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병산서원에서 병산을 보다

병산에서 보는 자연과 병산서원에서 보는 문명.

안동 병산서원

병산서원으로 접어 들어가는 고갯길은 아직도 흙길이다. 옆으로 보이는 낙동강 상류 줄기의 풍경 때문에 이 흙길을 땀 흘려가며 타박타박 걸어 올라가야 제맛이라는 문장을 읽었는데,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한강과 달리 우거진 수풀 사이를 느슨한 곡선으로 흐르는 강의 모습은 신선해 보일 수 있겠지만 가꾸어진 멋도 없고 멀찍이 떨어져 볼 수밖에 없어 소리도 냄새도 느낄 수 없다.

그럭저럭 볼 만하지만 곧 질리는 풍경이다. 게다가 길은 차 두 대 지나가기도 비좁다. 걸어 올라가다가는 오가는 차들이 내뿌리는 흙먼지를 고스란히 덮어써야 한다. 그것을 감수할 만큼 아늑하고 한적한 정취가 있지도 않다. 시골에 흔한 흙길이고 고갯길이다. 그저 시원한 에어컨 바람 맞으며문 창 올린 차로 슬슬 올라가는 것이 최고다. 타이어가 흙바닥에 미끄러지고 모래알이 차 밑 때리는 소리를 들으며, 요즘도 명승지 가는 데 이런 길이 있는지 내비게이션을 보면서도 이 길이 맞는건가 의심도 하면서. 그렇지 않을까? 희고 쾌적한 호텔방에서 소설책을 읽을 때처럼, 그리고 읽고 있는 소설이 소설인지 실화인지 의심스러울 때 더 몰입하게 되는 것처럼, 차를 타고 그 좁고 울퉁불퉁한 흙 길을 지나 병산과 병산서원이 있는 풍경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오른쪽으로 감아 도는 고갯길은 마을길로 이어진다. 일직선의 좁고 허연 흙길이다. 길옆으로는 텃밭과 과수원, 매운탕 맛집이거나 민박을 알리는 현수막이 보인다. 백미러를 보면 희뿌연 흙먼지뿐이다. 여느 낙후한 명승지와 별반 다를 것 없는 모습이다. 그러다 병산서원 앞에 거의 다다라 주차장에 차를 세울 즈음 눈길이 한쪽으로 쏠린다. 드디어 병산이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병산은 독특하다. 이쪽에서 바라보는 면이 짧게 바짝 일어서 있고, 그렇게 가로로 돌돌 말아놓은 죽간을 펼친 듯 죽 이어져 있다. 한눈에 이래서 병풍 같고 병산이라 이름 지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골짜기가 너울치듯 만들어낸 굴곡으로 사면은 울룩불룩하다. 그 울룩불룩한 사면마다 나무와 풀들이 빽빽해 지금 같은 여름이면 싱싱한 초록빛으로 짙고 무성하게 뒤덮인다. 그 앞에는 강 한 줄기가 흐른다. 안동시를 돌아 나와 예천, 구미로 내려가는 낙동강의 상류다. 천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만큼 좁은 강은 산이 비쳐 이맘때면 녹색으로 흐른다. 그강 앞에는 흰 모래밭이 널찍하게 펼쳐져 있다. 멋진 풍경이고 ‘그림 같다’는 상투어가 상투스럽지 않은 풍경이다. 어느 것 하나 사람 손닿은 것이 없지만 모든 것이 손수 가꾸고 배치한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만히 보고 있으면 병풍을 보는 것처럼 편안하지는 않다. 주차장을 나와 산 앞으로 걸어가면 더욱 뚜렷하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병산의 독특한 점이다. 이를테면 그 그림 안으로, 병풍 폭에 그려진 수묵화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그 그림 한 귀퉁이에 작고 간략하게 그려진 사람처럼.

모래밭은 생각보다 더 곱고 깊다. 발이 푹푹 빠진다. 운동화 틈으로 모래알이 들어온다. 생각보다 넓기도 하다. 주차장이나 길에서 볼때는 산의 초록색, 강의 남색이 갖는 면적과 비례해 넓이를 가늠하게 되는데 막상 내려가 걸으면 그 비례가 다 어긋나기 때문이다. 높이가 모래밭과 거의 같은 강의 남색은 실처럼 가늘어지고 산의 초록색은 쑥 내민 듯 더 높고 넓어진다. 모래밭의 흰색 역시 실같이 뜬 강의 남색 아래부터 발밑까지 그득히 차 있다. 볕 좋은 날이면 더 새하얗게 반사하는 그 흰색은 푹푹 빠지는 발을 빼 터벅터벅 걸어가도 좀처럼 줄어드는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산의 초록색은 가까이 다가온다. 멀리서 초록색으로만 보이던 것의 세부가 나타난다. 걸어갈수록 나무와 풀이 보이고 나뭇잎과 나무줄기가 보이고 나무와 흙, 흙과 암반이 낱낱이, 세밀하게 보인다. 그만큼 산이 다가오는 것 같다.

