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아버지, 베이비 부머 세대

마침내 살아남아 잉여의 의무에 등이 굽은 베이비 부머.

심규호 , 2017
심규호 <신도림>, 2017

나는 베이비 부머 중 한 사람이다. 우리는 한국 전쟁 뒤 태어났다. 미디어에서 ‘꽃중년’이라고도 부르는 우리는 어린 시절에 최희준의 ‘하숙생’과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를 듣고 자랐다. 우리 잘못은 아니지만 어쨌든 우리는 한꺼번에 우르르 많이 태어났다! 우리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감동하고, <러브스토리>를 보며 가슴이 뛰었다.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에서 자본주의가 어떻게 순결한 여자를 농락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지를 보고, ‘사상의 은사’인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나 <우상과 이성>들을 읽으며 ‘의식화’를 겪었다.

우리는 채변 봉투에 받아간 똥으로 기생충 검사를 받고, 쥐꼬리를 잘라 학교에 내는 숙제를 하고, 미국이 구호물자로 보낸 옥수수 가루를 쪄서 만든 빵을 받아먹었다. 너 나 할 것 없이 다들 가난하던 시절이다. 박정희 군부 독재 18년 내내 일제 제국주의의 교육칙령을 본 뜬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우고, 고등학교 때 교련 과목이 생겨 유사 군복을 입고 제식훈련과 반공 교육을 받으며 애국심을 강요당했다. 1971년 서울 8개 대학에 무기 휴업령과 위수령이 발동하고, 1972년 유신 선포와 전국 비상계엄 선포, 1973년 중앙정보부의 김대중 납치 사건, 1974년 긴급조치 제1호와 제2호의 공포를 겪는 와중에도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들 중 일부는 군부 독재에 저항하는 데모에 뛰어들어 일부는 감옥에 다녀온다. 양희은의 ‘아침이슬’과 김민기의 ‘친구’를, 송창식의 ‘왜 불러’와 이장희의 ‘그건 너’를 부르며 질풍노도의 청춘을 건넜다.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거리에 울려 퍼지던 무렵 독재자의 갑작스런 죽음과 5·18 광주항쟁을 목격했으며, 1987년 시민혁명으로 직선제를 쟁취하고, 고도 소비 사회의 풍요와 공직자들의 도덕적 해이로 나라 경제가 거덜나면서 닥친 외환 위기라는 고난의 시기를 겪었다.

압구정동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던 무렵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했는데 그것을 문화적 충격으로 겪었다. 우리는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성수대교가 그 위를 달리던 자동차들과 함께 강물로 주저앉고,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뒤집어져 침몰하는 등 각종 사건과 재난의 목격자다.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압력을 거의 비슷한 강도로 겪으며 삶의 부피를 키워왔다. 지난겨울 내 친구들 일부는 주말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외치는 촛불집회에 나가고, 또 다른 일부는 탄핵에 반대하는 태극기 집회에 나갔다. 친구들은 부자와 빈자, ‘보수 꼴통’과 ‘진보 좌파’, 신념 기억이 강한 자와 유연한 학습 기억을 가진 자들로 나뉜 채 뒤섞여 있다.

우리의 생김새들이 제각각 다르듯이 베이비 부머의 살림 형편이나 정치에 대한 의견은 각양각색이다. 어떤 친구는 내일 세상에 종말이 올지라도 오늘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고 하고, 다른 친구는 그 사과나무를 베어 팔아서 소주 한잔을 마시겠다고 한다. 어떤 친구는 ‘나는 꼼수다’ 같은 풍자 코미디에 열광하고, 또 다른 친구는 정치 따위와는 담을 쌓은 채 부동산 경매를 쫓아다닌다. 어떤 친구는 주말 골프 스코어를 얘기할 때 신명을 내고, 또 다른 친구는 연금 액수를 자랑할 때 보람을 느낀다. 어떤 친구는 영화 <변호인>에 열광하고, 또 다른 친구는 <국제시장>에 눈물을 떨군다.

나는 1970년대 초반 상업고등학교를 다녔는데 학과 공부 대신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을 읽었다. 결국 상업학교를 중퇴하고 시립도서관에 붙박이로 앉아 혼자 몇 년 동안 습작을 한 끝에 등단을 하고 지금은 전업작가로 산다. 공부를 잘한 친구들은 은행이나 증권회사에 들어가고, 그들 중 일부는 지점장을 거쳐 정년퇴직을 한다. 드물게 교사나 중학교 교장, 국회의원이나 지자체 장, 건설회사나 제약회사 사장들도 나왔다. 가장 희귀한 사례로 라면회사에 들어갔다가 뒤늦게 독일로 유학을 가 오페라 가수로 활동하며 명성을 얻은 친구도 있다. 고등학교 동창회 때는 실로 다양한 직종의 친구들이 모인다. 동창 모임에 나갔을 때 여러 사람이 약속이라도 한 듯 등산복을 입고 있어서 놀랐다. 등산복이 편하고 기능적이기 때문일 테다. 한편으로 꽃중년층의 등산복 패션은 이들이 감당하는 생의 나날이 여전히 ‘산’같이 가파르고 힘들다는 무의식적인 암시다. 내 친구들은 빈곤과 생계에 대한 강박에서 자유롭지 않다. 건설회사에서 다니던 친구는 은퇴하고 아파트 경비직으로 일하고, 은행 지점장을 지낸 친구는 부동산 중개인으로 변신했다.

