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파인다이닝을 섭렵한 한국 남자

특별한 날의 비일상적 경험, 셰프가 만드는 하나의 전시회, 세심하게 짝을 이룬 음식과 음료, 평범한 채소로 만드는 완전히 새로운 한 접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 들어서면 요리하는 일과 먹는 행위의 최전선을 가장 우아한 방법으로 경험할 수 있다. 파인다이닝을 깊고 넓게 훑은 음식 평론가 신현호가 ‘지금의 파인다이닝’을 맛봤다.

위부터 | 파리 ‘레스토랑 A.T’의 비둘기 요리, 런던 ‘더 그린하우스’의 딸기 디저트와 타이거 새우 요리.

조금 뜬금없지만 근본적인 물음 하나. 파인다이닝 Fine Dining이란 무엇인가? 특별한 날 수트나 드레스를 차려입고 샹들리에 밑에서 하얀 테이블보 위에 놓인 프렌치 요리를 먹는 것? 이런 전형적인 풍경을 파인다이닝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이제 조금 낡은 이야기처럼 들린다. 물론 여전히 많은 사람이 이런 격식을 갖춘 식사를 기대하며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찾는다. 손님 입장에서 파인다이닝은 매일매일 먹는 삼시세끼와 다른, 특별한 날 비싼 레스토랑에서 먹는 특별한 음식이다. 그들에게 이 식사는 그 특별함을 고양시키는 비일상적인 경험이어야 한다. 일찌감치 날을 정해 식당을 예약하고 점심 또는 저녁 시간을 충분히 투자하여, 고도로 훈련된 서버와 소믈리에가 흰 테이블보 위로 끊임없이 날라주는 정제된 음식들과 고급 식재료들, 세심하게 배치된 술을 즐기는 호사스런 유희인 것이다. 그리고 손님들은 그 유희를 위해 상당한 돈을 지불한다.

셰프에게 파인다이닝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조금 더 다양한 대답을 들을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셰프들 역시 파인다이닝을 찾는 손님들이 지불하는 비싼 가격에 대해 자주 언급한다. 심지어 영영 사전 속 파인다이닝의 정의에도 이 ‘비싸다’는 설명이 포함되어 있다. 이 ‘비쌈’은 파인다이닝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일지도 모른다. 파인다이닝이 비싼 재료를 쓴 비싼 음식이라는 단순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와인 페어링을 포함할 경우 한 끼에 1인당 30만-40만원에 이르는 가격은 분명 누구에게나 부담스러운 금액이지만, 서너 시간의 식사 시간을 고려하면 우리가 다른 전문가들에게 지불하는 수준과 비슷하다고 볼 수도있다. 법률 전문가인 변호사에게 세 시간 동안 자문을 받으려면 얼마를 내야 할까? 또는 그와 비슷한 시간이 걸리는 외과 수술에는 얼마의 비용이 들까? 결국 파인다이닝의 가격 이야기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 잠자리에 들 때까지 음식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장 좋은 재료를 이용해 만든 최고의 음식에 시간당 얼마를 낼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바꾸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셰프 입장에서는 이런 비싼 가격 덕분에 평범한 식당들이 고민해야 하는 경제적 제약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마음껏 전문성을 발휘 할 수 있게 된다.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찾는 사람들이 이런 큰 금액을 기꺼이 지불하는 것은, 셰프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시도해볼 수 있는 자유를 허락해주는 것과 같다. 셰르를 신뢰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따라서 셰프에겐 최고의 음식을 만들어 손님들의 이런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직업적인 책임이 있다. 모든 셰프가 이런 기대를 만족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이들은 전통적인 조리 기술 자체를 장인의 경지까지 끌어올려 완벽한 음식을 구현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창의적인 음식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그 완벽함을 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도쿄 긴자의 한 오피스 건물의 지하층에 있는 스시집 ‘스키야바시 지로’와 아마존 밀림의 재료로 브라질을 표현하려는 ‘D.O.M’ 같은 레스토랑을 파인다이닝이라는 범주에 묶을 수 있는 것이다.

