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은 웃긴다 | 지큐 코리아 (GQ Korea)

신동엽은 웃긴다

2017-05-12T10:53:06+00:00 |ENTERTAINMENT|

거짓말 조금 보태 TV를 틀면 언제나 그가 나오고 있는데, 계속 웃긴다.

앞뒤 상관없이 하나만 봐도 웃기고, 봤던 거 또 보고 있는데도 웃긴다. <불후의 명곡>, <안녕하세요>, <미운 우리 새끼>, <동물농장>, <오늘 뭐 먹지>, <수요미식회>, , <인생술집>, <남원상사>, <용감한 기자들>. 똑같은 얼굴에 특별한 분장도 없이 다르게 웃기고 있는 신동엽의 놀라운 지점은 계속 나오고 있는데 지겹지 않다는 것이다. 어느 하나쯤 묻어가는 프로그램도 있을 수 있는데 모든 방송인의 꿈이라는 ‘꿀보직’ <동물농장> 에서도 한마디를 맹탕으로 뱉지 않는다. 컬투와 이영자와 함께하는 <안녕하세요>에서도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감을 보이는가 하면 <인생술집>에서는 귀신같은 솜씨로 게스트들을 무장 해제시킨 뒤 어른의 조언을 슬쩍 보탠다. ‘19금’의 대화가 난무할 것 같은 <남원상사>에서는 폭탄 같은 호스트의 말들을 “하여간 개그맨 것들은~” 미리 가이드라인을 세운다. <오늘 뭐 먹지>는 성시경과의 발군의 조화, 한 호흡을 놓치지 않는 미세한 애드리브로 틀어만 놔도 좋은 프로그램의 경지에 올랐다. <미운 우리 새끼>에서는 어머니들과의 이른바 논두렁 토크-주저앉아 김매며 저 집은 어쩌고 이 집은 어쩌고 하는 식의 토크-의 정점을 보여준다면, <불후의 명곡>에서는 가수, 관객, 시청자까지 들었다 놓는 소개가 아예 프로그램의 한 축을 만들었다. 그런가하면 대화의 결을 비집고 들어가 웃음을 찾는 힘은 <수요미식회>와 <용감한 기자들>을 빛나게 한다. 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볼 때마다 웃긴데 그걸 누가 할 수 있을까.

똑같은 신동엽이 똑같은 능력치로 똑같이 웃기는데 방송마다 웃음이 나오는 포인트는 개별적으로 모두 다르다는 것은 사실 놀라운 일이다. 여기서 하나 재미있는 것은 신동엽 자신은 이 프로그램은 이렇게 해야지, 저건 저렇게 해야지, 헷갈리면 안 되는데, 식의 자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영리하게 프로듀서와 작가, 편성책임자, 광고주의 입장을 한꺼번에 아우르는 지점을 찾아 거기서 포식자처럼 기다린다. 그러고는 이윽고 상대를 웃게 한다.

똑떨어지는 균형감이야말로 신동엽의 가장 큰 장점이다. 그토록 ‘19금’, ‘섹드립’을 하면서도 여성 혐오로는 체중을 옮기지 않는다. 웃기려는 ‘선의’가 상처가 되고마는 실수를 누구에게도 하지 않는다. 웃기려는 ‘미필적 고의’로 누군가를 소외시키지 않지만 누군가를 부상시키거나 부상하게 두지도 않는다. 함부로 말하는 것 같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다. 선을 넘어 불편하지 않고 누구의 말을 받아주지 않으면 어쩌나, 누군가 안 받아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그가 나온 장면에는 없다. 신동엽을 보면서 좋은 점은 불안하지 않다는 것이다. 아슬아슬 한 게 그의 웃음의 시작인데 불안하지 않다니, 웃긴 했는데 찜찜했다거나 생각 없이 웃었는데 다음 날 포털 사이트에서 “지나쳤다”, “사과한다”의 기사를 보게 되지 않는다는 경험은 신동엽의 웃음을 마음 놓고 즐기게 한다. 강직한 도덕성, 높은 인간성을 절차탁마한 결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는 사석에서도 절대 타인의 험담을 하지 않는다.