이윽고 강가에 다다르면 화폭의 여백 같던 모래밭은 발밑에만 있다. 느리고 잔잔히 흐르는 강에서는 옅은 민물 냄새가 난다. 밑이 보일 만큼 맑은 물 위에는 산이 비치고 물주름이 퍼진다. 병산은 시야를 가로막고 서 있다. 막막할 만큼 우뚝하고 압도당할 만큼 우람하다. 초록빛이 산꼭대기까지 만장한 여름에도 잎이 다쓸려 나간 뒤 검은 가지와 누런 흙, 뼛조각 같은 흰 바위가 드러나는 겨울에도 마찬가지다. 산은 수묵화 속의 산처럼 너무 크고 그 앞에 선 나는 수묵화 속의 사람처럼 아주 작다. 그곳에 서는 그것을 실감하게 된다. 확실히 편하지는 않다. 하지만 좋다거나 나쁘다고 단언하기 이전에 아주 사실적인 체험인 것은 분명하다. 그것을 체감하며 모래밭을 천천히 걷는다. 한 곳에 털썩 앉거나, 또 벌렁 누워보기도 한다. 낮게 이어지는 물 흐르는 소리를 듣는다. 산속에서 울려 퍼지는 새소리와 나무를 훑으며 솟거나 내려오는 바람 소리를 듣는다. 그것들이 불러오는 자연스러운 감정을 느낀다. 고요일 수도 있고 평온이나 적막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것 역시 무척 개인적인 체험이다. 너무 날것이고 이내 권태로워지고 마는 것이라도 말이다.

그렇게 병산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면 자연스럽게 병산서원에 가고 싶어진다. 여기까지 왔으니 한번 들러봐야겠다는 마음 정도가 아니라 정말 지붕과 마루가 있는 곳으로, 그림의 바깥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병산서원은 딱 그런곳에, 그런 모습으로 있다. 병산 맞은편, 화산(꽃뫼라고도 부르는) 중턱에 걸터앉아 병산을 보고 있는 서원은 입구가 배롱나무로 여름 내내 붉다. 이름난 서원치고 작다 싶은 문에 들어서면 곧바로 유명한 만대루가 나타난다. 아무장식도 채색도 없이, 기둥조차 자연목의 휘고 비스듬한 형태를 그대로 취하고 그 밑에 괸 초석 역시 자연석을 갖다 쓴 누각이다. 그런 것을 흔히 소박하다고 말하지만 만대루에 어울리는 표현은 아니다. 만대루는 정면 일곱 칸, 측면 두 칸으로 2백 명은 너끈히 앉을 수 있을 만큼 넓고, 남향의 정면 지붕은 홑처마보다 볕이 더 많이 들고 더 날렵한 곡선을 보여주는 (그만큼 더 많은 비용이 드는) 겹처마다. 만대루는 소박한 건물이 아니다. 다만 멋을 부렸다는 표를 내고 싶지 않고 본래 기능에 충실할 뿐. 취향이라면 뚜렷한 취향이고 태도라면 단호하게 실용적인 태도며 실은 그 두 가지가 하나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좋은 취향이란 불필요한 자투리와 속물스러운 허장을 모두 걷어낸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취향과 태도는 서원 안의 다른 건물, 전체 배치에서도 일관하다. 일반 서원에서 건물 배치의 핵심은 성현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다. 사당 건물의 중심에서 강학 공간과 누각, 대문을 일직선으로 놓고 기타 부속 건물을 좌우 대칭으로 배치한다. 하지만 병산서원에서는 입 교당과 만대루가 앞뒤로 서고 동재, 서재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강학 공간이 중심이다. 사당은 입교당 바로 뒤에 있지 않고 더 오른쪽으로 동재에 치우쳐 있다. 특정 건물의 중심이 아니라 서원 건물 전체의 중심선 맨 뒤에, 가장 윗 자리에서 전체를 감싸 안는 듯한 꼭지점이다. 덕분에 각각의 공간이 옹기종기 맞물린다. 담벼락 너머에 있는, 서원을 돌보는 하인들이 먹고 자는 주소廚所까지 서원 전체의 동등한 일부인 양 자연스럽게 한 영역 안으로 들어온다. 그것은 이후 대부분의 서원이 엄격하게 반영한 유교 세계관(사당에서 일직선으로 뻗어 내
려오는) 이전의 세계, 훨씬 더 젊고 유연하며 포용적인 세계관을 솔직하고 투명하게 반영한다. 그 세계의 멋은 선배가 쓰는 동재와 후배가 쓰는 서재 앞에 각각 한 그루씩 있는, 똑같이 키가 작고 둥글게 잘 자란 매화나무에도 있다. 서원만이 아닌, 병산 전체가 썰렁하고 황량한 이른 봄에 서원장이 있는 입교당이 아닌, 어린 학생들이 숙식하는 그 두 건물 앞 나무에서 가장 먼저 귀한 꽃이 피는 것이다. 지혜롭고도 아름다운, 사뭇 시적인 사실이다.