손님과 셰프 사이의 이런 신뢰 관계 덕분에 파인다이닝은 이제 전통에서 벗어나 조금 더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물론 프랑스의 궁정 문화에서 시작된 고급 요리 오트 퀴진 Haut Cuisine의 한계를 뛰어넘어 음식으로 셰프의 생각을 표현하려는 변화는 꽤 오래전부터 시작된 운동이지만, 최근처럼 양적으로 급격하게 팽창한 적은 없었다. 지금 우리는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셀러브리티 셰프와 다채로운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가지고 있는 세대일 것이다. 이런 양적 팽창은 파인다이닝 스스로 경계를 허물고 그 외연을 넓히기 시작한 덕분이다.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 대한 정의는 조금씩 느슨해진 대신 다양성을 얻었다.

파리의 네오 비스트로 Neo Bistro 흐름이 대표적인 예다. 최근 몇 년간 파리에서는 “비스트로같이 캐주얼하게, 부담 없는 가격으로, 새로운 음식을 내는 것”을 모토로 하는 레스토랑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흐름을 이끈 ‘르 샤토브리앙’이나 ‘셉팀’ 같은 곳은 전통적인 의미의 파인다이닝에 포함시키기에는 너무 캐주얼한 곳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새 이들 레스토랑은 각종 레스토랑 순위에서 미쉐린의 별이 빛나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제치고 상위권에 오르기 시작했다. 젊은 셰프들이 프렌치의 전통과 적극적인 결별을 전제로 동시대 파리에서 가장 새로운 음식을 내고 있다. 완벽한 음식을 추구하고, 음식에 대한 철학을 손님과 공유하는 것이 파인다이닝의 핵심이라면 이들을 제외할 이유가 있을까? 점점 캐주얼해지는 레스토랑들을 보고 파인다이닝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분명 잘못된 진단이다. 어쩌면 그들의 사망 진단처럼 정형화된 파인다이닝은 생명을 다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목격하고 있는 것은 새로운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된 식당들이 아니라, 이런 변화를 받아들임으로써 살아남은 식당들이다.

셰프가 음식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최근 파인다이닝의 세계에서 손님은 고객이 아니라 점점 관객이 되어간다. 단순히 먹고 싶은 음식을 먹기 위해 돈을 지불하고 레스토랑을 이용하는 고객에서, 일종의 갤러리를 찾은 관람객 같은 입장이 되는 것이다. 화가가 관객에게 어떤 소재로 그림을 그릴지 물어보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이제 식당에서 메뉴에 대한 결정권은 온전히 셰프가 갖는다. 손님들이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이 아니라 셰프가 표현하는 것을 경험하려고 식당을 찾는다는 점에서 이런 종류의 파인다이닝은 순수예술처럼 보이기도 한다. 손님이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서 주문하는 일품요리 ‘알 라 카르트’는 이제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카르트 블랑슈 Carte blanche(백지 위임), 테이스팅 메뉴 또는 깜짝 메뉴 Surprise Menu 같이 셰프가 미리 정해놓은 요리를 정해진 순서에 따라 코스로 먹는 식당이 훨씬 더 많아졌다. 예를 들면 파리의 미쉐린 3스타 ‘아스트랑스’의 저녁 메뉴판에는 ‘디너’ 또는 ‘와인과 함께하는 디너’, 이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다. 심지어 각 코스별로 어떤 재료로 만든 어떤 요리가 나온다는 기본적인 설명도 없이 딱 이 두 줄이 메뉴판의 전부다. 알레르기가 있는 재료를 미리 귀띔하는 정도로 손님들의 선택권이 축소되었지만 이를 불평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파인다이닝은 점점 스시의 오마카세를 닮아간다. 계절에 맞는 재료와 최선의 조리방식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셰프라는 신뢰를 바탕으로 메뉴에 대한 전권을 위임하고, 손님은 감상자 입장에서 음식을 경험한다.

