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오의 첫 정규 앨범 ’23’

청춘은 태양 아래에만 있지 않다. 혁오의 첫 앨범 은 어둠 속에서도 스스로 빛을 내는 청춘이다.

오혁이 입은 셔츠는 디올, 톱은 라프 시몬스, 벨트와 체인은 옴므 보이, 슈즈는 나이키.

오버 사이즈 수트를 입고 돌아왔어요. 오버 사이즈 수트 하면 토킹 헤즈가 생각나죠. 이 옷은 어떻게 결정했나요? 오혁 작년에 앨범을 내려고 했고, 작년에 생각해놓은 거예요. 뭔가 새로운 게 없을까 고민하다가 ‘쿨키즈’ 같은 콘셉트를 떠올렸죠.

‘네이버 V 라이브’에서 살이 많이 쪘다고 그랬잖아요. 저는 좀 가리려는 건 줄 알았어요. 오혁 앨범 내기 전에 많이 쪘는데 지금은 뺐어요. 흐흐.

아빠 옷을 입은 아이처럼 보이고, 그게 이번 앨범 콘셉트와도 이어지는 것처럼 보여요. 오혁 거기까지 고려하지는 않았는데 주변에서 많이 그러더라고요. 어른과 아이의 경계에 서 있다는 메시지를 옷으로 표현한 게 아니냐, 막 삶의 무게가 어떻고 하는데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했죠.

임현제가 입은 셔츠는 생 로랑 by 무이, 슈즈는 나이키.

‘청춘’이라는 단어를 들고 나왔어요. 지금이 청춘의 어느 시기쯤이라고 생각해요? 현제 저는 시작인 것 같아요. 동건 저도 시작이요. 인우 저도요. 오혁 전 좀 간 것 같아요. 현제 세 자릿수 나이 시대야, 이제. 백 살 넘게 사는데 스물다섯 살이. 오혁 청춘은 어떻게 보느냐인 것 같아요. 본인이 청춘이라는 걸 인지 못할 때가 진짜 청춘 같거든요.

이상은의 노래도 있었죠.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오혁 네. 그런데 저는 이미 알기 때문에 청춘이라는 메시지를 담아서 음악을 만든 거잖아요. 청춘이 어떻게 오는지 알면 이미 지난 거 아닐까요?

첫 앨범인데 시작이라는 기분도 없었어요? 오혁 그건 분명히 있었죠. 이 앨범으로 어떻게 할 거고 이제 뭔가가 달라질 거라는 것. 이전과는 다른 동기부여요.

이인우가 입은 티셔츠는 스투시, 모자는 87mm, 슈즈는 나이키.

앨범 제목을 항상 나이로 정했어요. 사회적으로 스물세 살은 굉장히 어리지만, 숫자 자체는 중립적이죠. 하고 싶은 말은 비워놓은 것 같달까. 그래서 이 앨범이 정확히 어떤 방향으로 가는 건지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는 사람들이 모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현제 정규 앨범을 내야겠다는 것 자체가 동기부여였어요. 오혁 그러고 보니 저도 청춘의 중간에 있긴 한 것 같아요. 시작은 아닌데 휩쓸려서 계속 가는 느낌이 있어요. 숫자를 계속 쓰는 건 청춘이 ‘익스큐즈’가 된다고 생각해서예요. 예를 들어 불리할 때 청춘이라는 카드를 써서 난 아직 청춘이어어서 잘 몰라서 그래요, 그럴 수 있고. 하하.

너무 방어적인 것 아닌가요? 오혁 그렇죠. 야비한 거죠. 하하. 그런데 공부를 하고 배워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청춘은 공부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결국 시간 대비 경험으로 얻는 것밖에 없어서 좀 더 방어적이 되는 것 같아요.

앨범이 큰 의미가 없는 시대예요. 사람들이 혁오의 노래를 좋아해도 그게 어느 앨범에 있는지 잘 모를 확률이 크고요. 앨범을 만든 입장에서 혁오는 어떤가요? 오혁 전 세대 밴드했던 분들과 얘기해보면 분명히 보는 관점이나 접근 방식이 달라요. 우리 주변엔 풀렝스 앨범을 낸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형들은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더라고요. 하지만 애초에 저희는 밴드 신에 대한 이해가 없었어요. 정규앨범에 대한 기대도 없었고요. 다만 첫 앨범이 되게 중요하고, 꼭 한 번 멋있게 해야 한다는 정도?

임동건이 입은 티셔츠는 스투시, 벨트는 디올, 슈즈는 컨버스.

밴드는 첫 앨범에서 가장 멋모르고 젊은 법인데, 신기하게도 그게 음악을 잘하는 것 이상의 감흥을 주곤 해요. 한편 청춘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는 인상은 엇비슷하지만 사실 각각 다른 청춘을 살죠. 청춘이라는 말이 모호하다면 세대는 어떤가요. 이 앨범에서 혁오의 세대가 공유하는 감각은 여전히 공허한 쪽이던데요? 오혁 이전 앨범들에서는 청춘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어요. 근데 하고 싶은 얘기, 하고 싶은 음악에 포커스를 두고 계속 만들어가다 보면 결국 알맹이가 남더라고요. 이전부터 청춘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걸 알았지만 딱히 신경을 쓰진 않았어요. 이번 앨범에서는 청춘의 다른 단면에 대해, 대놓고 얘기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괜찮아 보였어요. 아트 디렉터 노상호와 2002년 월드컵에 대해 얘기하다가 ‘세대’가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저희 세대는 한 번도 그렇게 큰 성공이나 기쁨을 맛 본적이 없어요. 아는 분이 그랬죠. 너희는 그렇게 큰 기쁨을 얻을 수 있는 방법도 모르고 앞으로 갈 길이 너무 멀어서 잘 보이지도 않는 세대라고요.

