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생긴 젤라토 가게 4

가게는 작지만 기상이 꼿꼿하고, 만드는 건 느리지만 누구보다 앞서가는 젊은 대표들의 젤라토 가게가 우르르 문을 열었다. 올해의 젤라토는 작년과 다르다.

끼아로 젤라떼리아 ㅣ 냉천동 ‘시로의 젤라토’라는 블로그가 있었다. 서울은 물론 전국의 젤라토 가게를 속속들이 탐방한 기록. 작년 11월의 마지막 포스팅과 함께 사라진 주인장을 냉천동 끼아로에서 만났다. 그사이 젤라토 가게의 대표가 되어, 매일 17가지 서로 다른 맛의 젤라토로 쇼케이스를 꽉 채우느라 여유가 없었다며 웃는다. 차상혁 대표의 말은 엄살이 아니다. 끼아로의 쇼케이스를 자세히 훑어보면 한가지 맛의 젤라토 안에 두어 개의 부재료가 더 들어가는데, 그 역시도 직접 주방에서 만든다. 이탈리아 요리를 공부하다 젤라토로 빠진만큼 재료 손질과 조합에 관해선 자신이 있다고 해도, 혼자서 다 해내기란 쉽지 않다. 감사한 마음으로 젤라도를 한 컵 먹었다. 끼아로의 젤라토는 단맛에 주저함이 없다. 디저트는 디저트다워야 한다는 게 차 대표의 생각. 생초콜릿을 먹는 듯이 진한 맛의 ‘아라과니 초콜릿’이나 딸기우유 위에 누텔라를 한 겹 덮은 ‘딸기 크레미노’는 입 안에 확실한 즐거움을 준다. 가루 토핑을 올리거나 견과류나 칩을 넣어 클래식한 젤라토에 씹는 맛과 재미를 더한다. 사진 속 아이스크림은 ‘서울의 휴일’인데, 직접 만든 단팥과 견과류, 우유, 미숫가루가 들어간다. 한 입 먹으면 ‘아, 팥빙수!’라는 생각이 절로 터진다.

“왜 이렇게 많은 젤라토 가게들을 다녔냐고요? 제가 질투와 샘이 많아서 그렇죠. 최대한 많이 경험해보고 싶었어요. 모든 재료는 다 젤라또가 될 수 있어요. 계속 연구해서 이탈리아와 비교해 한 치도 밀리지 않는 젤라테리아가 돼야죠.”

 

당도 ㅣ 망원동 문 연 지 3개월째. 손님이 너댓 명 들어서면 꽉 차는 작은 가게에 얼룩 하나 없이 깨끗한 셰프복을 차려입은 부부가 있다. 김정훈 대표는 젤라토를 만들고, 김보슬 대표는 그 외 인테리어부터 제품 디자인을 도맡는다. ‘당도’가 망원동 주민들의 일상이 되길 바라는 만큼, 당도 역시 그 자체로 두 대표의 일상이다. 그 일상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다 보니 3개월 사이에 젤라토 컵도 귀여워졌고, ‘맛보기 두 숟가락’도 생겼다. 컵을 받아 든 손님들은 하나같이 흰 벽에 젤라토를 대고 정방형으로 사진을 찍는다. 당도가 생각하는 젤라토의 목표점은 거창하지 않다. 최고급은 아니더라도 구할 수 있는 최대한의 좋은 재료를 쓰고, 깨끗하게 만드는 것. 그리고 이탈리아 젤라떼리아에서 2년간 일하며 터득한 것들을 김 대표가 좋아하는 방식대로 다시 풀어내는 것.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젤라토의 끝 맛이다. 가장 인기인 소금 맛 젤라토는 짠맛과 단맛이 가볍게 혀 위에 올라 앉았다가 푸드득 사라진다. 먹고 싶은 것을 가득 담아 사진을 찍었다. 제일 아래 컵부터 라즈베리와 누텔라, 레몬과 오렌지, 딸기와 헤이즐넛, 녹차와 수박. 그리고 귀처럼 보이는 맛보기는 초콜릿과 민트.