와인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전통적인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고르는 것은 식전에 펼쳐지는 일종의 지적 유희 같은 것이었다. 손님은 음식이 서빙되기 전에 샴페인을 한잔 시켜놓고 두툼한 와인 리스트를 찬찬히 들여다보며 어떤 와인이 음식과 잘 어울릴지 소믈리에와 대화를 나눈다. 자신의 와인 지식을 으스대는 사람도 있고, 소믈리에가 설명하는 와인 산지의 특성이나 음식과의 조합에 대한 설명을 겸손하게 듣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어떤 와인을 구매할지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손님에게 있다. 소믈리에나 셰프 같은 전문가가 만들어둔 일반적인 와인 페어링 규칙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날 손님의 기분과 분위기에 따라 원하는 와인을 골라도 아무 상관없다. 하지만 이젠 점점 더 많은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 손님보다는 소믈리에의 의견에 더 무게를 싣고자 한다. 소믈리에가 음식과 가장 잘 어울리는 와인을 고르고 순서까지 하나 하나 조합해주는 페어링 메뉴를 권한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간 식당들도 나타나고 있다. 왜 음식에 와인만 조합해야 하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맥주나 주스, 칵테일을 코스 요리에 매칭해주는 것이다. 코펜하겐의 ‘노마’와 뉴욕의 ‘일레븐 매디슨 파크’가 그 시작이었다. 샤도네이나 슈냉 블랑이 있어야 할 자리는 사과 주스나 배 주스가 대신했고, 피노 누아가 있어야 할 자리는 산딸기 주스가 꿰찼다. 뉴욕 브룩클린의 북유럽 요리를 내는 레스토랑 ‘룩서스’에서는 건조한 당근과 슈펙 햄에 ‘이블 트윈’에서 만든 IPA 맥주를 매칭해 감귤류의 상큼함을 더한다. 파리의 ‘데르소우’는 음식의 맛과 향을 다양한 칵테일로 보완하는 레스토랑이다. 화이트 아스파라거스, 송아지 타르타르와 드라이한진, 민트, 화이트 와인으로 만든 칵테일이 함께 나온다. 파리의 ‘얌차’에서는 중국의 보이차와 우롱차를 프렌치로 해석된 중식과 조합해준다.

와인이나 음료는 훈련된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한 영역이라 이런 현상을 자연스러운 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손님의 사적인 기호의 영역까지 셰프의 주관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꽤 큰 변화다. 단적인 예로 많은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이제 “고기는 어떻게 익혀드릴까요?”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식사 시작 전에 덜 익은 고기를 먹지 못한다고 따로 언급하지 않으면 미디엄 레어의 붉은 고기를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고기의 익힘 정도를 묻지 않는 것은 손님의 취향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셰프가 믿는 가장 완벽한 상태의 고기를 내고자함이다. 일본인 셰프 케이 코바야시가 운영하는 파리의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 ‘KEI’에서 나온 와규 스테이크가 그랬다. 서버는 식사 전에 고기 덩어리를 테이블까지 들고 와서 어느 지역에서 생산된 어떤 품종이며 얼마나 드라이 에이징을 했는지 한참을 설명하고 돌아갔지만, 정작 고기를 어느 정도 익힐지는 묻지 않았다. 메인 코스에 나온 쇠고기는 역시나 미디엄 레어였다. 그리고 아주 작은 쇠기름이 따로 나왔다. 고기는 지방이 거의 없었지만 드라이 에이징한 고기 특유의 콤콤한 향이 어우러져 씹으면 씹을수록 깊은 육향이 느껴졌고, 따로 나온 쇠기름은 본 매로우처럼 진한 맛이 났다. 그런데 이 쇠기름을 살코기와 함께 먹으면 살코기의 맛이 완전히 달라졌다. 마치 쇠고기 구이에서 지방이 어떤 의미인지 웅변하는 것 같은 요리였다.

손님들은 메뉴 선택권을 잃은 대신 이렇게 음식과 재료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얻었다. 셰프들 역시 손님들의 이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꾸준히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지난 몇 년 동안 레스토랑들이 보여준 혁신적인 음식들은 대부분 육류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이제 파인다이닝 애호가들은 메뉴판에서 콩피한 오리, 랍스터, 와규 스테이크를 보면 진부한 클리셰를 읽는 기분이 든다. 오리와 쇠고기를 가지고 얼마나 더 새로운 요리를 만들 수 있을까? 물론 여전히 이 뻔한 재료들마저도 ‘KEI’에서처럼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재해석되길 기대하겠지만, 육류는 비교적 운신의 폭이 좁은 식재료다. 이런 진부함을 극복하게 해준 것은 의외로 제철 채소들이었다.

뉴욕 ‘아쿠아빗’
뉴욕 ‘아쿠아빗’

처음으로 채소를 파인다이닝 재료로 진지하게 접근한 사람은 파리의 또 다른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아르페쥬’의 셰프 알랭 파사르였다. 그는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과감히 푸와그라, 캐비어, 쇠고기, 각종 가금류를 코스에서 빼고 채식으로만 구성된 파인다이닝 메뉴를 시도했다. 그는 14가지 테이스팅 코스를 파와 당근, 무, 아스파라거스, 아티초크, 콩과 감자 같은, 누구나 시장에서 쉽게 살 수 있는 평범한 채소로 채웠다. 과거의 채식은 반(反)육식이었다. 채소는 그 자체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고기 아닌 것’이었고, 독립적인 재료가 아니라 가니시처럼 보조 역할을 하는 조연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조연의 자리를 지키던 채소들이 비로소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식탁의 주연이 되어가고 있다. 지구상에서 미쉐린의 별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알랭 뒤카세 역시 육류를 줄이고 채식 메뉴를 도입하겠고 발표 함으로써 오트 퀴진에서 육류가 주인공이었던 시대의 끝을 알렸다.

