겁게 했다. 다행히 박진영은 자신의 성공담을 늘어놓은 ‘살아 있네’가 반응을 얻지 못하자 왜 이 곡을 싫어하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신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잘난 척해서 팬들의 불만을 산 모양”이라고 분석했다.

‘노예 계약’이라는 단어에 천착해 구조적 문제를 외면했던 JYP 엔터테인먼트는 2009년 음반업계 최초로 공정위 표준계약서를 적용했다. 원더걸스의 미국 진출 실패 후엔 회사에서 자신의 결정권을 줄이고 A&R 팀의 사전 심사에 따라 곡을 발표하도록 시스템을 개편했다. 전 A&R 배수정의 인터뷰에 따르면 박진영은 A&R 전원이 자신의 곡을 반대하는 경우 어디를 고치면 되는지, 수정하면 될 것 같은지 버려야 할 것 같은지를 물어본다고 한다. 그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트와이스는 포화하는 걸그룹 시장에서 유례 없는 성공을 거뒀다. 아직도 유연한 그의 몸처럼 그 역시 시대의 흐름을 따라 자신을 바꾸고 있다.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여전히 인기를 유지하는 댄스 가수, 20년 넘게 히트 곡을 발표하는 작곡가, 팬덤이 아닌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아이돌을 만드는 연예 기획사 프로듀서. 박진영은 이 모두를 한다. 우습게 보면 곤란하다. 첫 번째는 엄격한 자기 관리가 필요하고, 두번째는 새로운 트렌드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 세번째는 좋은 아티스트와 동료를찾고 안주하지 않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박진영을 놀리긴 쉽다. 그는 언론에 자신을 잘 노출하지 않는 이수만이나 가벼운 모습을 보이지 않는 양현석과는 다르다. 여전히 방송에 출연해 소속 연예인에게 구박을 받고 물개 박수를 친다. 그는 20년 넘게 대중 가요계에서 많은 일과 말을 했다. 인간이기에 모순과 약점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그가 드러내는 모습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지 못한다. 오랫동안 연예인과 사업가로 살아온 그를 비판할때 사람들이 자주 꺼내는 카드인 ‘언플’을 하고 있거나 혹은 그렇게 보이는 걸지도 모른다. 분명한 건 처음 자신을 드러낼 때 쓴 역할, ‘딴따라’로서 20년 넘게 꾸준히 노래하고 춤추고 곡을 만든다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그가 프로듀스한 원더걸스의 마지막 앨범 < Reboot >의 보도자료를 옮긴다. “‘박진영’의 자작곡으로 프리스타일 장르의 곡이다. 프리스타일은 한국에서 처음 시도될 뿐 아니라 팝 음악 시장에서도 25년 넘게 주류에서 사라진 장르다. 1980년대 초 뉴욕의 라틴 아메리칸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프리스타일 음악은 신스 악기들과 싱코페이션 기반의 화려한 리듬을 결합시킨 장르로…. (중략) …‘원더걸스’는 프리스타일 장르와 사랑에 빠져 악기를 직접 연주함과 동시에 춤을 선보이며 다시 음악 시장에 프리스타일 열풍을 불러일으키려 한다.” 이 얼마나 애정과 과시와 욕망이 투명하게드러나는 글인가. 해외 메이저 레이블도 국내에서는 ‘고막남친’이라는 표현을 쓰는 시대, 그가 굴하지 않고 지금 같은 태도를 유지하길 바란다. 누군가는 ‘설명충’이라 놀리겠지만.

    에디터
    글 / 하박국(영기획YOUNG,GIFTED & WACK 대표)
    일러스트레이터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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