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 올나잇 상영회

무더위에 잠이 오지 않는가? 친구는 부를 수 없어도 영화는 언제나 당신 곁에 있다. 저녁 7시부터 아침 7시까지 당신의 여름밤을 채울 영화들.

19:00~21:00,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2004), 기타노 다케시 감독100분 길어진 해, 어스름이 내리기 시작한 시간. 고요한 영화와 함께 여름밤 상영회를 시작해볼까.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시게루는 어느 날 해변의 쓰레기통에서 버려진 서핑보드를 줍게 돼 서핑 대회까지 나가게 된다. 서핑이 소재라고 <워터보이즈> 같은 명랑한 영화를, 장애인이 주인공이라고 <말아톤> 같은 감동적인 이야기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이 영화의 대부분은 시게루가 매일 같이 파도에 몸을 맡기는 걸 바라보는 장면의 연속이다. 잔잔하고 고요한 감정, 넘실대는 수평선, 쓸어가고 들이치는 파도만이 시야를 가득 메운다.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노라면, 마음을 메우는 파도 소리와 함께 여름밤이 시작된다.

Tip 종종 시선을 돌려도 관객을 기다려주는 느긋한 영화로, 저녁식사와 함께 보기에도 좋다. 더 부담 없는 걸 원한다면 같은 감독의 상냥한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을 추천한다.

 

21:00~23:00, <영원한 여름>(2006), 레스티 첸 감독, 96분 무더운 여름밤, 어찌 대만 청춘영화 한 편 없이 지나칠 수 있으랴. 여름에 찾아온 청춘의 열병을 삼각관계로 그려낸 영화 한 편을 추천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소꿉친구인 캉정싱과 위샤우헝은 둘도 없는 친구다. 하지만 한 소녀 후이지아와 가까워지면서, 셋의 관계는 묘하게 흘러간다. 대만의 눅눅하고 습진한 공기 속 두 소년과 한 소녀의 얽히고설킨 감정은 점점 깊어진다. 이끌림과 엇나감 속에 청년들은 성장하기 마련이다. 멜로와 우정, 성장을 버무려낸 영화. 풋풋해서 더 징글맞고, 유치하게 절박했던 그 시절이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그 추억을 회상하듯 후덥지근한 열대야에 꺼내 보기 좋은 영화다.

Tip 덥고 습한 감정에 가슴이 메일 수 있으므로, 시원한 맥주 한 잔은 필수. 풋풋하고 설레는 감정에만 집중하고 싶다면 왕대륙을 스타로 만들어준 <나의 소녀시대>를 보자.

 

23:00~1:00, <스위밍 풀>(2003), 랑소와 오종 감독, 102분 자정의 시간. 서늘한 서스펜스 영화와 함께 이 시간을 은밀히 보내는 건 어떨까. 새 작품을 쓰기 위해 프랑스 남부의 별장을 찾은 범죄소설 작가 사라는 그곳에서 편집장의 건강미 넘치는 딸, 줄리를 만난다. 줄리는 남자들을 불러 거침 없이 섹스하고, 사라는 그녀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수영장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어디까지가 소설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일까? 프랑소와 오종의 욕망과 환상을 뒤섞는 연출력과 샬롯 램플링의 고아한 기품, 루디빈 사나에의 생생한 관능까지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Tip 이 영화가 마음에 든 당신, 코엔 형제의 <바톤핑크>(1991)도 좋아하리라.

 

01:00~03:00, <블루 벨벳>(1986)데이빗 린치 감독, 120분 밤이 깊었다. 데이빗 린치의 에로틱 스릴러를 볼 시간이다. 소년 제프리는 잘린 귀 한 쪽을 발견하고, 바에서 노래하는 도로시를 용의자로 의심해 그녀의 집에 숨어든다. 그리고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평범해 보이는 미국 중산층 마을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들을 대담하게 보여주는 영화로, 전설의 미드 <트윈픽스>를 만들어낸 린치 초기의 기괴한 블랙코미디, 고혹적인 미장센, 스릴과 서스펜스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

Tip 데이빗 린치를 더 알고 싶은가? 그럼 이제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를 볼 차례다.

 

03:00~05:00,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 조지 로메로 감독, 96분 아직 지칠 순 없다. 오던 잠도 달아나게 할 작품을 소개한다. 좀비 영화의 역사에 기념비적인 조지 로메로의 영화는 남은 밤을 불태우기 딱이다. 갑자기 되살아난 시체들의 공격에 농가에 7명의 외지인들이 고립된다. 인종도, 성별도, 나이도 다른 낯선 이들 사이에선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흑백 고전 영화라고 덜 무섭고 덜 자극적일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서로 다른 인물들의 생존 욕망이 빚어내는 블랙코미디는 잔혹하고, 냉전 시대의 은유는 냉소적이고 신랄하고, 달려드는 좀비 떼는 여느 화려한 CG보다도 등골이 오싹할 테니.

Tip 전 좀비에 한 방 먹었다면, 이젠 대니 보일 감독의 <28일 후>2003, <28주 후>2007를 볼 것.

 

05:00~07:00, <한여름의 판타지아>(2005), 장건재 감독, 97분 이런, 동이 텄다! 이 영화라면 간밤의 열기를 식히기에 충분하다. 장건재 감독이 연출하고 가와세 나오미 감독이 제작에 참여한 한 편의 시 같은 영화는 일본의 작은 마을 고조시를 배경으로, 1부는 다큐멘터리 감독 태훈의 이야기, 2부는 미정과 유스케의 로맨스를 그려낸다. 우거진 녹음 속 마을은 푸르고 청명하며, 떠나기 전날 밤 불꽃놀이가 번지는 밤하늘은 꿈결 같고, 그 속에서 개울물처럼 흐르는 감정들은 잔잔하게 생동한다. 수채화 같이 투명한 이 영화를 보고 난 아침이라면, 푹 잔 밤보다도 하루를 산뜻하게 시작할 수 있을 거다.

Tip 이와세 료(유스케)의 매력에 빠졌나? 한예리 주연의 <최악의 하루>에서도 그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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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 피처 에디터] 영화와 시를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