이런 병산서원의 만대루에서 보이는 병산은 강가에서 보는 것과 전혀 다르다. 기둥과 처마에 잘려 들어오는 병산이고 우람하고 우뚝한 정면이 아니라 그 밑으로 흐르는 강처럼 유유히 뻗은 산의 왼쪽 어깨 능선이 보이는 병산이다. 늦은 시간에 보면 좋다는 만대루란 이름처럼 해가 기운 오후에 길고 깊숙하게 스미는 빛과 짧고 바짝 일어선 골짜기가 만들어낸 음영 사이에서 떠오르는 병산이며, 너무 날것도 아니고 쉬 권태로워지지도 않은 채 멀찍이 떨어져 오랫동안 편히 볼 수 있는 병산이다. 입교당 마루에 서원장처럼 앉아 만대루 지붕 너머로 보는 모습이 좋다는 말도 있지만 나는 원생처럼, 서생처럼 이 넓고 서늘한 만대루 마룻바닥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돌란대 위에 한쪽팔을 걸치고 바라보는 병산에 만족한다. 그리고 이곳에 누각을 올린 안목 과 멋에 관해 생각한다. 그 안목과 멋으로 병산은 그윽히 감상할 만한 것이 되고 병산서원은 풍경 좋은 곳에 서있는 정도가 아니라 어떤 풍경을 정확히 바라볼 수 있는 곳이 된다. 그것은 이후 난립한 서원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는 것이자 현재도 거의 찾기 어려운 건축적 미덕이다.

공교롭게 이 미덕을 고스란히 보전할 수 있었던 것은 안동사람조차 좀처럼 찾지 않을 만큼 이곳이 외지고 낙후했기 때문이다. 도산서원 시사단이 안동호 개발로 졸지에 솔밭과 백사장 배경을 잃은 섬이 되고, 하회마을이 영국 여왕의 방문 이후 급속히 유명해지면서 마을 본래의 자연스러움과 윤택함을 잃게 된 과정이 병산서원에는 없었다. 하지만 낙후가 미덕일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병산서원 역시 병산을 개발한 것이다. 그 풍경을 서원의 배경으로, 교학의 한 수단으로 삼고자 했다. 맹점은 낙후가 아니라 개발에 있고, 우습게도 17세기 중반 이후 전국 각지에 난립하는 천편일률의 서원들이 바로 그 맹점을 잘 보여준다. 아무 연고도 없는 위패, 유교 세계의 획일과 권위를 형상 화한 구성과 배치, 권위와 위세만 자랑하기 위해 크고 화려하게 장식한 대문과 누각. 종종 누대의 강학 기능을 지우고 휴식과 유흥 기능만을 위해 정자를 대신 올리기도 했다는 것까지 떠올리면 자연스레 그 시대와 지금의 유사점이 보인다. 권위를 숭앙하고 체제에 순응하는 사고와 태도, 그래서 무뎌지고 굳은, 멋지고 아름다운 것에 대한 극히 자연스럽고 인간다운 감각과 감정적 유연성, 탁월함이 아니라 한정된 자리를 놓고 벌이는 경쟁과 추격전. 그런 것에서 비켜서는 데 낙후가 한몫을 해 미덕을 보전한 것은 사실이자 퍽 재미없는 농담이다. 하지만 그 농담마저 위태롭다. 너무나 당연하게, 각 서원의 연계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이미 한차례 반려 판정을 받았으면서도 한국의 서원이라는 제명에 묶여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를 추진 중이다. 병산서원을 세운 안목과 멋은 요원하고 모든 문화의 바탕인 자족은 아직도 대접을 못 받는다.

“한국은 “전 국토가 박물관” 이라던 유홍준 교수의 말은 여전히 유효할까. ‘유치’와 ‘개발’ 플래카드 앞에서 과거는 남루할 뿐이고 ‘(문화유산)지정’ 표어가 나붙어도 실은 앞날을 계산하기 바쁜 시절. 번듯한 관광지가 아니어도, 맛집을 골라줄 순 없어도 직접 발품을 팔아 답사해 차라리 호주머니에 넣은 듯이 간직한 개별의 문화유산에 대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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