Tomboy’라는 좋은 청춘 송가가 이 앨범에 담겼죠. 이 앨범의 콘셉트인 청춘을 대표하는 노래의 제목이 ‘Tomboy’라는 게 재밌어요. 톰보이는 여성을 가리키는 말이잖아요. 오혁 뭐 큰 의미는 없어요. 제가 네 글자를 굉장히 좋아해서, 지금까지 모든 걸 네 글자로 자르려고 하는 게 있었는데…. 불타버린 청춘한테 주는 첫 번째 메시지, 위로 같은 거니까 대상을 제한하고 싶지 않았어요.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그 중간에 있는 단어 중에서 고른 거예요.

혁오의 노래는 가사와 제목이 별 상관이 없어 보여요. 이전 세대에게는 통일감을 줘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거든요. 오혁 저도 있긴 한데, 이미 너무 많이 나와버렸잖아요. 뻔하게 하기는 싫고, 저희가 하는 얘기가 세상에 없는 얘기도 아니고. 만약 술에 대해서 쓴다고 하면 곡 제목이 그냥 ‘마시는 술’인 거죠. 자기 맘대로 해버리는 그게 요즘의 정서가 아닐까. 하하.

음악이랑 가사는 관련이 있나요? 오혁 그거는 잘 해야죠. 정석적이지는 않지만 연결성은 있는 것 같아요. 슬픈 노래에 슬픈 가사, 밝은 노래에 밝은 가사 같은 건 재미가 없어서 하지 않고요.

오혁이 입은 셔츠는 디올, 톱은 라프 시몬스, 벨트와 체인은 옴므 보이.

음악은 무엇보다 소리인데, 믹싱을 베를린에서 한 이유가 있어요? 현제 혁이가 좋아하는 더 화이티스트 보이 얼라이브의 앨범 믹싱 엔지니어가 독일에 있었거든요. 오혁 노먼이 한국에 와서 작업한 걸 기기 결함으로 다 날려먹고 저희가 독일로 갔죠.

믹싱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였는데요? 오혁 ‘야마’랄까. 제가 상상했던 이미지를 똑같이 구현해내는 거요. 이때까지 한 번도 그래본 적이 없었거든요. 저희 비행기 타기 직전까지, 애정을 가지고 작업해주셨어요. 그럼에도 제가 생각하는 이미지랑은 거리가 있었고요. 처음 한 달 동안은 서로 마음에 안 들어서 ‘밀당’을 했고, 결국 그분은 만족했지만 저는 아니었거든요. 더 이상 끌기엔 이미 돈을 많이 써서 회사에 미안한 상황이었고요. 근데 마스터링하니까 진짜 확 달라지더라고요. 그때부터 다시 노먼을 찬양했죠. 마스터링이 어떻게 나오는가에 대한 ‘빅 픽처’를 갖고 믹싱을 한 거예요.

서로 싸워가면서 나온 작품 중에 좋은 게 많죠. 밴드 혁오는 어때요? 현제 싸운다는 건 자기주장을 한다는 거니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밴드는 한 명이 멱살 잡고 가는 게 아니니까. 의견이 충돌하면서 나오는 노이즈는 당연한 거 같고요. 오혁 그렇게 하는 이유가 있으면 되는 것 같아요. 왜 좋은가를 정리해서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되죠. 하지만 그보다는 함께 연주하면서 감각적으로 아는 부분이 커요. 사실 네 명이 보고 듣는 게 비슷해서 느끼는 것도 비슷하고요. 작년 초에 ‘Tomboy’ 쓸 때 그랬어요. 그때 나오는 노래들이 너무 자극적이고 비슷하게 들려서 싫은 게 있었는데 그즈음 현제가 비슷한 얘길 하더라고요. 그래서 좀 더 오래 들을 수 있고 편안한 노래를 해보자고 해서 나온 곡이에요.

이번 앨범에서 밴드의 야심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곡은 ‘Wanli万里’죠. ‘밴드 사운드는 이거다’라고 보여주는 듯 하달까요. 오혁 지금까지 해보고 싶었던 소리가 구현되면 구현될수록 원초적으로 돌아가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래서 생각보다 더 로킹한 아웃풋이 나왔어요.

‘Wanli万里’를 포함해 이 앨범에는 세 가지 언어가 담겼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혁오는 예전부터 외국인처럼 느껴지는 게 있었죠. 오혁 그걸 좀 의도한 것 같아요. 신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포지션을. 현제 제 개인적으로는 그런 거리감이 편해요. 너무 가까운 것은 싫고, 너무 멀어지는 것은 아쉬워요. 동건 저도 현제랑 비슷한데, 현제보다는 한 발자국 뒤에 있는 느낌이죠. 저는 가까운 게 좋았는데, 요즘은 좀 먼 게 편하더라고요.

그래서 만약 혁오의 일원이 아닌 채로 지금의 혁오를 들었다면 부러웠을 것 같아요? 오혁 네. 현제 저는 이번 정규 앨범 듣고 생각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그래도 얘네가 움직이고 있구나, 생각하고 있구나. 동건 저는 딱히 부러웠을 것 같지 않아요. 오혁 왜? 동건 그럴 수도 있지. 멋있다, 이 정도? 부러운 거랑은 다르죠. 인우 저도 이번 앨범 듣고 생각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이전에는 그냥 좋은 노래구나, 하고 넘겼을 텐데. 현제 저는 그래요. 혁오의 미니 앨범만 들었다면 다음에 대한 확신을 못 가졌을 거예요, 리스너로서. 그런데 이번 앨범을 들으면 얘네는 다음에 뭘 할까?, 궁금증이 생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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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 피처 에디터] 책, 음반, IT를 담당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