“안녕하시렵니까”외에는 유행어도 없지만 그가 가장 많이 쓰는 말이 하나 있긴 있다. “그래요.” 신동엽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그래요”다. 많은 프로그램에서 그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다 들은 뒤에, 혹은 자신이 뭔가 덧붙이려는 말을 할 때, “그래요”를 쓴다. 동감이지만 공감은 아니고 인지지만 인식은 아니다. 이 미묘한 차이는 그가 진행의 한복판에서 모두의 이야기를 듣고 있고 누군가에게 무게중심을 옮기지 않았으며 말을 자르지도 보태지도 않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균형감각에 이은 신동엽의 또 하나 더 큰 장점은 장난기 가득한 눈이다. 음탕한 이야기도 장난으로 보이게 하는 그의 연기 – 연기도 아닌 것 같은 – 는 불편한 뉘앙스 없이 얄미운 쪽으로도 넘어가지 않는 균형감이 그 표정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개그맨은 웃기는 사람이다. 웃기는 능력이 그 개그맨의 가치를 대변한다. 신동엽은 예의 인터뷰에서 배우나 가수와 달리 작품으로 웃길 수 없고 개인의 매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직업이 개그맨이라 사람 자체의 매력이 지속되어야 인기를 지속할 수 있다고 말했다. 훌륭한 인간이어야 사랑받는 개그맨이 될 수 있다고도 부연했다. 그는 구치소, 보증, 고소 고발의 체험을 개그의 소재로 쓸 수 있는 개그맨이다. 연예인 개인의 흑역사가 그 연예인의 콘텐츠가 되는 세상이지만, 그렇다도 그가 말하는 훌륭한 인간이라는 일반적인 범주로 볼 때 그 콘텐츠는 해당되기 쉽지 않다. 그런데 신동엽의 그 요소야말로 대중과 공유한 실패의 역사로 강화된 유대감으로 쓰이고 있다. 완결된 완성체로서의 인간은 존경스럽지만 걱정도 된다. 실수하면 어쩌나, 그 이미지가 깨지면 어쩌나. 본인보다 더 크게 걱정하는 것이 완전무결한 인격체를 보는 대중의 얕은 속내다. 실수를 해본 인간으로서 갖게 되는 실수한 자에 대한 관대함, 그리고 그 실수를 반성한 사람이라 다시 하지 않을 거라는 인간적 믿음이 그를 불안한 마음으로 보게 하지 않는다.

완전무결한 인간이 되고 싶어 하지도 않고 거장이 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냥 세세거리고 자잘하게 웃긴다. 파도 파도 미담도 안 나오지만 덮어도 덮어도 의혹도 없다. 웃기려는 사람을 웃기만 하면서 볼 수 있다는 것. 다른 생각 없이 그냥 웃을 수만 있게 한다는 특징은 신동엽이 가진 가치 중 맨 앞에 있는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물론 신동엽이 열심히 달리고 함께하는 스태프를 살뜰히 챙긴다고 재미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선배와 함께 숟가락을 들고 다니며 밥을 달라고 해도 재미있지 않을 것이며 호통을 치거나 막무가내 떼를 쓴다고, 보통은 쉽게 하기 힘든 얘기를 떡 사먹듯 쉽게 한다고 해서 재미있지 않을 것이다. 신동엽이 모든 것에서 다 웃기고 다 재미있을 필요는 없다. 다른 이들처럼 말이다. 요컨대, 개그맨은 웃기는 사람이고, 웃기려는 의도 앞에서 말갛게 그냥 웃기만 하면 되는 신동엽을 지지한다. 걱정 근심 날리는 웃음 뒤로 또다른 걱정 근심이 꼬리를 물지 않게 하는 그의 웃음을 지지한다. 신동엽은 웃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