하지만 일상의 음식과 다른 것을 기대하며 파인다이닝 식당을 찾아온 사람들을 앉혀놓고 이런 흔한 재료로 만든 240유로짜리 코스를 납득시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사람의 집중력에는 한계가 있다. 4시간 가까이 이어지는 이 코스는 마치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보는 것과 비교할 만하다. 셰프는 이 채소 요리를 가지고 4시간 내내 손님의 관심을 놓치지 않으면서 14개의 악장을 즐기게 해주어야 한다. 알랭 사파르는 계절감과 지역성에서 답을 찾았다. 그는 농장을 운영하면서 레스토랑에서 쓰는 채소를 직접 기른다. 이 레스토랑에서는 사입된 재료를 손질하는 미장 플라스 Mise en Place 과정 훨씬 이전부터 요리가 시작된다. 그는 주방을 농장까지 확장시켜 비료와 수확 시기, 계절 차이에 따른 미묘함까지 접시에 담으려고 노력한다. 재료 재배에서부터 요리를 시작하는 셈이다. 그리고 이 재료들은 언제나 계절의 중심에 명중한다. 봄이 되면 알싸한 맛으로 입맛을 돋우는 소렐로 퓌레를 만들고, 단맛이 정점에 올라온 아스파라거스와 제철의 파는 직화에서 얻어지는 구수한 맛을 그대로 살려 메인 요리로 낸다. 단조로울 수 있는 채소에 다양성을 더해주는 것은 다양한 지역의 전통 음식에서 빌려온 풍미들이었다. 프렌치코스 중간에 아랍풍 샐러드 타불레나 붉은색 비트를 밥 위에 올려놓은 초밥 같은 메뉴를 끼워 넣는다.

‘아르페쥬’처럼 프렌치 코스 요리라는 틀 안에서 다른 나라 음식의 맛과 향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식당들이 늘어나고 있다. 일본 음식이 파인다이닝 전반에 끼친 영향은 따로 언급할 필요도 없을 정도다. ‘아스트랑스’의 고등어는 일본식 된장으로 간해서 구운 뒤 일본식 다시로 맛을 낸 무와 함께 나온다. 인도네시아의 꼬치 구이 사테처럼 양념한 새우 요리 역시 이 레스토랑의 메인 메뉴 중 하나다. 뉴욕의 ‘르 버나댕’에서는 생선과 육류를 한 접시에 내면서 이 둘을 연결해주는 매개체로 김치를 사용한다. 이 레스토랑의 에릭 뤼페르 셰프는 사찰음식 애호가로 잘 알려져 있고 천진암의 정관 스님을 뉴욕으로 초청해 한국의 사찰 음식을 손님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파리의 ‘암챠’에서는 디저트 전에 제공되는 치즈 보드를 없앤 대신 진한 향의 블루치즈를 중국식 만두 바오즈 속에 담아서 준다.

과거에는 파인다이닝 대상으로 고려되지도 않았던 북유럽 음식, 태국 음식, 한식이 파인다이닝의 한계를 뛰어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제대로 된 정통 음식을 만들면서 한 단계 위로 끌어올린다 Authentic and Elevated’ 라는 원칙은 기존의 프렌치나 이탤리언 파인다이닝과 분명하게 차별화된 영역을 확보해준다. 라연, 정식당, 밍글스, 권숙수가 한식을 대하는 방식과 새로운 접근은 미쉐린 서울을 통해서도 확인됐다. 한식이 가진 파인다이닝으로서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줬다. 특히 애피타이저 위치에 배치된 권숙수의 주안상은 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답다. 방콕의 ‘남’과 ‘가간’은 태국과 인도의 길거리 음식을 파인다이닝으로 끌어 안으면서 그 야생성을 테이블 위에 그대로 남겨놓았다. 파리의 얌차는 중국 음식을 프렌치로 재해석해 미쉐린의 별을 받았고, 뉴욕의 ‘코스메’는 멕시칸에 다양한 퀴진을 접목해 싸구려 음식 취급을 받던 미국식 멕시칸을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렸다. 과거에는 ‘퓨전’이 프랑켄슈타인처럼 맥락 없이 섞인 누더기 같은 요리를 가리키는 경멸적인 뉘앙스를 담은 용어였지만, 이제는 (제대로만 한다면) 음식의 새로움을 찾는 마법의 주문이 되었다.