우리 세대는 거의 모두 누군가의 ‘아버지’들이다. 신화의 세계에서 아버지는 “세계의 의미를 담보하는 자”이고, “세계의 질서를 정하고 모든 의미를 확정하는 최종적인 심급, 즉 ‘신성한 천개(天蓋)’”이다. ‘아버지’는 신이거나 하늘이고, 왕이고 예언자로 절대 정신이나 역사를 지배하고 이끄는 전일적(專一的) 존재다. 아버지가 없는 세계란 질서를 제정하고 감독하고 관리하는 힘이 사라진 것을 뜻한다. 그런 무질서한 세계에서 “우리는 아무런 의미도 없이 불행에 처하고, 이유도 없이 학대당하며, 어떤 교화의 의도도 없이 벌을 받고 농담처럼 살해당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들은 언제든지 억압적이고 교화적인 폭력을 쓰는 악의 표상으로 변질되는 존재다. ‘아버지’는 정치 상징에서 기존의 질서와 가치 체계를 수호하고 지배하는 독재자다. 우리 세대에게 그 ‘아버지’ 노릇은 벅찬 일이다. 이제 성인이 된 자식들을 출가시키는 일에 목돈을 써야 하고, 아버지로서 누리는 권리보다 잉여의 의무에 허덕이는 까닭이다. 우리 세대가 맡은 아버지는 부권제 이데올로기나 권력은 없고, 오직 가족 부양을 떠맡으며 긴 노동을 한 탓에 어깨가 굽은 ‘슬픈’ 아버지다.

우리 세대의 많은 친구가 정년퇴직을 하고 생업 일선에서 물러나 빈둥거리며 지낸다. 이 혈기왕성한 ‘젊은 노인’들은 인터넷에서 밴드를 만들어 자주 만나 당구를 치고 소주 한 잔을 나누거나 주말마다 모여 정기적으로 산을 오른다. 주말 뒤 밴드에는 등산 가서 손가락을 브이자로 하고 찍은 단체 사진들이 꼬박꼬박 올라온다. 50여 년 전 아르헨티나로 이민 간 친구가 돌연 귀국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성공한 친구는 사업을 접고 돌아왔다. 회귀성 어류같이 생명을 얻고 자라난 땅으로 ‘돌아오고’있다. 노년기 초입에 선 친구들은 저마다 “처음 늙어보는” 시간을 어리둥절해하면서 맞는다. 남은 생을 지배할 ‘늙음’ 앞에서 당황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영국 문화인류학자인 던바는 인간의 신경피질이 다룰 수 있는 친근한 인간관계는 150명 안쪽이라고 한다. 같은 해에 태어난 100명 중 한 명은 16세에 죽고, 63세 이후로 해마다 한 명씩 죽음으로 주민등록이 말소되다가, 75세가 되면 67명이 남고, 100세를 살아서 맞을 이는 단 3명뿐이다. 우리 세대는 해마다 한 명씩 사라지는 지점에 도달한다.

1969년 7월 20일, 오후 10시 56분, 아폴로 11호에 탑승한 닐 암스토롱은 달에 착륙한다. 그는 달의 지면에서 몇 걸음을 뗀 뒤 “이것은 한 사람에게는 작은 한 걸음에 불과하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라고 감격에 찬 말을 토해낸다. 우리 세대 대부분 닐 암스트롱의 이 말을 기억한다. 우리의 살아남음도 ‘위대한 도약’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각종 교통사고와 익사와 낙상사고, 예기치 못한 재난과 재해들, 각종 암과 파킨슨병을 용케도 다 피하고, 승자 독식사회의 경쟁과 자살의 유혹을 견뎌내고 살아남았다. 자랑스럽다!

우리 세대는 건너온 세월의 부피를 통해 인생은 전혀 공평하지 않다는 것쯤은 깨달았다. 베이비 부머 중 일부는 벌써 세상을 뜨고 없다. 우리가 아직 살아남은 것은 부모에게서 받은 건강한 유전자의 영향과 행운이 겹친 결과겠으나 어쨌든 거저 주은 공돈 같은 건 아니다. 심신을 다지는 운동, 충분한 수면, 비타민 복용들, 날마다 먹은 사과와 건강한 웃음들도이 살아남음에 기여했을 테다. 중요한 것은 이 살아남음으로 이 세상을 더 좋은 방향으로 바꾸는 데 어떻게 기여할 것이냐 하는 일이다. 우리 살아남음의 숭고함은 세상의 평범한 악들에 분노하고, 치매나 노망에 또렷한 정신을 빼앗기지 않으며, 하루가 멀게 다가오는 ‘늙음’을 웃으며 맞는 일로 증명할 수 있을 테다.

세대론은 다만 함정일까? 그것에 대해 말하느니 결국 스스로 덫을 놓는 격일까? 의심하며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고 답한다. 나와 내 세대는 무엇인가? 서로 다른 해에 태어난 12인의 칼럼과 서울에 사는 젊은 사진가 7명이 ‘세대’라는 테마로 자유로이 작업한 사진을 나란히 싣는다.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