“이탈리아에서 젤라토는 우리의 떡볶이 같은 거죠. 만드는 사람마다 맛도 스타일도 다르고요. 언제든 가볍게 사먹을 수 있는 것도 비슷하죠. 전 젤라토를 만들 때 행복해요. 손님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어쩐지 신기하기도 해요.”

 

녹기 전에 ㅣ 익선동 3평 짜리 작은 가게 앞엔 D-day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문을 연 지 딱 100일째 되는 날 찾았다. 박정수 대표는 매일매일 시간이 흐르는 것,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결국 아이스크림도 녹는다는 사실을 가게를 통해 드러내고 싶었다 말한다. “그러니까 늦기 전에 즐기자는 겁니다.” 박 대표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가장 좋아하는 일에 매진하기로 마음먹었다. ‘녹기전에’는 큰 그림의 일부이자 시작점이다. 젤라토의 콘셉트를 매해 다르게 해 시즌제로 운영할 계획도 세웠다. 원년인 올해는 ‘토속’과 ‘전통’을 주제로 식재료를 골라 젤라토를 만들고 있다. 곡물류의 고소한 맛이 중심을 잡는다. 이곳은 다른 젤라테리아보다 쇼케이스가 확연히 작다. 열심히 만들어도 7가지 이상을 내놓을 수 없다. 그래서 오히려 더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할 수 있다. 젤라토와 아이스크림의 경계를 미묘하게 넘나드는 스타일로, 재료를 과감하고 독특하게 사용한다. 만우절에는 거짓말처럼 ‘크랩 케이크’라는 이름으로 게살이 들어간 젤라토를 진짜로 만들었다. 요즘 가장 인기 있는 건 칡, 쑥, 인절미, 막걸리 맛이다. 사진 속은 칡과 쑥. 그 맛이 와락 난다.

“전기공학과라 그런지 레시피를 엑셀로 다 짜두고 다양하게 조합해요. 남들이 하지 않는 재미있는 맛들을 이 엑셀로 계속 만들어보고 싶어요. ‘차가운 디저트’라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독창적으로요. 내년엔 어떤 콘셉트로 할지 아직 모르겠지만요.”

 

젠제로 ㅣ 삼성동 이탈리아어로 젠제로는 생강이라는 뜻. 문 연 지 3개월을 넘기고 있는 이 집의 대표 격인 ‘생강 우유’ 맛을 한움큼 퍼 먹어보았다. 생강의 알싸한 매운맛은 흐려지고 생강의 단맛이 선명하게 올라온다. 봉동 생강을 시럽으로 만들어 향을 살렸다는 권정혜 대표의 설명이 귀에 쏙 꽂힌다. 숟가락을 물고 쇼케이스를 찬찬히 살펴보니 골드퀸 3호 쌀, 제주 한라봉, 제주 목초우유, 우곡 수박…. 재료의 산지부터 손질까지 제대로 매달렸다는 게 제법 긴 재료 설명 문구에서부터 보인다. “깨도 직접 볶고, 피스타치오도 직접 벗기고 볶아요.” 원재료의 맛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위해 우선 원재료부터 최고의 것으로 준비한다. 각 재료의 베이스를 다 따로 만들고 있어, 하나의 젤라또가 쇼케이스에 들어갈 때까진 길고 긴 작업이 수반된다. 물론 ‘마리아주’를 고려한 권 대표의 추천까지 더해져야 비로소 완벽한 마무리가 된다. 쌀의 고소함과 말차의 쌉쌀함, 얼그레이의 화사함과 초콜릿의 묵직함을 한 컵에 매칭하는 식이다. 번갈아가면서 숟가락으로 떠먹으면, 손과 입을 멈출 수가 없다. 사진 속은 권 대표가 손님들에게 자주 추천하는 초콜릿과 수박, 라즈베리와 흑임자, 한라봉과 녹차 맛이다.

“요리보다 수월하겠지, 불을 좀 덜 쓰겠지, 생각했는데 젤라토는 정말 손이 많이 가는 요리입니다. 그래서 하루에
만들 수 있는 양도 한정적이에요. 하지만 요리만큼 흥미롭기도 합니다. 재료의 매력을 살리는 재미가 쏠쏠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