욘트빌 ‘프렌치 런드리’
욘트빌 ‘프렌치 런드리’

각 지역 음식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한편, 동시에 국지적인 지역성을 최대한 살려내려는 노력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노력은 자신이 만들고 있는 음식의 정체성과 자신이 요리하고 있는 재료, 그리고 그 재료가 온 지역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이다. 그들은 종종 지역적 제약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제약이 셰프를 훨씬 더 창의적으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이제는 문을 닫은 코펜하겐 ‘노마’의 르네 레드제피는 수렵과 채취라는 원시적인 재료 조달 방식에 집착했다. 바닷가 돌 사이에 끼어 있는 이끼를 맛보고, 긴 겨울을 날 수 있는 뿌리채소를 말리거나 피클로 만들었다. 심지어 요리에 개미를 사용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이 파인다이닝에 어울리지 않는 곤충을 식재료로 쓴 것을 흥미로워했지만, 사실 르네 레드제피가 개미를 쓴 이유는 겨울에 레몬을 구할 수 없어서였다. 식용으로 쓸 수 있는 개미가 만드는 페로몬에서는 신맛과 레몬그라스, 약간의 박하 향이 나는데 이 맛을 레몬 대신 사용한 것이다. 물론 코펜하겐에서 레몬을 구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햇빛이 쏟아지는 스페인의 어느 농장에서 갓 수확한 레몬을 3일 이내에 코펜하겐의 식료품점에서 살 수 있는 세상을 살고 있다. 하지만 이 셰프는 북유럽의 긴 겨울이 주는 자연적 제약을 요리에 담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이 제약이 북유럽 음식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상파울루의 ‘D.O.M’에서는 인디오들이 가장 흔하게 먹는 타피오카와 브라질에 존재하는 30가지가 넘는 고추, 다양한 향의 아마존 과일을 사용해 요리를 한다. 그 음식들에는 가난한 인디오의 음식과 그들의 삶의 터전인 아마존에 대한 고민이 녹아 있다. 아마존의 밀림과 강, 바다를 헤메고 다니는 ‘D.O.M’의 셰프 알렉스 아탈라는 종종 깨달음을 얻으려는 구도자처럼 보인다. 그리고 음식을 깨달음을 전달하는 매체로 쓰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파인다이닝을 꼭 예술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트쿠튀르 옷을 매일 입는 사람은 없지만 디자이너의 정체성과 방향을 이해하기 위해 매년 오트쿠튀르 패션쇼로 이목이 쏠린다. 자동차로 치면 콘셉트카 개념과도 비슷하다. 기술자와 디자이너들은 몇 년 앞을 내다보며 이런 차를 통해 과감한 아이디어를 구현한다. 그리고 이렇게 시도된 아이디어들은 몇년 뒤 대량생산되는 평범한 세단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셰프들 역시 음식을 통해 미래를 달리는 중이다.

손님 입장에서는 그저 격식을 갖춘 파인다이닝의 환대를 즐기면 된다.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의 다이닝 룸에 들어서면 어떤 들뜸이 느껴진다. 나는 종종 그 기분을 느끼기 위해 잘 차려입고 레스토랑을 찾는다. 아마도 그 분위기는 식당을 찾은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낸 일렁임일 것이다. 굳이 기분 나쁜 날을 골라 값비싼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찾는 사람은 없다. 레스토랑에 앉아 있는 대부분의 손님은 그 도시를 여행 중이거나 특별히 기념할 만한 날이거나, 무언가를 축하하려는 사람들이다. 모든 사람이 각자의 특별함을 가지고 식당을 찾는다. 그리고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은 그에 상응하는 공들인 접시를 통해 손님들의 머릿속에서 (이제는 시대정신이 되어버린 것 같은) ‘가성비’를 지워주고 ‘음식 경험’을 일깨워준다. 화려했던 식사를 마치면 다시 현실로 돌아오지도 모르겠지만….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