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 불을 지른 다섯 개의 시계

그리고 비밀을 태우던 은밀한 시간.

RAILMASTER 이 시계를 처음 보면 눈보다 마음이 급해진다. 회색 다이얼은 도시의 초현대적 콘크리트 건물처럼 차갑고 명료하다. 시계가 무결점의 한 덩어리로 보이는데, 마치 마침표처럼 똑 떨어진다. 지극히 예민하지만 신경쇠약으로 보이지는 않는 이 시계의 이름은 레일마스터. 기차의 엔진이 가장 열렬히 뛰던 시절 열차 시간을 엄격히 지키기 위해 만들었는데, 오메가에서 몇 년 전부터 다시 선보이기 시작했다. 2017년 바젤 페어에 처음 등장한 이 버전은 단순함, 실용성, 우아함으로 유명해졌다. 기차의 엔진을 위해 태어난 시계답게 기술적인 변화 또한 모색했다. 더블 케이스의 반자성 시계로 엔지니어처럼 자성 가까이 일하는 사람에겐 꼭 필요한 시계. 1만5천 가우스가 넘는 자성을 견딜 수 있는 씨마스터 레일마스터 코-액시얼 마스터 크로노미터 6백만원대, 오메가.

 

LUMINOR 1950 파네라이를 찬 남자는 달라 보인다. 취향이란 단어를 제대로 수식하는 시계라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오피치네 파네라이는 꽤 오랫동안 비밀결사대처럼 보였다. 이탈리아 해군의 한 축으로 다이빙 관련 장비가 유독 유명한데, 루미노르와 라디오미르 디자인은 1997년까지 군사 기밀이었다. 지중해의 비밀이라 부르고 싶은 다이빙 시계, 루미노르 1950의 케이스는 산화지르코늄을 바탕으로 한 합성 세라믹 소재로 만들었다. 강철보다 다섯 배는 강하지만 훨씬 가볍다. 상처, 부식, 열에 강한 건 덤이고. 100미터 방수 기능을 돕기 위해 크라운에 레버를 달았는데, 그 모양이야말로 기능적 아름다움의 절정이다. 문득 만지고 싶어질 정도로. 또한 파네라이가 만든 새로운 플라이백 크로노그래프답게 연속 동작을 단숨에 해치운다. 루미노르 1950 3 데이즈 크로노 플라이백 오토매틱 세라미카 1천7백만원대, 파네라이.

 

MILLE MIGLIA 흰 티셔츠를 입으면 드러나는 두툼한 등 근육처럼 동물적이다. 시계를 뒤집으면 사파이어 크리스털 케이스 백 아래, 텅스텐 로터가 적나라하다. 스테인리스 스틸 보디부터 100미터 방수 기능까지. 거친 물리적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짐승 같은 시계. 날렵한 포식자의 골격과 근육이 미적인 가치를 스스로 획득하는 것처럼 밀레밀리아 역시 기능을 위한 세부가 맞물려 하나의 우아함으로 완성된다. 심장은 셀프 와인딩 쇼파드 칼리버 01.08- C로 시간당 2만8천8백 번 맹렬히 진동한다. 9시 방향엔 파워 리저브 인디케이터를 달아 기계적인 아름다움을 더했다. 게다가 정밀한 크로노미터와 스톱 세컨드 기능까지. 여름 시계의 거의 모든 기준을 만족시킨다. 밀레밀리아 GTS 파워 컨트롤 8백만원대, 쇼파드.

 

TANK MK 탱크의 간결한 아름다움과 인기는 굳건한 채로, 새로운 모델이 등장할 때마다 탱크의 지난 시절을 되돌아본다. 이 유명한 시계엔 저마다 이런저런 이름이 따라붙는다. 영원한 여행자의 시계처럼 어느 지점을 딛고 설 때마다 기막힌 이야기가 생긴다. 무하마드 알리, 이브 생 로랑, 톰 포드가 찬 탱크 이야기처럼. 이번 모델은 까르띠에가 제작한 첫 번째 매뉴팩처 무브먼트 1904 MK를 기념한다. 자랑하듯 사파이어 글라스 케이스 백 너머 무브먼트가 장엄하게 움직인다. 탱크 MK는 정사각형에 가깝게 만들어 다이얼 위로 시간이 여유롭게 흐른다. 태양을 등진 벌판처럼 시원시원해 여름에 더 차고 싶다. 길로셰 다이얼부터 로마 숫자까지 탱크를 지탱하는 요소는 그대로지만, 좀 더 강렬해졌다. 3시 방향에 날짜 창과 6시 방향에 스몰 세컨드를 더한 탱크 MK 8백10만원대, 까르띠에.

 

CHRONOMETRIE COLLECTION 실용성으로 만든 우아한 시계. 좋은 시계의 기준을 두고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지만, 과시하기 위한 기능은 거두고 꼭 필요한 부분은 강조한 시계라 결론 지었다. 몽블랑 워치메이커가 만든 이 새로운 시계의 중심엔 몽블랑이 직접 만든 MB 24.23 무브먼트가 있다. 오토매틱 칼리버로 서른여덟 시간의 파워 리저브 기능을 갖췄고, 날짜 기능은 전통적인 날짜 창이 아니라 따로 서브 다이얼에 두었다. 힘껏 달리며 흘낏 봐도 날짜가 눈에 들어찬다. 이 시계의 바탕은 전설적인 미네르바 피타고라스 시계와 1950년대 미네르바 크로노그래프의 더블 카운터. 가죽으로 유명한 브랜드답게 피렌체에서 직접 제작한 악어가죽 줄이 수려하다. 헤리티지 크로노메트리 컬렉션 트윈카운터 데이트 3백79만원, 몽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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